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나의 프롤로그 / 박대성(98학번, 06졸)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64

나의 프롤로그

박대성(98학번. 2006 졸업)

 

기억 속에 살아가는 나를 본다. 언제나 난 과거라는 케케묵은 이름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무수한 시간이 흘러도 한 치의 키도 자라지 않는 건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오줌이 마려워도 엄마가 바지를 내려주지 않으면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며 오줌을 지리고 마는, 나는 어린 아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심스레 바래본다. 시간이란 이름이 내게 망각이란 폭력을 휘두르지 않기를……. 열 날을 웃었건, 백날을 울었건 부디 가슴 한 켠에 조용히 머물 공간을 허락하기를……. 아름다웠던 일도, 아파했던 나날도, 추했던 기억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본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과거에 눈 돌리지 않고, 과거를 망각하지 않고,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과거를 왜곡하지 않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그저 지난 나날을 기억하고 돌아보며,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마의 정장

내 학창시절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내 삶은 그렇게 술로 얼룩져 있었다. 이제와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얼굴이 홧홧 하기 그지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추억을 만들어 내는 것도 못할 짓인지라 애써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며 하나 둘, 민망함의 기록들을 끄집어 내본다.

1학년 신입생 시절은 뭘 몰랐다고 치고 귀엽게나 들어줄 수 있다. (나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좀 미안하다.) 당시 난 회색 세미 정장을 즐겨 입었는데 이 옷에는 동기들이 친히 붙여준 이름까지 있었드랬다. 이름하야 ‘魔의 정장’…. 한 번 입고 나오면 3일을 밖에서 자게 된다하여 동기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옷인지라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줄 생각이다. 한 주 중 3, 4일을 밖에서 자는 나를 이모는 더 이상 감당해내기 버거우셨던 모양이다.

 

“대성아, 제발 나가라.”

 

눈보라가 매섭게 흩날리던 겨울의 어느 날 이모는 이렇게나 다정스럽게 조곤한 말을 건네셨다. 이모의 집에서 쫓겨난 난 사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젠 집에 가건 말건 내 맘 대로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 모든 감각기관을 짜릿하게 전율시켰다.

그나마 순수하고 귀여웠던(좀 그랬다고 믿어주자.) 내 술주정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정도를 이탈하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00년 2학기의 일이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휴학을 한 상태였던 터라 시골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군대에 가기 전 친구들, 후배들과 술이나 한 잔 할 요량으로 서울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드랬다. 흥겨운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간만에 보는 친구들의 못난 얼굴 덕에 술은 잘도 넘어갔다. 그리고 기억이, 끊어졌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잠결에 한기를 느껴서였다. ‘뭐가 이렇게 추워?’ 생각하며 나는 감긴 눈을 떴다. 그때 나를 둘러쌌던 순백의 우유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곁에는 여자 동기 하나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나도 따라 웃어 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여기, 병원이야.”

 

“내가 왜 병원에 있어?”

 

“너, 차에 깔렸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야, 근데 뭐가 이렇게 멀쩡해?”

 

“너, 팔뚝 봐봐.”

 

황급히 팔을 들어 올렸다. 얼굴보다 두꺼운 내 우람한 팔뚝은 차 바퀴자국으로 흉물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사실, 차 바퀴자국이 조금 나 있던 것뿐이었다.) 그때 나를 깔아뭉갰던 비운의 운전사는 전과 11범의 조폭이었다. 그 남자는 매일 포도당과 항생제(마이신) 외에는 달리 치료를 받지 않던 나를 하루라도 빨리 퇴원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뻑뻑 피우던 담배를 엄마와 이모 앞에서 자근자근 씹어 먹는 건 예사였고 깍두기 동생을 데리고 원무과를 찾아가더니 웃통을 벗고 책상을 뒤엎는 등 액션활극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병원비 20만원을 깎아내는 공적을 거두며 나를 무사히 퇴원시켰다.

 

“다음에 눈에 띄지 마라.”

 

퇴원하던 날 아저씨가 내게 조용히 건넨 작별 인사는 아직도 내 가슴 한 켠에 살벌하게 자리하고 있다.

