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성낙주 선생을 기리는 추도의 말 / 유재원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76

성낙주 선생을 기리는 추도의 말

유재원(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영원히 기억될 사랑하는 사람, 성낙주 선생을 기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기린다는 것은 ‘뛰어난 업적과 훌륭한 정신을 칭찬하고 되돌아봄’을 의미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모여 먼저 떠난 사람을 기리는 걸까요? 그 사람을 잊기 위해서, 망자를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앞으로는 영원히, 아니 적어도 평상시에는 잊겠다는 사회적·공식적 다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추도식’은 죽은 사람을 잊기 위한 통과의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이를 잊지 못하고 계속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추도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에 미련을 갖는다면 살아가는 데에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산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떠난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과 미련을 떠나 보내는 살풀이 진혼굿입니다. 그 살풀이를 하기 위해 우리가 모였습니다.

<追悼>란 한자어와 <memorial>이란 영어 낱말 모두 ‘기억, 추억’을 뜻합니다. 각자가 가진 성낙주 선생에 대한 아름답고 귀한 기억과

추억을 한데 모아 성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한판 진하게 놀아보는 시간입니다. 언제까지나 그 기억과 추억을 갖고 살기에는 우리가 너무 힘들기에 실컷 놀아보고 잊자고 하는 간절한 잔치입니다.

고 성낙주 선생은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풍성하고 희귀한 재능을 성실함으로 갈고 닦아 남다른 범인은 넘볼 수도 없는 빛나는 학문적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독창성·성실로 갈고 닦아서는, 그것을 한편으로 더 발전시키며 또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고인과 남달리 가깝게 지냈던 저로서는 고 성낙주 선생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분의 학문에 대한,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석굴암에 대한 애정과 그 치열함, 그리고 그 치밀함에 대해서만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2011년 시리아 북부의 중심 도시 알레포에 있는 성 시메온 수도원을 가게 된 것은 그곳 폐허 대성당의 앱스의 건축 기법이 석굴암의 건축 기법과 같다는 것을 꼭 확인해야겠다는 고인의 엄청난 성화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레바논의 바알벡 신전의 기단이 불국사의 기단과 마찬가지로 그랭이 공법으로 지어진 것이니 가 봐야 하고,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6세기에 세워진 성당들의 돔이 석굴암과 같은 공법으로 지어진 것이니 꼭 봐야 하고, 석굴암 금강역사의 자세와 구성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카타콤의 프레스코 벽화와 같으니 거기도 가봐야 하고, 고 성낙주 선생의 정열과 고집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것들을 직접 보며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게 커다란 감동과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통일신라의 불교미술과 고대 그리스부터 초기 그리스도교까지 이어지는 서양 고대 미술 사이의 연관성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추구한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다혈질과 절실함이야말로 고 성낙주 선생님의 매력이자 장점이요, 또 단점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의 도반으로서의 동행 여행은 국내에서도 이어져 여러 번 함께 경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답사를 간 기억도 아직 생생합니다. 석모도 보문사의 저녁 예불이 끝난 뒤 범종 불사가 절집 불사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성덕대왕신종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 놓을 때의 고인의 표정과 열정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포석정이 연회를 하던 곳이 아니라 국가적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며 그에 대한 책을 준비한다던 목소리가 아직 들립니다.

고인은 한편으로는 느긋함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그 많은 일을 언제 다 할 거냐고 물으면 쓰기만 하면 곧 된다고 호기 있게 웃으며 대답했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 성낙주 선생님, 불국에서 이승에 남은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라며 부디 안면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