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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 41회 콩쿠르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885
  <장원> 하늘 분당중앙고등학교 3학년 정선우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남향교실과 마주앉은 수입가구점 벽돌건물 옥상 덩굴식물에 둘러싸인 날카로운 피뢰침 위 하얀 새 한 마리가 있다 얇은 발가락 셋으로 피뢰침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다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에 젖어 눅눅한 날개 유리창 너머로만 느껴지는 뜨거운 바람에 파닥이며 말리고 있다 창문이 없는 붉은 벽돌건물 입을 굳게 다문 듯한 답답함에 붉고 파랗고 푸른색 볼펜들이 서걱대는 교실로 나는 고개를 돌린다 언제부터 날개를 달고 있었는지 회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등에는 눅눅히 젖은 날개가 접혀 있다 젖어버린 날개가 축 늘어진 채 아이들의 눈은 칠판으로 책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니고 있다 밖을 내다보는 나에게 짝은 어딜 보느냐고 쿡쿡 찌른다 어느새 날씨는 활짝 개어 있다 새는 두 날개 구석구석 살핀다 몇 번인가 머뭇거리던 새는 비 갠 하늘로 높이 솟구쳐 오른다 파란 창공에 하얀 금 긋고 있다 ‘언젠가 우리들도 이 눅눅한 날개 가볍게 털어버리고 파아란 창공을 박차오르며 날아가겠지’ 새가 떠나간 자리에서는 햇살에 잘 마른 솜이불 냄새가 난다 <소설부문 장원> <장원> 홍수 분당 중앙 고등학교 3학년 이현주 사흘 째 비가 퍼붓는다. 내리는 비가 아니라 퍼붓는 비다. 아무리 장마설이라지만 사흘 연속으로 오는 비가 야속할 따름이다. 옆 집에는 고스톱판이 벌어졌나보다. 비가 와서 논에 나가지 않은 아저씨들이 모였을 것이다. 쨍 하고 막걸리 잔 부딪히는 소리가 한 번 들릴 때마다 아저씨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우리 금싸라기들, 비는 잘 맞고 있는지나 보고 와야 쓰겠네." 진수네 아저씨가 논에 가겠다고 나서는 것 같더니 30분도 채 안 돼서 돌아왔다. "그래, 금싸라기들 비는 잘 맞고 있던감 " "흐흐, 당연허제. 고개 빳빳이 세우고 잘 맞고 있더구먼." "하이고, 비가 말이여, 이렇게 때에 맞춰서 와 주기만 하믄 농사짓기 훨씬 수월 헐틴디 말이여." 부엌에서 나온 엄마가 작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아이고, 속 좋은 소리덜 하고 있구먼." 엄마의 한숨 소리가 말소리보다 더 크게 세어 들어왔다. 망헐놈의 비, 망헐놈의 비……. 아빠는 인삼 밭에 나가셨다. 인삼……. 인삼은 키우기가 어려운 작물이다. 조금만 물이 부족해도 금세 말라 죽어버리고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뿌리가 금세 섞어버린다. 하지만 인삼 농사라는 것이 성공만 하면 괜찮은 수익이 보장된다. 아빠는 그 수익에 기대를 걸고 인삼 농사를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농부들에게 빛만 얹어 주는 쌀 농사에 비해 인삼 농사는 아빠에게 비상구요, 새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빛까지 얻어 시작한 첫 인삼농사는 제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어릴때부터 벼농사만 지어 본 아빠에게 인삼 농사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쩍 말라 푸석푸석한 인삼을 아빠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뿌리 끝부터 잘근잘근 씹었다. 그 다음 해 인삼들은 뿌리가 몽땅 썩어 있었다. 가뭄으로 실패한 아빠의 지나친 물 욕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만두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농협 빛이었지만 아빠의 오기는 그만 둘 죽을 모르고 다시 한번의 실패를 가져왔다. 그렇게 세 번을 실패하고서야 아빠는 인삼 농사를 제대로 지울 수 있었다. 이제 웬만한 장마나 가뭄은 아빠의 인삼들을 어쩌지 못할 듯 했다. "한 사오년만 잘 키우면 빛은 다 감고도 남을 것이여." 그리고 그렇게 3년이 흘렀다. 3년동안 우리 집은 인삼 때문에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봄에는 가뭄지고 여름에는 장마지고……. 때마다 우리 가족은 인삼 밭 물 대기, 물 빼기로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인삼에 거는 아빠의 희망이 너무 컸기에 가족들 역시 불평 따위는 없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에 강원도 일부지역이 잠기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보도에……." 아빠는 텔레비전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역대 최고 강우량을 기록했단다. 여기저기 물에 잠겨버렸다고 했다. 충청도 지역에 호우 주의보가 내렸다. 오늘 밤이 고비란다. 자정이 되어 갈수록 빗줄기가 강해졌다.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잠이 들 수가 없었다. 한참을 누워서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루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에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이 비오는데 밭에 나가서 뭘 어쩌겠다고 우산은 챙겨요."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 있으면 ……."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인삼 밭에 나가겠다며 엄마와 실랑이를 하고 계셧다. 한참을 실랑이 하던 끝에 결국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밭으로 가셨다. 내가 나가자 엄마도 부스럭 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아빠 나가셨어 " "우산이란 우산은 다 챙겨들고 나가셨다." "엄마는 뭐하는거야 " "바가지랑 양동이 같은 거라도 챙겨가지고 가봐야지. 4년 농사가 헛수고가 되게 생겼는데……." 엄마는 물이 많이 고일 수 있을 것같으면 무조건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혼자 나가려는 것을 내가 붙잡았다. 나도 이것저것 챙겨들고 엄마를 따라나서자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어쩐대니 " 힘이 쭉 빠지는 소리였다. 우리 가족모두, 아니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우리 밭에서 물을 퍼 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며칠 동안 위태롭게 버텼지만, 이미 며칠 전부터 인삼의 뿌리 끝은 썩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내가 나가자 밭에는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열심히 물을 퍼 내고 있었다. 