popup zone

1963년 제1회 수필 부문 장원 오순희(전남여고)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636
<수필부 장원>

들길

오순희(전남여고)

 내가 들길을 찾는 시간은 나의 생활 중에서도 가장 외롭고 맑아지는 순간이다. 파랗게 펼쳐진 구도위를 머리칼을 날리며 걷노라면 하루의 피로도 어느 새 풀려가고 나도 모르는 흐뭇한 행복감에 잠겨진다. 하늘에는 때때로 흰 구름이 흐르고 들판에는 푸른 파도처럼 보리밭이 물결치고 또 겨울이면 하이얀 눈이 소복이 쌓이고….. 나는 이 길의 풍경 속에서 어느 것을 좋다고 해야할지 막연할 뿐이다. 모든 것이 좋은 것들 뿐이고 도무지 권태라고는 손톱만큼도 있을상 싶지 않다. 나는 이런 논둑길을 걸으면 무성이 아쉬운듯한 상념에 잠겨간다. 다른 사람들은 제각기의 일들에 바쁜시간을 길거리에서 흘려 버리고 전등불로 깊어가는 도시의 밤 속에서 아무 불안이 없이 살아 가는 데 나는 왜 그렇게 꼭 째여진 시간에서 기어코 빠져나와야 하는지 모른다. 이토록 나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가는 들길을 찾으면 먼저 시선이 향하는 것은 포푸라의 그늘이 얕게 드리워지는 남쪽으로 향한 길이다. 포푸라는 항상 그 기다란 키를 지니고 묵묵히 서 있고 개울이 있는 옆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가 있어 밥짓는 연기가 새어나올것만 같다. 태양이 쨍쨍 내려 비치는 하루종일 구슬땀을 흘려가며 밭을 갈고 저녁에는 희미한 호롱불앞에 모여 앉아 온 식구가 평범한 행복속에서 날을 보내는 농가의 어느 행복한 가정을 연상케 한다. 초추라나무를 생각하면 꼭 개울물 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도 아름다운 생각을 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었고 이런 것을 현실과 병행하게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꿈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잃었던 하늘이 한결 파란게 못 견디도록 좋다. 이런 파아란 하늘앞에서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싶은 경건한 심정이다. 그리고 눈 오는 밤 끝없이 펼쳐진 고운 눈길을 걷노라면 마음 마저도 맑아지는 듯 싶은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나 내게는 확실히 잊을 수 있는 정경은 아니었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이제는 머얼리 가 버린 옛벗을 그리워하면서 또 다시 잃어버린 회화? 다시 한번 되씹어 보는 것이다. 아름다움 속에서 사귀었던 벗들은 아름다운 미소로써 기억되듯 너무 찬란한 것은 지극히 짧은 빛을 남기며 사라지는 그림자였나 보다. 오월의 하늘. 잔디밭에 팔 벼개를 하고 누워보면 말끔히 개인하늘 한 조각이 호수처럼 맑은 동심을 싣고 고요히 다가온다. 나와 H는 해 지는 줄도 모르고 그 호수 속에 온통 빠져 푸르고 넓은 강을 헤엄치는 것이다. 찔레꽃처럼 향그러웠던 아련한 회화였기에 기적처럼 빨리 달아나 버렸는지 모른다. 꽃처럼 찬란한 순간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말하고 싶다. 반드시 기쁨뒤에는 슬픔이 있다는 철칙을 인식한 뒤, 마음 아픈 체념을 각오한 뒤, 그 앞에 막아서라고……. 이제 잃었던 옛 기억 위에 나지막한 종소리가 울릴 듯 싶은 황혼길위에 나는 또다시 H의 발자국이 들릴 듯 싶어 귀를 기울이면서 기다림의 자세로 다시한번 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꼭 오기를 바라는 심정은 아니다. 어쩜 지금 H가 찾아온다면 나는 되려 미워하면서 발걸음을 돌이키며 이 들길을 저주 할는지 모른다. 역시 다시 올 수 없기에 그리워 하고 아쉬운 마음이 되어 가는 것일게다. 나는 이 들길에서 때묻은 세상과 멀리한 것 같은 현실에서의 나를 돌아보는 극히 적은 일들에 얼굴을 찌푸리고 웃음을 잃고 좁은 세계에서 허덕이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희망의 찬란한 별이 빛나는 밤, 고요히 하늘을 우러르며 지구의 끝까지라고도 무작정 걷다가 밤을 밝히고 싶은 밤은 또한 잊을 수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찬다. 이런 밤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발길을 들길을 헤메이고 있다. 들길의 파릇 파릇한 새싹들이 우리의 생명을 파랗게 환기 시키듯 어둠의 이 길에는 푸름도 또 밝음도 모두 흙빛으로 색칠하는 자연의 신비와 함께 정적이 깃든다. 나는 이런 모든 원인들 때문에 들길을 그리워 하는 지 모른다. 들길은 우리에게 넓고 순수한 마음을 만들어 주고 또 때묻은 현실을 잊게 하는 구원의 부드러운 손길이다. 그리고 눈 빛이 고운 옛 벗을 그리게 하고 좀 더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