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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국문학과 / 정채봉(75졸)

등록일 2026-10-05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56

내가 다닌 국문학과

정채봉(75졸, 아동문학가·《샘터》 기획·편집이사)

 

며칠 전 비디오를 보다가 되감을 일이 생겼다. 기계작동이란 간단하다. 되감기 버튼을 누르자 이미 지나온 앞 시간으로 뒷걸음질을 했다.

나는 문득 인생도 저렇게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부는 물릴 수 없더라도 대학시절만이라도 되돌아갈 수 있다면! 여름날 시골 대청 같은 기분이 드는 강의실이다. 서리가 오던 날, 서정주 시인의 시강독 시간에 낮술을 마시고 들어온 학생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빙그레 미소를 짓던 노시인, 나는 그 미소를 보고 반가사유상 미소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참 양주동 박사님의 그야말로 무애로운 강의는 또 어떠했는가. 향가를 부르시고, 춤을 추시고…… 우리들은 웃다가, 긴장하다가, 얼굴을 붉히다가, 그러다가 문득 창 저편의 남산자락에서 소리치며 나는 꿩소리가 들려오기라도 할라치면 전생의 화랑으로 앉아 있는 것 같던 우리들아, 지금도 간혹 꿩이 날아오르고 있는지 모르겠네.

어쩌다 화장실에 얼굴이 보송송한 스님이 들를라치면 “스님, 여기는 남자 용변보는 뎁니다요” 하면 “저는 비구니가 아니라 비굽니다” 하고서 들어오던 스님들. 그분들이 과대항 축구시합을 할 때 차올린 공보다도 공중에 더 높이 떠오르던 고무신 맨머리로 헤딩패스하던 것 하며…… 이런 것은 우리 동국대학교가 아니고선 좀체로 보기 어려운 진풍경이리라.

할아버지의 누렇게 퇴색한 가방을 줄기차게 들고 다닌다고 해서 ‘채권장수’라는 말을 들었는가 하면, 여름 한철만 빼고 바바리코트를 내내 입고 다닌다고 해서 ‘콜롬보 형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나의 대학시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날이나, 또 다른 ‘내’가 오늘도 전생의 낭도처럼 남산자락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나’에게 주문하고자 한다. 돈키호테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좋아하는 여인이 보이거든 무한히 따라다닐 일이다. 또한 책벌레가 되어 원없이 책 속에 묻힐 일이다. 방학이면 배낭을 메고 떠나서 부여에서나 경주에서 초승달이 뜰 때부터 그믐달이 질 때까지 있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