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1983년 제 21회 콩쿠르 수상작(김성식, 장석남, 함만식, 안재숙, 이선...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118
<시부 장원> 탈 김성식(대구 대륜고) 탈은, 순간으로 누운 인연을 무거운 벽으로 가린 채, 화안한 지평을 출렁이는 자유의 파편 그 까아만 눈빛의 성성(聖城)으로 일어서는 지면(地面), 핏 속마다 번지는 열정의 웃음 뿌리며 그 위로 밝게 널린 하늘 밖을 하늘과 마주 구르는 어디쯤, 만신창이로 떠 흐르는 일상을 벗으려는 빗나는 탈보(脫步)여, 막힌 하늘 소릴 듣기 위해 깨어나는 아침이여, 뿌우옇게 몸부림하는 말들이 구겨지고 접혀지는 두 귀엔 살 껍데기 태우듯, 날카로운 목소리 뿌리내리고, 푸른 물이 되기 위해 견고한 뼈 속에 감춰둔 육성이 켜진다. 탈은, 무수한 흔들림으로 설레어오는 유민(誘愍) 더러는 서늘하게 번지는 회상의 그물 완강한 생리로 펼쳐드는 그 어느 몸짓 끝엔, 청명한 바람 한 점 가볍게 목틔여오고, 또 어느 몸짓 끝엔 튼튼한 수 세기의 통곡이 비치고 황토빛 넋과 맞닿은 피안이 여기 있구나. 마침표도 절망도 없는 빛나는 출발이, 오랫동안의 의지로 치솟는 날개되어 여기 있구나. 탈은, 순간으로 누운 인연을 무거운 벽으로 가린 채, 화안한 지평을 출렁이는 자유의 파편. ? <시부 우수 1석> 풍경 장석남(제물포고)1) 깊은 꿈결의 한쪽 마디를 지우며 느리게 찾아온 누이 편지 속에서 낮게 낮게 저무는 하늘을 읽는다. 내 키 자란만큼의 높이에서 알맞게 젖어있는 꿈은 풀잎들의 노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슬픔의 내용으로 불어오는 바람 제몸 묶여 쓰러지는 바람처럼 그렇게 가슴에는 땅그늘이 남는다. 저문 강물을 끼고 떠나가던 내 누이의 옷고름에서 시린 바람이 일고 그 바람끝에는 자세한 어둠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가, 눈감고 바라보면 몸잘려 가벼운 낮달 하얀 실타래를 풀며 흘러가는 낮달은 언제부터 어머님 젖가슴 밑이나 흐린 이마의 잔주름같은 이야기인가 푸른 기억의 노래를 엮어 흐르는 강은 흐느낌만으로 어둠을 건너고 그 서툰 보행은 지금쯤 어느 부분에 닿아가고 있을까 누이가 비우고 간 벌판위에 남은 목소리 다해서 낮달 하나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조부 장원> 버들피리 함만식(부산공고) 내 나이 놀이 뜨면 한 다발 빈 가슴에 꺾어 놓은 아쉬움 그 소리 고여 올까 향톳길 고갯마루에 풀어보는 나무 매듭. 흙의 짧은 여정따라 고향 한 길 막히어도 뻐꾹새 울음인 양 하얀 입술 가꾸는데 마알간 조약돌 흘리는 흘러가는 생명이여. 여위어간 심정 속 학같은 목을 베고 걸러 나온 동화는 정을 새긴 버들 한 잎. 그 소린 신화의 울림으로 내 살 속을 비집는다. <소설부 장원> 안경 안재숙(진명여고) “아니 어머니 도대체 그게 얼마짜린지 알고 계세요 ” 딸애의 날카로운 눈이 안경 속에서 번쩍일 때마다 멍골댁은 그저 조그맣게 주눅이 들어 움츠러질 뿐이었다. “내가 그걸 알 리가 있나, 그저…….” 그나마 변명하듯 모기소리만 하게 기어 나오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획 나꿔챈 딸의 음성이 쨍!하는 파열음을 내며 갈라졌다. “그래서요, 그래서 잘하셨다는 거예요 ” 보다 못한 사위가 거드는 것도 아랑곳없이 딸의 음성은 꺾일 줄을 모르고 높아졌고 기실 멍골댁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죄인이었다. 애들도 없는 아파트 살림이라 딸애와 사위가 출근하고 난 집안은 기괴로울 만큼 적적했다. 이럴 땐 청소라도 하며 궁시럭 거리면 나을 텐데 제 어머니를 무슨 문둥병 환자라도 되는 줄 아는 양 딸애는 멍골댁이 집안물건을 만지면 질색을 했다. 그리고 세상이 어째 된 건지 빗자루며 걸레가 몽땅 요물딱지 같이 생겨 앵앵 소리를 내며 돌아치니 그걸 들고 당해낼 재간도 없어 멍골댁은 그저 할 일없이 눕는 게 일이었다. 노인정엘 가면 좋을 텐데 문밖만 나서면 똑같은 방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요동도 못하는 지경이라 그저 간간 들리는 순남댁만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순남댁이란 이웃의 할머니였다. 