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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 42회 콩쿠르 장원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965
<수첩> 충주 여자 고등학교 3학년 6반 이방울 내 목엔 낡은 수첩 하나가 항상 달려있다 분홍 교복에 어울리지 않는 뭉툭한 수첩 외워지지 않는 영어단어와 무성한 공부계획 하나라도 잊지 않으려는 버둥거림이 가득 적혀있을 뿐이다 무엇을 잊었는지도 모르는 희미한 상실의 일상에서 나의 꿈들은 기능을 상실한 스펀지처럼 푸름을 흡수하지 못하고 토해내 버린다 형광등 불빛과 책 넘기는 소리에 절어서 돌아온 밤. 어린 날의 수첩을 열어보며 웃었다 속에서 어린 내가 흰 날개를 달고 날아와 나와 눈을 맞춰주었다. 학교 준비물과 유치한 낙서와 사소한 것들에 대한 반성 색색의 설레임들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고 날아오른다 하지만 오늘,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의해 또 수첩은 채워질 뿐, 내 작은 몸뚱아리는 커다란 귀가 되어 십대의 마지막 순수의 울음소리를 밤새 들었다 <소설장원> 거리 혜성여자고등학교 3-10 김정아 나는 버스 안에서 다시 편지를 읽었다. 규하야, 어릴 때 많이 했던 보물찾기 기억나니  나는 이 첫문장부터 틀렸다고 생각했다. 많이라는 말은 빠지는 게 나았다. 우리가 언제 얼굴이나 많이 보던 사이였는가. 그러나, 그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편지대로 시골집에 내려가 보물찾기를 하려는 이유는 어머니의 재치탓이었다. 이 편지는 지난 수요일, 그러니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지 일년하고도 석달이 지난 후에 발견된 것이었다. 그것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어머니는 고고사학을 전공한 내가 언젠가는 사마르칸트 벽화 화보집을 볼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언으로 유품을 물려주시는 척, 당신의 책에 편지를 끼워 둔 것이다. 어머니의 예상대로 나는 책을 읽었고 결국 이 편지를 발견하였다. 이게 너와 나와의 마지막 보물찾기다. 편지는 청유나 권유가 아닌 확신으로 그 문장을 채우고 있었다. 장소는 너와 내가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곳이다. 다음 문장은 쉬운 질문이었다. 우리가 그나마 가장 오래 함께 지낸 곳은 다름 아닌 시골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 문장이었다. ‘태양의 분신들은 뿌리에 아픔을 숨기고 있다.’ 낯이 익은 문장이었다. 아마도 어머니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인 듯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탄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 있었다. 나는 내릴 채비를 했다. 의문은 집에 가면 풀리겠지. 나는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예산 종점입니다. 버스 기사의 목소리가 무릎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일년이 훨씬 넘어서야 다시 온 시골집은 굉장히 낯설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집은 어머니의 친구분이 별장으로 사용하시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그 분 탓인 듯 마당 경관도 조금 바뀐 듯 싶었다. 나는 마루에 내 짐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태양, 태양의 분신, 뿌리, 아픔…,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건 때마침 여름을 맞이해 만개해 있는 해바라기 담장이었다.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래, 맞아. 해바라기라는 소설의 구절이었지. 무릎을 치며 담장에 다가서자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나무로 된 작은 표지였다. 왠지 모르게 신이 난 나는 그 표지 아래를 맨손으로 패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손톱에 흙이 끼게 흙장난을 친게 언제였던가. 나는 어렴풋이 예전 일을 기억해냈다.