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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 성낙주 형을 추모하며 / 김무봉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106

외우 성낙주 형을 추모하며

김무봉(동국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

 

낙주 학형, 성낙주 선생!!

당신이 떠난 2020년 11월 5일 이후, 내 생활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시간이 거기에서 멈춰 선 것이지요. 꽤 오랜 동안 나는 어떠한 움직임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과 교유(交遊)하며 지냈던 40여 년의 세월이 거기에서 정지해 버린 겁니다. 너울거리는 삶의 조각을 부여잡고 긴 시간 방황을 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무거운 그리움을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3주기를 맞아 참담했던 시간들을 회고함으로써, 별리 후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당신은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979년 2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복학 수속을 위해 찾았던 학과장 교수님 연구실에서 호탕하면서도 친절했던 당신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날 이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가까워졌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석전 선생님 연구실의 일원이 되었고, 나는 허당 선생님 연구실 소속이 되어 교수회관 1층의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거의 매일 붙어 있다시피 했습니다. 따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등교하여 서로를 격려하며 엄혹했던 시대를 헤쳐 나왔습니다. 어떤 때는 최루 연기가 자욱했던 시위 현장의 맨 앞에 서서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외치기도 했었지요.

당신은 동서와 고금을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로 지식과 사유의 폭을 넓혀 나갔습니다. ‘호한(浩瀚)하다’는 말은 그런 경우에 딱 맞는 표현이겠지요. 그런가 하면 문예 창작에도 재능이 걸출하여 창작실습 시간에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평론가 선생님의 칭찬을 도맡아 받기도 했습니다. 졸업 무렵에는 문학과 미술 분야의 역량 있는 지식인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나중에 소설가이자 미술사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토대가 그때 마련된 것이지요. 간혹 모임이 있을 때 당신이 불러주었던 애창곡 <명태>는 듣는 이 모두의 가슴을 헤집어 놓을 만큼 절창이었다오. 지금은 즐겨 불렀던 그 명태처럼 자유로이 영혼의 바다를 산책하고 있겠죠.

그렇게 3년을 함께 보낸 후 우리는 석전 선생님의 추천으로 같은 법인 내의 다른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했었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주간에 담임으로 이용했던 교실을 당신이 야간 반 담임이 되어 교대로 사용하기도 하는 좀 특별한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나 당시의 교단은, 당신처럼 제자 사랑이 남다른 청년 교사가 그 뜻을 온전히 펼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몇 년 후 당신은 공립 중학교로 옮겼다가 직함 앞에 해직이라는 단어 하나를 얻게 되는 시련의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해직교사가 되었고, 나도 그 직후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에 있는 동안 당신은 좀 늦게 결혼을 하였습니다. 석전 선생님이 주례를 하시고 내가 사회를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당신은 부인에 대한 근중이 각별하여 언제나 “우리 번 선생”으로 호칭을 대신해 주위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곧 시경 군이 태어나 많은 이들의 축복이 잇따랐습니다.

해직교사로 지내는 동안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터인데, 당신은 그 질곡의 시간마저도 당당하게 극복해 나갔습니다. 복직한 후에는 그때 모아둔 자료들을 활용하여, ‘석굴암미학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하고, 미술사 관련 주요 저술들을 잇달아 상재(上梓)해서 누구도 해낼 수 없는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내가 당신의 능력에 특히 놀란 것은 2016년 가을에 있었던 우리 학과 창설 70주년 기념 전시회 때입니다. 학과의 준비 부족으로 채 1개월이 남지 않은 때에 결정을 하여 부랴부랴 당신에게 부탁을 했던 겁니다. 70년 동안 배출한 학과 출신 문인들의 문집, 연구자들의 저술, 사화집 등을 한곳에 모아 전시회를 열기로 한 것이지요. 그러한 규모의 전시회가 겨우 한 달 만에 가능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책임을 맡고 난 후 기류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천 종류가 넘는 작품집과 저서가 답지하여 학교 중앙도서관 1층의 열람 공간을 꽉 채운 채 전시회를 열었었지요. 이는 당신이 갖고 있던 모교와 학과에 대한 각별한 애정, 전시에 대한 기획력, 실행력, 추진력 등의 결집이 빚어낸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공간 설치에 대한 당신의 감각 또한 매우 뛰어났고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을 해낸 겁니다. 이는 긴 시간에 걸쳐 당신이 탐구해 둔 역량이 온축에 터를 잡은 성과였지요. 또한 당신이 가진 친화력과 추진력에 감동한 동문들의 호응이 졸탁동시해서 만들어 낸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학과에서는 당신에게 아무런 보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미안합니다.

이렇듯 당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나 또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정년을 맞게 되어 이제 비로소 만남의 빈도를 더하려던 참에 당신은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내 사유의 한가운데 메워지지 않을 커다란 공백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당신의 그 우렁찬 목소리와 이로(理路) 정연한 언술, 그리고 탁석(卓識)이 번뜩이는 저술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어질진대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과 아드님 시경 군의 애통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속히 사바세계로 돌아와 불파(不罷) 문정(問程)의 길을 함께 걸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