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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제 39회 콩쿠르 수상작(박소영, 민지혜, 양은정)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979
<시부 장원> 그림자 박소영(서문여고) 1. 오래된 신발 속처럼 어두운 방 안 치자빛 촛불 하나 드리우고 어머니와 나는 손을 펼쳤다. 엄지 손가락, 갯버들처럼 세우고 갈대잎같은 나머지 손가락 몸 누여 나란히 옆으로 맞대면 한 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작은 꼭 닮은 꽃게 두 마리 치자빛 갯벌을 지난다. 옆으로 옆으로만 가는 꽃게 앞으로 뒤로 엎어질 듯 가는 꽃게 집게발로 까딱까딱 불러도 큰 꽃게는 웃으며 옆으로만 갔다 2. 그리고 오늘, 돌아오지 않는 꽃게를 기다리며 거뭇거뭇 애만 태우다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난 갯벌, ?ㄴ 그 갯벌처럼 환한 마당에서 게딱지 같이 붉은 손으로 빨래를 너시는 어머니를 본다 여전히 옆으로만 걸으시는 어머니 아래 못다 널은 빨래마냥 떨어진 그림자 그 때, 내가 만들던 꽃게처럼 작구나 어릴 적 그 듬직했던 꽃게 지금은 어느 바다 갯벌에 있을까 겅중겅중 달려와 덩치 큰 그림자 떨구는 나는 예전 그 꽃게만큼 자랐는데 서른 세 살, 비로소 나를 보신 어머니 갑옷처럼 단단한 붉은 옷깃 헤쳐 하얗고 부드런 속살 여며 주셨구나 갯벌에 고인 파도처럼 눈가 허옇게 시리우고 어머니의 그림자를 감싼다 밖으로 비져 나오는 못난 내 그림자 그러나, 아직도 그 안에 감싸인 작은 그림자가 더 뜨겁게 진하다. <소설부 장원> 친구 민지혜(안양여고) 혓바늘이 돋았다. 며칠 밤샘 작업을 한 탓일까. 말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혹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조차도 혀끝이 찌릿하게 아린다. 거울을 보며 혓바늘이 돋은 곳을 송곳니로 꾸욱 눌러본다. 짜릿하게 온 몸에 전기가 통한다. 아프다. 눈물이 핑 돈다. 그래도 계속해서 혀를 건드린다. 나는 이런식의 고통을 즐기는 편이다. 전기가 통하듯, 불에 데인듯한 고통은 참기 괴롭지만 동시에 말로는 표현 못할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고 했던가. 혀 끝이 얼얼해져 별 느낌을 받지 못할 때까지 건드리다가 결국 연고를 찾는다. 약통을 뒤진다. 약통이라고 해봤자 비타민제가 들어있던 철통에 반창고니 연고니 소화제 따위를 넣어 둔 것이다. 그 통에서 제대로 된 약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약통을 뒤진다. 뚜껑이 도망가 버린 연고가 하나, 너무 오래되어서 껍질이 누렇게 변한 반창고 두어개. 이미 다 먹고 상자만 있는 소화제 상자. 그리고 말라버린 빨간약 한 통. 역시 내가 찾는 연고는 없다. 뚜껑을 닫으려다 빨간 약을 집어든다. 빨간 약이라……. 빨간약을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초등학교 사학년, 오학년 그즈음까지였을 것이다. 그건 유독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또래 아이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도, 불장난을 하다 손이 데었을 때도, 가시 박힌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다 팔이 긁혔을 때에도 언제나 빨간약을 발랐다. 효능이 있는건지, 어떨 때 바르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왠지 빨간약을 바르면 다 나을 것 같았다. 특히 바르면 빨간약이 꼭 피같아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또래 남자아이들은 빨간약을 좋아했다. 나도 그랬고, 범석이도 그랬다. 범석이는 내 짝이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았던 나에 비해 범석이는 왜소한 녀석이었다. 내 어깨까지 오는 작은 키에 깡마른 몸. 늘 덥수룩한 머리와 하얗게 질린 것처럼 흰 피부. 교실 한 구석에 늘 처박혀 있는 아이. 시든 잎처럼 힘없는 아이였다. 나는 그런 범석이와 짝이 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축구와 야구를 좋아하고 언제나 뛰어다니던 나는 범석이가 너무도 갑갑해 보였다.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나는 주위 친구들과 떠들고 놀았을 뿐 범석이와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디가 좋았던 것일까. 범석이는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주었다. 연필을 주고, 지우개를 주고, 공책도 주었다. 