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성문 앞 보리수② / 허혜정(90졸)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57

데모가 끝난 뒤의 어수선한 교정에서 매운 눈을 부비며, 내가 과우들과 부처님 동상 앞에 앉아 있다. 나는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우리가 불상 앞 잔디밭에 소주를 풀어놓고 마시고 있다. 파릇한 잔디잎이 발밑에 파릇파룻 삐져나와 있다. 나는 6월 말에 있을 총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국문과 선배를 지원하기 위해 지지내용의 시낭송을 연습하고 있다. '삼민투'나 '전학년' 같은 표면적인 써클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나는 글로 진행되는 사회과학 스터디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그무렵 우리 국문과 생도에게 카리스마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황종연 선배의 문학이론 스터디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마른 입술을 다물고 학회실로, 동국문학회 써클실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도서관 앞에선 연일 한·미관계와 광주사건에 대한 공개 강좌가 열리고 있다. 학교는 번잡했고 몇몇의 학우가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신입생 환영회 시절부터 담배를 꼬나물어 선배에게 ‘찍혀있던’ 진숙이가 보이지 않는다. 몇몇은 성급하게 영장을 받았고 우리는 교련 훈련차(?) 전방으로 떠나는 동기들에게 환송의 손수건을 흔들기도 했다. 나의 단짝이던 상란이는 도스토옙스키에 빠져 그의 습기찬 지하실 방에서 칩거하고 있다. 그녀는 야망적인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국문과 남학생들은 그녀의 술취한 몸을 받아주기에도 진력이 나 있었다. 어느 날 드디어 백지에 말을 걸었다고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나에게 글뭉치를 내어민다. 띄어쓰기가 엉망인 글씨들이 백지 가득 헝클어져 있다. 나는 교보서적에 책을 구하러 가곤 했다. 도서관 책을 스무 권 가까이나 훔쳐 우리들의 영웅이 된 중현이와 숭렬이가 엉거주춤 따라 붙는다. 학생회관 출입문 근처에는 어지러운 구호와 함께 파랑새 극장이나 문예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연극 포스터 따위가 붙어 있었다. 나는 안경을 엄지로 치켜올리며 학교를 오가거나 동숭동에서 공연하는 북춤이나 풍물합주를 보러가기도 했다.

