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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주, 그 곧은 학인을 기리며 / 윤명철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63

성낙주, 그 곧은 학인을 기리며

윤명철(동국대 명예교수,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때때로 만나고, 진솔하게 얘길 나누고, 그렇게 그냥 헤어지는 인연들도 있다. 하지만 한 두어 번, 아니면 서너댓 번 만났어도 의미로 다가오고, 마음을 흔드는 인연이 있다. 드물지만 지적 체계에 의미 있는 자극을 주고, 그 흔적들을 문신처럼 남기는 인연들도 있다.

그와의 첫 만남은 2000년대 중반쯤인 듯하다. 늦은 오후쯤 연구실에 등장(?)한 그는 고집 세 보이고, 남을 설득시키는 목소리를 가졌다. 국문과 출신이라는 그의 말들은 의미가 있었고, 힘이 배어 있었으며,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석굴암의 사상과 시대적인 의미를 해석하는 데 나와 같이 통했다. 실은, 1981년도에 출판한 『신단수』라는 시집에 ‘석굴암’이란 시를 실었는데, 불상을 삼국통일의 또 다른 한이 밴, 피칠한 누런 돌덩이로 묘사했었다. 그런데 그는 의미를 넘어 형식과 미학까지 새롭게 해석했다. 석굴암이 판테온 양식이며, 로마, 더 멀리 그리스의 건축술과 연관 깊다는 주장을 펼쳤다. 들으면서 그 말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에서 보았고, 현장에서 보고 온 판테온은 충분히 그런 해석이 가능한 듯했다. 한국 지성계나 역사학계에 비판적이며, 창조적인 발상을 높게 평가해 온 나의 학문관으로는 아주 긍정적이며, 매혹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이후 그는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책을 보내왔고, 내용은 역시 예상대로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학술적인 조명이었다. 나는 그와 인연을 맺은 이후 석굴암으로 표현된 우리 문화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고, 남북으로 종단하며 종횡무진했고, 정년을 한 지금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대학교 고고학부에 교수로 있다.

그리스 문화와 불교유적들을 찾았고, ‘테르미즈’, ‘두산베’ 등의 현장이나 박물관에서 그리스식 불상들을 물리도록 보았다. 그러면서 중앙아시아 여러 곳에서 페르시아 문화, 알렉산더 대왕의 이상인 ‘헬레니즘’ 문화, 로마 문화, 힌두 문화 등이 모여 간다라로 대표되는 불교문화를 창조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소위 ‘실크로드(오아시스 로드)’를 타고 동쪽까지 이동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건축이나 미학, 불교 전문가가 아니므로 석굴암을 둘러싼 다양한 분야의 논쟁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평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형식과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이 옳다. 실제로 그의 주장은 학계에서 여러 형태로 수용된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조금 더 그를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는 이제 떠난 사람이다.

참 힘겹고, 적잖은 가슴앓이로 업을 풀어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안타깝지만 그가 택한 삶이니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지식인의 삶으로 그는 내게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