밭은 이미 물이 잔뜩 고여 아빠의 발목 아래까지 차 있었다. 그런데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있는 반대쪽 구석에서 물을 퍼 내고 있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동생이였다. "잠이 안 와서요……." 분명히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 보다도 먼저 나와 물을 퍼내고 있었나보다. 밤 새 물을 퍼 냈지만 물은 점점 더 위로 올라왔다. 계속 물을 퍼내던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일어나더니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소리쳤다. "이놈의 망할 비! 4년은 잘 참더니만은! 밭에 내리지 말고 내 목구멍으로 퍼 부어라! 내 뱃속에 홍수를 내든지 맘데로 하고 밭에는 고만 내리라는 말이다!"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물 위에 털썩 앉아 목구멍으로 우셨다. 꺼꺼대는 소리가 빗소리에 가려 조그맣게 들렸다. 나는 다른 구석으로 가 물을 퍼냈다. 자꾸 눈물이 났다. 이놈의 비, 말할 비. 밭에도 홍수를 내드니만 우리 가족 마음에도 홍수를 내는 구나……. 나는 희망없는 물 퍼내기를 멍추지 않고 울었다. <수필부문 장원> 신발정리 상명고등학교 임현아 지난 금요일은 엄마가 다니시는 교회사람들이 심방을 오는 날이었다. 엄마는 손님 맞을 준비에 부엌과 거실을 바쁘게 왔다갔다하고 계셨다. 동생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서 낮잠을 자는 모양이라고 내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동생이 잠든 사이에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얘가 또 ……. 현아야 좀 나와봐라." 한창 적분 문제를 풀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서 짜증이 나 있던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현관에 동생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현관 조명이 깜박이다 꺼졌다. 나는 번쩍이는 불빛 아래에서 동생이 무얼하고 있는지 알았다. 신발정리였다. 현관 가득 벌여 놓은 신발들에 기가 막혔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신발장은 모두 열려 있었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잠자고 있던 신발들은 모두 현관으로 나와 있었다. 동생은 열심히 신발의 짝을 찾아주고 있었다. 엄마의 굽이 꺾여진 뽀족구두들, 얼마 신지도 않고 신발장에 처박아버린 내 운동화, 슬리퍼, 샌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어쩌면 좋으니, 하는 안타까운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눈을 외면하고 슬그머니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동생의 저런 모습은 정말 보고싶지 않았다. 동생은 세 살때까지 여느 아이들과 똑같았다. 오히려 언니인 나보다고 가위질도 잘했고 말도 똑부려지게 했다. 어느날, 열이 40도까지 올라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온 후, 동생은 변했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고   엄마"라는 발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동생은 갓 태어난 신생아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생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신발정리"뿐이었다. 나랑 "누가 더 신발정리를 잘하나"를 두고 시합했던 기억이 조금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생은 아빠신발과 내 운동화를 구별할 줄 알았다. 잊어버렸기 때문에 종종 왼쪽 신발이 오른편에 놓여있곤 했다. 그 애는 신발정리를 정말 좋아했다. 그것이 지나쳐서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을 모조리 꺼내놓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훌쩍이기만 하던 엄마는 동생을 말리기 시작했다. 윽박지르기도 했고 어르기도 했지만 동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동생은 집이 떠나가라 울면서 신발을 끌어안았던 것이다. 이제 엄마는 슬픈눈을 하고 동생이 신발을 정리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가 모의고사 문제를 다 풀고 나왔을 때까지 동생은 신발정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초조한 얼굴로 시계를 보고 있었다. 교회목사님이 오실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포켓몬스터가 그려진 운동화를 만지작거리는 동생을 뒤로 한 채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엄마도 좀 들어가 있지. 나는 현관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엄마가 안쓰럽게 여겨졌다. 목사님이 현관 앞에 앉아있는 동생을 보았다. 사람이 들어와도 아랑곳없이 동생은 신발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목사님은 동생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무어라고 기도를 올렸다. 나는 방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대의학으로도 고치지 못한 병을 몇 마디 중얼거리는 것으로 어떻게 고칠 수 있다는 거지  나는 거실로 들어오는 교인들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목사님은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지은이가 어서 쾌유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기도를 올렸다. 이어서 교인들은 높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은이를 의식했음인지 목소리는 크고 웅장했다. 나는 문제집을 덮어버렸다. 지금 동생은 어떤 기분일까. 주위에서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동생은 구두 한짝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현관 불을 켰다. 동생이 한쪽 구석에서 구두를 찾아냈다. 아빠 구두였다. 나는 동생의 반짝거리는, 그러나 조금 풀어진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지은아, 너를 위해 노래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잖니, 그만 신발을 내려놓으렴. 동생은 계속 아빠의 구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