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2005년 제 43회 콩쿠르 장원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913

<운문부 장원>

표절작임이 밝혀져 심사위원 전원 합의로 당선취소됨 <소설부 장원> 몸 중원고등학교 3학년 이경룡 아버지는 11년 전 나처럼 탕 속에 숨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버지에게 몸이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과거니까. 11년 전, 주위에 고추 달린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와 유치원 같은 반인 여자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평소에 많이 괴롭히던 아이였다. 그 여자아이는 자기 엄마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탕 속 다른 여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탕 속으로 잠수했다. “정현아!”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나는 탕 속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와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때수건을 들고 등을 돌리라고 했다. “엄마, 나도 남탕 가고 싶어!” “돌아앉아!” “남탕 갈래!” “돌아앉아!” 엄마는 내 엉덩이를 쳤다. 손바닥 자국이 문신처럼 남았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으휴, 내가 못 살아. 정말. 남편이란 사람이 고생만 잔뜩 시키고.” 아버지는 왜 날 남탕으로 데려가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는 대답 대신 넓은 등을 보이며 침묵했다. 그런 침묵은 내가 아버지에게 자그마한 요구를 할 때도 볼 수 있었다. 그럴 땐 마치 아버지의 어깨가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당신의 단단한 몸처럼 완고했고, 나는 그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는지 점점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아버지의 크고 탄탄한 몸을 닮게 되었다. 학교 선배들은 나를 유심히 지켜보았고, 나를 그들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내게 술과 담배를 가르치고, 팔에 ‘칼빵’?칼로 얕은 상처를 내서 글자를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장난?을 놓았다. 오토바이를 타러 갈 때도 나를 꼭 뒤에 태웠다. 패싸움을 하게 될 때, 나는 우리 중 맨 앞에 서게 됐다. 그렇게 1년 동안 담배와 술에 묻혀 사니 내 몸은 엉망이 되었다. 아침엔 술 때문에 속이 쓰렸고, 담배 때문에 하루 종일 가래가 끓었다. 밤마다 오토바이를 타서 항상 잠이 부족했고, 오토바이 사고로 내 팔뚝과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잦은 싸움도 한몫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께 걸리게 되었다. "이놈들! 다 나와!” 선생님이 하키채를 가지고 우리들의 엉덩이에 불을 질렀다. 한차례의 매가 지나니 불에 탄 재처럼 시커먼 멍이 엉덩이에 남았다. 선생님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린다며 우리들에게서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엉망이 된 몸을 끌고 집에 돌아갔다. 아버지는 매를 들고 서 계셨다.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 넓었던 어깨는 왜소해지고 탄탄했던 복근도 물렁한 뱃살이 되었다. “이제 아비 따라서 담배도 피네. 내가 이 꼴 볼라고 시집왔나  내가 시집을 괜히 왔지. 괜히 왔어. 능력이 없으면 집안이라도 좋든가.” 라며 어머니는 가슴을 쳤다. 어머니의 말은 하나의 돌이 되어 아버지의 가슴을 쳤는지, 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들어가자. 내가 너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버지의 몸은 늙었지만, 매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것은 타고 남아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재에 휘발유를 붓는 꼴이었고, 내 다리와 엉덩이는 다시 한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두려워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매가 그칠 때 즈음, 나는 아버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과 독립해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출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를 맞고도 나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되fp 나는 더욱더 비뚤어져갔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의 상처들은 점점 많아졌다. 그 중 싸우거나 오토바이 사고로 남은 상처, 담뱃불에 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패싸움을 하다가 경찰서로 끌려갔다. 내 친구들 중에는 경찰서에 가면 서류가 열 장 이상 나오는 녀석도 있고, 보호 감찰을 받는 애도 있었다. 보통 서류의 매수와 아이들 몸의 상처는 비례했다. 나는 내 몸의 상처를 생각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끊게 될 서류도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평생 내 몸을 따라다니며 내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워졌다. 내 과거의 기록이 될 상처들과 함께 나는 서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왔다. 나는 미안한 감정에 앞서 부끄럽고 화가 났다. 항상 어머니께 무시당하는 아버지는 파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일을 하다 온 것이었다. 그 유니폼은 굉장히 촌스러웠다. “어이, 김 기사. 웬일인가  또 어떤 손님이 행패부리나 ” 아버지는 당신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서로 알고 있었다. 몇 달 전 술에 취한 승객이 아버지의 얼굴을 때렸다. 아버지를 데리러 경찰서로 갔을 때 본 승객의 팔뚝은 희고 가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그것에 맞았다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승객은 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꾸짖었다. 기사놈이 감히 까분다고. “아들놈을 데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서류에 서명을 하더니 내 손목을 붙잡고 밖으로 끌고 나왔다. 나는 아버지의 택시를 탔다. 자동차의 미등과 밤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보며 내 상처와 경찰서에서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나는 무서웠다. 마치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처럼 내 미래도 그렇게 어둡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어릴 적 내가 갔던 목욕탕에 차를 세웠다. “너는 어릴 적에 나와 함께 욕탕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  이젠 너를 탕에 보낼 수도 없고, 비밀을 숨길 수도 없겠구나.” 우리는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아버지는 아랫도리부터 벗었다. 파란 유니폼을 벗고 안에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의 등엔 커다란 용이 한 마리 있었고,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침묵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 탕 속을 빠져나왔다. 등에 새겨진 용 문신이 칼자국과 함께 번쩍였다. 그것은 과거의 아픈 기록, 내게 숨기고 싶었던 잔인한 기록, 죽고 몸이 썩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기록이었다. 나는 천천히 아버지의 등을 밀었다. 그러나 아무리 밀어도 아버지의 용과 칼자국은 없어지지 않았다. 내 눈에서 눈물이 났다. “아비의 몸이 보기 좋으냐 ”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비의 과거다. 닮고 싶으냐 ” 역시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아버지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나는 적어도 아버지의 미래만큼은 보기 좋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버지와 같은 몸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몸에 흉터를 하나 더 새기는 것과 같을 테니까.

