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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의 강요(?) / 조용석

등록일 2026-10-06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76

문학에의 강요(?)

조용석(제자)

 

2000년, 노원중학교 국어 시간 수업 종이 울리면 우리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등장하기 전까지 자리에 앉아서 각자 준비해 온 책을 읽었다. 틀에 박힌 정규 수업보다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의 진정한 가치와 작가들의 치열한 삶을 주로 이야기하던 선생님의 수업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일 리는 없고-안 그러면 그냥 하기치레로 맞았다. 가벼운 콧노래와 함께 하키채를 휘두르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우리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둘러보는 약 5분의 시간은 그야말로 ‘문학에의 강요(?)’였다.

선생님은 두 가지 기준이 있었다. 작품다운 작품을 읽을 것, 그리고 출판사다운 출판사 책을 읽을 것. 당시 이 기준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중학생은 어디에도 없었고, 우리는 그저 맞기 싫으니까 피난 가듯 책을 준비했다. 나는 부모님 서재에서 헤르만 헤세의 『청춘은 아름다워』를 골랐다. 아마도 나는 ‘중학생 필독 도서인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 정도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슨 15살짜리 애한테 『데미안』을 권하나 싶지만—그보다는 출판사가 걱정이었다. 선생님은 덤핑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고 있으면 가차 없이 머리를 쥐어박았는데, 그러기엔 내 책은 너무 낡았고, 대체 덤핑 출판사가 뭔지도 알 수 없었다.

그해 내 심장 반쪽을 태운 아이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막스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은 생각했다, 왜 그 아이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만을 읽는 것일까?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아, 이토록 숭고한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우리는 어째서 내년이면 다른 학교로 진학해야 하는가? 어느새 마흔이 되어 버린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그 아이도 그냥 맞기 싫어서 적당히 고른 책이 아닐까 싶지만, 그 시절 국어 시간은 그랬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출판사를 잘못 만나면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듯이,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에 문학이 더해지지 않으면 일생의 사랑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까닭에 선생님의 수업에는 유독 문학이 기어든 적이 많았다. 성장 주제에 대한 고민 없이 기성세대의 입맛대로 채워진 청소년 권장 도서목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작품을 자주 소개해 주셨는데, 특히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25시』는 일 년 내내 인용하셨다. 소설은 잠수함 속 토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당시에는 기술력 부족으로 잠수함에 산소 농도를 확인하기 위해 토끼를 태웠다고 한다. 사람보다 산소에 훨씬 민감한 토끼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함내 산소가 부족한 것으로 간주하여 바로 잠수함을 수면 위로 띄웠는데, 작품에서는 시대라는 잠수함에 토끼는 바로 시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학기 중에 이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셨는데, 그 덕분인지, 그 탓인지 훗날 나는 문예창작과를 진학하고 이윽고 게오르규가 태어난 루마니아로 한 달 배낭여행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을 전환점 삼아 내 삶의 가지는 해외로 뻗어 나갔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면 담쟁이덩굴 같은 놈이니 어디서든 잘 살아갈 거라고 응원해 주셨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던 2020년, 한국에 돌아갈 수 없던 나는 안부 전화 한 통으로 스승의 날을 채웠다. 받자마자 걸쭉한 화답부터 늘어놓으시는 선생님의 통화는 언제나 정겨웠다. 이후로도 종종 문자 메시지를 통해 요새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는지 이야기해 주셨고, 그러면 마치 나는 15살 중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문학책도 없이 하키채도 없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그해 추석에는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께 주석 선물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선생님 댁으로도 한우 세트를 보내 드렸다. 아들 시경이가 군대에 갔던 2012년, 선생님은 시경이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대뜸 내 생각이 났다며 전화를 걸어오셨다. 여느 때보다도 농밀하게 걸쭉한 통화를 이어 나가던 선생님의 마음을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8년이 지난 그해에는 조금 알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받아서 맛있게 구워 먹고 이 쑤시면서 너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세상의 모든 표독스러움 가운데 가장 유순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거짓말처럼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자신만 알고 있는 어느 산길이 있는데 그곳을 한참 오르면 한 봉우리 아래로 나무들이 드넓게 준비한 곳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언젠가 삶을 마감해야 할 때가 오면 이곳에 올라서 몸을 던지겠다고 하였다. 영원토록 펼쳐진 녹음의 바다를 향해서 생이 다한 육신을 내던지는 마음은, 일생 동안 대지의 조각들을 담아 오며 살아온 우리가 마침내 커다란 자연에 생명을 선사하는 작은 충동 같았다. 아마도 선생님은 평생 이 충동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에 문학을 사랑하셨던 것은 아닐까, 주제 넘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 삶의 충동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어쩐지 그날의 수업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여자의 일생』과 『독일인의 사랑』을 읽었던 그 아이가 ‘잔느’와 ‘마리아’ 같은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청춘은 아름다워』를 읽은 나의 청춘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듯이, 『25시』 속 잠수함의 토끼 같은 시인이 되지 못한 내 인생처럼 우리 삶은 문학의 언저리를 배회할 뿐 그 안에 침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세계의 벽에 부딪치는 충동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충동이야말로 ‘새가 알에서 나오기 위한 투쟁’처럼 나를 살아가게끔 만든다. 비록 선생님도 본인이 꿈꾸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기지는 못하셨지만, 나는 선생님이 문학이 되지 못하셨기 때문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나 역시 문학을 꿈꿀 수 있었다. 이루지 못하는 꿈이고 뛰어넘을 수 없는 세계지만, 선생님이 만들어 낸 5분간의 ‘문학에의 강요(?)’는 나를 그 앞까지 인도해 주었다.

부디 그곳에 계시는 선생님이, 많은 학생을 꿈의 앞까지 이끌어 주신 것을 본인의 가장 아름다운 문학으로 여기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