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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제49회 전국 고교생 문학콩쿠르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660
<시 장원>   홍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3학년 6반 조주안   저수지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상쾌하군 홍수가 날 모양인가봐 저수지가 제 물꼬를 스르르 열고 있잖아 내 날개도 덩달아 젖어 먼 하늘로 날아갈 수가 없지 내 작은 집은 저수지의 가장자리, 물그림자나 물비늘을 따라 우리들은 헤엄치지 물 위를 달리는 기분은 아찔하다고 해야 할까 잔잔한 물결 위로 그려지는 원들은 모두 나의 영역이야 우리는 물고기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소금쟁이야 우리는 바람보다 물 위를 빠르게 달리지 가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수면 위에 숨구멍을 뚫고 바람의 물길을 터놓기도 하지 오늘 나는 그 물길을 타고 약간의 저공비행을 즐길 생각이야 그러다 수초들이 망울진 꽃봉오리를 피워 올릴 때까지 나는 겨울잠을 잘 예정이야 내가 없어도 내 영역엔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 주겠니? 나는 언제나 홍수처럼 경쾌한 빗소리를 기다리고 있거든   <소설 장원>   홍수   서초 고등학교 3학년 김지현     내가 늘 마주하는 하늘은 곰팡이 핀 누런 벽지였다. 형광등 불빛이 껌벅거리며 비추는 벽지는 오줌지린 이불처럼 축축했다. 벽지에 고인 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나는 손바닥으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았다. 손바닥에 묻은 물은 금세 사라졌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옥탑방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은 장마가 시작된 이후부터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주머니 옥탑방에 물이 고여요.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벌써 네 통 째였다. 선풍기를 켰다. 덥진 않았지만 습해서 불쾌했다. 생리대에 땀이 차는 기분이었다. 나는 발을 꼼지락 거리다 선풍기 앞에 벌러덩 누웠다. 시원한 바람은 내 팔에 붙어있던 진득한 땀을 떼어냈다. 비가 많이 온다는 이유로 정해진 약속은 다 취소되었다. 정해진 약속이라고 해봤자 돈 쓰는 일 뿐이었다. 휴대폰 전화목록을 열었다. 전화목록에 있는 번호는 열 네개 뿐이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진동은 손이 저릴 때처럼 꿈틀거렸다. 여보세요. 엄마였다. 밥 먹었어? 엄마의 목소리는 축 처져 있었다. 아니, 아직. 반찬 보내주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상할까봐 못 보내주겠다. 고속버스 화물칸이 습해서…. 괜찮아. 수화기에서 엄마의 반찬 냄새가 흘러 나오는 것만 같았다. 시큼한 묵은지와 매콤한 매실 장아찌 냄새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병원은 갔어? 엄마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아니. 나는 선풍기 바람세기를 미풍에서 약풍으로 바꾸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오늘은 비도 오고 해서 안 가고 내일 가려고. 엄마의 숨소리가 사포긁는 소리처럼 거칠었다.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호르몬 주사는 정기적으로 맞으래. 오늘 병원 단와. 모터 소리 때문에 엄마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나는 엄마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윙윙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날 뿐 엄마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요즘에도 생리대 매일 차는 거야? 엄마 나 바빠. 나 벽 닦아야 해. 전화를 끊었다. 다리를 베베 꼬았다. 생리대가 답답했다. 2년 전부터 나는 생리를 하지 못했다. 갑상선 염증으로 인한 폐경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생리대를 늘 착용했다. 생리대를 차지 않으면 불안했다. 생리대는 나에게 브래지어처럼 꼭 착용해야 하는 것이었고, 밥을 먹는 것처럼 꼭 해야하는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걸레를 꺼냈다. 걸레를 세면대에서 빨고 물을 짰다. 걸레 빤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았다. 걸레를 반으로 접어 거실 바닥을 닦았다. 걸레에서 나온 물 때문에 무릎이 축축했다. 걸레의 깨끗한 쪽을 펴 벽을 닦았다. 스윽스윽 골판지 긁은 소리가 났다. 집 전화가 울렸다. 나는 멍하니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전화기가 울린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지 집 전화는 잘 쓰지 않았다. 나는 창문 쪽으로 가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진이었다. 