어릿어릿한 멍골댁과는 상대도 안 되게 옹골찬 그 할머니는 어쩌다 들려선 온 아파트를 울리며 멍골댁딸의 욕을 한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만 오면 꼬리를 사리고 달아나는 무료함이 반가와 눈만 뜨면 해질 녘까지 목이 길게 빠지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순남 할머니는 곧 왔다. 오직 하나 낯을 익혀둔 기계인 자물쇠를 여는 그 짧은 시간도 답답한 듯 우렁우렁한 소리로 얘기 보따리를 늘어놓는 순남댁이 멍골댁은 구세주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네는 별별 얘기를 다했다. 물론 믿을 말보다 못 믿을 말이 더 많은 줄 멍골댁도 익히 아는 터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얘기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늙은이들이 떠든다고 털끝하나 움직여줄 세상이 아닌지라 그 까다로운 딸애도 순남 할머니의 방문을 방치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는 늘상하던 화제거리에 하나가 더 붙여온 게 잘못된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봐 자네네 집에 헌 그릇은 없나 ” “그릇은 왜 ” “요 아래 장사꾼이 있지 골동품인가 하는 걸 찾겠다고 헌 그릇만 갖다 주면 새 그릇으로 바꿔준다 하는군, 그러니 이 기회에 꿩 먹고 알 먹고 하는 거지 뭘.” “아 우리 며늘애도 바꿔왔어. 요새 공짜 싫어하는 젊은 애들 있는 줄 아나  이 기회에 걸리적거리는 그릇이나 싹 바꿔치우자고.” “장사도 별일일세. 헌 걸 뭣 하러 모은 데.” “그야 묵어도 아주 오래 콱 묵어버리면 보물이 된다니게 그렇지 그러고 보면 그릇팔자가 우리보다 나아. 암…….” 한숨처럼 쌓여드는 공기가 설핏 무거워 멍골댁은 자진해서 광문을 열었다. 광속에는 엿장수와 흥정이 안 돼 팔아버리지 못한 그릇들이 구석구석 쌓여 있었다. 말짱한 것들이 버리기는 아깝고 모아두니 거슬리고 그래서 광을 치울 때마다 짜증내는 딸의 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리 탈 될 건 없을 듯 했다. 멍골댁과 순남댁은 켜켜로 앉은 먼지를 뒤적여 요리조리 재어보다 서너 가지 그릇을 들어냈다. 몇 번이나 뜯어보며 속계산을 해봐도 손해 볼 건 없을 것 싶었다. 그랬는데 퇴근해서 조금 자랑스럽게 설명한 사연을 듣던 딸애의 얼굴은 점점 파랗게 질려가더니 조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햇 물건을 주겠다고 몇 번이나 골라내며 속계산을 한 그 초라한 물건이 오히려 진품이었던 것이다. 홋가 1000만원 상당한다는 딸의 말에 진실 여부를 따지기 앞서 멍골댁은 액수에 놀라 가슴이 벌렁거렸다. 옆에서 종내 입도 안 떼고 신물을 펴고 앉았던 사위가 심드렁하니 거들었다. “20만원 한다더니 언제 그렇게 올랐어 ” 그에게 하얗게 눈을 흘기던 딸애가 종내 분을 못 참겠다는 듯 이번엔 사위 앞에 당겨 앉아 딱딱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편이죠  매사에 어머님 어머님, 당신이 그렇게 편을 드니깐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요.” 화살을 옮긴 딸의 힐난에서 풀려났음을 다행으로 느끼며 멍골댁은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났다. 어둑어둑한 밤의 어둠이 한없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못된 것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한 딸이었다. 애초에 아들 내외가 미국에 가서 살자했을 때 낯선 나라가 너무 두려워 모시겠다는 사위의 권유에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덜렁 주저앉은 것이 잘못이었다. 그때부터 호강할 마음은 버렸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정말 사위는 내 자식이래도 아까운 호인이어서 멍골댁은 그저 위안을 삼아 지내고 있었지만 오늘은 참말 견디기 힘들었다. “망할 것 내가 절 어떻게 키웠길래…….” 시야가 뿌옇게 흐려오는걸 막을 생각도 않고 멍골댁은 자꾸만 자꾸만 슬퍼졌다. 어릴 때부터 딸애는 눈이 나빴다. 