초콜렛이나 사탕 따위도 주었다. 범석이네는 잘살았다. 아버지가 병원장이었으니 동네에서 가장 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에 우리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노점상을 했다. 큰누나가 공장에 취직한 뒤로 살림이 조금 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난했다. 그래서 초콜릿이나 사탕은 전혀 먹을 수 없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먹을 것을 주는 범석이를 고맙게 생각해야했을 나였다. 하지만 나는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범석이를 고맙게 생각해야했을 나였다. 하지만 나는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범석이를 괴롭혔다. 연필, 지우개는 물론 크레파스나 스케치북도 받았다. 나중에는 시계와 돈까지 받아내었다. 그럴때마다 범석이는 화를 내기는커녕 자기는 집에 더 있으니까 괜찮다고만 했다. 내가 싸움을 잘 해서 그랬던 것일까. 어느날부터 나는 범석이를 데리고 놀았다. 새총을 쏘아 맞추기도 했고, 일부러 공을 멀리 차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때 범석이가 화를 내었더라면……. 사학년이 끝날 무렵에 나는 범석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귀 잡아 당기기나, 가방에 거미 넣어두기, 공책 숨겨두기 같은 장난을 쳤다. 괴롭히고 나면 무척이나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찝찝하기도 하고 미안했다. 하지만 나는 장난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가는 것처럼. 범석이는 오학년이 되었을 때도 내 짝이 되었다. 범석이는 기뻐했지만 나는 싫었다. 내가 괴롭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하는 범석이가 무서웠다. 나는 범석이를 더 괴롭히기 시작했다. 계속 괴롭히면 언젠가는 떨어져 나가겠지. 범석이 도시락에 흙을 뿌리거나 송충이를 넣어두었다. 화장실에 가두어 놓기도 하고 흙탕물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상했다. 내게 악마가 씌인 것처럼 나는 더 심하게 괴롭혔다.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더 크게 괴롭히고 싶었다. 그만큼 죄책감도 컸다. 그러던 어느날,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교실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빨간약을 바르면서 나는 범석이를 노려보았다.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던 범석이었다. 약을 다 바른 나는 범석이에게 갔다. “야. 이범석! 너 배 아프다고 그랬지. 이거 마셔.” “이 이건 바르는 약이잖아.” “이거 만병통치약이야. 몰랐냐  이거 마시면 다 낫는거야. 그러니까 얼른 마셔. 배 아프다면서!” 나는 빨간약을 범석이 코 앞에 들이댔다. 범석이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반 아이들은 모두 나를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계속 뒷걸음질 치던 범석이는 결국 벽에 부딪혔다. 나는 범석이 입에 빨간약통을 대고 들어 부었다. 입에 약을 물고 있던 범석이는 푸욱하고 약을 뱉어냈다. 마치 피처럼 빨간약이 사방에 떨어졌다. 계속해서 약을 뱉어내며 범석이는 나를 노려보았다. 유난히 하얗던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린 범석이가 무섭도록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교실에서 뛰쳐나왔다. 학교에서 집까지 한숨에 달려와 방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벌벌 떨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범석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며칠동안 나는 몸살과 고열에 시달렸고 범석이는 전학을 갔다. 일주일 후 학교에 갔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리고 나도 다른 친구들도 범석이를 잊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면서 난 수많은 범석이와 마주쳤다. 그리고 또다른 나와 마주쳤다. 유난히도 힘이 없고 약한, 시든 잎 같은 사람과 그를 괴롭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범석이를 떠올렸다. 취직을 하고 일년쯤 되었을 때 나는 범석이를 다시 만났다. 