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60년대 전기의 교육과정 / 손팔주(64졸)

등록일 2026-10-05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59

60년대 전기의 교육과정

손팔주(64졸, 부산여대 교수)

 

나는 1959년도 마산 고등학교의 이과반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선친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려고 이과에 배정되었으나, 좁은 공간에 갇혀 하루종일 아픈 사람과 상대해야 하는 의사보다도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문학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입학시험을 눈앞에 두고 여러 대학의 입시 요강을 찾아보니 대학 문과에 응시하기에는 문과계 과목(세계사·일반사회·지리 등)이 준비되지 않았다. 이과에서는 국어·영어·국사 이외에 해석기하·물리·화학·생물 등의 시간이 많이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수할까 응시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동국대 경제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형님이 보내준 <요람>을 받아보고 국어·영어·수학·국사 과목을 치르는 동국대학 국문학과에 응시하기로 결정하고 원서를 제출하였다. 당시 특차여서 내신 성적으로 서류전형을 하고 1차 전형에 합격한 수험생들에게 필답시험을 부과하였다.

나는 2월 18일 졸업식을 하고 그 다음날 실시될 입시에 응시하고자 밤차로 상경하였다. 7시 40분에 서울역에 도착하자 곧장 필동의 학교로 가서 명진관에서 입시를 치렀다. 지금 기억으로 시험시간은 100분이었고 네 과목을 한꺼번에 치렀으며, 내가 응시한 강의실에는 양염규 교수께서 감독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3월 30일에 중강당에서 백성욱 총장 주재 하에 입학식이 거행되었고, 지정 강의실에 모여보니 국문학과 60학번은 33명뿐이었다. 특차에 합격하고도 3월 초에 타 대학 입시에 응시하여 합격한 탓에 미등록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1학년 1학기에는 교양필수였던 일반국어(2)·자연과학개론(2)·체육(2)·일반영어(2)·철학개론(2)·문화사(2)·불교문화사(2)·불교학개론(2) 등 16학점과 전공과목으로는 문장론(4), 국문학개설(4) 두 과목과 교육원리(2) 등 모두 26학점을 신청하여 이수하였다. 당시 사용하였던 학수부가 없어 담당 교수님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으나, 일반국어는 김근수 교수님, 국문학개설은 양염규 교수님, 문장론은 서정주 교수님이 담당하셨고 교양과목의 철학은 정종, 불교문화사는 우정상, 불교학개론은 박춘해, 문화사는 배길기, 교육원리는 이희균 교수님이 각각 담당하셨다.

1학년 때는 4·19혁명으로 대학뿐 아니라 나라 안이 혼란하였다. 연대로 가 계시는 무애 양주동 선생님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고 총장실 앞에서 여러 차례 농성한 적이 있었고, 4·19 부상 동지회에 가입하라는 친구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당시 나는 동대문시장 대한직물에서 친척의 일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 이외 다른 일에 참여할 겨를이 없었다. 7·29 선거가 끝나고 평온을 되찾게 되어 2학기는 제때 개강되었다.

교양과목은 1학기와 같았고, 전공과목은 문예사조사(서정주)와 한문학이 설강되었다. 미당 선생의 문예사조사 강의 내용은 서양 문예사조사였고 한문학은 불교대학교수님으로 생각되는 김 교수님께서 《대학》을 교재로 강의하셨다. 1학년 때 52학점을 취득하고 2학년에 진급하였다.

61년 5월 초에 동대문시장 일을 정리하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작정하고 교문(현 후문) 앞 묵정동(김백봉 무용 연구소 옆)으로 하숙을 옮겼다. 당시 2학년 1학기에는 일반영어(이창배), 교육사(이희균) 두 과목 이외에는 모두 전공과목이었는데, 고려가요(4, 최학선)·국문학사(4, 양염규)·국어문법론(4, 김근수)·문학개론(4, 조연현)·국어학개설(4, 이동림)·이조문학(4, 이상보 명지대 교수) 등 28학점을 취득하였다.

