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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문학 풍토기 / 오학영(64졸)

등록일 2026-10-05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70

동국문학 풍토기

오학영(64졸, 극작가 작고)

 

문학풍토를 더듬어 보면 커다란 산맥에 부딪치게 된다. 그것은 1906년 명진학교 개설 이후 오늘까지 십육 년, 그 사이 한국근대문학사에 명멸明滅한 문인의 사분의 일을 차지하는 많은 문학가를 배출하는 동국대학교인 것이다.

동국대학교의 전신 중앙학림과 불교강원을 거쳐간 문인을 합친다면 그 수는 120여 명에 이른다. 한 사람의 문인이 현역으로 인정받기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잘 아는 분은 120여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에 놀랄 것이다. 나도 이 글을 쓰기 위해서 근대문학 초창기부터 소급해서 한 사람씩 꼽아보고 120여 명이라는 숫자에 스스로 놀랐던 것이다.

동대를 거쳐나간 문인의 수가 120이던 150이던 간에 숫자 많은 것이 자랑은 아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문학사에 남긴 업적이나 혹은 문학사적 의의는 어쩌면 수량보다 더 큰 비중을 갖고 있다. 특히 근대문학 초창기부터 신문학운동에 참여한 권상로權相老·한용운韓龍雲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권상로는 한시로 문단 측면에서 이 땅 위에 불교문학의 꽃을 피웠으며, 그와 항상 교우하던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해 민족정신과 불교사상을 구현해서 신시사에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용운은 시인이요 승려인 동시에 민족정신이 투철한 33인 중 한 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시작詩作 이외에도 소설을 썼다. 1937년 조선일보에 <흑풍黑風>을 연재해서 산문에도 큰 재능을 과시했다.

권상로·한용운 이외에 불교전문강원佛敎專門講院에서 수양한 문인이 몇분 더 있다. 위의 두 분보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시조와 아름다운 수필로 유명한 노산 이은상李殷相과 조종현趙宗玄이 있다.

여기에서 동국대 문학의 최고봉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그 준엄한 산맥은 연연 흘러 1930년대에 이르러 그 절경을 이룬다. 30년대를 누구보다도 먼저 장식한 분은 시인 신석정辛夕汀. 본명은 석정錫正으로 안암동安岩洞에 있는 개운사開運寺 출신이다. 그는 1930년 해외문학파가 중심이 된 《시문학詩文學》에 <선물>이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의 첫 출발을 장식했다. 《시문학》은 박용철朴龍喆·김영랑金永郞·정지용鄭芝溶 등 주로 한국적 서정파抒情派들이 모인 시 전문지인데, 신석정은 이 클럽에 발을 붙이면서 모던한 언어를 적절하게 살려 목가적牧歌的 서정시를 많이 생산했다. 그의 목가적 서정시를 가리켜 전원시인田園詩人·목가시인牧歌詩人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해방 전 시작을 모아 <슬픈 목가>를 출판한 이 시인은 전주 향리에서 항상 시작과 후배양성에 정념하고 있다.

신석정이 30년대의 동국문단에서 조용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면, 그보다 2, 3년 뒤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을 이끌고 서정주徐廷柱·함형수咸亨洙가 화려한 데뷔를 했다. 서정주는 그 지혜와 깊은 사려가 샘솟는 신라의 정신으로 오늘 한국시를 대표하고 있고, 함형수는 랭보의 날카로운 감성과 언어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시를 몇 편 내놓고 불행히 이북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한국시단과 시를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애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서정주·함형수와 함께 불전에서 시를 발표하던 김달진金達鎭·오화룡吳和龍이 있다. 김달진은 불교전문 재학중에 <時苑>지에 서정시 <목단>을 발표하고, 1949년에 시집인 《청포》를 내어 시단詩壇에 자기 위치를 튼튼히 다져 놓았다. 물론 백운산에 들어가 강원에서 수도한 바 있지만, 그의 시는 관조적이고 동양적 정신을 내포하고 있어서 불교시인으로 대접받는다. 詩作 이외에 《고문진보古文眞寶》, 《법구경法句經》 등 번역이 있다. 김달진이 시작에 정진한 무렵, 시조에 김어수金魚水가 건재하고 조지훈이 <문장>지를 통해 법당의 범향梵香이 풍기는 시편을 발표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조지훈은 박목월·박두진과 더불어 청록파로 불리고 있으나, 최근의 그의 시는 다분히 사회적 관심을 표명하는 쪽으로 변모하는 인상을 준다.

