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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 44회 콩쿠르 장원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012
<시부 장원> 신 발  

포항중앙여자고등학교 3학년 임숙현

  내가 절름발이인 것은 모두가 다 알지 눈뜨고도 눈뜬장님 아닌 바엔 모두가 다 알지 나는 절름발이 소녀 쩔뚝대고, 뒤뚱대고, 휘청대고, 바람 앞의 갈대마냥 쓰러질듯 걷는 내 걸음에 죽어 나가는 건 내 신발뿐이지 금방 밑창이 닳아버리는 내 신발 그런 내 신발 우리 엄마를 닮았지 10년째 내 걸음을 보면서 애가 닳고 닳아, 더 이상 닳을게 없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우리 엄마 금방 닳아 없어질 시한부 인생살이를 하면서도 나를 만난동안 자신의 일생에 후회없을만큼 꼭 그만큼 내 상처 끝자락에서 함께하는 내 신발 그런 내 신발 우리 엄마를 닮았지 <소설부 장원>   운동화

삼현여자고등학교 3학년 김보령

칫솔로 운동화 안창을 거침없이 문지른다. 마치 때들과 술래잡기라도 하듯 구석진 곳까지 칫솔은 고개를 파고든다. 유난히도 더러웠던 이 운동화는 향긋한 레몬향과 함께 제 본래의 파란색을 찾아간다. 시커먼 땟물이 제 머리위에 거품을 이고서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난 전쟁에서 승리라도 한 것처럼 쾌감을 느낀다. 운동화만을 전문적으로 씻어주는 빨래방을 운영한지도 벌써 삼 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수많은 운동화를 씻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듯한 기분으로 이 일에 임해왔다. 특히 인근의 외국인 노동자 쉼터의 운동화를 무료로 씻을 때면 더욱 진지해진다. 짧게 방울소리가 울리고 단골손님 인성이가 들어선다. 한 달마다 꼭 찾아오는데 어찌나 냄새가 심한지 이것으로 녀석을 자주 놀려먹곤 한다. 인성이가 운동화를 맡기고 가게를 벗어나려는데 때마침 배달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믿을만한 녀석이니 부탁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거 우리 동네 외국인 노동자 쉼터 물건인데 네가 좀 가져다 줄래 ” 인성이는 선뜻 받아들고는 재빨리 가게를 빠져나간다. 쉼터의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가게로 들어오신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천천히 여신다. “저기, 죄송하지만 우리 외국인 가족들이 운동화가 빨리 필요하데요. 서둘러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순간 인성이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설마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난 서둘러 인성이의 학교로 달려간다. 늘 제가 직접 운동화를 찾아가는 탓에 주소며 전화번호며 아는 것이 없다. 무작정 교문 앞에서 녀석을 기다린다. 해가 저물어 갈 때 쯤 인성이가 걸어 나온다. 나를 보더니 애써 시선을 피하며 먼 곳을 바라본다. “인성이 이 녀석! 당장 이리 오지 못해 ” 내가 큰 소리 치며 다가서자 녀석은 날렵하게 옆으로 빠져나가 달아난다. 겨우 뒤 ?아가 녀석의 옷을 잡아당긴다. 우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본다. 인성이의 눈빛이 흔들리지만 독기가 서려있다. “난 아니예요!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짓 안했어요. 그냥 갖다 주다가 잃어버렸어요. 무서워서 일부러 말 안한 거라구요.” 정말이냐고 거듭 다그칠 때마다 녀석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난 서서히 옷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뺀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어디론가 달려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새로 구입했는지 녀석의 운동화가 매끈하게 번득인다. 인성이의 운동화는 며칠째 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늘 제 날짜에 맞추어 찾아가곤 했는데 녀석이 더 괘씸해진다. 쉼터에 변상비를 주었지만 외국인 가족들은 분실사고야 일어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오히려 괜찮다고 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버는 돈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를 노려보던 인성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헛 주먹질을 해본다. 친구 수호가 오랜만에 가게를 찾아왔다. 경찰복을 입은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게 창밖으로 인성이의 얼굴이 보인다. 