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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전반기의 회고담 / 이상보(54졸)

등록일 2026-10-05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55

1950년대 전반기의 회고담

이상보(54졸, 국민대 명예교수)

 

한 40년이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회고하자니 어리벙벙하다. 그때의 자료가 지금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내 기억력도 별로 신통치 않으니 열에 한 가지를 건져내기도 힘들 것 같다. 그러니 별 수 없이 내 주변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을 수밖에 없으니 너그럽게 보아주기만을 바라며 말머리를 풀어볼까 한다.

내가 1949년 봄에 단국대학 전문부 정치과를 졸업하고, 또 1950년 봄에 세종중등국어교사양성소를 졸업하자 바로 그 해인 1950년 4월에 동국대학 국문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으나, 두어 달쯤 공부하다가 6월 25일에 김일성 난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했다. 나는 광주로 피난가서 수피아여고의 교사로 있으며 결혼까지 하게 되어, 전시연합대학에 등록할 기회도 놓친 채 지냈다.

그러다가 1952년 봄학기부터 부산으로 옮겨 광복동 큰절에 내려와 있던 동대에 3학년으로 복학하게 되었다. 그때 이미 국문학과 3학년에는 이종출님이 있었다. 그는 세종중교를 나보다 1년 늦게 나왔는데, 동국대 국문학과의 중심인물로 활동력이 뛰어났었다. 그런데 나를 보자 국어국문학회를 만들자고 해서, 1953년 봄에 회칙을 마련하여 5월 4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도록 했다.

그래서 회장에 나를 앉히고, 부회장에 이종출, 총무에 황복동(일명 황명), 회원은 장한기를 비롯한 전체 국문과 학생들이었다. 회칙은 모두 21조인데 내가 정신여고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등사판에다 긁어 찍었던 것이 마침 남아있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국어국문학회 회칙(안)

 

제1장 총칙

제1조 본회는 '동대국어문학회'라 칭한다.

제2조 본회는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 내에 설치한다.

제3조 본회는 국어국문학 전반에 걸친 학술을 연구 및 발표함으로써 회원 상호간의 연구를 깊게 하며, 나아가 민족문화 앙양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4조 본회의 회원은 정회원과 준회원 및 특별회원으로 구분하고 정회원은 국문과생, 준회원은 본대학교의 타과생 중 희망자, 특별회원은 본대학 졸업생으로써 구성한다. 단 임원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정회원에 한한다.

 

제2장 임원

제5조 본회에는 다음의 임원을 둔다.

(가) 고문 약간명

(나) 회장 1명

(다) 부회장 1명

(라) 총무부장 1명

(마) 출판부장 1명

(바) 문학부장 1명

(사) 어학부장 1명

(아) 평의원 8명(각 학년에서 2명씩)

제6조 본회 고문은 본대학교 총장 및 교수를 추대한다.

제7조 회장은 본회를 대표하여 회무 전반을 통할 운영한다.

제8조 부회장은 회장을 보좌하며 회장이 유고시에는 이를 대리한다.

제9조 총무부는 각부 활동운영에 대한 기획 및 회무 섭외업무를 담당한다.

제10조 출판부는 본회에서 발표되는 간행물 일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제11조 문학부에는 현대 및 고전문학반을 두고 현대문학반에는 시문학과 산문문학 분야의 연구반을 둔다.

제12조 어학부에는 언어학을 위주로 한 방언, 고어, 외국어, 문법학에 걸친 학술을 연구 발표한다.

제13조 평의원은 본회 운영 전반을 보좌하고 업무기획에 참여한다.

제14조 본회 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한다. 단 결원시에는 수시 총회의 승인을 얻어 보결한다.

 

제3장 회기

제15조 본회의 정기총회는 연 4회(학기초와 학기말) 소집하고 임시총회는 수시로 회장이 소집한다.

제16조 각부 학술발표회는 반드시 월 1회로 한다.

제17조 본회 운영위원회는 매월 제2 토요일에 소집한다.