상진은 헤어진 남자친구였다. 뭐야. 휴대폰으로 하면 안 받을 것 같아서. 상진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네 집으로 갈게. 가서 이야기 하자. 싫어. 상진은 내 목소리에 대답이 없다. 할 애기가 많아.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선풍기 바람과 다르게 바람이 찼다. 팔에 닭살이 돋았다. 나 생리해. 상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말? 상진이 겨우 말을 꺼냈다. 응. 호르몬 주사 맞으니까 나오더라. 축하해. 상진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이만 끊을게. 나 할 일이 많거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잘못 내려놓았는지 뚜뚜 거리는 소리가 났다. 상진은 내가 생리를 한다는 말에 전화를 끊었다. 상진은 나에게 할 말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대야를 들고 나왔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곳 아래에 대야를 놓았다. 바닥에서 떨어질 때와는 다르게 툭툭 큰 소리가 났다. 집주인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아주머니 제가 고칠 테니까 수리하는 곳 번호라도 알려 주세요. 지잉. 문자가 왔다. 미안해. 상진이었다. 나는 문자를 지웠다. 상진은 미안할 것이 없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 다녀 왔어? 걸레질을 해서 쭈글쭈글해진 손을 매만졌다. 내가 알아서 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빗속길에서 젖어가며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 여전히 물이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시커먼 것이 둥둥 떠다니는 세면대에 손을 집어 넣었다. 물이 내려가는 구멍에 손을 넣었다.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부엌에서 고무장갑을 꺼내 화장실로 갔다. 전에도 수도관이 막힌 적이 있었다. 그 때 아저씨가 하던 것을 보고 있었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나사를 돌렸다. 수도관이 분리되었다. 나는 긴 나무 젓가락으로 수도관을 쑤셨다. 세면대 위로 머리카락 뭉치가 나왔다. 다시 수도관을 잠그고 물을 틀었다. 수도관 사이에 물이 나왔다. 분수대 같이 물이 솟아올라 나에게 튀었다. 수도관을 제대로 잠그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수도꼭지를 내렸다. 옷이 축축하게 젖었다. 겉옷과 속옷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옷을 벗어 빨래통에 넣고 생리대를 뗐다. 생리대가 하얗게 젖어 있었다. 새 생리대의 포장을 뜯었다. 새 포장지에 젖을 생리대를 둘둘 말았다. 생리대가 무거웠다. 쓰레기통에 넣었다. 툭 하고 묵직한 소리를 냈다. 비는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투명한 물방울이 집안으로 튀었다. 바람이 찼다. 나는 창문 밖으로 팔을 뻗었다. 가방과 열쇠를 챙기고 나갈 준비를 했다. 현관 앞에 있는 우산을 들었다. 문을 열자 축축한 빗방울이 튀었다. <수필 장원>   홍수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임채원     우리 집 앞에는 개천이 흐른다. 마포구를 가로지르는 이 개천은 우리 집 앞에서부터 차츰 넓어지다가 이윽고 한강에 합류된다. 엄마는 매일 밤, 운동삼아라며 개천을 따라 한강까지 걸어갔다 돌아온다. 매일 밤 엄마가 집을 비우는 한 시간. 나와 동생들은 그 한 시간 동안 엄마 몰래 텔레비전이나 볼 뿐, 엄마를 따라 운동을 갈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작년 여름의 장마철.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엄마는 매일 달리는 것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 하필 비가 오던 날에, 나는 처음으로 엄마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아마 비가 좋아서, 비를 맞으며 달려보고 싶다는 감상적인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내게 방수점퍼를 입혀주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겨주며 말했다. “도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안 된다?” 운동에는 쥐약이었지만 나는 오기로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개천은 원래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얕은 도랑이었지만, 며칠동안 비가 내려 두 배쯤 불어나있었다. 길이 미끄러웠기 때문에 나와 엄마는 가볍게 산책하듯 인도를 걸었다. 개천은 성산동과 상암동의 경계에 깊숙이 파인 것처럼 쑥 들어가 있는 모양새였다. 집의 창문에서 매일 보는 개천이었지만 직접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수북이 난 풀숲 사이로 들리는 물소리와 빗방울소리, 운동화에 가볍게 고여 찰랑거리는 물 마저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걸어왔던 엄마는 나보다 훨씬 걸음이 빨랐다. 