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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 25회 콩쿠르 수상작(정희윤, 신동렬, 박성주, 송은하)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817
<시부 장원> 창 정희윤(경주 문화고) 내 부를 첫 이름은 신 초록 자라난 계절 사이로 어울리고 싶게 화한 내음 흔들어 보내는 우리 계절의 빛깔로 흘러 내리는 바람 갠 하늘 아래 함초롬 수줍은 모란이 화단에 있고 멀리 산 계곡으로 말 없이 안개 불러와 깨끗한 화폭을 이루던 어찌할 수 없이 좋은 바람이 있었다. 열아홉 싱그러운 향취가 들녘마다 긴 선로를 따라 마중 아니면 배웅 나온 통학기차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다 만난 차창에 스밀 듯이 젖어오는 오월을 어루만지자. 오래 전부터 열린 시간과 더불어 담청빛으로 누운 바다에 이르는 강이나 아늑한 곳에서 발원한 그가 지나가도 지나가도 끊이지 않는 것이 보일거다. 우리는 알고 있다 부인할 수 없이, 맑게 눈떠서 내다보는 차창에 서린 계절에는 아슴한 산빛에도 깊이를 숨긴 지난 시절의 눈물같은 못에도 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 다듬는 숲에도 바람은 흘러내리는 것을. 더욱이 이 신선한 오월 아침으로 찾아온 그는 가장 가까이 하고 싶어지는 벗으로 기쁜 만남을 한 사념의 오솔길을 잊어버리지 않게 계절을 깊이 새겨 숨쉰다. <시조부 장원> 종 신동렬(공주고) 다 못한 한마디 말 올올이 풀어 내어 새 맑은 음악으로 하늘 밖에 피운 꽃을 향(香) 불로 지펴 올려서 영혼 깊이 펼친 나래 뒤 돌아 새긴 날을 천년을 태운 날을 찬란한 은혜 속에 무릎을 모운 너의 인종 천둥이 울어나게끔 꿈을 던져 건질까 오늘 날을 위한 꽃 안으로 피는 숨결 차마 버릴 수 없는 희망을 꿈을 감고 사랑의 맑은 음향으로 울려 오는 메아리. <소설부 장원> 점 박성주(영등포여고) 오늘도 책상 앞에ㅐ서 궁싯거리다가 담임선생님이 없는 틈을 타서 책가방을 싸들고 나와 버렸다. 그 놈의 대학이 뭔지 그 감옥 같은 교실 속에서 하루 18시간을 쳐 박혀 산다는 것은 더군다나 아버지의 대학에 대한 완고한 고집과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에서,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삼엄한 눈치 속에서 하는 공부란 불안과 초조, 그리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요사이 며칠 계속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치기란 어렵지 않지만 이러다가 정말 대학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해서 겁이 난다. 하지만 며칠이야 어떨라구. 어저께는 내내 분식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그저께는 공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뭐 색다른 것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던 끝에 작년에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 두었던 혜정이가 사는 그 빈민가를 돌아다니는 것도 꽤 재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내를 한참 빠져나간 그 동네는 부승동이었다. 버스가 먼지를 뽀오얗게 일으키면서 떠나버린 혜정이의 동네 부승동의 모습은 작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요즘의 1년이면 시내는 열두 군데 더 바뀌는데 전체적으로 더 바랜 동네의 지붕 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멀리서는 무슨 철광 속을 겨다 놓았는지 산더미 같은 붉은 철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멸감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그 철을 옮기는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할 곳을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빈민촌의 둘레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이 빈민촌에 대해서 특별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번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하고 궁금하고 또 호감도 갖기 때문이다. 내가 그 ‘처녀 철학관’을 찾아 간 것은 바로 그 동네의 변두리 그러니까 개울창이 흐르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인가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 같은 벌판을 앞두고였다. 그 때 나는 참 기발한 생각을 해냈던 것이다. 고 3이라고 부모님께서 듬뿍듬뿍 주시는 용돈을 털어서 점을 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갈지 안 갈지 어느 대학이건 그것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아무 대학이나 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유일가고도 간절한 소망이었으니까. 삐꺼덕 거리는 층계를 올라서서 마치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이 집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때 나는 한참 망설였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과연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나는 용기를 내어서 다 낡아 빠진 문을 들어서기로 했다. 혹시 빠진 층계를 딛어서 발목을 다칠까 그 어둠침침한 통로를 더듬으면서 나는 문을 들어서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안은 밖에서처럼 그렇게 혼란하고 무섭지는 않았다. 비교적 잘 정돈된 방이었고 물론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같이 기하학적 무늬나 모양, 오색의 끄나풀 같은 것은 나름대로 널려 있었다. 그 소위 무당의 얼굴을 나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앞머리가 너무 길어서 눈을 거의 가리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창백한 피부에 무채색의 윗도리와 바지를 입고서 옆머리와 뒷머리는 약간 파마기 있는 모습으로 뒤로 넘겨 묶어 버렸다. 무당이라면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닐텐데. 