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제 9회 콩쿠르 수상작(노재하, 이병천, 김선자)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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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장원>
한강
노재하(중동고)
아직은
물의 빛깔을 정하지 말게나
우리는 그 곳에서
우뚝 우뚝 솟아나온
한강교의 기둥이니까.
양들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그 피의 흐름을
우리는 막으려 하지 못했다네.
내,
가장 깊은 물 속에서 지금껏 맴돌던
단 한 개의 돌을 찾아
낙산사 앞바다에 던질까
인수봉 꼭대기에 올려 놓을까
십리나 먼 곳에 반짝이는
저 사물의 조각들을 모아
광화문 네거리에 놓아둘까
할머니 비석 앞에 묻어 둘까
물의 깊이를 재기에 너무 이르다네
지금도 우리의 낚싯대가 휘청거리고 있으니.
<소설부 가작 1석>
분수대
이병천(덕수상고)
포도원 뒷숲을 흘러내리는 맑은 돌들의 여울물이 제법 쌀쌀했다. 세상의 푸르름을 모두 빨아들이기라도 한 듯이 하늘은 점점 파아랗게 채색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곤 포도원 뒷숲의 갈참나무숲 청머레 넝쿨은 모두 누렇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까실까실한 잔디에 드러누운채 코스모스의 가녀린 줄기사이로 보이는 분수대의 석고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죽은 이후로 나는 분수대 둘레에 코스모스를 심어 왔고, 늘 이곳에서 화사한 분수대 석고상을 응시하며 지내기로 했다.
둔덕에, 분수대 둘레에 가득 피어있는 코스모스의 아린 향기를 맡고는 나는 이내 시선을 먼 하늘 구름에다 주어 버렸다. 그리곤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워지는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작년이었다. 나는 늘 방과후면 곧장 포도원으로 돌아와 분숫가 잔디에 드러누운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포도원 밖에선 쾌활한 아이들의 외침소리가 들려 오고, 세상은 밝게도 아름다웠지만 나의 꿈은, 나의 희망은 부자연스러운 다리로 말미암아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다른 아이들에겐 소외된 것같이 보였지만 그것은 나에겐 하나의 오붓한 즐거움일 수도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다리로 거리에서 뭇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것에서 해방이 되는 때이였다. 이곳만은 나만이 제왕으로 군림하는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이곳을 찾는 것은 습관을 초월하여 거의 생활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곳에 오면 늘 가느다란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오는 분수를 바라보곤 했다. 분수대가 포도원에 생긴지는 오래되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요량대로 포도원 선전하기 위해서였지만, 가을이면 이미 채과해 버려 텅빈 포도원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작년이었다. 늘 습관나던대로 학교에서 돌아와 나는 가방을 내어 던진채 분숫가에 벌렁 누워 버렸다. 초가을의 햇살은 제법 따가왔지만 그런건 상관하지를 않았다. 한참을 잔디에 누워 그리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이리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늘 이곳에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에 방심하고있던 나는 일어설 여유를 잃고 말았다. 어색하게 뒤척이며 고쳐앉은 나에게 한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얀 브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화구와 이젤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 포도원이 어디서 끝나지요 ”
“저기지요.” 나는 퉁명스럽게 포도원의 북쪽기슭을 가리켰다. 포도원은 구릉위에 있었고. 따라서 그 구릉이 끝나는 곳에 포도원 철조망이 있었다. 그녀는 곁에서 더 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어머, 분수가 멋있네요. 이곳에서 그림을 그려도 될까요 ”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반가움보다도 반발을 느꼈다. 늘 혼자이던 자신을 침해당한 기분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그녀가 여지없이 짓밟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는 하루종일 기분이 침울했다. 내가 현과능ㄹ 들어서자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자야를 만나보았니 ”
“자야 자야라니요 ”
내가 이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내게 일러 주셨다.
“건너 마을에 이사온 교원네 딸이란다. 분수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아까 그리로 갔는데…….”
어머니는 그이상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나는 아무 말없이 내방으로 들어갔다.
“자야, 자야라구!”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들리듯 했다.
그일이 있었던 며칠간을 나는 분수대를 가지 않았다. 석고에 이끼가 끼어 검푸르게 되어버린분수대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겨울눈에 얼지않게 포도줄기를 짚으로 싸아 주어야 했다. 아버지랑 일꾼들과 같이 포도밭으로 올라갔지만 나는 퇴화되어 버린 다리로 말미암아 그저 보는 정도로만 그쳐야 했다. 일을 끝마치고 분숫가를 지나다가 아무 생각없이 그곳 잔디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리곤 가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누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곤 가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누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얀 브라우스, 자야였다. 자야는 먼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좀 어색한 기분이었지만, 첫 번과는 달리 그녀와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젤을 분숫가에 세우고 수채로 석고상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자야는 매일 포도원에를 나와 주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면 나는 곁에서 그녀의 그림을 드려다 보거나, 무성한 분수의 물방울이 수면에 그리는 무수한 동심원을 바라보곤 했다. 자야의 집은 포도원 울타리 옆을 지나가는 철로를 건너 읍내 마을에 있었다. 자야는 분수대, 그 석고상이 제일 좋다고 했다. 몇 년을 비바람에 씻기어 푸르스름하게 변해버린 석고상의 미소가 어쩌면 죽은 어머니의 웃음같다고 말하면서 허공에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곤 했었다. 나는 그러한 자야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얀 안색과 긴 머리칼과 하얀 브라우스의 모습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분숫가에서 한참을 누워 있어도 자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좀 무료했다. 천천히 포도원의 철조망을 빠져나와 철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철길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가면 이윽고 자야네가 밟고 가는데 멀리서 한패의 아이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다가오자 갑자기 그들중의 커다란 아이가 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곤 나를 철길옆 풀밭에 세차게 내동댕이쳤다. 그녀 동생의 차디찬 냉소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정신엇이 일어나 그 녀석의 멱상을 잡고 한 대 후려쳤다. 그러나 오히려 쓰러진 것은 나였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고막을 두들겼다. 조소의 웃음소리였다.
