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Dongguk University
역사 속으로 돌아간 성낙주 선생 / 민경길
역사 속으로 돌아간 성낙주 선생
민경길(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언제든 전화를 걸면 걸쭉한 영감 목소리로 “어~ 형님! 어떻게 지내슈?”라며 인사말을 건네올 것 같은 성낙주 선생. 선생과 나는 10대 소년 시절 아직 전기도 안 들어오던 서울 변두리 허허벌판 논밭 복판에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으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밤이 되면 조그만 방 안에서 호롱불 옆 벽에 기대어 앉아 두런두런 미래의 꿈들을 이야기했고, 그 시절 선생의 꿈은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방학 때면 선생의 시골 고향 집으로 가서 낮에는 소를 몰아 밭도 갈아 보고 소 우리 청소도 해 보았고, 밤이 되면 선생과 마루턱에 나란히 걸터앉아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수군수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때 나는 전원생활의 정서를 체험할 수 있었고, 이때의 체험은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의 감정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만 그 시절 우리의 대화 속에 역사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무슨 운명인지 나는 사관학교를 거쳐 모교에서 법학을 강의하면서도 전쟁사 저술 활동에 몰두했고, 선생은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거쳐 중고교에서 국어를 강의하며 처음에는 소설가로 창작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불교미술사 연구에 전념케 되었습니다. 선생이 불교미술사 연구에 전념케 된 것은 『차크라바르틴』이라는 불교소설 창작이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둘은 같은 역사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이 날카롭게 비판한,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정치 목적적 역사관을 우리는 혐오했습니다. 역사가의 해석과 역할을 중시한 콜링우드의 주관적 역사관에도 우리는 공감하지 않았고, 역사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으로 인식하며 주관적 역사와 객관적 역사의 조화를 강조했던 E.H. 카의 역사관에도 우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실 자체의 역사를 강조한 랑케의 객관적 실증적 과학적 역사관을 신뢰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관심은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 자체에 늘 집중되었고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록한 사람의 왜곡을 정확히 규명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역사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는 이끼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하고 과거의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 우리 두 사람의 꿈이었습니다.
이제 선생은 육신의 탈을 벗고 역사 속으로 돌아가 생전에 그렇게 보고 싶던 사실을 마음껏 보며 미소 짓고 있을 것입니다. 불국사 석굴암 창건 과정이나 성덕대왕신종의 주조 과정도 보고 있을 것이고 그 역사적인 진실을 언젠가 우리에게 전해줄 것입니다. 선생은 노력형의 천재였습니다. 천재가 박명하다는 말도 있지만 66년을 살고 이승을 떠났으니 크게 단명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또한 선생이 남긴 모든 작품들과 선생이 수집해 놓은 모든 불교 골동품들의 진가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