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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제 23회 콩쿠르 수상작(백우영, 서한기, 김현정, 최은옥)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547
<시부 장원> 소리 백우영(정의여고) 피아니시모로 연주되는 봄의 교향곡. 젖어드는 그 멜로디에 커다른 푸르름도 자그마한 초록빛도 하늘은 한껏 머금었다. 어디서부터의 뿌려짐일까 살아있음을 일깨우는 이 선율들은 이 땅을 향하여 가늘게 속삭이는 봄 하늘의 그리움은. <시조부 장원> 호수 서한기(부산공고) Ⅰ. 하늘을 닮아가는 푸른 숲 어귀를 돌아 시린 생명 무릴 지어 햇살처럼 노닐면 마음도 호수로 자라 등을 켜고 서 있다 Ⅱ. 이상의 늪을 따라 왼종일 걸어가도 무지개처럼 피는 생각 물살로만 쌓이는데 저 깊은 뜻을 헤이면 움이 틀까 별꽃 한 잎. Ⅲ. 봄의 숨결처럼 젖어드는 정적(情迹)마저 여위어간 가슴 폭에 얼무늬로 담겨 오면 샤르르 꿈의 선율로 엮어 보는 나의 일상. <소설부 장원> 밤비 김현정(정의여고) 비가 왔다. 내가 비 온 뒤의 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원색의 풍경을 사랑하듯이 그 애는 비오기 전의 그 짧디 짧은 긴장의 시간을 사랑한다고 그랬다. 모든 것이 회색으로 달뜨면서 마치 공기라는 것이 느껴지던 하늘이 마치 자신을 짓누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게만 드리워지고 그 속에 숨을 멈춘 듯이 두 눈을 꼭 감고 그 애는 서 있다는 다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그 속에서 그 애는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자동차 클렉션 소리를 듣고 이내 자신이 그 팽팽한 기운의 일부분이 된 듯한 이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런 느낌을 얻는다고 그렇게 말했다. 누군가 꼭 영화 속에 나오는 하늘같다고 했다. 그래. 정말 그렇다.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미루나무는 어느 인상파 화가의 강렬한 그림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오월이다. 오. 월. 텅 빈 운동장엔 군데군데 맨홀 뚜껑만한 웅덩이가 생겼다. 빨간티를 입은 소년이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얼까  주홍색의 노끈 같기도 하고 밧줄 같기도 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섰던 소년이 줄을 그대로 쥔 채 걷기 시작했다. 아니 맴돌고 있다. 걷어 올린 츄리닝 밑의 깡마른 무릎이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어 소년이 좀 더 빨리 그리고 좀 더 크게 원을 그리며 맴돌기 시작했을 때 난 비로소 소년이 절름발이라는 걸 깨달았다. 소년이 멈춰 선다. 이젠 땅을 본다. 고인 빗물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나보다. 소년이 줄을 보았다. 달린다. 달려간다. 소년이 저쪽 숲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난 그를 지켜보았다. 빈약한 오른발 끝에 갈색 플라스틱 슬리퍼가 춤추듯 매달려 있었다. 소년이 사라지고 이제 운동장엔 아무도 없다. 소년이 사라지고 이제 운동장엔 아무도 없다.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데 지리와 유 선생이 창 너머로 손짓을 하며 내게 다가온다. 얼른 담배를 윗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퇴근 안하세요, 선생님 ” 분홍색 블라우스가 왠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내 옆에 의자를 끌어 당겨 앉았다. “사실은 찾아다녔어요. 선생님 부탁드릴 게 좀 있어요. 저 선생님, 내일 5교시 수업 없으시죠  저 어머니랑 병원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하필이면 닥터가 꼭 그 시간에 오라잖아요.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그 시간에 보강 좀 해주세요…….” “글쎄요, 제가 그 시간에…….” 내가 책상 속에서 교무 수첩을 꺼내 시간표를 뒤적이자 그녀는 채듯이 말한다. “아아 글쎄 그 시간엔 수업이 없으시다니까요. 틀림없어요.” 시간표가 어디…… 난 뒤적이던 수첩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게다. 그녀는 나보다도 내 시간표를 잘 알고 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향긋한 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정말 고마워요 선생님. 이렇게 번번이…… 이 신세는 꼭 갚을게요. 음, 2학년 6반인데요, 진도는 충분히 나갔으니까 선생님 마음대로 자습을 시키든지 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난 담배를 찾았다. 어디다 둔 것일까 책상 서랍과 책꽂이를 더듬어 본다. 없다. 난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소년의 그 깡마른 발끝에서 춤추듯 매달려 있던 그 신발의 모습이 이상하게 자꾸만 떠오른다. 2학년 6반이라……. 