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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제1회 소설 부문 장원 홍청자(한성여고)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830
<소설부 장원>

비 오는 날

홍청자(한성여고)

"선생님 가지 마세요! 제발……"

 영주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벽쪽을 응시한 채 서 계신 선생님의 양복을 움켜쥐었다. 정말로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언제든 또 만나게 되겠지!" 하면서 선생님은 영주를 바라보며 무겁게 걸음을 옮기셨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영주의 눈에는 눈물이 떨어졌다. "아! 또 꿈이었구나." 영주는 부시시 일어났다. 며칠을 두고 연거푸 꾸는 꿈이었다. "또 꿈 꾸었니 " 옆에서 거울을 들여다 보며 열심히 눈썹을 올리고 있는 언니의 웃음섞인 말이었다. 영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멍청히 비 내리는 창밖만을 응시했다. ‘비 오는 거리를 걷고 싶다.’ 영주는 비옷만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옷 속은 따뜻했으나 머리는 비에 젖어 추웠다. 조금씩 내리던 가느다란 비가 젓가락 같은 굵은 비로 변했다. 영주는 그런 억수 같은 비도 아랑곳 없이 고개를 푹 떨구고 생각에 잠긴 채 걸었다. 영주의 머리속은 아까 꿈에 나타난 선생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보시오 학생! 같이 씁시다. 이런 비를 맞으면 감기 들려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절망에 가까운 힘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영주는 잠에서 깨난 듯 고개를 치켜 들었다. "악! 무서워요! 저리 비켜요!" 하고소리치는 영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그렇게 무서워 할 건 없어요. 화상을 입은 것 뿐이니까……." 하면서 그사람은 영주의 팔소매를 잡았다. 비통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영주는 흠칫 놀라 몸을 오싹 떨었따. 어쩌면 저런 무서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눈은 한알만 뚜렷했고 코는 일그러져 있었으며 얼굴 바탕은 뻘건 살덩이 그대로였다. 영주는 죄수마냥 마구 떨었다. 내가 왜 나왔을까……하는 후회가 샘물처럼 솟아 올랐다. 꼭 나를 침침한 데로 끌고가서 간을 빼 먹을 것도 같은 그런 무서운 생각이 자꾸만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영주의 팔에서 손을 놓았지만 영주는 강한 그 무엇에 끌리는 듯 달아날 힘이 솟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을까  내 얼굴을 좀 자세히 설명 해 줘요. 어떻게 생겼나…..나는 화상을 입은 뒤로는 얼굴 생김도 모르고 있어요……." 하고 그는 한쪽 눈만을 크게 부릅뜨고 거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한쪽눈에 박힌 검은 동자가 무섭게 빛난다고 영주는 생각했다. 영주는 그 사람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차마 무서워서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무심코 얼굴을 들어 영주가 눈을 보낸곳은 그 사람의 오른손에 까맣게 박힌 조그만 반점이었다. (어머나! 저 점은 선생님의 손에 있던 바로 그점이다.) 영주는 깜짝 놀라 다시한번 똑똑히 살펴 보았다. "틀림없다!" 영주는 용기가 솟아 무서움도 징그러움도 머리에서 사라져 갔다. "저! 혹시 XX여중에 계셨는지요 " "음 결국 너한테 들키고 말았구나!"하고 한숨을 푹 쉬면서 그는 한쪽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영주를 바라보았다. 영주는 와락 얼굴을 그 사람의 가슴에 묻었다. "네 얼굴을 본 순간, 벌써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지….." "선생님을 얼마나 찾았는데요 어디 계셨어요 " 너무나 기쁘고 반가워서 영주는 무섭지도 징그럽지도 않았다. 바로 선생님이었다. 영주가 존경하고 따르던 또 아까 꿈을 꾸던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이었다. "집에 불이 나서 이 모양이 되었다! 처는 이 얼굴이 싫다고 도망을 가고 나는 떠돌아다니는 몸이 되어 버렸지! 낮에는 몸을 숨기고 밤이 아니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밖으로 나오지……." "선생님! 늘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도 영주를 많이 생각했지. 그렇지만 이 곳을 지날 때 영주를 보아도 모른 척 했어." 영주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퍼붓던 비가 이제는 가랑비로 변해 있었다. 영주는 안 가겠다고 거절하는 선생님을 억지로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아! 오늘의 이 비는 내게 어떤 계시를 주려는 것인지도 몰라….." 돌아오면서 영주는 몇 번이고 이런 생각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