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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은 사람 / 조현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77

깊고 넓은 사람

조현(수필가)

 

그가 떠난 지 벌써 3년. 또다시 황망하고 기가 막힌다. 학연으로 만나 얽그려졌던 40여 년, 도탑던 인연이 다시금 가슴을 옥죈다. 어쩌다가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 헛헛한 마음 가눌 길 없어 망연히 먼 하늘만 바라본다.

 

그는 내 친구이며 소설가이고, 재야사학자이며 두드러지게 우뚝한 교사였다. 늘 교단의 숭고한 높이를 강조하던 그는 한없이 강강하고, 남달리 의연했다. 참교육을 위한 오롯한 일념으로 전교조에 몸담아 교사로서의 맑은 열정을 꽃피웠고, 반드시 가야 할 바른길이라면 자신이 앞장서겠노라 맘먹은 의지가 탑처럼 높고 견고했다. 5년간의 해직 기간에도 조금도 허물어지거나 목청을 낮추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석굴암을 두고 타성에 젖어 밑도 끝도 없는 망발을 일삼았던 기존 학계 권력과의 쟁투는 첨예했으며, 그들에 대한 질타는 언제나 논리 정연했다. 불의에 무릎 꿇지 않고, 올바름에 대해 몸 사리지 않는 솔선으로 제자들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도 호연지기를 일깨웠다.

진정 어깨동무만 할 수 있다면 가르치는 일이 가장 크게 배우는 일이다. 그는 제자들과 허심탄회, 터놓고 어울리기 좋아했다. 호쾌하고 꾸밈없는 그의 성품은 아버지 같은 자애와 형 같은 친밀로 늘 학생들을 몰고 다녔다.

12월 31일 밤, 제야의 종이 울리는 종각 앞에서 해마다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거리낌 없는 푼푼함 때문이다. 한바탕 떼 지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알찬 계획과 소망을 격려했던 그, 함께한 제자들의 등을 일일이 토닥여 주는 그의 따뜻한 손길과 하얗게 내뱉는 입김은 포근하고 정겨웠다. 아직도 그 자리를 잊지 못하고 아쉬워할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논어』의 ‘선진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로가 스승께 여쭈었다.

“좋은 말을 들으면 곧 실행해야 합니까?”

공자는 말씀하셨다.

“부모 형제가 살아 계시는데 어찌 묻지 않고 즉시 행하겠느냐?”

그 후, 또 다른 제자 염유가 여쭈었다.

“좋은 말을 들으면 곧 실행해야 합니까?”

공자는 말씀하셨다.

“아무렴! 듣는 즉시 바로 행해야지.”

그러자 똑같은 질문에 각기 다른 답을 하신 스승을 지켜보던 공서화가 영문을 몰라 그 이치를 여쭈었다.

“자로가 물으니 ‘부형이 계시다’하시고, 염유가 물으니 ‘즉시 행동에 옮기라’하시니 혼란스러워 감히 여쭙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셨다.

“자로는 남보다 지나치기 때문에 신중히 처신하도록 억제한 것이고, 염유는 자주 물러서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도록 자극을 준 것이다.”

 

이른바 제자에 따라 가르침을 다르게 베푸는 공자의 교육 방법이 잘 드러난 일화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성낙주 선생이 평소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아이들은 제각각이어서 성품과 능력이 아롱이다롱이지.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양과 질이 저마다 다르니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만만치 않은 일이라네. 교사가 가장 먼저 깨달아 명심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일세.”

제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생각하면서 학생마다 달리 그때그때 적절히 일러줘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내 마음에 죽비가 되어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못난 놈들이 훨씬 더 예뻐! 한 번 더 내 손이 필요한 놈들 말이야.”

이렇게 말할 때는 어진 스승의 풍모가 넘쳐 나도 모르게 앉음새를 고치기도 했다.

 

성낙주 선생이 제자 사랑만큼 열과 성을 다한 것은 스승에 대한 겸허한 태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은사님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조금도 식을 줄을 몰랐다. 때마다 찾아뵙고 어떤 행사도 빠짐없이 참석해 제 일처럼 성의를 다했다. 그의 진심 어린 스승 섬기기는 종종 동문들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모름지기 그는 영원한 제자이며 훌륭한 스승이었다. 생각사록 깊고 넓은 사람됨이 아직도 그를 사무치게 그리고 애틋하게 만들고 있다.

 

성낙주 선생! 시간이 지날수록 빈자리가 너무 크고 넓다네. 문득 떠오를 때면 함께 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가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린 속을 할퀴고 있네. 많이 보고 싶소. 부디 하루속히 인도 환생하여 그토록 아끼던 제자들 앞세우고 호쾌한 너털웃음 한번 다시 들려주오. 아울러 다 못한 인연 다시 이어 봅시다.

학수고대! 학수고대! 학수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