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살 때 나는 그녀가 씨를 심는 날을 가장 좋아했었다. 흙을 파고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는게 신기해서였다. 새삼 웃음이 나왔다. 표지 아래를 반 뼘 정도 파자 비닐에 싸인 작은 종이상자가 나왔다. 그것을 꺼내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다음 문제가 들어 있었다. 돌은 그저 그 자리에서 말이 없는데 사람만이 그 이름을 부르며 기억한다. 두 번째는 쉬운 문제였다. 나는 흙투성이 손을 탁탁 털며 마당 안쪽, 집 건물 바로 옆으로 갔다. 오동나무로 적당히 그늘진 그곳에 바로 바위가 있었다. 나는 나 또한 바위에 이름을 붙인 전력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어릴적 나는 바위를 투파라고 불렀다. 국적불명의 이름의 뜻은 기억나지 않았다. 투파. 그 이름을 부르며 나는 바위를 매만졌다. 둥글넓적한 돌은 예나 지금이나 앉기에 딱 좋았다. 그 위에 앉으니, 바위가 한 쪽으로 약간 기울며 흔들거렸다. 나는 급히 일어나 바위 아래를 보았다. 그곳에는 전에 없던 틈이 있었다. 손을 넣어보니 뭔가 잡혔다. 두 번째 상자, 세 번째 질문이었다. 종잇장 하나하나에도 그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 이건 잘 아는 대목이었다.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집으로 초대받아 그의 방 책장에서 책을 꺼내며 하는 말이었다. 책장. 어머니의 서재겠구나. 나는 집안으로 뛰어갔다. 어린 나에게 서재란 경이로운 대상이 있었다. 내 키보다 높은 책장 가득 책이 있는 그 광경이란. 그러나 지금의 나는 책장보다 작지도 기가 죽지도 않았다. 단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어미니의 다음 편지를 찾을 뿐이었다. 나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책장에서 그 구절이 쓰여진 책을 찾았다. ‘집을 떠나다’ 라는 제목의 소설집이었다. 벌써 귀퉁이가 낡아 닳은 소설을 휘리릭 넘기니, 역시 예상대로 편지가 있었다. 나는 곱게 접힌 편지를 뜯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꼭꼭 숨긴 보물이 뭡니까, 어머니 편지에는 수고했다,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말과 함께 파란색 잉크로 문제가 적혀 있었다. ‘사람이란 뒤를 돌아봐야 한다. 손바닥 뒤집듯 삶을 뒤집으면 붉은 태양 아래 푸른 슬픔이 늘어 있기도 하고, 또 슬픔의 이면에 광휘가 있을 수도 있단다.’ 우선 글은 길었고, 어디에도 장소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어디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글이었다. 이것은 암호라기보다는 늘 하시곤 했던 설교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당황하며 다시 전문을 읽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면을 보렴. 그 말씀은 아주 낯익은 것으로, 늘하던 설교였다. 서서히 편지의 글은 선명한 기억 속의 울림으로 변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입 안으로 계속 이면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듯 햇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눈 앞이 선명해지며 무언가 깨달았다. 그리고는 급히 책장 옆면으로 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동식 옷장을 치웠다. 그러자 놀랍게도 꽤 넓은 벽과 책장 사이의 공간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안에 가득한 박스였다. 나는 박스를 대여섯개 끌어냈다. 그것들을 열자 낡은 노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40여년간 어머니가 써오신 일기였다. 나는 놀라며 박스들을 다 꺼냈다. 그러자 그 중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냥 라면박스나 사과박스인 다른 것들과는 달리 그것은 잘 포장된 작은 크기의 상자였다. 마치 선물같은 그 상자를, 나는 조심스럽게 뜯어보았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놀랍게도 편지였다. 