난 그 험대로 험이 빠진 교실을 4층 복도 끝 마지막 칸에서 찾아내었다. 그 앞에 섰을 때 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 이 교실…… 하필이면……. 교실 문을 열었다. 삐그덕 대며 문은 흔들거렸다. 어두침침한 교실. 난 한참만에야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리벙벙한 모습이었다. 그럴 테지, 난 벌써 3년 동안 3학년만을 알아왔으니 교단에 올라서도 한참이 자나서야 쭈삣대며 듬직하게 생긴 반장이 일어섰다. “차렷 경례.” 갑자기 이 아이들을 향해 한마디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턱턱 막히는 목젖을 그렁이며 난 간신히 한마디 던졌다. “오늘 유 선생님께서 출장을 가셔서 내가 보강을 들어왔다…… 자습하도록.” 난 무너지듯 교탁 옆 걸상에 주저앉았다. 아이ㅏ들이 조금 술렁이다 이내 고요해진다. 아마도 내 표정에 겁을 집어 먹은 탓이리라 난 창 밖을 보았다. “아부지 내 다리는 왜 이래  응  왜 난 다리병신이야  왜  내 다리는 왜 이러냐구  왜 난 달리기도 못하고 헤엄도 못치고 난 왜 병신이야  응  응  아부지 ” 한낮을 그렇게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대었다. 아버진 나가 놀라느니 시끄럽다느니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망치질을 계속하셨고 지레 지쳐서 나중에 풀무질하는 아버지 뒤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아버지 얼굴에 벌건 핏줄이 솟아난 것을 굵은 땀방울 맺힌 것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열 살을 넘어서면서부터 난 부자연스러우나마나 뜀박질을 할 수 있었고 스물을 넘으면서는 다리 저는 흔적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다리를 조금씩이나마 전다는 것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내게 운동을 하자고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대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운동을 싫어하는 내 성격으로 인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혼자만 보는 내 다리의 모습은 천을 둘러씌우고 남들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완벽하진 못했다. 어딘가 이상하고 어딘가 부자연스런 그런 다리였고 사춘기 땐 무던히도 그 놈의 다리를 두들겨 대며 울곤 했었다. 그런데 그 다리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 것이 그 애였다. 그 애만이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내게 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애가 나를 앞에 놓고 그 누구도 꺼내기 싫어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나의 결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바로 3년 전 바로 이 교실이었다. 어둠 속에 그 애 혼자 앉아 있었다. 순사를 돌던 나는 그 애로 인해 오히려 놀랐었다. 무엇하냐고 물었더니 그 애는 어둠을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 분명히 그렇게 대답했다. 어둠을 먹고 있다고……. 그리곤 멍하니 선 나를 향해 던지듯이 물었다. “선생님은 왜 다릴 저시게 됐어요 ” 눈도 하나 까딱 않고 말이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그 질문에 나는 마치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으며, 또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것이 그 애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불꽃같은 사람이라는 말 난 몹시 진부한 표현으로 알았었다. 그런데 그 애는 정말 그 말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아이였었다. 정말 불꽃같았다. 그 애는 나를 몹시 지루해했다. 나도 그 것을 느꼈다. 지극히 감상적이고 반항적인…….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서른이었고 그 애는 열일곱 이었는데 말이다. 난 그 애를 향해 센티멘탈 이라는 말을 던질 수 없었다. 그저 십대의 짧고 불같은 감상이고 감격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그 애는 분명히 감상적이고 다분히 몽상적이었는데 말이다. 난 그 애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대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애는 나를 대할 적마다 두꺼운 벽에 부딪치곤 했음에 틀림없다. 나도 그 것을 느꼈으니까 그 애는 꿈속에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래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길들여지기를 강하게 부정했다. 