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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제 7회 콩쿠르 수상작(이진환, 정석희, 황경열)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993
<시부 장원> 아침의 노래 이진환(대구상고) (1) 세잎 클로버에 내려앉는 고요로 풀잎 꽃잎의 합창은 이슬로 구르고 막 마을 어귀로 온 빛으로 지피는 봉우리의 파문. (2) 돌을 씻은 냇물은 할매의 어설픈 등허리 곡선만큼씩 돌아오고, 머언 물래방아로 하여 깃푸른 새 벽을 돌리는 소리. (3) 꽃병으로 쏟아지는 햇살로 향기들은 제 방향으로 달려가고, 빨래하는 엄마손에 거품일 듯 부푸는 가슴이며, 세수하는 물소리로 파아란 종은 회를치고 신을 신는다. (4) 잠자는 바다의 고요에서 일어나는 태양이 그어 갈, 가는 대각선 하늘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지심(地心)에 발담근 죄로 돌아서지 못하는 나무의 웬만큼 자란손을 치 들게하고 지휘를 하면 이내 바람은 걸어와 창을 넘어오는 노래를 한다. (5) 이불을 덮어쓴 시각은, 많은 휘장으로 오는 햇살로 출구를 얼게하는 아침에 새벽의 노래 아직은 남아있는 노래를 아침에 앞서 전주하고 싶음에 태양의 연착을 새벽노래에 귀기울임으로 문을 연다. <소설부 장원> 약속 정석희(대신고) 석아는 지금 모래위를 걸어 오면서 혼자 비시시 웃고 있었다. 나룻터가 보이고 아버지의 손 흔드시는 모습이 보일 때에야 석은 공장에서 깨어나 가방을 웅켜 쥐고는 달음질을 쳤다. 늘 있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석아는 뱃사공 아버지를 그 하얗게 예쁜가시내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의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 선생님이 데리고 들어온 서울에서 왔다는 그 동그란 얼굴의 가시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석아의 가방을 가지고 집에 들어가시면 점심을 잡수시고 나오실 때까지 석아는 혼자 이 나룻배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언덕 뒤로 사라지시고 희야가 물에서 손을 뺏을 때에는 5월의 태양이 하얀 구름 사이로 분홍도 파랑도 아닌 너무도 고운 색을 발하고 있었다. 석아는 아까 제가 걸은 길을 보고있었다. 석아가 모랫길의 끝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길 위에 사람이 나타나고서였다. 갑자기 희야는 가슴이 첨벙 물에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얀 쉐타에 분홍 스커트를 입은 게 바로 그 가시내가 분명했다. 아직 가시내가 올려면 한참 걸리지만서도 석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은 왠지 몰랐다. 가시내가 멈칫 하다가는 희야를 빤히 쳐다보고 그리고 생긋 웃으며 나룻배 위에 팔짝 뛰어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석아는 이 배를 끌지 못했지만 올해 중학교에 들어 가면서는 이렇게 물살이 약한 때 혼자서도 충분히 끌 수 있었다. 석아가 빨간 얼굴을 가시내에게 보이지 않은 채 건너편에 배를 대었을 때 가시내는 보지도 않는 석아에게 생긋 웃어주고는 좁은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석아가 빤히 그 가시내를 쳐다볼 때 이마에서 말간 땀방울이 하나 파란 강물위에 똑떨어졌다. 다음날 희야는 학교가 파한뒤 열심히 집을 향하여 걸었다. 그 가시내가 석아를 부른 것은 모래언덕에 막 올랐을 때였다. 석아가 흠칫하여 뒤돌아 봤을 때 그가시내는 팔랑팔랑 뛰어서 석아 옆에와 같이 걷고 있었다. "저 구름 참 예쁘다. 그치 " 가시내는 석아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석아는 고개를 까닥 하며 피식 웃었다. 서울말이 어쩜 그리도 예쁘게 잘 어울리는지 몰랐다. 나룻터에 올 때 까지 석아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지만 그가시내는 연방 보조개를 지으며 미소하고 있었다. 나룻터에 와서 아버지께서 가방을 들고 집에 돌아가신 뒤에도 가시내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석아 맞은편에 와 앉았다. "시골은 참 재미있어. 나……. 시골 얘기 해줄테야  응……." 석아는 피식 웃고는 처음으로 그 가시내를 마주봤다. 보드라운 입술 사이에서 백옥같이 하얀 이가 반짝 빛났다. "빨리 해줘……. 응 " 가시내가 재차 졸랐을 때에야 석아는 고개를 까닥 하고는 입을 열었다. "난 아직 서울에 안가 봤지만…… 서울도 참 좋다던데 " "아냐, 시골이 더 좋아…… 으응. 시골얘기 해달라니깐……." 짜증조로 얘기하는 가시내의 말은 더욱 고았다. 