기억의 시간은 갑자기 접혀진다. 87년 새학기가 되자 강의실에는 이곳저곳 빈자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상열이 형. 그는 운동권에 합류했고 올 F를 깔았다. 그는 이미 캠퍼스의 파쇼들의 실세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 선배는 잘렸다. 좋은 글친구였던 승권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아마도 나인 것 같았다. 그는 캠퍼스에서 종적을 감췄고 그 갑작스런 사라짐 때문에 대부분 그를 떠올리지 못한 듯했다. 어느 겨울날 내가 그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이 모든 사소한 기억들을 물리치고 내 앞에 떠오른다. 남대문 시장 귀퉁이에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그 상업지구의 추레한 남창빌딩 속에서 그가 생활하고 있다. 얼어붙은 유리창의 한겨울의 바람에 휘어질 듯한 그 냉골방에서 나는 한 개의 낡은 커피포트와 몇 권의 시집을 본다. 그는 겨우내 민음사판 《보들레르》를 읽고 있었다. 빠리의 우울. 아니, 서울의 우울이라고 그가 얘기했다. 그렇다. 모든 만남은 이렇게 우울하게 깨지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도서관 개축공사로 부서져 내린 콘크리트 조각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에 나의 두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커다란 황막함을 볼 수 있었다. 환청 같은 소리가 고막에 가득하고 메마른 환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대학시절 내내 나는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참혹한 두통과의 싸움은 나의 학부시절을 요약한다. 하지만 아직 도서관에 책가방을 던져둔다. 아마도 87년도 봄이 특별했던 것은 그 신학기 우리의 교수님으로 새로이 초빙되어 오신 이형기 선생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체론이 이 땅에 흘러다니기도 전에, '시는 전복이다' 외치셨던 그 음성을 기억한다. 지금 그의 손이 가볍게 흑판 위에서 움직인다. 고프리드 벤의 <이별>이란 시를 두 번이나 또박또박 반복해서 읽으시며 그가 어느 귀절에 분필을 그었다. 상처를 타고 퍼져나가는 핏빛의 흔적을 '이별'로 암유한 대목이었다. 나는 이제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순간적으로 덤벼드는 생각이 칠판 위의 글자를 놓쳐버리게 한다. 나는 지금 이형기 교수님의 독특한 경상도식 악센트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의 나즈막한 목소리는 강의실의 공기 속에 퍼져나가고 나의 여린 고막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어딘지 모르게 비탄마저 느끼게 한다. 내가 바라보는 장면은 그 부분을 제외하고 텅 비어버린다. 나는 강의실 뒤쪽에 앉아있기 때문에 강의실 전체를 텅 울리며 다가오는 그의 음성을 더욱 전체적으로 들을 수가 있다. 이형기 교수님. 잠시 그의 눈이 반짝였고 그 입술이 내 기억 속에 영원한 흔적을 만들기 위해 서서히 움직인다. 이제 나는 그의 움직임을 놓칠 수가 없다. 매 순간의 동사들이 그의 동작에 연결되어 나의 문장을 끌고 간다. 그가 두 평 정도의 강단을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한다. 잠시 그가 탁자에 손을 얹고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나는 가슴이 죄어 들어오는 듯한 긴장을 느낀다. 그날은 내가 <시창작론> 시간에 시를 발표하는 날이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풍차>라는 시를 읽어내려간다. 나의 서툰 시를 교수님은 멋진 소프라노 가수의 아리아를 듣는 것처럼 조심스레 집중해서 듣고, 몇 마디 코멘트를 남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으로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멋있게 노래를 부르려다 목소리가 갈라지는 가수처럼 멍청한 음성을 돋구는 오리. 아직 악기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만큼 놀라고 절망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그 갈망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나는 글을 쓰겠다는 강박증과 욕망 같은 것에 미쳐있었다. 때로 그 시간의 장면들은 내 생각이 완전히 비어있는 어느 순간, 미미한 시간의 흐름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 장면은 시간보다 가벼워 늘, 시간의 수면 위에 떠돌고 있다.

그 무렵 나는 러셀의 철학사를 끈질기게 읽었다. 상권을 다 읽어치웠지만 머리 속에 남아있는 내용은 없었다. 천천히 암기하며 그토록 또박또박 읽었건만, 두통에 지글거리는 활자들은 내 시각의 얇은 망막에서 서서히 부스러져 떨어졌다. 꼭 저걸 암기하고 말겠어, 나는 노려보듯 까칠한 책장을 더듬어 나갔다. 책 속의 행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둥글게 뒤집혀져 있어 나의 눈의 진행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날마다 도서관에서 두통에 겨워하며 책을 읽고 있다. 나는 많은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배길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글 쓰는 데 몽창 바쳐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편두통에 대해 상심하고 있었다. 나는 무얼 쓰고 싶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것은 막연한 나의 이미지의 파편들, 흘러가는 환각의 파편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 무렵 나의 타자기에는 이미 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다. 찰카닥거리는 타자기의 소리를 나는 참을 수가 없다. 글자 하나하나가 박혀갈 때마다 울려나오는 그 소리는 나의 뇌를 사정없이 타격했고, 잉크테이프 위에 드러나는 구멍들이 나의 뇌피에 뚫려 오는 듯했다. 이미 나는 구두조차 신을 수 없다. 딱딱한 구두굽이 도서관의 타일에 부딪칠 때마다 나의 뇌와 가슴은 커다랗게 진동했고, 지면과 구두굽이 마찰하는 소리도 견딜 수 없었다. 소리는 언제나 내 머리를 두드리고 할퀴고 찢어발길 듯했다. 나는 나를 가두었고 구두끈을 전부 구두에서 잡아빼냈다. 밤낮으로 누워 있는 옆구리가 짚어내는 기온이 시간을 알려왔다. 새벽과 저녁, 탁한 눈에 빨려드는 빛나는 빛을 울었다. 이대로 끝장나지 않게 해주세요. 어느덧 황막해져가는 87년의 봄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