나와 내 친구를 번갈아 보고는 서서히 표정이 굳어진다.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 캔을 땅으로 내던진다. 가게의 통유리가 처참하게 깨져있다. 상가의 경비아저씨가 약 30분 전에 어느 남자가 가게 주위를 어슬렁거렸는데 아마 그가 범인인 것 같다고 귀뜸했다. 분명히 인성이의 짓이다. 친구 수호에게 연락을 취하려다 마음을 돌린다. 낮에 보았던 인성이의 얼굴이 까만 새벽하늘 위로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비탈진 언덕길을 몇 분째 오른다.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에서 불쾌한 냄새가 풍긴다. 인성이의 학교를 찾아갔다. 내 이야기를 듣던 담임선생님은 인성이를 꽤 걱정하는 눈치였다. 제발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아달라며 담임인 자신과 해결하자고 부탁했다. 난 부모를 만나는게 좋겠다며 주소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그럴 아이가 아닐텐데, 계속 이 말을 반복했다. 17-5번지, 인성이의 집 앞에 선다. 녹슨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둑고양이가 옷을 물어 뜯고 있다. 냉랭한 집. 누구 없어요  한 할머니가 입을 오물거리며 문을 연다. 전기가 끊긴지 꽤 되었다며 작은 손전등을 방 가운데 내려 놓으신다. 어느 하나 온전한 세간이 없다. “그나마 인성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고 있었는디 그것도 이제 못하나 보드라고.” 언덕길을 내려오며 할머니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꿈뻑거리는 가로등이 희미하게 길을 밝힌다. 가게문을 잠그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커먼 물체가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내 승준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찬다. 녀석은 맨발이다. 나를 보더니 금새 울먹거린다. “죄송해요. 운동화가 너무 갖고 싶어서 쉼터 분들 운동화를 중고시장에다 팔았어요. 그 돈에다가 제 돈 보태서 메이커 운동화 샀는데 오늘 학교에서 잃어버렸어요.” 난 아무런 말없이 인성이의 손에 들려있는 또 다른 새 운동화를 바라본다. 운동화 위로 인성이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괜히 오기가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맨발로 갔는데 거기 있던 외국인 노동자 한분이 저에게 이 운동화 주셨어요. 비싼 거 아니라며 괜찮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혹시 쉼터 가족일까봐, 그런 거 같아서…….” 난 승준이의 등을 토닥여준다. 시커먼 승준이의 발이 이곳 저곳 까져있다. 가게에서 연고를 꺼내 와서 상처위에 발라준다. 승준이는 이마의 땀을 대충 훔쳐 닦는다. 몇 시간째 운동화를 씻고 있다. 저러다가 몸살이라도 나며 어쩌나,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쉼터 가족들의 운동화를 꼭 제 손으로 씻어드리고 싶다며 나에게 부탁했다. 그러마하고 그 많은 운동화들을 건네주었지만 이렇게 한 켤레도 빠짐없이 씻어낼 줄은 몰랐다. 녀석은 배달도 꼭 제가 하겠다며 약속을 단단히 받아둔다. 승준이에게 줄 새로운 운동화를 준비했다. 이 운동화를 신고 예전보다 조금은 편안한 발걸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어느덧 가을의 신선한 바람이 분다. <수필부 장원> 운동화   공주금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배솔부 “저놈의 기집애는 발바닥에 모터를 달았나!” 허구헌날 갈아치우는 운동화에 날아오는 호통소리다. 어떠한 물건을 사게 될 때에 보통 오래 쓸 수 있고 편안하다는 소위 ‘메이커’를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내게 그 기준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물건이 있다면 바로 운동화이다. 이놈의 신발은 도통 물량을 맞추기가 힘들다. 메이커를 신던, 길표를 신던 두세달이면 금세 다 닳아 떨어지는 운동화에 어머니께선 진저리를 치셨다. 신발사다 허리 휘겠다는 이유로 내 신발은 무조건 길표, 그것도 디자인은 무시하고 무조건 싸고 튼튼해 보이는 놈으로 고른다. 그두는 꿈도 못 꾼다. 급을 가는 것도 한두번이지, 새걸 신고나서 2주만에 밑창을 다 갈아놓은 모양새를 보고 어머니께선 기함을 토하셨던 것이다. “그만 좀 걸어!”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밥 먹는 것보다 밖에 나가 신나게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내 옷과 신발은 항상 흙투성이였다, 뒷산에서 산딸기 찾는다며 덤불을 수시고 뱀을 잡겠다며 굴을 파는 통에 어머니께서 예쁘게 입히신 모든 것들은 상거지 꼴에 거지발싸개 저리가라 할 모양새가 되곤 했다. 