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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제 11회 콩쿠르 수상작(최병래, 최춘희, 박성민, 김성원)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789
<시부 장원> 소리 최병래(한양공고) 역사의 젊은 손바닥에 접어둔 바람소리, 살아나 그 외침이 스치는 곳곳에서 꽃잎 열리는 소리. 하얀 속 씨. 속, 토닥거리는 우리들 가슴. 가슴에 날개 펴는 소리. 날을 듯 지척이는 소리. 어린, 참 많이도 어린 유리 빛 기운이 넘쳐 아, 꽃불 타는 소리. 문득, 능금 알 익어 시간을 넘어오는 오후 밑으로 두 손 모우던 먼 바람 속에서 유년의 날개 날아오르는 소리. <시부 가작 2석> 소리 최춘희(서울여고)1) 솔숲사이 짙은 숲향기 속에 푸른 웃음소리. 저마다의 지느러미를 반짝거리며 초록의 수액을 흠뻑 적신 풍요한 눈빛의 설레임속에 아이들이 웃고 있다. 반쯤 벌어진 장미색 입술위에 가만히 타오르는 초여름 햇살. 풋풋한 풀내음 안은 바람을 따라 때묻지 않은 동화가 고운물살 번지듯 하늘에 지고 하늘로 솟구쳐 허공을 가르는 표적 없는 환호성 그 언저리 마다 은빛으로 물결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안개처럼 자욱이 피어나는 유년의 창에 꽃으로 무성한 내일을 열어 나는 항시 푸르른 숲 속에 산다. <소설부 장원> 어떤 오후 박성민(경동고) 기영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연하였다. 그래 두 눈을 말똥거리며 천장을 쳐다보나 별 수가 생길 리 없다. 낮은 천장을 가득 채운 무늬가 너무 단순하다는 예전에도 자주했던 생각을 아무 필요가 없는 데도 하였다. 이렇게 천장을 쳐다보면, 으레 한숨만 나오기 마련, 정말 기영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실로 막연한 노릇이었다. 며칠 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의 말쑥한 모습이 떠올라 기영의 가슴을 찌른다. 그리고 항상 기영을 아끼고 염려해 주시던 중3때의 담임선생님.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이 머리도, 꼬리도 없이, 기영의 큰골에서도 혼란을 빚어낸다. 그런 기영에게 뜻밖의 일이 생겼다. “계십니까 ” 이맘 때 쯤 이면 좀처럼 듣기 어려운 사람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자, 커다란 라디오를 여럿, 등에 맨 외판원이다. 라디오를 사랜다. 있대도, 좋은 것이고 싸게 준다고 사랜다. 기영은 더 대꾸 없이 열심으로 선전하는 외판원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심심치가 않다. 다이얼을 돌려가면서까지 수선을 떨던 외판원이 대꾸 없는 기영에게서 팔 수 없음을 감지했는지 그냥 가버린다. 아쉬웠다. 좀 더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골목길을 돌아가는 외판원의 등에 멘 라디오가 기영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기영은 하늘을 보았다. 초라해 뵈는 기영에게라도 하나 팔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외판원의 작은 얼굴이 떠오른다. 다이알까지 돌려가며 하던 행동이 더욱……. 푸른 하늘이 새삼 눈이 부시다. 늘어선 지붕들 사이로 남산이 보인다. 푸른 하늘빛을 닮아 산은 무척 파릇하다. 문득 기영은 남산에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 근래에 보지 못하던 빠른 행동으로 자물쇠를 찾아내어 문을 채우고 나섰다. 열쇠는 자고 있는 옆방 아줌마의 머리맡에 두고 나왔다. 거리는 무척 한산하다. 점점 가열되는 태양열에 축 늘어졌다보다. 기영은 푸른 가로수의 그늘만 골라 디디었으나 짓궂은 해는 악착같이 따라오면서 기영의 하얀 이마를 비춘다. 오랜만에 나선 거리지만 결코 낯설지가 않다. 다만 아까 오다 본 XX복사장사의 진열장에 서있는 하얀 하복만이 기영을 흘겨보았을 뿐…… 동자동에서 남산 길을 오르려던 기영은 마주보이는 서울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때가 때라서 그런지 늘 붐비던 서울역도 한산하다. 대합실에서는 일없는 사람 몇과 어디로 가는지 큰 가방을 들고 서성이는 사람이 몇 있을 뿐 비교적 한산하다. 기영은 갑자기 피곤을 느꼈다. 그래 한쪽구석에 자리 잡고 눈을 붙였다. 얼마를 그렇게 보냈는지 호남선 운운하는 소리에 갑자기 잠을 깼다. 지금 막 열차가 도착했나보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기영은 짐짓 누구를 맞으러 온 것도 아닌데 사람을 찾는 것처럼 활짝 열린 개찰구 쪽을 기웃거렸다. 막연히, 이 열차에 돈을 가지고 올라오신 어머님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되었다. 그러나 입구를 닫을 때까지 어머님은 고사하고 은연중 기대했던 같은 동네사람도 없었다. 맥이 빠진 기영은 서울역을 빠져나와 남산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기영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비쳤다. 그건 아까 그 외판원이다. 어느 가게 앞에서 기영에게 했던 똑같은 행동을 하나보다. 