 

회귀본능

솔직히 군대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됐을까 싶다.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고 술로의 도피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건 구실이 되어주질 못했으니까. 좀 더 그럴싸한 대의명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영장이 나왔다. 나와 동기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갔고 비슷한 시기에 전역을 했다. 전역을 하고 나니 학교도 많이 변해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부처님 뒤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코끼리 세 마리였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더러운 똥물이나마 ‘그래도 있었기에 생일이면 온 동기 녀석들을 하나하나 빠뜨리는 추억거리라도 만들 수 있었는데, 이제 생일이 되면 코끼리 상아로 녀석들의 똥꾸멍이라도 찔러야 하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복학을 하고 나서의 술버릇은 더 가관이었다. 그때 내겐 회귀본능 이란 게 생겼는데 이게 되려 내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술을 먹더라도 이젠 반드시 집에 들어가리라 마음을 다잡았던 난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는 버릇을 들였다. 처음엔 항상 집에서 잠을 자는 내가 마냥 뿌듯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 회귀본능이 또 다시 사고를 쳤다. 어느 날부터인가 난 수중에 한 푼의 돈이 없음에도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기 시작한 것이다. 내 초자아는 지극히 단순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두 가지를 생각지 못하는 또라이!! 결국 난 무임승차로 파출소에까지 끌려갔다. 그때 난 정말이지 개처럼 끌려갔다. 아홉시 뉴스에나 나올법한 그림이었다. 언제나 든든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어주는 친절한 경찰 아저씨들은 고맙게도 동대 국문 학과장 사무실에까지 이 일을 친히 보고해 주셨다. 그 전화를 한만수 선생님께서 직접 받으셨다는데 당신의 그 당혹감이란 미루어 짐작할 수 없을 듯하다.

한 번은 사당의 낯선 세탁소 옆에서 아침을 맞았던 적이 있다. 그때 난 핸드폰도 가방도 심지어 신발까지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맨발로 세탁소 앞을 어슬렁대는 어린 아해를 불쌍히 여기신 세탁소 주인아저씨가 한참을 안타까이 바라보시더니 운동화 한 켤레를 내 주셨다. 상표명은 PILA, 감청색의 예쁜 단화였다. 돈 한 푼 없이 택시를 탄 것을 알게 된 택시기사가 신발마저 빼앗고는 매정히 날 버려두고 간 것은 아닐까 지금도 추측만을 해 볼 따름이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 내 몸이 어딘가 기울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쯤이면 그만 쿵! 해야 는데 그 시간이 턱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꽝! 숨도 내 쉴 수 없을 만큼의 강한 충격이 온 몸을 휘감았다. 차에 깔리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하며 간신히 눈을 떠보니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내가 보였다. 역무원들이 달려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죽으려면 다른 데 가서 곱게 죽으라고 어찌나 성들을 내시던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나는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지하철역에서 쫓겨났다. 새벽 3시, 오이도였다. 참고로 우리 집은 신림. 택시를 타고 내 사랑하는 동거인 호승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당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에필로그

이렇듯 항상 좋았던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니 되려 내 학창시절은 결핍과 도피로 얼룩진 듯도 하다. 하지만 그 도피에의 행적마저 이젠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돌아갈 곳이 있고 돌아가 만나야 할 누군가가 있을 때 사람은 누구나 강해지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말이 있다. 강하다는 건 약함을 아는 것. 약함을 아는 건 두려워 할 줄 안다는 것. 두려워 한다는 건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강해지는 법이다. 내게 있어 동대 국문은 그런 곳이다. 언제나 돌아가고 싶고 만나야 할 누군가를 만들어 주는, 그래서 언제고 지켜나가고 싶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낙원이다. 낙이 따로 있나 싶다. 어슴푸레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 삼겹살을 구울 수 있고 거기에 소주 한 잔 곁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내 빈잔 채워줄 친구 녀석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사는 낙이 아닌가 싶다. 내게 그런 친구를 선사해준 동대 국문에 나는 오늘도 정중히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좀 더 많은 술을 마실 테다. 좀 더 많이 토악질을 해대고, 좀 더 많이 방황을 할 게다. 좀 더 많이 싸우고 좀 더 많이 사람들을 대할 테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테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럴 테다. 결코 즐거웠던 내 지난날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유쾌한 선택임에 틀림이 없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