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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앞 보리수① / 허혜정(90졸)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57

성문 앞 보리수

허혜정(90졸, 시인·문학평론가)

 

나는 지금 문리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도서관 뒤 소로를 빠져나온다. 보랏빛 황혼이 빛의 부스러기들을 쓸어가면서 저녁의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문리대 건물은 너무도 조용해서 하나의 쓸쓸한 성채 같은 느낌을 준다. 오직 몽상을 위해서만 열려 있는 흐릿한 거울처럼, 모든 것을 희미한 윤곽으로 밀어내 보여주는 문리대 건물 앞에 나는 서 있다. 나는 느낀다. 침울한 유리창을 가진 그 강의실 뒤에 무언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흐릿해지는 것을. 어쩌면 나는 어느 벤치쯤에 걸터앉아 조용히 어스름하게 비벼뚫고 들어가는 저 의혹의 성채를 바라보게 되리라. 늘 이 저녁의 어두움은 어떤 황혼에 대한 낯익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렇다. 아마도 이 어두움은 기억의 어느 지점에서 퍼져나온 것이리라. 단지 고개를 쳐들거나 숙이기만 해도 기억은 그 자리에 모습을 나타낸다. 내가 벤치의 손가락으로 한끝을 긁어대고 있는 동안에도 기억의 장면은 서서히 모서리가 부스러진 채 아득한 공간에서 표류해온다.

그러나 어떻게 그 장면이 굴 속에 끌려올 수 있을까. 늘 떠오르는 장면들은 언어보다 민감하여, 언어의 배열을 뒤헝클어 놓곤 한다. 불확실함을 느끼면서 지속해가는 문장, 내가 다듬고 써내려가는 것은 결국 포착할 수 없는 기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에 있어서 언어는 기억의 실체를 단념해야 하리라. 다만 보이는 장면과의 평행한 속도를 가지기 위해, 글은 스스로의 환멸과 저항을 뚫고 달려가야 할 뿐이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언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자 할 때 장면은 이미 흘러가 버린다. 글은 항상 느린 것이다. 때로 나는 언어를 모두 제거해버린 상태로만 기억을 보고 싶어했다. 무엇이 보인다고 쓰여져야 할까. 나는 그 지점을 표시하고 싶어진다. 내 기억 속의 장면에는 홍기삼 교수님께서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85년 3월, 처음으로 동국대학교 국문과 신입생이 되었을 때, 지도교수님이시던 홍기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우리는 나즈막하게 '아' 하는 탄성을 죽여야 했다. 그 준엄하고 존경스런 두루마기, 그 쌀쌀하던 초봄의 강의실엔 알 수 없는 숙연함이 감돌고 있다. 나의 초점이 교수님의 얼굴에 맞춰져 있다. 왜 국문과에 들어왔냐고 모든 신입생들에게 그 동기와 목적을 물으시던 선생님의 표정은 근엄하고 세련되어 보이셨다. 지나치게 날카로워 보이시던 입술. 한 오라기 흐트러짐 없는 그분의 헤어스타일은 강의실 전면에 못박혀 있다. 늘 떠오르는 것은 반복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내 삶의 시간 속에 떠올라 순간순간 알 수 없는 환희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본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교수님 옆으로 학우들이 한 명씩 걸어나가 국문과를 선택한 동기와 포부를 피력하고 있다. 나는 막연한 떨림을 느낀다. 나의 성격은 얼마나 소심했던 것일까. 언제나 난 나를 눈에 띄지 않는 소심한 아이로 규정해 왔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갸날픈 계집아이. 내 신경은 날카로워 사람들 사이에서 도무지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왠지 선생님 앞에서는 늘 목소리가 떨리고 내용이 흐트러진다. 나는 교수님 앞에서 시와 우주와 나에 대한 애처로우리만치 순박한 신념을 피력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랬다. 나는 순수했고, 소심하긴 했지만 두려운 정열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서툴고 작은 음성의 한 조각이 내 안에서 무수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나는 듣는다. 그 아찔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라고 나는 주어 발음해 본다. 나는 시인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옳지 않다. 나는 이미 그 문리대 건물을 들어서는 순간에도 시인이었다. 그분 앞에서, 나는 시인이 아니었지만 시인이었다. 나는 동국대 국문과를 그 두려운 정열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고 그 첫수업의 기억을 검은 두루마기와 분리시킬 수 없으리라. 기억은 지금의 시간과 나란히 손잡고 뻗어나간다. 무한한 현재성을 가지면서, 나는 그 첫수업의 떨림을 현재와 미래와 뒤섞어서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럽다. 바로 그곳에 내가 보이고 문리대 건물이 보인다. 한 장면에 뭉개져서 흐리게 보인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그래야 할 것처럼 그 첫수업의 긴장과 초조를 써보고 싶었다. 수업을 마쳤다. 내 앞에 돌연히 나타나는 한 무리의 집단들. 그 속에 나는 섞여야 했다. 그들이 나를 무리 속에 섞어버린다. 우리가 학교 매점 백상으로 몰려간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대하고 있다. 온갖 생각이 흐려져서 라면그릇 위에 떠도는 엷은 아지랑이들로 변해버린다.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봄의 시작이었던가? 우리들 몇몇이 짝을 지어 이병주 교수님의 연구실로 찾아가 '숙명여고 졸업생'의 신고식을 한다. 조그만 계집아이 하나가 날마다 문리대 건물로 들어선다. 끊임없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그러한 환영들, 그 환영은 서서히 자신을 감광시키면서, 내 삶의 시간을 완전히 메워버리기도 한다. 기억은 나의 삶 속에 넓게넓게 퍼져 있다.