맨 위에 있는 것은 작년 3월에 쓰여진 것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쓰신 것이었지만 가장 아래의 편지는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 쓴 편지였다. 태어나지도 않은 나에게 보낸 펴지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20년 전, 어머니는 편지를 이렇게 시작하고 계셨다. 규하야, 너와 나 사이에는 시간도 공간도 의미가 없다. 어떤 거리도 관계 없다. 너는 내 과거를 지탱했고 현재를 밝히며 미래를 이끈다. 나는 넋이 빠져 편지들을 읽어나갔다. 규하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는 우리가 함께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나는 너 그 자체이다. 분신이란 말조차도 뛰어넘는다. 규하야,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모자라기에 아예 하질 못했다. 규하야…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생각하고 계셨다. 어느새 나는 마지막 편지를 읽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직전 쓰신 것이었다. 규하야, 내가 너의 미래의 어느 시점에 불쑥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말아라. 너도 알지 않니. 너와 나는 하나의 영혼이다. 오늘 너와 함께 한 추억이 깃든 곳에 문제들을 숨겼다. 일기장을 보니 그 때 일들이 생생하다. 너로 인해 태어난 내 모든 글들과 네가 나를 영원히 살게 한다. 다시 부탁한다. 날 발견하면 웃어주렴. 사랑하는 내 아이. 나는 잠시 그 편지를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바위가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포도를 먹던 자리다. 해바라기가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씨앗을 심었었다. 그리고 물이 마른 물레방아, 마당의 오동나무, 참나무… 나는 당황했다. 어머니가 보였다. 어디에서든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다가갔다. 그곳에도 어머니가 웃고 계셨다. 너무나도 나와 닮은 모습으로. 나도 웃었다. 그렇군요, 어머니. 정말 당신은 나의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군요. 나는 보물을 찾았다. 자칫 잃어버릴뻔했던 붉은 보석 하나를. <수필 장원> 거리 서해고등학교 최성욱 적어도 지금 이곳은 악명 높은 곳이다. 헛소문 듣고 느낀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기분 자체가 느낀 것이다. 악명 높다는 이곳의 기분. 좌우 양 사이드. 상하 프론트 비하인드. 바로 그 위치에 존재하는 사람 때문에 그 원인이 존재하는 것인가. 필시 이곳은 강당 따위의 곳이라는 것. 내가 앉아있고 상하좌우의 원인들도 앉아있는 것. 이게 원인이다. 악명 높다는 기분이 내 뒷골을 쿡쿡 쑤시는 그 원인. 1. 강당의 죄 강당이라 하면 일단 넓다는 기분이 든다. 무언가 확 트여있고 그래서 앞에 마련된 무대가 거대하다는 기분이 든다. 반면 무대보다 커야 할 객석은 사실 내가 그 많은 객석을 다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그대로 막힘을 당해야 하는 협소한 곳이기에 결국 객석은 무대보다 작은 것이 되고 객석에 앉은 나는 무대에 압도가 된다. 무대는 객석과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그 거리는 내가 앉아있는 이 객석을 잔뜩 겁먹게 한다. 함부로 손이 닿지 않을 듯한 먼 거리감. 사방의 벽 또한 하늘을 찌를 듯한 천장과 조화를 이루어 나를 겁먹게 한다. 벽은 스스로 나와의 거리를 띄워놓고 감히 천장을 쳐다보지 못하게 한다. 그에 결국 나는 움츠러들어 잔뜩 부동자세를 취하게 된다. 오나가나 이 거리는 새파란 눈을 뜨고 겁을 못 줘 안달이다. 손을 아무리 길게 뻗어 휘저어도 닿지 못할 이 거리감. 이 귀신을 만든 게 강당이고 나는 강당 속에 앉아 있다. 뒷골 쑤시는 게 좀체 가시지 않는다. 2. 상하좌우 원인들의 죄 이 원인이라는 말을 난 근원할 때 ‘원’자에 인간할 때 ‘인’자로 고쳐 부르지 않으면 좀이 쑤셔 못 견딜 것 같다. 이 원인이란 자는 악명 높은 강당 속의 사람들이다. 필시 이들은 내 또래임에 분명하다. 머리가 단발인 것으로 보아 예쁜 여학생이며 짧은 스포츠머리로 보아 잘생긴 남학생인 듯하다. 이들이 각각 두 명이고 총합 네 명이다. 