정확히 이십년이 지난 후였다 범석이는 여전히 키가 작고 왜소했으며 어디가 아픈 듯 얼굴이 창백했다. 좀 변한 것이 있다면 말수가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범석이는 공무원이 되었다고 했다. 신문기자가 된 나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여전히 나를 반기고 좋아했다. 모든 것을 다 잊은 걸까. 나는 조심스레 범석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꺼냈다. “아, 그 일 기억나, 그땐 니가 미웠지만, 뭐 괜찮아. 우리는 친구니까.” 그렇게 말하는 병석이의 얼굴이 창백하고 무서워 보인 건 왜 그랬을까. 연고를 찾는다. 혓바늘이 돋았을 때 바르는 연고는 맛이 찝질해서 바르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어디다 두었을까. 신발장 위, 쇼파 밑, 피아노 위, 책상 서랍까지 온통 뒤져보아도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전화기를 들어본다. 그래 여기 있었구나. 연고는 전화기 아래에 깔려 있었다. 연고를 집어들고 바르러 가려니까 전화벨이 울린다. “형주냐  나야, 야 너 지금 좀 와야겠다. 범석이 죽었어. 교통사고래…….” 집어들었던 연고를 떨어뜨렸다. 범석이의 죽음,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곧 거울 앞으로 가 연고를 바른다. 연고를 바르자 혀 끝이 화끈거린다. 책상 위에 연고를 두려다 약통을 찾는다. 약통에 연고를 넣는다. 다 먹은 소화제 상자와 반창고를 쓰레기 통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잠깐, 뚜껑을 다시 열었다. 빨간약을 꺼낸다. 귀에 대고 통을 흔들어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뚜껑을 열어본다. 겨우 뚜껑을 열어 통을 뒤집어 본다. 굳은 빨간약 가루가 떨어진다. 가루를 털어내고 빨간약을 쓰레기 통에 버린다. 반쯤 채워진 쓰레기 봉투를 묶는다. 검은 양복을 입었다. 오래간만에 입은 양복이 어색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쓰레기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선다. 쓰레기 봉투를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둔다. 혓바늘이 다 나을때쯤 범석이도 잊혀지겠지. 빨간약을 버리듯이, 주차장으로 가면서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김형주. 핸드폰의 자기 이름을 바꾼다. 아픈 곳에 손이 간다. <수필부 장원> 엄마의 스무살 양은정(수리고) 어느날, 우연히 창고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앨범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언니야, 우리집에 이런 것도 있었냐  처음 보는데…….”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으로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조심스레 앨범을 열었다. 마치, 악명 높았던 어느 해적이 숨겨놓았던 보물 지도를 찾은 것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냐  이건…….” 앨범 안에는, 왠 낯익은 여자가 갈래머리를 곱게 땋고는 수줍은 듯 웃고 있었다. 창백하리만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은, 정월 대보름의 보름달을 연상시켰다. “이거, 엄마 처녀적 앨범 아니야 ” “뭐  엄마가 처녀였어 !” 나는 동생의 실없는 농담을 한 귀로 흘려보내고 다시금 조심스레 한 장을 넘긴다. ‘축, 문학의 밤’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무대 윗 쪽에, 남장을 한 여학생 하나가 거만한 태도로 서 있었다. 금은 차이나 칼라며, 흩날리는 망토와 눌러쓴 모자의 차림새로 보아, ‘이수일’ 역할쯤 되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이수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분홍빛 한복의 ‘심순애’였다.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 붉은색의 댕기를 드린 모습에, 나는 묘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엄마가 연극부였단 말이야 ” 동생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엄마의 ‘문화 생활’이라고는, 신문의 ‘연예 스포츠’면을 읽고 ‘누구랑 누가 이혼한다더라, 내 그럴줄 알았지. 다 남편이 바람기 많은 탓이지…….’