안경이 쓰기 싫다고 도리질을 하며 울면 선생님 같이 의젓하다며 주문처럼 돌려가며 안경을 씌워주곤 했던 그네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딸은 선생님을 천직으로 알았고 뼈 빠지게 일해 온 멍골댁 덕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나 일류 학부를 나온 딸 앞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해 온 멍골댁의 굼뜬 삶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있었다. “좀 그만 해 두라니까.” 사위의 음성도 점차 격해지고 있었다. 사람 좋은 호인인 그는 온순해서 멍골댁은 못내 못마땅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그의 고함이 쩌렁쩌렁 해질 때마다 반대로 작아지는 딸의 소리에 멍골댁은 괜시리 신이 났다. “옳지 옳지.” 사위가 제 말을 다 해주는 듯 싶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리는 듯도 했다. 좀 더 닦달하지 않는 게 밉기도 해서 멍골댁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을 내고 있었다. “그년은 좀 더 옥 죄서 아무소리도 못하게 해야 혀. 암 그래야 내 사위지.” 그런데 갑자기 딸애의 비명이 울렸다. “왜 때려요 ” 뒤이어 사위의 거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끄러워. 이게 어따 대고 고함이야.” 그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용수철처럼 튕겨 나간 멍골댁이 사위의 바지가랑을 잡고 쓰러지고 있었다. “이눔아, 이 빌어먹을 자식아, 감히 누구한테 손찌검이여. 엉, 차라리 날 죽여라 날.” 허옇게 거품을 무는 그녀를 보자 잊었다는 듯이 오열하는 딸을 안경이 방 한구석에서 뼈대를 드러낸 채 뾰족뾰죡한 유리조각들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수필부 장원> 구름 이선애(숭의여고) 내가 어렸을 때, 그때는 구름이 움직인다는 것을 몰랐었다. 석양이 으스름한 빛깔로 온 하늘을 물들일 때면 나는 그 곱디고운 빛깔의 구름을 사랑했고 한없이 쳐다보고만 싶었었다. 뉘엿뉘엿 해가 서산을 넘어갈 때면, 엄마는 놀이터 그네 위에 앉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나를 데리러 오시기가 일쑤였다. 어린 나에게 구름은 아름다운 꿈나라를 보여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때, 구름 위에는 옆집 오빠에게 들은 동화 속 공주님의 궁전이 있었고, 그 공주를 사모하는 양치기 소년의 너른 초원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구름을 바라보는 나는 마냥 행복했었다. 그 하늘이 내 꿈의 터전이었고, 내 마음, 그 자체였었으니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나는 구름을, 그 푸르디푸른 하늘을 잊었다. 받아쓰기, 구구단, 그리고 또 여러 가지 해야 할 수많은 과제물들에 나는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어느 자연 시간 비가 오는 원리를 배우던 날, 나는 문득 옛 친구 생각이 났다. 그 날은 숙제도 하지 않은 채, 옛 놀이터 그네 위에서 친구의 모습을 목이 아플 정도로 어루만졌다. 그 때가 가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얀 양떼구름 사이를 선녀의 옷자락처럼 하늘거리는 비늘구름이 다소곳이 흐르며 지나가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아주 서서히 구름들이 저쪽 동네 언덕 위로 숨는 것을…… 의아스러웠다. 어릴 때는 시야가 좁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제 보니 구름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나의 친구는 지금쯤…… 경이로움, 그것은 어린 나에게 하나의 경이였고, 마치 아메리카 대륙이라도 발견한 듯한 우쭐함이었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다. 지금, 놀이터 나무 숲 그늘에서 언뜻 언뜻 보이는 구름은 이제 더 이상 경이, 마치 아메리카 대륙이라도 발견한 듯한 우쭐함이었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