네 명들은 상하좌우 객석에 앉아서 날 둘러싼다. 원래부터 내게 원한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구면은 절대 아닌데?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 앉는다. 날 둘러싸 착석한 이 네 명들은 무대의 한 양복 남자의 신호에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내 뒷골은 쑤시다 못해 아프게 됐다. 네 명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무슨 리스트 같았다?맹렬히 작성해나가는데 좀 엿볼라 치면 도무지 그 위압감에 못 이겨 실패하고 만다. 그런데 순간 그 네 명이 하는 어떤 작업을 나도 해야 한다는 어떤 각성의 제안이 나의 뇌리를 스쳤을 때 비로소 나도 무언가를 끄적이게 된다. 그런데 이미 늦어버렸다. 그들은 이미 쓰던 메모를 빡빡하게 채운 지 오래다. 네 명 중의 한 명을 힐끗 보니 눈이 시퍼렇다. 다시 네 명은 일제히 제시된 공식 양식에 메모를 옮겨 적는다. 그리고 난 거기서 잘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그 네 명은 나 보란 듯이 써 내려 가면서도 사실은 위압적인 거리력(力)을 내뿜는다. 날 하룻강아지 취급하듯 그들은 먼 거리에서 날 떠본다. 사실 상하좌우의 객석이 내가 앉은 자리와는 겨우 두 뼘 남짓 할 뿐인데도 도무지 나는 그들에게 닿을 수 없다. 실질적인 거리는 짧으나 정신적인 거리는 이미 남극과 북극의 거리다. 문제는 내가 자주 위축하는 데에 있다. 그들이 멀어서이다. 한 발자국만 떼면 되는데 일단 떼면 또 다른 지면에 닿을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이다. 그들과 닿기엔 너무나 먼 짧은 거리. 또다시 난 부동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좋아서가 아니다. 강당에 눌리다 못해 이젠 사람들에게도 눌리기 때문이다. 다 거리 때문이다. 나의 거리가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짧음을 강당과 주변의 넷은 더 짧게 했고 자기와의 거리는 더 넓혔으며 그래서 날 더 작게 만들었다. 뒷골이 더욱 쑤신다. 아프다 아파. 3.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강당에게 죄를 추궁하다간 졸지에 내가 바보 취급당해 망신당할 수 있으며 나의 주위에 착석한 네 명에게 죄를 추궁하다간 무고죄로 손해 배상액만 더 물을 수 있다. 그래서 비록 난 원고고, 그들은 피고지만 좀체 그 구분이 모호해지다 못해 구별이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럴 땐 악명 높은 각각의 강당과 네 명의 공통분모를 찾아 추궁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거리를 선택했다. 거리를 출두시켰다. 거리를 추궁했다. 거리를 판결하게 했다. 거리가 패소했다. 내가 승소했다. 다행이다. 결국 난 원고로서 마땅한 판결을 듣게 되었다. 내가 거리를 지목했던 것은 무엇보다 강당과 네 명의 공통분모로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거리라는 것 때문에 나를 잔뜩 움츠리게 하고 뒷골을 때린 것이다. 애초 강당에서의 무대와 객석간 거리를 좁히고 객석 간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차와 다과가 준비 됐더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거리가 큰 문제가 되어 결국 피고가 되고 만 것이다. 애당초 이런 거리를 없애서 건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한층 더 좁혀졌더라면 서로가 무죄다. 4. 에필로그 비록 패소한 거리였을지라도 바로 지금 날 엄습했던 네 명이 급하게 나가고 강당은 소등을 하자 다시 부활했음을 느낀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악명 높은’이라든지 ‘뒷골’이라든지의 기분 상의  자극은 없어졌다. 즉, 거리가 부활했다고 해도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됐다. 이젠 의기소침 했던 내가 나설 때이다. 거리감은 말끔히 사그라졌으니 거리를 포획하면 된다. 거리만 잡아서 아예 소멸시키면 이젠 나도 협소했던 이 자리를 떠 당당하게 강당 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을 듯하다. 내겐 더 이상의 거리감은 없다. 거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