조금도 대강이라는 말을, 좋은 게 좋다는 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어디엔가는, 누군가는 꼭 지금의 이 세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록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싸워야 한다고 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 일수록 빨리 꺼진다. 난 다른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그 애는 나의 아주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섰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 것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저 너무 빠르고 뜨겁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극히 소극적이고 외골수인 찾을 수 없던 또 다른 나를 그 애에게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만나면 왠지 씁쓸한 기분으로 헤어지게 되면서도 그 애는 이내 다시금 나를 찾아왔고 그 것은 내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난 그 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유난히 가라앉은 그런 모습으로 그 애는 또박또박 한 마디씩 끊어가며 이상한 말을 내게 남겼다. “제 이름을 가지세요. 꼭이요. 안 그러시면 전 제 이름을 땅 속에 묻어야만 해요. 전 그러길 원하지 않아요. 선생님 가져주세요.” 그리곤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정민희. 이것이 그 애의 이름이었다. 그 애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난 똑바로 알아  들었다. 그래. 그 애에겐 그 것이 마지막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 애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수 없었다. 힘에 부쳤던 것이리라. 나조차도 그 애에겐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들 중의 한 사람인걸. 나는 편안하다. 가난하게 자랐고 고생도 많이 했다. 다시 가난해지고 다시 굶게 된다는 것 난 두렵다. 난 싫다. 언제부터인지, 어느 때 부터인지 말이다. 난 세상에 대해 지나친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 난 그저 그 들이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그 댓가로 조그마한 집과 평범하지만 안락한 생활을 부여 받았다. 난 그 이상의 것을 원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애의 이름을 소중스럽게 받아든 나는 그게 내게 얼마나 커다란 짐인가 하는 것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 애는 내게 너무나 커다란 짐을 지우고는 떠나가 버린 것이다. 찌르르릉……. 아이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난 일어섰다. 인사도 받지 않고 허허한 걸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퇴근 시간까진 아직 꽤 시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아무 말 없이 학교를 나섰다. 시외버스를 탔다. 내 옆엔 보따리 하나를 정성스럽게 안아 든 60대 할머니 한 사람이 앉았다. 난 두툼한 안경너머로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척이나 주위를 끄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사람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깊게 패인 눈가에 잔주름이 왠지 어색하고 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삶의 고뇌  천만에. 그러한 흔적이 아니었다. 드물게 보는 어른이었다. 아직도 맑은 눈을 갖고 계시다. 평온하고 잔잔한 그 무엇, 그러면서도 결코 허술하다거나 하지 않은 지조 높은 그 무엇 말이다. 창밖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내린다, 비가……. 난 떨치듯 일어나 안 된다는 기사아저씨의 말을 뒤로 하고 차에서 뛰어 내렸다. 국도 한 복판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비가 있었다. 난 조용히 하늘을 우러렀다. 민희……. 나는, 나는 말이다. 그렇게 용감하지도 못하고 또 그렇게 특별한 놈도 아니다. 난 그렇듯 커다란 것을 꿈꾸지도 않고 세상을 그렇게 미워하지도 않는다. 넌 내게 너무 커다란 짐을 지웠다. 그러나 던져 버리지는 않으리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지고 간다. 이 길을 이 길을 따라서……. <수필부 장원> 내 마음의 우산 최은옥(경기여고) 지난여름에 입었던 녹색의 반팔 티셔츠를 꺼내며 이제 막 깊어가는 계절의 한 가운데로 나와 선다. 변함이 없는 것은 늘 아름답다. 때로 자연의 질서는 너무 정확해서 똑바로 맞추어 선 대열이나 군인들의 단정한 경례 자세를 보는 순간처럼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이렇듯 몇 개의 계절이 지나다 보면 어느 새 새로운 자리에 서게 되는 걸 느낀다. 