나의 예상과는 너무나 빗나가 버린 것 같다. 물론 별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그 방과 그 무당의 분위기는 음침했지만, 그러나 그 날 그 무당은 내가 대학을 갈지 어쩔지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그리곤 오히려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학교 이야기, 집 이야기, 그리고 내가 돌아다니는 도시 풍경 같은 그러한 것들을 물어 보았다. 나는 차츰차츰 그 약간의 신비감을 주는 이 처녀 무당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적응을 해갔고 또 내가 하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것도 좋아서 거의 매일 이 곳엘 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나는 삐걱거리는 층계를 타고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웬일인지 무당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돌아설까 생각했는데 차츰차츰 그 집의 세간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처녀 철학관’이라는 곳의 특징은 유달리 책이 많다는 것이었다. 겉에는 신문지로 한결같이 표지를 쌌기 때문에 무엇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것은 역시 따분한 노릇이다. 더군다나 책 한 권을 뺄 때 마다 쾌쾌하게 일어나는 먼지와 냄새는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결국 이것저것 보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자물통이 열려진 채 한 쪽 구석에 있는 농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상당히 중요한 것처럼 붉은 보자기에 꼭꼭 싸여진 그 낡은 책을 보았던 것이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도 나는 ‘신의 동굴’에 가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붉은 수염 노인’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두컴컴해져서야 산을 내려왔다. 오늘 아침에 그 흙빛 산돼지 암컷이 ‘영검스러운 바위’ 앞을 지나갔다고 내일쯤이면 저번과 같은 혹한과 눈뭉치가 내릴 거리고 부락의 ‘제일 힘이 강한 자’가 그랬기 때문에 사람은커녕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다만 ‘붉은 수염 노인’이 어여 죽을까봐 내 끼악새 털로 동굴 입구를 막아주느라고 벗어버린 윗몸이 몹시 후들거릴 뿐 다른 것들은 너무나 잠잠하다. 나는 내 천막으로 돌아와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잠기었다. 우리 부족이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는 매일 밤 이렇게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우리가 이곳에 정착한지 며칠 안 돼서 그 ‘제일 힘이 강한 자’는 ‘영검스런 바위’ 앞에 우리 부족들을 모아 두고 먼 먼 옛날에 살았던 우리와 같은 사람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고 ‘영검스런 바위’를 잘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이 땅을 덮었을 때 모두 죽어 버렸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부족도 게으르게 살아서 일을 하지 않고 ‘영검스런 바위’를 모시지 않으면 그들과 같이 모두 죽어 버리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나는 물론 그 옛날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부족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서 그 날부터 부지런히 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한 것을 자신들이 가지는 것도 아닌데 짐승처럼 온 종일 꿈지락거리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더더욱 한심한 것은 부락 축제일에 여태까지 작은 사냥감과 애써 모은 열매를 모아 놓고서 ‘제일 힘이 강한 자’의 게걸스런 입만 쳐다 볼 뿐 함부로 음식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그 ‘제일 힘이 강한 자’가 남긴 찌끄러기를 먹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나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정말 그 ‘제일 힘이 강한 자’의 말처럼 하루 하루 나아지는 부족들의 생활이다. 물론 나아진다는 것은 부족들의 말이었지만 그들은 처음 이 곳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지게 되었고 사냥이나 혹은 다른 짐승에 의해서 부족 중의 누군가가 죽는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이 무서운 추위에서도 곧잘 견디는가 싶더니 이제는 제법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그도 그러할 것이 부락민의 몸에는 확실히 그 전보다 털이 많이 난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추위 속에 얼어 죽은 동물들을 잡아 오기도 하고 (이것은 상당한 행운이다. 부락민들은 이런 고기는 으레 ‘제일 힘이 강한 자’ 에게 바친다) 그들이 돌을 달구어 만들어 놓은 그 집에서는 열매 같은 것들이 얼지 않고 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부락민들은 부지런히 일을 하여 사냥감과 열매와 땅을 모을 뿐 다른 부락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각각 하는 그 일에 조금만 방해가 가면 그 즉시 무서운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부락민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과 친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서부터 어디인가 ‘영검스런 바위’ 모양을 코뿔소 뼈에 새기는 일이 일어나고 이제 부락민들은 사냥하는 일이나 열매 모으는 일을 끝낸 다음에는 그 뼈에 ‘영검스런 바위’를 새기어 가슴과 허리에 차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즈음 나는 ‘신의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고 (물론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 또 ‘붉은 수염 노인’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물론 ‘붉은 수염 노인’과 이야기 해[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못했지만 ‘붉은 수염 노인’이 그 ‘신의 동굴’에서 눈을 감고 앉아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제일 처음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내가 이 산 아래 부락민이라고 했을 때 바라보던 그 눈빛과 동굴 벽에 그린 우리 부락민 (영검스런 바위를 상징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이 하늘에 덮여도 역시 우리 부락민들은 코뿔소의 ‘영검스런 바위’를 새기고 혹은 사냥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날 그 노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았던 날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낮에도 천막 속에서 생각에 잠기게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기다가 나는 내일의 혹한이 빗나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쩐 일인지 ‘제일 힘이 강한 자’의 이 예언과도 같은 것은 (혹한은 우리 부락민에게 있어 가장 큰 일이다) 정확하게 맞는 것이다. 때문에 부락민들은 이런 커다란 추위나 사냥하는 일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심도 품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사냥과 열매 모으기 그리고 코뿔소 뼈에 ‘영검스런 바위’ 새기기에만 정신이 없고 그 밖의 일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참으로 우리 부락민들의 적응은 굉장한 것이다. 다음 날 여지없이 혹한은 왔다. 부락민들은 미리 준비해 달구어 놓은 돌들과 새털 속에서 저 추위 속에 죽지 않은 것을 다행하게 여기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몸의 털들은 저렇게 강한 추위에도 적응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며칠 뒤에 날이 풀렸다. 나는 ‘붉은 수염 노인’이 죽지 않을까 혹은 그 눈을 뜨고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재빨리 ‘신의 동굴’에 가 보았다. 그러나 내가 동굴에 왔을 때 역시 일은 벌어진 뒤였다. 언제나처럼 눈을 감고 앉아 있어야 할 노인은 쓰러져 있었다. 나는 너무나 겁이 나서 그 노인이 죽었나 살았나 보기 위해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죽지 않았다. 그는 그 그림들이 있는 (우리 부락민의) 벽면을 쳐다보면서 내가 오자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벽의 그림을 다시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을 때 눈을 감았다. 그렇다. 노인은 역시 내 생각대로 우리 부락민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나는 매일 같이 여기 와서 그 노인의 눈을 쳐다보고 입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아니 오늘 밤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 부족의 죽음을 말이다. 그리고서 얼마 후 날은 이상하게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얼음이 풀리고 공기가 더워지면서 부락민들은 못견디어했다. 노인의 생각이 맞았다. 우리는 그 옛날의 사람처럼 하늘에 눌려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여태까지 이루어 놓은 무리의 것을 바꾸지 못해 죽는 것이다. 나는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코 다른 부락민처럼 털을 깎으려 애쓰거나 ‘제일 힘이 강한 자’처럼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또 한 번 적응하지 못하는 부락민들을 증오할 뿐이다. 책을 덮고서 나는 이상한 신비감에 싸였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재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자기로 아까처럼 싸고서 농속에 집어넣었다. 지금쯤 그 무당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 도는 순간 거기에는 무당답지 않은 무당이 서 있었다. 나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겠다 싶어 그냥 막 빠져 나왔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했다. 왜냐하면 며칠 도망 다니던 것이 담임선생님에게 탄로가 나서 혼이 나고 막 들어와 공부를 하던 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네안데르탈인(그 책의 표지 속에 ‘네인데르탈인의 이야기’라고 써 있었다.)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무당은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그렇게 중요하게 숨겨 두었을까. 나는 답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무당)는 무당이 아닌 것이 아닐까. 자기가 무당이라면 내가 대학을 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안 가르쳐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거기에 다시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을 훔쳐보았는데. 그러나 나는 결심했다. 그것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그리고 그 여자(무당)는 누군지 알아보기로 했다. 어쩌면 그 책에서의 어떤 신비한 느낌이 용기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자(무당)는 없었다. 다만 거기에는 낯선 글씨들이 있었을 뿐 ‘너는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다.’ 그 때의 나의 충격은 대단했다. 그러면 내가 그렇게 죽는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돼……. 맞다. 그녀는 무당이 아니었다. 그 많은 책들이며 내가 원하는 점도 못 치는, 그러니까 그녀는 무당이 아니다. 