이보다 앞서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崔琴東, 소설가 최인욱崔仁旭 이와 전후해서 시인 최재형崔載亨이 불교강원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이 때까지 중앙학림中央學林·불교강원佛敎講院과 불전佛專 출신을 그 정신적 근원과 작가적 자세를 불교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줄로 안다. 그만큼 동대출신 시인 작가는 다소나마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불교정신이나 혹은 동양적 사상의 반영은 혜전惠專으로 내려와도 마찬가지다. 혜전시절의 평론에 조연현趙演鉉·정태용鄭泰榕, 시에 조영암·이원섭李元燮·이동주李東柱가 있는데, 조영암·이원섭의 시에 나타난 불교정신, 이동주의 주옥 같은 시가 말해주는 동양적 혹은 한국적 시풍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동국문단의 전성기는 혜전 시절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에 서정주徐廷柱·조지훈이 오늘까지 문명을 펼치고 있고, 평론에서 조연현·정태용 두 분이 한국 문학평론에 리더격으로 건재하는가 하면, 소설에 곽하신郭夏信을 빼놓을 수 없다. 18세의 연소한 나이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의젓하게 당선되어 <신작로新作路>와 같은 이색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그 후에 신문연재소설로 창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중략)

 

동국대는 어쩐 일인지 산문작가의 빈곤을 느끼게 하고 시인은 풍요하다. 일찍이 학생시절에 《문예》지에 추천을 받은 이형기李炯基, 가슴을 찌르고 소담한 맛이 있는 서정시에서 지금은 평론으로 방향을 전환, 날카로운 필봉을 들면서 현재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다.

많은 시인의 배출에 비해 평론가가 많지 않은 것 같지만 현역이 8명이면 결코 적은 수는 아니겠다. 평단의 중진 조연현·정태용 외에 한때 젊은 세대를 대변하던 이철범李哲範이 혼자 고독한 분투를 하더니, 최근 장문평張文平·조병무曺秉武 등 젊은 비평가들이 얼굴을 보여주어 반갑다. 이밖에 보다 상세하게 소개하고 싶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소략하고 신인 몇 사람만 소개한다.

1965년과 1966년 사이에 신인이 몇 사람 등장했는데, 소설에 유우희柳祐熙는 6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그 후 《현대문학》에 차분한 작품을 보여 주고 있다. 홍기삼洪起三은 평론으로 스타트했고, 많은 시인 틈에 끼어 한 사람 평론가가 나왔다. 반가운 일이다. 문단 안에서 찾아보아도 극작가는 별로 띄이지 않는다. 그런데 금년 동아일보사에서 공모한 장막 희곡에 김승규는 가작 입선했다. 대상을 끊고 당당 일등 당선되지 않은 것은 섭섭하나, 극작계에 새 인물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 부분은 항상 풍성하다. 1966년 각 신문사에서 공모하는 신춘문예에 문효치는 서울신문과 한국일보에서, 조상기趙商箕는 중앙일보에서 당선의 개가를 올렸다. 이에 앞서 강희근은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김초혜金初惠·박제천朴堤千은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첫걸음을 내놓은 셈이다. 그런데 김초혜는 김은수·박정희에 이어서 동국대가 배출한 세 번째 여류문인인 것이다. 이 신인들의 내일에 빛나는 영광 있길 기대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예술원회원이 가장 많은 대학이 동국대다. 유치진·서정주·조연현·김정환·이광래·배길기 교수가 그렇다. 이분들은 양주동 박사와 함께 동국대의 국문학과와 연극학과에서 오늘의 동국대 문학을 있게 한 교수님들이다. 엄청난 산맥에 수없는 준봉처럼 거창하게 서있는 그 많은 문인을 한 분씩 찾아뵐 수 없어 한갓 주마간산격으로 훑어보았다.

(《동국문학》 제2호,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