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Dongguk University
아름다움에 취한 탐미가 / 연지원
아름다움에 취한 탐미가
연지원(작가)
그는 서정주의 언어에 탄복했고 석굴암에 깃든 미학에 흥분했다. 아름다운 것을 만나면 음미했고,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면 집안으로 사들였다. 그런 행적을 보면서 나는 감탄에 빠지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탐미(耽美)로구나!’ 불국사 답사 때였다. 그는 석경루, 청운교, 백양루 앞뜰을 거닐며 심오한 미가 깃든 불국사의 요소 요소를 손으로 지정하며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미학적인 언어로 설명했다. 석축 앞에 서서 김대성 설화를 해석하던 모습도 잊지 못할 것 같다. 표현은 유려했고, 어조엔 힘이 넘쳤다. 일가를 이룬 해석자가 되기 전에는 성실한 관찰자로서의 숱한 답사가 있었을 것이고, 관찰자의 가슴에는 아름다움을 보듬고 탐하던 뜨거운 심장이 있었으리라. 탐미적 삶이 어떠한 것인지 생생히 목격했던 날이었다.
고귀한 아름다움은 드물다. 드물지만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차별하지 않는다. 신분과 동서를 막론하고, 숭고한 공력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찾아든다. 예술작품이든, 언어든, 문화유산이든 아름다움이 깃들면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세월을 이겨낸다. 아름다움은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쉰다. 숨 쉴 때마다 고혹적인 체취를 풍긴다. 그 향기와 공명에 홀린 탐미가들이 조금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다. 그건 방황도 기꺼이 감수한다. 이미 홀린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만난 아름다움과 탐미가는 서로를 만지고 핥고 포옹한다.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교감한다. 아름다움과의 만남은 짧지만 영원하다. 만남의 자리를 떠난 후에도 탐미가는 아름다움이 빚어낸 환영 속에서 취한 듯이 산다. 아, 술이 없어도 취할 줄 아는 황홀한 존재여!
도저히 잊지 못하여 찍어 온 사진이라도 감상하고, 자신을 달랠 겸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린다. 이제 아름다움은 탐미가의 수사를 통해 온 세상을 유영한다. 탐미가의 해석을 매개로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더 많은 인간을 위무하고, 세상을 천연빛으로 물들인다. 채색하고 위무하는 아름다움의 소임을 알아본 탐미가는 평생 그 곁에서 울고 웃으며 본분을 지킨다. 무엇이 탐미가의 본분인가. 아름다움에 취하고, 관찰과 해석이라는 도구로 매만지고,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건네는 일이다. 이것이 그가 석굴암이나 에밀레종과 나눈 시간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의 탐미는 감각적인 탄복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이유와 근원을 밝히고자 애썼다. 무엇인가가 아름다우면 어떻게 그리 아름다운지 탐구했다. 동서 문명의 비교가 필요하다면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시리아로 날아갔다. 그리하여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지극한 경지로 예술을 추구했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은 지양했다. 그는 예술이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유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소설 쓰기란, “고단한 삶의 바다에서 인과의 법칙을, 그것도 문예 미학의 관점에서 세우는 작업”이었다. 그랬기에 형식미 앞에서 내용이나 정신을 포기한 예술을 거칠게 비판했다. “어떻게 모든 작품이 열 권짜리로 딱 떨어져?! 말이 안 되지. 글을 쓰다 보면 아홉 권이 되기도 하고, 열한 권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야.” 대하소설을 항상 10권 전집으로 맞춰 출간했던 어느 소설가를 향한 비판이다. 작위적인 형식미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아름다움을 열렬히 좇았지만(耽美), 내적인 가치를 잃고 형식이 아름다울 뿐이라면(唯美) 그는 싫어했고 배격했다. 예술과 문화재를 열렬히 사모했던 그가 유미주의자가 아닌 탐미가로 느껴지는 이유다.
탐미가는 탐미의 희열을 온몸으로 맛보아 경험한 자들이다. 그도 필시 그 맛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집필이란, 홀로 흠뻑 누렸던 짜릿함을 독자들과 나누던 보시는 아니었을까.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존재한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든, 필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탐하고 있을 거라 상상하게 만드는, 그렇기에 잠시 그리움을 걷고서 배시시 미소 짓게 하는 문장이다.
“나의 석굴암 읽기는 위대한 건축가 김대성의 길을 따라 걷는 행복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