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Dongguk University
내가 기억하는 낙주 / 김주면
내가 기억하는 낙주
김주면(고등학교 친구, 미국 거주)
아직은 솜털이 보송하고 볼이 발그레한 17살에 낙주를 만났다.
한문으로 적힌 출석부에서 낙주 이름의 투구 주(宙)를 제대로 읽는 선생님이 드물었다.
폴 앵카, 엘비스 프레슬리, 유치환, 안다성을 낙주를 통해 들었다.
어른스럽다는 표현보다는 또래 아이들과는 사고의 공간이 달랐다.
10월유신, 삼선개헌을 덕분에 덩달아 광분하고 안타까워했다.
계곡으로 흐르는 시냇물 그 위에 걸친 다리를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한 점 받았다.
놀라웠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대단한 친구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출판되거나 큰 사건이 생기면 가끔씩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부시, 김정일, 트럼프를 언급하고 특유의 껄껄웃음을 남겼다.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 에밀레종에 몰두하고 돈하고는 거리가 먼 책에 매달리며 기성 사학에 맞서 자신의 학설을 정립해 나가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뒷산 단풍이 고운 날 낙주 전화가 왔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시경의 전화였다.
무엇이 급해 그리 일찍 갔는가.
그토록 의욕과 정열이 넘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물을 일찍 데리고 간
나의 하나님을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