그렇다면 ‘처녀 철학관’이라는 간판을 써놓고 무엇을 하는 것일까. 혹시 미친 사람은 아닐까. 그러고 나서 며칠 후 나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다. 무당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런 행세를 하다니 더구나 나보고 네인데르탈인의 후손이라니. 나는 이렇게 그녀를 몰아 부치는 것으로 단정을 하고 그녀를 찾아갔다. 여전히 그 환멸감 나는 철산과 기계소리와 퇴색한 빈민가로 부자로 승격화 한다는 뜻일 부승동을 증오하면서 찾아갔다. 그러나 거기엔 이미 ‘처녀 철학관’의 간판이 없었다. 다만 허물어질 듯 내려앉은 건물 한 쪽 구석의 허름한 문에 ‘너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점괘가 나왔다’ 라고 씌여 있었다. 대학에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말로 깨달았다. 그녀는 무당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그 무당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무당이라는 것을. 그녀는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인 우리 앞날을 점치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안데르탈인의 후손답게 매일 같이 찾아가 그녀의 눈과 일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그녀가 ‘붉은 수염 노인’과 다르다는 것은 그녀는 우리가 두 번 적응할 수 있기를 그녀의 신에게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오늘 날 우리의 ‘붉은 수염 노인’인 것이다. <수필부 장원> 우산 송은하(경기여고) 대개 도시 사람들은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바쁘게 걸어야 하고 때로는 뛰기까지 해야 되는 도시인들로서는 비 오는 날이 매우 불쾌하고 게다가 날씨까지 더우면 여간 짜증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다. 밖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도 짜증스럽고 귀찮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실내에서 비오는 거리를 보는 것 또한 좋은 기분은 아닐 성 싶다. 수업 중 빗소리에 문득 운동장을 보면 검붉게 변한 넓은 운동장이 비에 씻겨 더욱 선명해진 나무들과 이루는 그 삭막하고 쓸쓸한 대조는 가슴이 저미도록 아픈 느낌을 준다. 고개를 돌려 거리를 보아도 역시 마음이 답답하다. 제각기 색채의 우산을 받쳐 들고 무엇에 쫓기는 듯 총총히 사라져 가는 사람들. 자꾸만 거리를 메우는 우산의 행렬. 나에게는 그 우산들의 어우러짐이 도저히 꽃처럼은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본 것 같아 일종의 슬픔과 분노까지도 느껴지는 것이다. 서로를 몹시 사랑하는 연인들을 제외하고는 우산을 같이 받치고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때로 친구가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면 같이 우산을 쓰자고는 하나 경험으로 미루어 그다지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다. 아무리 넓다 해도 두 사람이 쓰면 좁게 느껴지는 것이 우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짜증스러운 마음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얼굴을 찌푸리는 것일까. 물어 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으니 내 느낌은 그렇다. 우산 속의 자기만의 공간을 침해 받기 싫어하는 것 같다. 언제나 서로 어울려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내지만 마음만은 꼭꼭 걸어 잠그고 피하려는 것 같다. 좁고도 비 내리는 세상과 격리된 우산 속의 공간은 서로 경쟁하고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연인들이 아니고서는 누군가와 우산을 함께 썼을 때 거북하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날씨 감각이 무딘 나는 흐린 날에도 우산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하교길에 비라도 오는 날이면 옷이 흠뻑 젖도록 집까지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같이 썼으면 좋겠다는 염치없는( ) 바람을 갖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친구들조차도 우산을 안 가져온 내 잘못이지 하고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도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눈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신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요새 학생들은 참 냉정해. 너무 이기적이란 말이야. 처음엔 선뜻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러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야. 비를 맞고 그냥 걸어가는 사람ㄹ이 있는지도 모르더라고. 열심히 앞만 보고 걸어가는 거야. 열심히 앞을 보고 걷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할 때에는 앞을 보고 열심히 정진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앞만을 보며 걸어간다면 지금 그들은 닫혀진 자신의 세계 속에서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둘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설레임, 포근한 안도감?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부드럽게 감싸는 사랑의 느낌, 깊숙이 앞으로 숙인 우산 속에서 자신의 옆에 비를 흠뻑 맞고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과연 그러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오늘도 예기치 않던 비가 내린다. 다행히 집을 나서려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여 우산을 갖고 나왔다. 그러나 비를 맞으며 걷는 것보다도 더 기분이 좋지 않다. 어쩐지 나까지도 사람들과 차단된 공간 속에 소외돼 버린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