하며, 남의 사생활에 대해 열변을 토하거나, 일일 드라마 따위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연극’이라니……. 가족끼리 천원짜리 비디오 한편 빌려보는 것조차 아까워 하던 사람이 직접 ‘심순애’ 역할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에, 나는 벌어진 입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언니야, 이것봐! 이거 아직도 우리집에 있지 않아 ” 동생이 가리킨 것은, 황토빛이 나는 스커트였다. 언젠가, 엄마가 ‘처녀 적에는 맞았는데…….’ 하며 꺼내 보여줬던 유행이 지나 촌스럽던 스커트, 입지도 못할거, 왜 가지고 있냐는 가족들의 성화에도, 꿋꿋이 지켜내던 바로 그것이었다. 아직도 장롱 깊숙이에 있을, 그 스커트를 떠올리며, 몇 장을 더 넘기자 이번에는 낡은 엽서가 여러장 나왔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달라 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동생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앨범의 얇은 투명필름에서 그것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은지야, 잠깐만! 뭐라고 써 있는데 ” “응  뭐가 ” 엽서 뒷면은 몇 안되는, 마음대로 갈겨쓴 글자로 채워져 있었다. “사랑하는 란, 지금 이곳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나와 동생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동생이 읽는 아버지의 ‘연애편지’에 귀를 기울였다. “오오. 보고싶소, 라안~!” 과장된 몸짓으로 마무리를 지은 동생이 킥킥댔다. “1980년이면, 뭐야  20년 전 러브레터야  우아…… 그럼 엄만 몇 살이지  딱 스물이었나 ”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아보던 동생이 탄성을 질렀다. 엄마와 아빠는, 아주 오래 전부터 펜팔로 알고 지낸 모양이었다. 엽서 중에는, 아버지께서 외국에 나가계실 적에 ‘란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니, 스무살의 어엿한 숙녀가 될 당신의 모습에……’ 라는 내용의 낯간지러운 것도 끼어있었다. 스무살. 엄마는 이 엽서를 받고 스무해를 더 사셨고 이제, 당신의 딸이 스무살이 되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더 스무해를 사시는 동안에, 가족이 셋이나 늘었고, 새로운 집과 작지만 자기의 가게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스무살’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는, ‘두 번째 스무살’을 ‘가족’이라는 것을 위해 투자했던 것이다. 스물의 희고 고왔던 손은, 다시 스무해가 지나자 반찬 냄새와 칼에 베인 상처에 덮여 변해버렸다. “한 때 너희 엄마가 학교에서 ‘문학소녀’로 얼마나 날렸는데…….” 하고, 놀리는 듯한 이모들의 말에 눈을 흘기시던 엄마는, 아마도 ‘ 꽃다운 스무살’의 자기보다는 다시 살았던 스무해가 더 자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은지야, 우리 이 앨범 본 거 비밀로 하자. 알았지 ” “왜 ” “그냥. 그냥 그러자…….” 동생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 미간을 약간 찌푸렸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앨범을 다시 창고안에 넣어두었다. 그날 늦게 학원이 끝나고 일부러 엄마가 계신 가게에 들렀다. “어이구, 딸네미 어쩐 일이신가 ” “엄마랑 같이 갈라구…….” 나는 가게의 문을 잠그고 손을 탁탁 터는 엄마에게 다가가 슬쩍 팔짱을 꼈다. “덥다, 왜 달라붙고 난리냐 ” “왜  딸이랑 팔짱도 못껴 ” “얘가 왜 이러나……. 용돈 떨어졌냐 ” “어휴. 엄마는 어떻게 ‘낭만’도 없냐  가끔은 가게도 쉬고 아빠랑 드라이브도 하면 좀 좋아 ” “내 취미가 돈 벌기야. 쓸데 없이 차타고 돌아댕기기는……. 기름 버리고, 무슨 낭비냐  아이고, 저기 쓰레기 봉지에 쓰레기 한참은 더 들어가겠네……. 저 아까운걸 어째 ” 엄마가 여느 ‘아줌마’들처럼 말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엄마~ 내가 장미꽃 한 다발 선물 해 줄까 ” “장미꽃 ” “음…… 스무송이만.” “무슨 소리냐 ” “로즈데이잖아. 엄마 작년 로즈데이날, 아빠땜에 삐졌었잖아.” “삐지기는! 니 아버지가 하두 답답하고 굼뜨니깐…….” 엄마는 ‘장미 스무송이’를 벌써 받기라도 하신 듯 슬쩍 미소지었다. “엄마~” “또 왜 ” 엄마의 까칠한 손을 잡아보았다. 스무살의 부드러웠던 느낌과, 스무해의 따스함이 배어있었다. “그냥…….” 엄마의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