귀를 잡혀 끌려와 눈물 쏙 빠지게 손바닥을 맞고 혼이 나도 나는 항상 열심히 돌아다녔다. 내 두 발로 갈 수 있는 모든 곳이 모험투성이이며, 새롭다는 건 어린마음에도 마약과 같은 흥분을 주었던 것이다. 달래고, 어르고. 어머니께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책상 앞에 앉히려고 애쓰셨지만, 어미 표현으로 ‘뿔난 염생이’ 마냥 극성맞은 나를 당해내실 수 없으셨다. 밖에 안 보내주시면 나 굶을래요. 한번 안 먹으면 독하게 굶어싸는 내가 그렇게 어설픈 협박마저 시도하자 어머니는 기가차서 만세를 부르셨다. 쬐그만 계집애가 동네 머스마 저리가라 할 정도로 신나게 들쑤시며 노는 걸 보고 어머닌 어린시절의 당신을 생각하셨더란다. “그래. 한번 징하게 돌아다니고 힘닿는 데까지 걸어 다녀봐라. 엄마도 너 만할 때 골목대장 해 먹었는데 너라고 다르겠냐  아주 대를 물려서 신나게 놀아보자.” 어머니의 공식적인 허락으로 다음부터 내 운동화는 하루가 다르게 닳아가고, 바뀌어졌다. 밥 먹고나서 심심하면 계룡산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논두렁 밭두렁을 누비면서 그렇게 운동하가 바뀌어진 만큼 나는 나이를 먹어갔다. 팔다리가 두꺼워지고 뼈가 자라면서 내가 걸어 다니는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자랐다. 나뭇잎사이로 떨어지는 무지갯빛 햇빛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위에 낀 이끼들이 얼마나 보드라운지. 물 위로 떠가는 적갈빛의 나뭇가지들과 가느다란 실잠자리가 소리없이 자리를 옮기는 걸 숨죽이며 지켜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지를 느끼면서 나는 내 유년시즐을 선명한 수채화로 빼곡이 채워나갔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풍경과 내 의지의 걸음으로써 나타나는 새로운 세상에 나는 진정으로 걷는 기쁨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가슴에 새기고, 품었다. “넌 왜 그렇게 운동화가 허름해 ” “아이고, 얘가 아직 배솔부 걸어 다니는 걸 못 봤구만.” 누가 내 운동화를 보고 물으면 바로 답을 해주는 친구들의 목소리다. 이미 학교에서도 제일 많이 걸어 다니는 괴짜로 소문이 나 버린 나다. 1년은 넘은 것처럼 보이는 내 운동화가 두 달 하고도 일주일 밖에 안 되었노란 소릴 해주면 눈이 동그래지는 아이들의 반응도 이젠 익숙하다.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거리를 일찍 일어나서 찬바람을 맞으며 걷는 기분은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근사하다. 나이를 먹어서 시내로 학교를 나와 주위풍경이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변해버렸지만, 아직 내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한 게 없다. 보드라운 흙바닥 대신 콩크리트나 보도블럭이 깔린 바닥이 나를 기다리지만 그것도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꿈의 길이며 걸음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 좋은 걸 알려주어도 따르질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시간이 있으면 두 다리로 걷고 말지, 차비 아깝게 왜 차를 타고 다니냐는 내 말에 돌아오는 답이라곤 ‘저놈의 노인네’란 소리다. 아니, 젊은 놈이 걸어 다녀야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걸어 다녀서야 쓰겠냐는 불퉁한 내 말에도 친구들은 뭐가 좋은지 자지러지게 웃기만 할 뿐이다. 두 다리가 멀쩡히 있는데도 기계덩어리에 죽은 것 마냥 몸뚱이를 싣고 다닌다는 건 내겐 무섭기 까지 한 일이다. 어린시절의 푸른 충경과 지금의 충경은 전혀 다르지만 내 고집은 변하지 않았다. 그거면 된 것이다. “너를 보면, 걷는다는 당연한 사실이 정말로 큰 축복처럼 느껴진다.” 아버지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말씀 그대로 내겐 정말 걷는다는 게 큰 복이었다.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음에 나는 지금가지 내게 닥쳐온 수많은 크고 작은 시련들을 뛰어넘고 버티며 이길 수 있었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이 있을까. 내 발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길을 보면서 나는 내가 땅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낀다. 나는 운이 좋았다. 걷는 기쁨을 알게 해 준 시골에서 부모님의 은근한 응원과 격려로 발을 디뎠다. 덕택에 나는 이 회색공간에서도 웃을 수 있다. 진정으로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 허름한 운동하ㅗ는 내게 이 기쁨을 알게 해준 유년의 행운의 증표이자, 내 고집의 훈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