<수필부 장원>

진건고등학교 3학년

유정아

  매년 6월 마지막 토요일에 우리집은 초목의 푸르름과 싱그러움이 반기는 곳, 고조할아버지의 산소로 떠난다.

  나는 이 산소에 찾아가는 날이면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 왜냐하면 그날만은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 식욕을 채워줬고 아빠도 동생과 내가 장난을 쳐도 웬만해선 화내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졌는지 성묘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고조할아버지의 산소에 성묘하는 길에는 고조할아버지의 사연이 담겨있는 걸 깨달은 작년 6월 마지막 토요일, 언제나 똑같이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묘비에 적혀있는 비문이 눈에 들어왔다. 한문으로 써있고 돌이 많이 부식되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아빠! 이거 뭐라고 써있는 거야 ”

  무심코 내뱉은 질문에 술잔을 기울이던 아빠는 약간 혀가 꼬인 듯 말하셨다.

  “그걸 이제야 물어보냐  네가 자라면 꼭 얘기해주려고 했다.”

  술에 취한건지 아빠는 자신의 고향인 충청도 특유의 억양으로 돌아와 있었다.

  6월 25일 민족 최대의 비극이 일어났던 날, 고조할아버지는 서둘러 피난준비를 하고 부인의 손을 이끌며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자식들 걷게 하랴 안 그래도 몸이 약했던 고조할머니를 업고 걷느라 기력이 다해 결국 쓰러졌다고 한다. 눈을 떠보니 엉엉 울며 매달리는 자식들은 보이는데 고조할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안 보였다. 때마침 폭격이 시작되고 고조할아버지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인연이 있으면 만날거라고, 남쪽으로 먼저 피했겠지라는 생각이 영영 이별이 되었다. 고조할아버지는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정신없이 고조할머니를 찾아다녔다.

  “왼쪽 팔뚝에 큰 점이 있는데 말이유, 진짜 못본 거 맞지유  어디로 간거쥬 그 계집……”

  혼자서 찾다가 지쳐서 배고프다 울부짖는 철없는 자식들과 함께 우셨다고 한다. 전쟁이 종결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고조할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고조할아버지는 재혼도 하지 않고 오남매를 키우시고는 언제나 중얼거리다가 눈물을 떨구곤 하셨다고 한다.

  “그만한 계집이 어디 없었는데 말이지, 내가 그 팔뚝에 있는 큰 점이 맘에 들었거든. 복슬복슬하게 생겨서……”

  고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아빠를 얻은 지 한 달 후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여기까지 얘기를 하시고는 내 왼쪽 팔을 보시더니,

  “이것 봐라. 네 왼쪽 팔에 이 점이 고조할머니의 점과 꼭 닯았다구.”

  할아버지가 어릴 적의 나를 보며 흥분하셨는데 바로 내 왼쪽 팔에 있는 점을 보시고는 반가워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고조할아버지가 너를 봤어야 하는건데…… 무덤에서라도 보시겠지.”

  내 몸에 고조할머니의 피가 흐른다. 이런 생각을 하자 내 몸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왼쪽 팔에 자리 잡은 점이 싫다고, 더러워 보인다고 때밀이수건으로 살이 빨개지도록 문질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이 점이 각별한 존재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내 몸에 남아있는 이 저은 고조할아버지의 쓰린 기억과 보고 싶다는 애틋한 감정이 어울러져 있었다.

  요번 6월 마지막 토요일에 나는 내 몸에 자리 잡은 고조할머니의 유품을 가지고 고조할아버지께 찾아간다. 6월의 푸르름이 자리 잡은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