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제 4회 콩쿠르 수상작(이근호, 홍현희, 서수진)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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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장원>
바람
이근호(대구 대륜고)
바람은
냉냉한 계절에 시달리던
꽃나무를 흔들며 왔다.
어느날엔가
<플랫홈>에서 의미있게 흔들어 주던
나의 누님의 손길처럼
너의 의미 짙은
육성으로 하여
가난한 가슴마다엔
참으로 색감 짙은 내일이 도사려진다.
나비처럼
태연하게 돌아온
바람의 촉수에
사뭇
날아 오르는 자세로 선
꽃망울.
그땐 정오쯤일까.
두꺼운 층으로 의미를 묻으며
자라 오르던
바람 머문 나무.
나는
바람처럼
꽃망울을 더듬는다.
바람으로 하여,
어둠을 가르며
크낙하게 돌아오는 효종(曉鐘)처럼
누군가의 품 안으로 화심처럼
안겨 갈
불붙는 생명의 찬가여.
바람으로 하여
정화된 서먹한 거리와
다
신명나게 휫바람을 불며 걸을까.
바람 속에
퍼져가는 빛깔 곱고 맑은
음향.
흔들리며 가는 바람에
곱게사 부풀은 가슴들은
계절을 향하여
안으로 터지며
화신을 부르는
가만한 발화의 자세로,
이미, 펴버린
매서운 분노의 파름한 주먹,
주먹은
키워온 분노를
얼마큼, 피울 것인가.
피울 것인가.
바람이 제 바람에 흥겨운
오후.
바람은
꽃의 정부(頂部)를 더듬고 있었다.
<소설부 장원>
이웃집
홍현희(성동고)
해마다 오월이 되어 아카시아 꽃 하얗게 피면 찬이는 늘 은발에 소복하고 다니시던 외할머니 생각이 간절해지고 그 외할머니로 하여 바로 이웃에 살던 소꿉동무 소녀 하나가 떠올라 가슴속까지 짜릿해오는 슬픔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는 막연하나마 소녀의 소식이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찬이는 외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검은 머리라곤 한 오라기도 없는 키가 작은 노인이었다. 치아는 하나도 없어 오돌오돌 움직이는 입 모양이 우스웠고 흰 치마에 흰 저고리를 즐겨 입는 노인이었다. 매일의 일과는 잔칫집이나 상가집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교문 옆에 큰 은행나무가 서 있는 N국민학교 바로 옆의 조그만 병원이 찬이의 외갓집이었다. 외할머니는 유명했다. 나이가 많기로 그러했고 꽤 알려진 의사의 모친으로서도 그러했지만, 학교에선 찬이의 외할머니로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매일 마지막 수업시간만 되면 찬이는 으레히 초조해지곤 했다. 매일 그맘 때엔 외할머니가 녹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기웃거리며 찬이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찾아오면서도 찬이의 자리를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찬이……. 우리 찬이 어디있냐 "
교단 위에서 책을 읽으시던 선생님은 책 읽기를 중지하고 어느새 책으로 입을 가리고 눈으로 웃기만 했다. 할머니는 찬이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와서는
"찬이야, 이따가 요기하구 가거라."
그리고는 선생님께 미안하단 말도 없이 그냥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저쪽 유리창 밖에서 발돋움을 하여 얼굴만 보이면서
"언놈아, 갈 때 요기하구 가거라."
이런 때는 아이들이 와 웃었다. 찬이의 얼굴은 확 달아오르곤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외할머니를 못 오게 할 수 있을까 학교에 가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매일 학교에 찾아오는 것이 누구에게보다도 저쪽 양지바른 창가에 앉은ㅡ항상 그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즈런히 하여 통통한 볼을 괴고 공부를 하는ㅡ이웃에 사는 소녀에게 부끄러웠다.
이야기를 할 때 소녀의 눈길이 약간 위로 향하고 붉은 입술의 윤곽이 또렷하여 귀염성 있는 얼굴이었고 이마에서 코 위로 흘러내린 선이 고왔다.
소녀는 찬이네 바로 이웃에 살았다. 어머니에겐 팔촌 언니가 되는 몸바위 아주머니의 하나 밖에 없는 손녀였다. 찬이가 다섯 살 나던 해, 소녀는 어머니를 따라 서울에서 왔다. 사변 때 아버지는 죽고 서울엔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소녀의 삼촌이 있다고 했다.
학교에 들기 전에는 물론, 학교에 다니면서도 찬이는 늘 소녀네 집에서 놀았다. 같이 공부하고 숙제를 하고 좀 쑥스럽긴 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는 소꿉놀이를 벌이곤 했다.