순간 기영은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왠지 우울하고 갑갑했던 하루였지만, 그 외판원을 다시 만남으로 인해 오늘은 뭔가 새로운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기영은 그 외판원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몇 군데에선가 외판원은 라디오를 팔려했고 그럴 적이면 기영은 멈추어 서서 그 행위를 구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외판원의 등에 있는 라디오가 줄어들길 바랐다. 그러나 아무 변화 없이 진행되는 과정에 그만 싫증을 느낀 기영은 걸음을 빨리하여 남산으로 올라갔다. 곧장 정상까지 오른 기영은 팔각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기영은 별반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였다. 단지 그 외판원이 지금도 팔리지 않는 라디오를 가지고 서성이고 있을까하는 생각만이 기영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래 기영은 되돌아서 산을 내려왔다. 식물원 앞 분수대를 지날 때 기영은 그 외판원을 발견하였다. 외판원은 라디오를 등에 맨 채로 솟아오르는 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외판원의 모습을 보고 기영은 등에 맨 라디오가 몇인가를 세어보았다. 손에 들고 있는 것 까지 합해서 다섯 개 좀 전까지 그 외판원이 가지고 있던 라디오가 다섯 개였는지, 여섯 개였는지 확실히 생각나지 않는다. 다섯 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여섯 개였던 것 같기도 하여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외판원이 바라보는 분수와 종전 어느 가게 앞에서의 외판원의 열중한 모습을 생각하고 기영은 아침에 외판원이 갖고 있던 라디오 수는 여섯 개였다고 단정을 내리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열쇠를 찾으려고 기영이 옆 방문을 열자 아줌마가 열쇠와 함께 시골에서 왔다면서 흰 봉투를 건네준다. 며칠 전 돈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봉투 안에는 편지와 소액환 증서가 들어있었다. 순간 봉투를 쥔 기영의 손은 떨렸다.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어머님의 편지를 기영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그리고 기영은 아까 그 외판원의 처음 가지고 있던 라디오의 개수가 여섯이었다고 단정을 내렸다. <수필부 장원> 구름 김성원(휘문고) 우리는 푸른 하늘을 항상 맞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흰 구름도. 파란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 흔히들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 쪼이고 하늘은 더없이 푸른 오후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차창 밖으로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제 어린 마음은 큰 기쁨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아름답게 막 피어나려는 국화 송이 같고 엄마의 포근한 품과 같은 감촉을 느끼게 하는 뭉게구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파아랗게 펼쳐진 융단 위에 흰 구름이 둥실 떠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을 느꼈고 국화꽃의 향기를 싫도록 마실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의 일이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생각납니다. 그때가 그리워서 가끔 하늘을 보면 어릴 때만큼 아름다운 하늘이나 멋진 구름을 볼 수가 없고 다만 푸르스름하게 퇴색해버린 융단 위에 드문드문 회색빛 구름들만이 보입니다. 정말 포근한 감촉을 느끼게 해 주는 구름은 볼 수가 없고 무미건조한 생활에 찌든 구름만이 하늘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제법 다정한 구름도 있습니다. 그때면 어려서 일들이 생각납니다. 함께 뛰놀며 초록빛 언덕에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며 “성원아. 우리 이 담에 커서 구름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자, 응.” 하고 말하던 소꼽동무가 생각납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다시 안 보이든 줄에 매달려 있는 구름을 보게 되면, 괜히 마음이 울적해 집니다. 제가 어릴 때는 구름도 하늘도 동무들도 모두 좋았습니다. 흰 구름은 이곳저곳으로 제 위를 떠다니면서 저를 돌보아 주었고 파란 하늘은 항상 저를 덮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무들은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무들도, 하늘도 구름도 별로 좋지가 않아요. 동무들은 옛 동무들보다 저를 아껴주지 않아요. 그리고 하늘도 전처럼 포근하게 해 주지 못하고 구름은 떠다니지 않고 매달려만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만 다정한 모습들이 자취를 감추려고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구름이 보이는군요. 그렇지만 옛날 같지는 않아요. 다시 옛날처럼 하늘에 피어나는 구름을 보고 동무와 제법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