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k University
1963년 제1회 시 부문 장원 하일(부산 배정고)
<시부 장원> 사과의 정물화
하 일(부산 배정고)
사과를 깎으면 지구가 둥글다. 사과의 풍요한 속살 위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땅 속에 바다를 심고 바다 속에 땅을 깎고 있었다. 여태도 하늘의 중량은 더 늘지도 줄지도 않은채 나의 피 속에, 눈 속에 머물고 빨간 사과의 즈로스를 베끼면 발바닥이 땅에 닿지도 않는 나는 여름 날 새로 산 신발처럼 산뜻한 사랑을 갖지도 못하고 뿌리가 없는 나무의 마음씨에 그저 건성으로 꽃을 피우다가 꽃잎과 줄기와 어쩜 전부를 지나 온 공간 안에 주어버려다. 사과를 들고 차마 눈 속에 넣을 수도 없는 사과를 들고 나무로 살지도, 그렇게 역사처럼 잠잠할 수도 없어서 대략의 줄거리만 포장해서 소포로 부쳐두고 차마 서운할 수 없는 그리고 아직도 기적이 던져주는 늙은 엣쎈스와 초라히 마주 앉은 나를 빨간 사과의 껍질로 감아 본다. 사과를 깍아 보면 지구는 등글고 그 둥근 지구의 표면과 표면이 차지하는 내면위에서 여태 손을 뻗쳐도 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하늘 속에 눈이 빠지고 눈이 빠진 사과의 씨앗을 허물없는 웃음으로 가슴에다 날리는 내가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