2학기에는 5·16 이후 체육이 4학년까지 필수과목으로 변경되어 교양과목에는 체육(1) 한 과목과 교직과정으로 교육심리(2)가 개설되었다. 전공으로 시조연구(4, 김근수)·국문학강독(4, 이병주)·민요론(4, 양염규)·중세가요(4, 김기동)·현대시문학(4, 서정주)·가사문학(4, 이병주)·고대시론(4, 미상) 등 31학점 중 29학점을 취득하였다.

3학년 3월에 무애 선생께서 동국대로 오셔서 대학원장에 보임되셔, 국문학과는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김근수 교수께서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셨다. 3학년 1학기에 무애 선생께서 《여요전주麗謠箋注》을 교재로 고려가요(2)를 다시 강의하셨으니, 60학번은 고려가요 2번, 중세가요 1번 등 12학점을 이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공과목으로 현대문학사(2, 조연현)·현대문법론(4, 손낙범 이대 교수)·두시언해강독(4, 이병주)·고대시론(4, 무애 선생)·훈민정음(4, 이동림) 등과 교육과정(2, 이희균)·체육(1, 한응국)·초급독어(2) 등 25학점을 취득하였고, 2학기에 고려가요(2, 무애 선생)·현대문학사(2, 조연현)·시론(4, 서정주)·문학평론(4, 조연현)·국어학강독(4, 이동림)·국어음운론(2, 이동림)과 체육·교육평가(2, 김병규) 등을 취득하였다. 당시 전공선택으로 연극론, 신문론 등이 개설되었는데 수강자가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동기들은 입대하는 수가 늘어나고 제대하고 복학하는 선배와 당시 2년제였던 문리사대(현 명지대)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 졸업생들이(사범학교가 폐지되고 교육대학이 설치되므로 중·고의 교사자격이 중등교사자격으로 변경된) 대거 편입하여 수강인원이 100명을 초과하게 됐다.

게다가 특히 무애 선생의 명강의를 듣고자 서울대, 연고대 등 타 대학생들이 청강하였으므로 일찍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의자가 모자라 90분 동안 서서 들어야만 하였다.

62년 이병주 교수께서 학과장을 맡아 우리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킬 계획으로 1학기당 영문과 전공과목 1과목씩을 이수하게 하여, 3학년 1학기에는 영미수필론(2, 오석규), 2학기에는 영미소설론(2, 오석규)을 이수하였는데, 교재는 P.B. 셸리의 사랑론, 인생론과 헤밍웨이 소설을 배웠다. 나는 군입대를 연기하고 4학년에 등록하여 1학기에 신라가요(2, 무애 선생)·작가론(2, 조연현)·한문소설강독(4, 김기동)·도서해제(4, 이병주)·중국문학사(2, 무애 선생)·창작론(2, 서정주)·국어사(4, 이동림)와 체육(1, 민완식)·교사론 등 25학점을 취득하였고 4학년 2학기가 되어서는 1학기에서 계속되는 신라가요·작가론·중국문학사와 한문학사(4, 이병주)와 보건학(1)·교육방법론 등 13학점 이외 더 신청할 과목이 없었다. 나는 4년 동안 교양·교직·전공 197학점과 영문과에서 취득한 3과목 6학점을 합하면 모두 203학점을 취득하였으나, 졸업 후에 성적표를 보니 영문과 6학점은 타학과의 전공이므로 학적부에는 없었다.

당시 국문학과에는 일곱 분의 전임교수가 전공을 담당하셨는데 현대소설과 현대국어학 분야의 교수가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 불만이었으나 전공분야의 가장 훌륭한 교수님들께서 자신의 저서로 직접 그리고 열성을 다하여 강의하셨다는데 수강자들은 모두 가슴 뿌듯해 하였고, 특히 요즘처럼 학기 말에 "교수님! 종강합시다"와 같은 말을 했다간 남산에 끌고 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고려가요와 추흥 8수를 암송해야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던 교수님의 숙제와 호운익胡雲翼의 《중국문학사》을 백화白話로 배우던 일도 기억이 새롭다.

최근에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이 140학점으로 인하되었는데, 당시 개설되었던 국어학사(4)·연극론(4), 신문론(4) 등 선택과목까지 모두 취득한다면 전공과목만 계산하더라도 160학점 이상 수강할 수 있었으니 대학당국에서 국문학과에 대한 배려가 타 학과와는 달랐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