찬이는 소꿉놀이가 별 재미가 없었지만 소녀는 퍽 재미있어 하는 눈치여서 소녀가 하자고 할 때에는 언제나 응해주곤 했다.
소녀는 찬이보다 한 살 위였지만 날씨가 따뜻해지고 소꿉놀이가 하고 싶을 땐 다 낡은 돗자리 하날 가지고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소녀는 진달래 꽃을 정신 없이 꺾어 찬이와 술싸움을 하고 꽃잎은 먹어버렸다. 얼마후 소녀의 혓바닥은 자주빛으로 변해있었다. 꽃이란 꽃은 보이는 대로 꺾어 나무 그늘아래 돗자리를 폈다. 밀빵이 달린 파란 스카트를 입은 소녀는 손재주가 있어 새금파리를 동그랗게 다듬어 밥그릇을 만들고 진달래꽃과 아까시아 꽃은 밥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이 금방 지나면 밤이 됐다면서 잠을 자고, 어느새 가을이 되어 추수를 했다.
소녀는 엄마 찬이는 아버지였다. 소녀는 말하는 품이나 얼굴 표정 또는 몸짓이 제법 어른 같았지만 찬이는 서툴렀다. 햇볕이 따스하여 노곤해지면 그들은 소꿉놀이를 그만두고 다시 찬이와 소녀가 되는 것이었다.
"아, 덥다."
하고 소녀는 그 자리에 반듯이 누워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을 꼼짝않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찬이는 옆에서 소녀의 얼굴이 탐스럽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늘은 왜 저렇게 파랄까 "
이렇게 소녀가 물으면 찬이는
"하늘이니까 파랗지."
하는게 고작이었다. 소녀는 그 외에도 어려운 것들을 묻곤 했다. 하늘은 얼마나 높은 것이며 그 위에는 정말 천당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찬이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름이 되면 찬이는 소녀와 함께 물가에서 살았다. 배고픔을 모르고 해 지는줄 모르고 손가락 발가락이 하얗게 불 때까지 모래와 들과 물로 놀았다.
모든 놀이는 소녀가 지도적이었다. 찬이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재미있는 놀이를 소녀는 쉽게 생각해 내곤 했다.
소녀는 마을에서도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찬이는 소녀가 무척 좋았다.
그러나 3학년이 되면서 소녀는 잘 놀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학교 변소에 <찬이하고 소녀하고 뭐뭐했다네> 라는 낙서가 쓰여진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젠 남자아이와 노는 것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찬이네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리하여 찬이가 소녀를 보는 것은 학교에서 뿐이었다. 소녀는 언제나 그러했지만 학교에 와서는 아주 얌전했고 찬이와는 이야기도 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녀를 만나는 때가 있었다. 그것은 오직 두어달에 한번쯤 있는 외갓집 제사 때였다.
찬이는 초저녁때부터 잠이 왔다. 밤중에 깨었을 때 가끔 옆에서 소녀가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부엌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4학년 때부턴가는 제사가 바로 끝났을 때 소녀는 아주 어른스럽게 과자나 사탕 같은걸 아무도 모르게 찬이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찬이가 싫다해도 넣어주었다.
5학년 겨울인가 학예회 때 소녀는 독창으로 <고향 생각>을 불렀다. 찬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누구보다도 힘껏 박수를 쳤다.
그리고서 찬이는 서울로 전학했다. 몇 번 편지를 띄웠지만 한번도 답장이 없었다.
그 후로 소녀가 서울 어느 중학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골에 내려가도 소녀는 통 만나지 못했다.
찬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 소녀네 삼촌은 사업에 실패하여 땅을 많이 팔았고 그리하여 소녀도 학교를 중단하고 어느 제약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고 찬이는 가슴이 아팠다.
그 해 음력 설 때 찬이는 몸바위 아주머니에게 세배를 하러 갔었다. 아주머닌 세배를 받고 나서 내 앞에선 괜찮다 하며 술까지 권하고 이젠 어른이 다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넨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지붕은 해이은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짙은 재빛이었고 장마 때 무너진 듯 보이는 담은 고치지 않은 채였다.
아주머닌 소녀가 왔으니 저녁에 놀러 오라했다. 그날 저녁 찬이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놀랄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다. 머리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러했다.
"어른이 다 되셨군."
찬이는 하옇게 살이 오른 소녀의 목덜미를 응시하며 빈정댔다.
"아재두."
소녀는 찬이를 아재라 불렀다. 자세히 보니 소녀는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이었지만 뽀얗게 분을 바른 것이 나타났고 눈썹까지 그린 것이었다.
"어른같이 무슨 화장을 다하지 "
"시집가야지."