그 문리대 건물. 100미터도 되지 않는 그곳에 정각원이 있고 아침 여덟시면 은은하게 교정을 채우던 범종소리. 나는 일곱시 즈음에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가림판을 세우고, 홍신선 선생님의 <문학개론>과 김영배 선생님의 <언어학개론> 레포트를 준비하고 있었던가? 조금 후면 마악 결성된 '태 동인' 합평회에 참석해야 한다. 여섯 명의 동인들로 발기된 '태 동인'들은 야심만만한 시인 지망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가 지금 학교 근처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 스카라 쪽으로 접어드는 바늘 없는 시계바늘은 우리 '태' 문학 동인의 회합 장소이기도 했다. 캠퍼스를 가득 채운 데모대의 함성을 벗어나 최루탄 냄새가 비교적 덜한 이곳을 찾아와 우리는 합평회를 한다. 동인들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다리를 쭉 뻗는다. 나 역시 그렇게 편안한 자세를 취해보려 하지만, 나의 눈언저리에 긴장이 뭉쳐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서히 그 긴장이 퍼져나가 나의 얼굴을 딱딱하게 하고, 나의 팔다리를 구부러지게 할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생소한 만남에 약간 긴장하면서, 내가 비로소 그들을 자세히 바라본다. 승렬, 명수, 선남, 춘식. 나의 시를 부스럭부스럭 책가방에서 꺼내놓는다. 우리는 그곳에서 머리가 띵하도록 시를 읽고 몇 잔씩의 커피를 미치도록 마셔댄다. 우리는 가끔씩 학교 후문 '쟝주네'에 가서 콜라를 마시곤 한다. 우리는 그 이름과 실내의 회색적인 분위기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 미끈미끈한 어둠은 스무 살의 우울과 몽상 속에 침입하여 아무런 저항없이 섞여 버린다. 낮은 촉광의 백열등이 검은 갓에 씌워져 흐릿한 주홍빛을 던지고 있던 그곳. 그러나 이제 그곳은 밝은 갈색의 소파들과 깨끗하게 접혀져 한 쪽으로 말려 있는 커튼들 때문에 경쾌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공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87년 휴학을 하고 복학을 하는 사이 그 마네킨같이 마르고 초췌해 보이던 여주인은 떠나갔고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했음직한 수다장이 남자가 이곳을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휴학하기 전에 오래도록 이곳을 드나들었고 여기서 후배들과 사회과학 스터디를 하거나, 치기 어리게 읽어댔던 철학서나 소설 등에 대하여 지껄여댔다. 그 대화의 장중함에 알맞게 조명은 어둠에 가까운 촉광으로 흐려져 있었고, 햇빛은 사방에서 차단되어, 낡아빠진 좌석들을 더욱 침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어둠은 나의 대학시절을 관통하던 일몰의 흐릿함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 흐릿한 배경과 결부시켜 나의 학부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렇다. 나의 기억은 늘 우울하게 가라앉은 장면들로 바뀌어진다.