석아가 뒷산에 다람쥐 얘기부터 여름에 참외밭얘기랑 반딧불 얘기를 마칠 때까지 가시내는 간혹 "으응……." 하고 알았다는듯 대답할 뿐 가방을 무릎위에 고자세로 얹은채 앉아있었다. 가시내의 눈망울 속에서 얘기하는 석아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는 그윽히나 행복해 보였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석아랑 그 가시내랑은 더욱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많아져만 갔다. 가시내의 살짝 늘어뜨린 까만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태양이 구름을 발갛게 물들일 때야 석아와 가시내는 언덕 위를 올라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석아가 나룻배위에서 그 가시내가 올 하얀 모래길을 쳐다보고있을 때 길위에 그가시내가 여늬때와같이 나타났지만 석아는 슬큼하고 놀랐다. 가시내 옆에 같이 오는 석아 또래의 중학생이 있었다. 배위에 오르며 생긋 웃어준 가시내는 그 남자애 옆에 쪼르르달려가 앉았다. 희야의 얼굴이 그전과는 다른 이유로 빨갛게 물들었다. 화가 나고 갑자기 가시내가 미워졌다. 저 남자애가 누군지 모르지만 말 한마디도 하지않고 옆에 가 앉아버린 게 석아는 무척이나 서운하고 불쾌했던 것이었다. 다른 날과는 달리 배에서 내리자마자 고개를 까딱해 웃어보이고는 총총히 사라지는 가시내가 얄미웠다. 희야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나룻터에 나가지않았다. 학교에서도 쉬는시간이면 바삐 나와버리곤 했다. 석아가 그 가시내와 만난 것은 일주일이 훨씬 넘은 뒤 가시내집에서였다. 거기서도 석아는 그 가시내가 얄미웠다. 선생님과 같이 하는 수 없이 병문안을 왔지만 가시내에겐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석아가 집에 돌아오는 길을 한참이나 따라오며 무슨 잘못이 있었느냐고……. 그리고 용서하라고 그전처럼 친하자고……. 그리고 몸이 아파서 내일은 서울병원에 갈텐데 꼭 편지해달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석아는 "몰라……." 하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집으로 뛰어와 버렸다. 논둑길을 뛰어 오면서 석아는 마음속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며칠 후 가시내에게서 그때 그 남자애는 그 가시내의 사촌오빠이고 그리고 모든게 미안하다는 편지가 왔을 때야 석아는 발간 종이 위에 또박또박 아름다운 사연을 서울로 띄웠다. 언제고 다시 만나서 또 그전처럼 재미있는 시골 얘기해달라는 가시내의 말에 꼭 그러겠다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써서는 띄웠다. 지금에야 저 하늘에 구름이 움직이고 태양이 빛을 발한다. 그 가시내가 용서해 달라고 할 때 환하게 웃으며 서울에가서 꼭 병이 나아가지고 오라고 했더라면 지금은 그 가시내와 이 싱그러운 보리내음을 같이 맡으며 재미있는 얘기를 할텐데……. 아마도 가시내만이 정성스러웠던 약속이기에 그럴거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석아의 검싯한 눈에서 눈물이 굵게 고였다가는 풀위에 떨어졌다. 그때 그러겠다고 대답할걸……. 석아는 신이 정한 이 미묘한 가시내만의 약속이 지금 이 파릇한 보리냄새를 타고 흘러옴을 느꼈다. 눈물에 범벅이 된 하얀 구름송이 가운데 하얗고 예쁜 가시내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 구름송이 가운데 가시내는 하얗게 웃으며 다음에 꼭 만나자고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눈을 깜박 해 보였다. 석아의 손이 펴지고 그러겠다고 꼭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파란 잔디위의 석아가 구름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 했을 때 보리의 고개가 바람에 일제히 흔들리고 있었다. 석아는 지금 그 가시내가 없는 석아만의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가시내의 약속이 저 구름 위에서 기다리길 빌면서……. 뜸부기의 울음이 봄바람을 타고 흘렀다. "뜸북……뜸북……." 섧게 섧게 울고 있었다. 가시나의 혼인양……. <수필부 장원> 절 황경열(정동고) 오늘같이 막연한 공허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내 책상 서랍위 조그마한 돌앞에 앉아 무한한 싱그러움을 안겨다주는 곳으로 먼 길을 떠나곤 합니다. 독한 회의를 자아내는 요즈음의 일상, 항시 나의 뒤를 따라다니는 느슨함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안간힘이 이런 습성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이끼가 말라서 엷은 푸름을 보이고 있는 이 돌은 항시 나의 어린시절을 안겨다주어 좋은 것입니다. 