"시집 "
소녀도 웃고 찬이도 웃었다. 어딘가 좀 쓸쓸한 소녀의 웃음이었다.
"시집가는게 좋으니 "
"글쎄ㅡ"
"싫으니 "
"다음에 대답할게."
"좋은 남자라도 있니 "
"아아니."
소녀는 당황한 낯빛으로 머리까지 흔들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소녀는 이젠 제약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쭉 시골에 있게 된다고 했다.
찬이는 소녀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내가 좋은 사람 중매 해줄게."
했다.
"아재가 "
소녀는 또 웃었다.
"진담이야."
"고마워라."
소녀는 농담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힘없이.
"난 평생 혼자살테야."
했다.
"왜 "
"……."
"농담이겠지."
"정말야."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찬이는 소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고운선을 그려보며 소녀에겐 자기가 훌륭한 남자를 중매해 주어야겠다고 가슴 속에 새겼다.
그리고 일년 후에 소녀를 또 보았다. 소녀는 바싹 야위어 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하니까 머리만 가로 젓다가
"이 세상엔 총각이 더 많을까 아니면 처녀가 더 많을까 "
했다.
"왜 그런걸 묻니 "
뜻밖의 질문에 당황하여 얼굴을 들었을 때 소녀의 얼굴은 싸늘한 애수에 젖어있었다. 그 모습이 찬이가 마지막으로 본 소녀의 얼굴이었다.
재작년에 외할머니 장례식에 갔을 때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몸바위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정신이상이라고 했다.
몸바위 아주머니네 집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집은 거의 다 쓰러져 가고 울 안에 큰 살구나무는 베어지고 그 많던 딸기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소녀 어머니가 친정에 갔기 때문에 칠순이 지난 아주머니가 손수 조석을 끓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소녀의 삼촌 때문이라면서 긴 한숨만 내쉬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가 말한 병원에 소녀는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병원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고향 동무를 만나 이야기 끝에 소녀에 대해 물었다. 소녀는 회사 다닐 때 어떤 청년과 연애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청년이 소녀를 차버렸다는 것이었다.
<수필부 장원>
나무
서수진(보성고)
이건 순전한 저의 독백입니다. 믿으셔도 안 믿으셔도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허나 이것만은 잊지 마십시오. 난 오랜 세월을 지켜 살아온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저 흘러왔다 흘러가는 어느 나그네의 헤픈 잡담이라고만 생각하십시오. 허지만 또한 이것도 기억해 두십시오. 당신은 인간이고 난 나무라는 걸 말입니다.
머언 태고녘.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던 이래 언제부터인가 아담과 이브는 존재했고 그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거칠은 자연에 도전해 왔습니다.
인간은 결국 인내와 투지로서 자기네들의 생존해 나갈 곳을 만들었고 점점 멀리 분포되는 사이에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이성을 가진 까닭에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과 수단을 배웠으니 너무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자기네들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며ㅡ사실 인간이외의 누가 그것을 옳다고 인정했겠습니까 ㅡ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증오와 모략과 살생 속에 오점만 남은 역사를 창조해냈습니다.
보십시오. 수억 수만의 역사의 흐름 속에 과연 평온한 역사의 연속이 있었던가를. 물론 나는 이것을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본 인간들이란 잔악하고 위선적인 그러면서도 모순투성이의 동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자신의 안일과 영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말 졸렬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굵은 연륜의 흐름에 따라 인간들도 마구 변했습니다. 그것은 현 20세기의 과학 문명의 소산인지도 모르겠으나 이제 그들의 가슴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참다운 정서적인 면을 난 결코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주위에서 그래도 시를 읊고 인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만족감을 더해주는 더러운 놀이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마냥 거리를 뒤덮은 먼지와 소음과 쓰레기 투성이 속에서 과연 그들은 생존해 갈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른지 의문입니다.
이제는 자기 본연의 표정을 잃어버리고 육체만이 현실에 존재할 뿐 정신은 세태에 융합돼버리고만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이제 난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난 내몸이 한겹 쌓여 갈 때마다 속된 세태의 때가 쌓이는 것 같은 불쾌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언제인가는 나도 인간의 손에 쓰러져 버릴겁니다.
허나 난 지금이라도 사라져 버린 그들의 표정 위에서 하나의 참다운, 아니 인간다운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이제 쓰러져 버린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기에 먼 훗날 언제인가는 인간들은 그들 본연의 자세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다만 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기에 불만과 또한 독백을 이렇게 머언 하늘과 얘길 나눕니다. 엉성한 나뭇가지 새로 조각난 하늘과 같이 말입니다.
-어느 古木의 푸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