자꾸만 앞서가는 엄마를 뒤쫓아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자 엄마는 잠시 나를 기다려주었다가 입을 열었다. “이 개천이 원래 판자촌이었던 자리인거 알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서 줄곧 살아온 엄마는 마포구의 지리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걸음을 천천히 하며 엄마는 계속 말했다. “저기 성산2동의 언덕 꼭대기에서부터 여기 개천까지, 판자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촌이었어. 저 언덕 사이에 큰댁이 있어서 명절이면 너희 이모랑 한복입고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했지. 지금은 저 언덕을 뚝 잘라서 아파트를 짓고 시멘트를 발랐지만 말이야.”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내가 곧고 있는 길에 판자촌이 가득한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마포구청의 바로 앞에 있는 빈민촌이라니. 엄마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나는 빗소리 사이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초등학생일 때, 엄청 큰 홍수가 난 적이 있었어. 한강이 넘쳐서 망원동이 전부 잠겼지. 그때 여기 개천도 불어나서, 비탈길에 있던 판자촌이 전부 물 속에 잠겨버린거야. 실개천이 강처럼 깊어져서는 황소까지 떠내려갔지. 얼마나 큰 홍수였으면 북한에서 성금을 다 보냈겠니. 해외에서 자원봉사자들도 잔뜩 와서, 이모랑 삼촌들이랑 매일 빵 받으러 가기도 했어.” 정말로 폭우가 쏟아질 때는 이 개천도 무섭게 불어나곤 했다. 거기에 물을 좀 더 보태고 소를 띄운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왔다. 개천이 상암동으로 접어들자 엄마는 월드컵경기장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옛 추억을 말하는 엄마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저기에 공원이 생기기 전까지는. 난지쓰레기매립장은 제일 심한 빈민촌이었어. 졸업앨범 연락망에 집전화번호도 주소도 없는 아이들은 다들 저기 쓰레기매립지에서 살던 아이들이었지. 상암경기장으로 가는 6차선대로도 원래는 판자촌이 잔뜩있는 골목이었어. 그거 싹 밀고 도로 만들었을 때 거기 살던 사람들이 말도 못하게 울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 동네는 정말 빈민촌소굴이었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한 후 줄곧 신림동에서 살다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올 때 외갓집이 있는 이 동네로 돌아왔다. 나도 엄마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서 살아왔기에 쓰레기매립지 대신 월드컵공원과 월드컵경기장이 생긴 것도 보았다. 인도도 없던 이 개천이 정비되는 것을 보았고, 마포구청이 이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11년 동안이나 이 동네가 변하는 것을 보아왔지만 40년 가까이 이 동네를 보아온 엄마의 추억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말을 하느라 조금 걸음을 늦추었던 엄마는 어느새 추억에 빠져 이야기를 풀어내며 조금씩 나를 앞서나가고 있었다. 지금 시장의 주차장이 있는 자리에는 스케이트장이 있었고, 모래내에 가면 또……. 기나긴 추억을 풀어내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시간 속에 푹 젖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말해주는 장소의 옛모습과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맞추어보았다. 어느 곳 하나 같은 모양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엄마가 말해주는 모습들이 어렵잖게 상상되었다. 엄마의 추억 속 동네와 내가 기억하는 동네의 모습이 섞여 모놀로그같은 영상의 마포구가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순간, 안경에 맺힌 빗방울에 시야가 흐릿해지며 앞서걷는 엄마의 모습이 뿌옇게 보였다. 엄마가 이야기해주는, 나에게는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이 마을의 역사가 빗줄기사이를 가르고 내게 들려왔다. 평생 같이 살아온 엄마이지만 어쩐지 시간을 뛰어넘어 낯선 인물과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내가 이 사람의 딸이었구나!’라고 깨닫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40년의 추억에게 11년의 추억이 바통을 넘겨받고 있었다. 나는 안경의 물을 털어내고 엄마의 옆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곁에 나란히 서서, 엄마가 전해주는 세월의 이야기를 들었다. 슬그머니 잡은 엄마의 손은 비에 젖어도 따스했다. 엄마와 나란히 손을 잡고 나는 비가 내리는 이 동네를 걸어갔다. 개천의 끝에 펼쳐진 한강에 이 동네가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