어린 싱그러움이 있어서 좋은 것입니다. 나의 어린시절을 「M」이라는 조그마한 도회에서 보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할머니손에 이끌려서 그곳에서 한참을 걸어가는 조그마한 암자엘 가고는 하였습니다. 이 돌은 암자를 조금 앞둔 약수터에서 주은 것인데, 하얀색을 간간히 나타내며 푸른 이끼에 싸여 잇는 것이 어린나의 호기심을 끌기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암자엔 할머니의 오랜 친구인 역시 할머니인 스님이 계셨습니다. 처음 이 할머니 스님을 뵈었을 때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복장하며 깎은 머리, 그리고 염불하시는 모양이 퍽 신기하여 일종의 두려움마저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뒤 곧 나는 그 할머니 스님을 따르게 되었는데 그러한 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가 아니었나 합니다. 아버지 사업관계로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식구 모두가 서울로 이사를 온 것입니다. 그때 나는 책가방 한 가운데에다 이 돌멩이를 무슨 보물인양 넣어 왔는데 이것이 나에게 커다란 도움을 줬다고 안 것은 최근에 와서였습니다. 나의 사투리하며 촌티나는 나의 모습은 쉽게 친구를 얻을 수 없었고 그럴때면 나는 이 돌을 안고는, 나의 고향과, 할머니와 같이가던 그 암자, 그리고 서울로 오기직전 나의 머리를 쓰다음으시며 염불하시는 그 할머니 스님을 생각하며 나의 어린 소외를 달래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점점 미운성장을 계속할수록 조금씩 변해가서, 지금은, 번거로운 나의 일상을 피할 수있는 유일한 휴식처이기도 한 것입니다. 서울에 처음와서 할머니는 급격한 ‘늙음;을 보이셔서 귀도 잘 안들리시게 되고 눈까지 어두워지셨습니다. 항시 입버릇처럼죽기전에 고향엘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말씀하시지만, 칠순을 넘으신 노인인데다 눈, 귀마저 어두워지셨으니 엄두도 못낼 일이었습니다. 급기야는 나로 하여금 지난 여름에 고향엘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고향은 외형부터 완연한 변화를 보이며, ‘도청은 M으로’라는 표어와 함께 무한한 성장을 하고 있었으며, 골목근처 어린 친구들도 모두가 미운 성장을 하고 있어 나로 하여금 실로 커다란 실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할머니의 부탁과 나의 어린시절의 꿈을 그리며 나는 암자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은 그 때나 다름없이 시냇물과 울창한 숲과 산토끼들이 있어서 나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정녕 즐거워해야할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습니다. 커다란 바위아래에 언젠가 할머니를 따라서 가본 적이 있는 암자는 그때의 그 모습으로 조금의 변화도 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쁘게 하였으며, 그 할머니 스님도, 조금의 변화도 없는 모습으로 나의 손을 잡으시곤, 서울로 가기 전에 들렀을 때처럼 염불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어린시절의 내가 처음 스님을 뵈었을때 이상스러운눈으로 쳐다보던 그 머리하며 차림새의 느낌들이 완연한 탈바꿈을 보이고 있었고, 나의 마음속 깊이 그분의 염불하시는 모습이 파고 들어 왔습니다. 억겁무상의 의미로 바위는 암자를 안고 있었고, 어렴한 빛을 아낌없이 부어주는 석양에, 그 분의 염불은 실로 무한한 깊이로 안겨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로 올제 나는 또 하나의 돌을 가지고 왔는데, 이 돌은 지금 할머니방에다 두었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자리에 누우신 몸이어서, 언젠가 소풍갔다 사다 드린 염주알을 한알 한알 굴리시며 돌아가실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도 나는 나의 서랍위의 돌을 들여다 보다 이내 할머니를 생각하고는 할머니방으로 달려가 할머니와 시간을 같이하곤 합니다. 나는 이 돌을 간직하는 한, 나의 어린 시절의 싱그러움과, 할머니와 같이가던 그 암자를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며, 억겁무상의 의미를 안겨주던 그 할머니 스님의 염불외는 모습을 생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