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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제 3회 콩쿠르 수상작(문정희, 박정만, 노영숙, 부덕희)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705
<시부 가작 2석> 플래카아드 문정희(진명여고) 꽃물이 흐르던 내가슴의 가장 순수한 백지는 젖어가고 있다. 학처럼 목을 뽑고 태양을 목메이게 부르는 아우성이 소나기처럼 지나간 거리. 절대의 호흡으로 떠밀리는 언어가 있다 내 피가 외롬에 떨던 방에서 불신의 아침은 성장했고 그 집념이 파열해서 이렇게 시간을 흔들어 버리면 무수한 발자국에 피로 젖어가는 언어여. 두동강이 나서 이젠 지표조차 희미해진 산하에 푸른 풍경화를 꽂자고 그리고 서투른 풍금소리 같은 나이어린 자유여! 민주여! 결코 순백해야만 하는 어머니여! 이것은 분명 하얀 영역에서 눈뜨는 성스러운 메아리다. 하늘 언저리 가장 진한 음계에 서서 일월이 뿌리고간 울음을 잠재우고 우리의 사랑을 시도하면 여음은 인제 어디쯤에선가 변신하여 영원의 시공을 향해 발돋음 하고 아 난 다시금 음악을 불지르지 않아도 내 모국어를 펄럭이지 않아도 좋으리. <시부 가작 2석> 플래카아드 박정만(전주고) 우리 사랑방 어두운 구석의 광명과 길쌈하는 여인들의 윤나는 기쁨에서 과실처럼 충실히 하루가 익듯 영원으로 익어가는 강물의 길목에서 백의의 눈물빛 다하도록 피외침은 정녕 상륙을 준비하는 아침의 싱싱한 대열처럼 눈부신 작업이 계속되는 빠알간 소망이었다. 항시 의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행동의 가능한 능선을 부비며 청청강산에 구름덮듯 파괴의 충실을 익히며 온 누리에 애환을 길러갈 때 그 목마른 밤들의 새론 내부에 이념의 가장 큰 횃불을 들고 위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순수한 욕망의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채 세권(勢權)과 복종이 배리(背理)되는 지점에서 우리 열열한 대열의 맨 앞장에서 고독한 격동으로 매마르게 빛났다. 청자빛 항아리에 날이 밝을 때까지 괴로운 순진성을 디려밀어 서정이 마른 삼배옷이며 올 굵은 고통의 무명 보자기의 일상속 순수한 행위에 뒤따르는 완수만을! 들으라, 무리들이여 결의를 표명하던 한방울 눈물의 신작로에서 그리고 그런 거리에서 광장에서 풍요한 세계를 약탈할 이상적 모국어를 장만하라. 보라, 모든 사람의 열광된 피가 비밀리에 운행을 도모함을! 여기, 가장 줄기찬 대기 속에 조용한 각성을 바다를 부르고 우리 반도의 내부에 눈뜨는 수억만 태양이란다. <소설부 장원> 인연 노영숙(명성여고) 나는 읍내 여중에 입학하여 새벽 일찍 집을 나가서 저녁 어스름녁에야 아범의 마중을 받으며 귀가하곤 했다. 어쩌다 가끔 마을 어구에 있는 샘터에서 나는 철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철인 나를 보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뺑소니를 쳤다. 나보다는 훨씬 큰 키의 철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년만 같았다. "애, 철아." 철이는 힐끗 나를 돌아보며 이내 갈대숲을 빠져 나갔다.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우리집은 기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엄한 성격앞에 눌려만 계시던 아버지의 방종은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다. 전답을 하나 둘씩 팔아 치우는가 하면 아버진 건너마을 목로집의 어느 색시를 아주 집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선 순종과 칠거지악만을 지키는 못난( ) 여인이었다. 얼굴에다 분가루를 너덕너덕 붙이고 그 두툼한 입술에 새빨간 연지를 칠할 줄 아는 새색시는 미움보다도 동정에 가까운 무식한 여자였다. 끝내 아버진 남아있는 전답을 마저 처리하여 그 얄궂은 미소를 지닌 색시와 서울로 가버리셨다. 그 때 나는 여중졸업반이었다. 차라리 그 허울좋은 가정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 이었다. 나는 무단히 가출했다. 아무도 몰래 동구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내앞에 불쑥 나타난 사람은 철이였다. "저리 비켜!" 나는 냅다 소리쳤다. 철이의 눈방울이 어둠 속에 아물거리며 내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씨, 어머님은 어쩝니까 " 처음으로 생소히 들겨지는 철의 음성은 잔뜩 울음을 씹고 있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옆에 선 밤나무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다. "아씨, 어딜 가려는 거죠 " "서울 간다, 왜에 " 나는 어린 아기가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듯 악을 쓰며 대꾸했다. ‘두고 봐, 난 꼭 성공할 테니까. 그까짓 우릴 버리고 떠난 아버지 따위 나는 그 위에 설 때까지 일한다. 돈을 벌구 공부를 한단 말이야.’ 나는 입술을 깨물며 뇌었다. "철아, 이 짐이나 들어." 철이는 순순히 들어 주었다. 기차 정거장앞에까지 와서야 나는 침묵을 깨고 그에게 다짐했다. "아무말도 말어, 어른들께, 그리구 너두 이젠 공부 좀 해봐." "……." 다시 철을 만날 수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는 아침이면 꼭 우유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날은 무섭도록 비바람이 요란한 밤이었다. 문간방에 세들어 있던 나는 내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는 소릴 들었다. "우유값 받으러 왔읍다." 나는 창을 열었다. 다 낡은 작업복을 걸친 배달부의 뒷모습, 비에 함박 젖어 있었다. 우산을 펴들고 대문을 나가서야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고 또 우린 서로 놀라야 했다. "철이ㅡ 네가 " "영이 아ㅡ씨." 그날밤 철이는 내방에 들어와 옷을 말렸고 내손으로 끓인 조촐한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그제서야 철에게서 내 고향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어머니는 큰어머님댁으로 가셨고 철이와 행랑아범, 아니 철의 아버진 이곳 서울로 올라왔다는 이야기ㅡ어머닌 양잿물을 잡수어 하마터면 돌아 가실 뻔 했다고 철은, 이제 담담히 이야기 했다. 