나는 미친 듯이 철길을 따라서 비틀거리며 뛰었다. 뒤에서 아이들이 무어라 외치는 듯 소리가 들렸으나 이를 악물고 침목만을 보며 뛰었다. 저쪽에서 누가 급하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얀 ‘브라우스’. 자야였다. 무언가 얼굴이 끈적끈적해서 손등으로 씻었더니 검붉은 피가 묻어났다. 자야는 무어라고 소리치며 급하게 손짓하며 뛰어왔다. 내 등뒤를 자꾸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으로 마구 달렸다.
그때에 비로소 등뒤에서 세찬 기차의 기관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날카로운 기적소리와, 자야의 외침과 함께 나는 철길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기차가 지나간 후에 정신을 차린 나는 아연했다. 피피, 피다! 선홍빛 피에 물들인 자야의 하얀 브라우스 그녀는 형체를 찾을 수도 없게 무참하게 죽어버린 것이었다. 철길 연변 풀잎에 스미는 새빨간 핏자국, 그것은 예리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몹시 푸르게 보이고 주위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멀어져 가는 듯 했다.
자야가 죽은 다음해부터 나는 분숫가를 코스모스로 가득 채우기로 했었다. 코스모스의 줄기와 같이 가녀린 몸매의 자야를 위하여 자야가 죽은 어머니의 모습같다던 분수대의 석고상은 새로 하얀 옷을 입혀 그 모습을 그리던 자야의 모습으로 꿈꾸기로 했다.
<수필부 장원>
안경
김선자(성신여고)
‘안경’하면 먼저 김선생님의 커다란 안경이 생각난다. 그 안경은 맨처음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호기심과 막연한 두려움을 가슴이 파들거리도록 긴장시켜준 물체다. 처음 김선생님이 교단에 올라서시자마자 한누에 들어온 것이 그 검은 테의 안경이다. 몸집이 작은편이신 선생님이기 때문에 안경이 더 커보였는지, 선생님 얼굴은 온통 안경으로 면적을 꽉 채워버린 것 같았다. 안경 하나만으로 단번에 선생님은 감히 쳐다볼수없을 만큼 위엄을 지니셨다. 반 아이들 전체가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며칠 동안은 선생님을 무척도 두려워했다. 하지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겨오가할수록 그 안경은 두려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선생님보다 김선생님은 인자하신 분이셨다. 요즈음은 오히려 선생님 안경이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다.
안경은 어떤 위엄을 지는 물건인가보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목사님은 안경을 쓰신 분이라야 어울릴 것 같다. 오빠는 여자가 안경을 쓰면 점수가 깍인다고 내가 안경을 낀다면 극구 반대를 한다. 안경은 사람의 얼굴을 제 마음대로 변화시켜버리는 어떤 매력을 가진 물체인가보다.
그저 투명한 유리에 테를 둘렀을 뿐인데 사람들은 온갖 희극을 빚는다. 김선생님이나, 안경 덕분에 목사란 칭호를 받았다는 익살투성이의 내 친구나 모두 안경으로 해서 얻은 웃음이다.
골목길에서 안경을 주워들고 ‘누가 눈을 잃었구나 쯧쯧’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처럼 안경은 우리와 뗄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수업을 하다 말고 문득 교실을 둘러본 때가 있다. 그리곤 전에 느껴보지 못한 사실에 깜짝 놀랐다. 교실에 꽉차게 앉은 아이들의 반수 이상이 모두 안경을 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교단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고 계시는 선생님까지도 안경을 끼신 선생님이었다. ‘픽’ 혼자 웃어버렸지만 그후 가끔 엉뚱한 공상을 하곤한다. 안경을 낀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다가 안경이 없던 옛날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원시인들은 안경을 만들어낼 필요도, 안경이 갖는 어떤 억측도 없었을텐데……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게는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점차 시력을 잃게되고 많은 정신병을 얻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안경을 끼게 된다면! 대낮의 종로거리는 아마 햇볕에 번쩍거리는 안경들이 빼곡이 길어가겠지…….
만약 나에게 어떤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같은 안경이 있다면, 알쏭달쏭한 사람의 마음까지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떨까 또 다음에 올 일들을 내다볼 수 있는 안경이 있다면…… 오히려 세상은 재미가 없어지리라. 삶에 대한 신비가 없어진다면 인생은 훨씬 더 무의미해지겠지.
가끔 칠판이 안 보일 때마다 친구의 안경을 빌려서 껴본 적이 있다. 칠판 위를 아물아물 기어다니던 글자들이 안경 속에서는 마치 사열하는 군대처럼 질서정연하고 정확한 모습이었다. 안경은 거짓을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어떤 사람이 나쁜 것을 보고 안경을 집어던진다해도 끝내 안경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 좋고 나쁜, 무슨 일이든지 초극한 성인들처럼 교훈까지를 주는 물건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조그만 안경까지도 나에게 큰 교훈을 준다는 것을 생각한다. 사회가 어지러워질수록, 혹 나의 마음 가운데 어떤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 때는 안경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겠다. 안경! 그냥 마알간 유리알에 테를 두른 물건, 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엮어지고 또 나에게 많은 생각을 주는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