그 계절은 소망과 근심이 밝은 양지와 추운 구석이 뛰기도 걷기도 하며 지나간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얼마가 지난 뒤 6월 달 쯤 비가 많이 내린 적이 있었다. 학교엘 가려는 그 날도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학교에 늦겠다고 낡은 다락방을 향해 우산을 달라고 소리쳐 놓고는 금세 뒤를 돌아 학교를 향했다. 버스에 놓고 내린 내 노란 우산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짜증이 났다. 남들은 다 예쁘고 빛깔 고운 우산을 들고 학교에 가는데 나만 비를 맞으며 등교를 하다니……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주실 우산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 가방 위로, 머리 위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무능력한 엄마를 실컷 미워했다. 그러면 어느 새 볼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나에게 파란색의 비닐우산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만지작거리는 내 주머니엔 동그란 10원짜리 동전 2개만 땡그랑 거렸다. 모두들 나를 보고 웃고 가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창피해서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그 날은 유난히 학교가 멀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찾아 다녀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순간 자식을 그냥 보내는 슬픔에 더욱 깊어졌을 엄마의 슬픈 눈이 생각났다. 하지만 난 더욱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왜 그랬을까  이윽고 학교에 다다를 무렵 도림 천변에 내리는 비를 보았다. 눈물처럼 비는 여전히 내리고 그 비를 맞는 풀잎들은 놀랄 만큼 연하고 여린 빛깔들이었다. 먼지 나고 더러운 개천가에서 마치 순결한 약속처럼 피어오르던 작은 풀잎들의 자세를 보았다. 아!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우산이 없어도 무엇을 다짐하는지 저렇듯 꿋꿋이 서있는 것일까. 풀잎도 지금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데 무엇이 그리 좋아서 저리도 싱그러울까  또 다시 난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고추를 장에 내다 파시고 사 오신 작고 예쁜 우산이 기억났다. 정말 예뻤다. 너무 좋아서 비가와도 가슴 속에 우산을 감싼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곤 했다. 그 우산은 비를 맞아선 안 되는 유별난 우산인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자꾸만 커감에 따라 그 우산은 작아서 쓰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우산은 어느 새 내 마음의 우산이 되어 버렸다. 그 형상은 풀잎에게 알맞게 씌우고 나는 내 마음에 우산을 받으며 학교까지 갔다. 그 우산은 너무나 신기하게도 고향의 품 속 처럼 따스했고 비도 한 방울 새어들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몸에는 빗방울들로 흠뻑 젖어든 것이다. 내 마음에만 비가 오지 않았나 보다. 그 순간 나는 웃을 수 있었고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벗고 내 솔직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으며 역시 당당할 수 있었다. 비가 온 들 무슨 상관이랴. 우산이 없으면 어떠랴. 나에겐 부서지지도 않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조그맣고 예쁘게 생긴 마음의 우산이 있는걸! 언제나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변함없는 아름다운 우산이 있는데……. 그 때 이렇게 튼튼한 우산을 사 주셨는데도 비오는 날이면 늘 가슴 아프게 해드린데 대해 너무 죄송스러웠다. 이제부턴 우산 사달라는 투정도 부리지 않아야지. 아무리 좋은 우산이 있어도 내 맘의 우산보다는 못할테니깐 하고 생각했다. 시간은 지나도 내가 어린이 되어도 자연의 질서처럼 내 우산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 오니까, 내 마음 속의 우산이 더욱 소중해진다. 아 그렇구나 풀잎이 그토록 비가와도 곧고 푸를 수 있었던 것은 풀잎만이 가지는 우산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온통 잿빛인걸 보니 비가 내리려나보다. 역시 나의 손에 쥐어진 우산이 없지만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받쳐줄 수 있는 나만의 견고한 우산이 있으니까 걱정 없겠다. 점점 하늘은 회색빛이 짙어가고 비가 한 두 방울씩 내리고 있다. 영원히 나와 함께 해 줄 우산을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