나의 일기장엔 그날로부터 철의 이름이 ‘마스콧’이 되어버렸다. 나는 휴일이면 그와 함께 곧잘 야외를 산책했고 고향을 떠난 나의 연연한 노스탈자는 그래서 풀어지곤 했다. 이제 그는 나에게 아씨라 부르지 않았다. 나는 어느날 답십리 한 구석에 자리한 그의 집을 찾았다. 아범의 노쇠한 모습, 그리고 연상 터지는 가래가 끓는 기침소리는 다시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며칠 후. 아범의 약과 시장에서 구한 그들 부자의 헌 옷가지(구제품)를 챙겨들고 나는 철이를 보러 갔었다. "안된다. 이놈! 그 아씬 어디까지나 우리 상전이다. 비록 가운을 못타 아씨가 이렇게 객지에 나와 고생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주인댁 아씨인거다. 만나더라도 항상 아씨 대접을 해야 한단 말이다." 나는 그들의 골방 마루에 가지고 왔던 물건들을 내려놓구 철의 집을 나섰다. 철이는 우유배달을 중지했다. 낯설은 손이 나의 들창을 두들기고 우유병을 밀어넣곤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먼저 철을 찾아갈 수 없다는 그런 못난 자아를 깨물고 있어야 했다. 가을에 아범은 죽었다. 나는 아범의 죽음을 그 이상 어떻게 슬퍼할 수 없었다. 화장터에서 내주더라는 아범의 뼈가루들을 철이는 나를 곁에 둔 채 흐르는 강물에 뿌리고 있었다. 역시 나는 그들과 함께 나란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ㅡ! 오랜만에 나의 분홍색 커튼이 젯쳐진 창문을 철이는 두드렸다. "영이아씨." "철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아씨의 고향이 나의 고향입니다." "……." "우린 어차피 또다른 인연을 맺을 수는 없나 봅니다." "철이 왜 그래 " "옛날의 우리 주인댁 아씨와 행랑아범의 천한 자식ㅡ 그게 아씨와 저와의 인연입니다." "철이 그런 걸 생각하니  바보야 이제 나는 아씨두 뭣두 아무것두 아니잖어! 으응 " "아씨." 철이는 휙 돌아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 옛날 언젠가처럼 철이는 나의 앞을 도망치듯 가버렸다. 수줍은 소년처럼ㅡ. <수필부 장원> 자화상 부덕희(진명여고) 내가 못났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못난 사람더러 호박이라고 한다. 허지만 나는 엄연한 인간이며 또한 사회적 동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피부와 골격을 가졌으므로 식물성인 호박과는 정말 본적이 틀리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말은 단지 자기위안일 수 밖엔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요새와서 부쩍 늘은 거울보는 횟수를 종합해 보곤 할때면 내가 못났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생각 키우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 못났는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거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남들이 생긴 그대로 생기기는 했다. 코 달린 자리에 딴 것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병신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전부가 어딘가에 부조화를 일으켜 맞지 않은 것을 볼 때는 배속부터 솟아나는 미움을 누구에게 쏟을지 몰라 또 걱정하게 된다. 얼굴만이라면 이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자그만한 키에 동글동글한 몸체 그것이 내 얼굴과 합하여 전체적으로 주는 인상은 만약 내가 동물성이 아니라면 정말 호박이라는 것이다. 의젓한 엄마, 아버지의 모습과 나를 놓고 볼 때 어쩌면 나는 순수한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정말 내가 정상적인 가족궤도에서 벗어났다는 비참한 설움을 내게 주지만 그렇다고 설명되기 때문이다.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부조화. 차라리 호박보다는 부조화란 별명이 의젓하고 학식있는 것?럼 보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언젠가 한번 심부름을 다녀 올 때의 일이다. 내가 어느 골목인가를 지나갈 때 서너명 모여섰던 사내애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얘, 왜 그렇게 못생겼니 " 그러자 한둘이 킬킬댔고 다른 하나가 핀잔주듯 말했다. "임마, 못난 게 뭐야  안생겼지." 웃음이 피식 흘러 나왔다. 당장은 그 웃음으로 내 무안을 캄프라치해 버렸지만 자꾸만 생각이 나고 또한 그 생각나는 걸 어쩔 수는 도저히 없다. 못생긴 건 안생겼다는 것과 통한다는 말. 그런 언어를 발굴해낸 사람의 천재적 두뇌에는 놀라고 있다. 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내게 그런 말을 해 던짐으로써 생긴 효과란 도대체 무엇일까! 단지 몇몇의 킬킬대는 짐승 같은 웃음으로 끝막고 말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또한 얼마나 본의 아닌 걱정을 하게 될 것인가를 그 천재적 두뇌를 가진 사람은 생각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말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거울을 보면 볼수록 정말 한심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퍽도 예쁘고 너무들 아름다워 ‘비우티 콘테스트’에 나서기도 하지만 정말 동양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내 작은 키에 인도인 같은 피부를 가진 걸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생긴대로 살겠다고 다짐은 해본다. 그러나 그 기특한 마음이 얼마간 지속해 나갈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나를 망각치 않고 살겠다는ㅡ그러니까 내 기형적인 추물도 함께 잊지 않으며ㅡ마음으로 넓게 퍼진 하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