그 파릇한 신입 시절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죽음이 서 있다. 무언가 시작되고 있었던 그 3월의 쌀쌀한 장례는 알 수 없는 비통함을 가지고 왔다. 입학한 얼마 후에 원래 <문학개론> 강의를 하시기로 되었던 송혁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결핍된 만남과 그대로의 잃어버림. 나는 송혁 교수님의 시집, 단 한 권의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녹는 땅[解土]' 모든 것이 녹아가고 움터오는 첫봄의 빗물로 나는 그를 만났다. 나의 시야 속으로 천천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한 번도 뵙지 못한 그 교수님의 발인날, 음울한 비가 내리던 것을 기억한다. 정각원 주위에 모여있던 유족들, 장지로 떠나던 버스의 시동음은 언제나 내 대학 시절의 첫머리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교수님의 검은 두루마기와 유족들의 검은 상복. 그것은 이후 몇 년의 봄을 검게 칠해놓던 기억의 잔상과도 같은 것이다. 시작과 죽음은 동시에 왔다. 끝없는 소멸의 흔적. 늘 스쳐가고 늘 없어지는, 그러면서 기꺼이 현실이 되고 마는 흔적. 죽음은 이 글이 쓰는 현실만큼이나 실재하는 것이다. 나의 대학시절은 하나의 기호를 가지고 있다. 죽음, 언제나 죽음이 찾아왔다. 86년 늦가을 김기동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88년 봄에는 <국어학사> 강의를 하시던 최범훈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 그 비통한 죽음이 기억 속에 돌출해 오는 것은 그 죽음의 고전적인 의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바라보는 건물이 어두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리대 강의실은 너무 어둡고, 언제나 푸른 필터 뒤의 광경처럼 희뿌연한 황혼으로 가득 차 있다. 교정의 스피커 방송이 흘러드는 정오에도 우리가 드나들던 108호 강의실은 그토록 침침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의실을 나서면 캠퍼스의 봄은 경이로웠다. 최루탄가스에 젖어버린 벚나무 가지들이 솜사탕 같은 벚꽃잎을 피워놓는다. 봄은 모든 것을 거칠게 다루었고 잔인하게 터뜨린다. 현기증 나는 어떤 것이 다가오듯이 황사바람이 교정을 휩쓸고 있다. 스프레이 글자로 더럽혀진 회색의 문리대 건물 뒤로 황사바람이 휘잉잉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다. 모든 것은 봄이란 가면을 쓰고 황막한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공권력 서슬이 시퍼렇던 5공 말기의 학교는 그야말로 황량하다. 미문화원 점거농성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여져 있고 을지로 미문화원 근처에 얼씬하는 것만으로도 의심받기 일쑤였다. 학교에는 스프레이 글씨로 '광주사태 책임져라'라는 구호가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더욱 훌륭히 호흡할 것이다. 우리는 더욱 소리높여 노래할 것이다'라고 우리는 엘리아르의 시를 되씹으며 다녔다. 국문과 계집애들은 미팅에서 번번히 퇴짜맞았다. 너무 심각하고 어려운 얘기를 지껄여댔기 때문이다. 곧 미팅이라는 말이 시들해지고 우리는 운동권으로, 학회 스터디로, 문학동인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학회실에는 '우리는 왜 미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나'라는 전단이 복사되어 쌓여있었다. 학회실은 양산박 같은 시커먼 사내들로 우글거린다. 감각과 지성이 혼돈되어 있던 시절. 우리의 지성은 위험하고 반란적이었다. 우리는 아직 감각과 욕망의 아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맹목적이었고 죽음을 불사했고 자유로웠다. 비판하고 반항했고 타협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전쟁이었다. 젊은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모두 파시스트다. 우리의 삶을 독재하는 신념의 방위각은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