 

제4장 재정

제18조 본회의 재정은 본대학교 학도호국단 예산에 기반을 두고 회원의 회비로써 이를 충당한다.

제19조 회비는 월 20환으로 정하고, 총무부에서 일괄 관리한다.

 

제5장 부칙

제20조 본회칙은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단 총회의 결의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

제21조 본회칙은 단기 4286년 5월 4일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이렇게 조직을 한 다음에 여러 가지 행사를 벌였다. 우선 당시 부산방송국은 서울에서 피란을 와 있던 서울방송이 라디오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종출 부회장과 황복동 총무와 나는 그곳에 찾아가서 방송국장에게 동대문학의 밤을 가질 수 있도록 저녁시간을 30분만 내어달라고 다짜고짜로 부탁을 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왠 젊은이가 방송국장의 비서라며 나와서 하는 말이 "형님들, 저는 연세대 정외과 2학년에 다니는 임택근입니다. 잠깐만 밖에서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인사를 교환한 뒤에 들어가더니 "다음 월요일 저녁 7시부터 30분간을 써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임택근 씨는 우리나라 방송계의 유명한 큰별로 떠오른 사람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전국의 방송망을 타고 동국문학의 소리를 내보기를 몇 번인가 했다.

또 교내에서는 1953년 6월 29일에 제1회 '시감상 비평회'를 열었다. 내게 있는 《작품집》(프린트 책자)의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춘곤> 이상보 <죄의 환상> 이종출 <오후의 생명> 서강석 <떠나는 길에 구름비 나려> 한이석 <산> 한하균 <무반성> 장한기 <소주> 임성순 <연륜> 강훈구 <산상에서> 최재복 <평화촌에서> 현석종 <빛> 신청허 등 11명의 시작품을 놓고 열기찬 비평회를 가졌다.

제2회는 자료가 없어 다른 학우의 제보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3회 동국대학 시낭독회 작품집》은 프린트본의 간행연대를 알 수 없으나 그 목차는 이렇다.

<동야운> 김여산 <전적> 현석종 <석상> 유승근 <별> <소녀의 부활> 정옥현 <허제31장> 선배 조영암 <바다의 설계> 선배 고원 <낙엽지는 밤> 김정숙 <단풍> 신기선 <창> 불교과 이형기 <가을> 김동일 <폐허에서> 강상민 <가을의 시> 김봉선 <차이> 선배 김구용 <하수도의 생리> 김장호 <가윗날 밤> 영문과 권춘섭 <거리의 장> 이종출 <허무에 부치는 노래> 한하균 등 18명의 시가 낭독되었다.

그리고 두어 번 나오다가 중단된 《동국시집》의 제3호를 부산에서 모교가 서울로 환도할 무렵에 이종출님과 황복동님이 애를 써서 출간했는데 나도 '춘향이 마음' 등 시를 그곳에 발표한 것 같으나 그 자료가 지금 내 손에 없어 내용과 목차를 밝힐 수 없다.

그러구러 나는 1954년 3월에 학부를 졸업하고, 이어 김성배님과 같이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 양주동·이병기·이희승 선생님들에게 배웠다. 1965년 9월에 지도교수를 양주동 교수로 모시고 석사학위논문 <박노계 연구>로 수료와 함께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가니 선신제 박사과정의 제1호로 1960년 9월에 수료했다. 제2호는 김성배님으로 한 학기를 늦게 입학했다.

내가 학부에 다닐 때에 또 기억나는 동문으로는 같은 학년의 안채란님이다. 그는 서울로 와서 복지다방을 경영하고 있어서 많은 동문들이 그곳에 모였었다. 또 동기로 장정석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양의사로 공항동에서 개인병원 '장정석의원'을 개업하고 있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는 동문으로는 황명님(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장한기 박사(모교 명예교수), 최재복님(조선문학 발행인) 등 몇 분이 안 된다. 대학원에서 동고동락하던 김성배 박사도 이제는 저승에 계시니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