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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제 12회 콩쿠르 수상작(손동연, 한장원, 채희문, 김명숙)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840
<시부 장원> 타령 손동연(광주동신고)1) 주머니 속 오원짜리 동전이 해묵은 먼지를 털며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내고 있는 마음 뒤안 아카시아 나무에 기대어 성한 풀잎이나 시방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해뜨는 법 새로이 배움을 위하여 종일 끝없이 불을 밝혀도 시집가버린 누님이나 어린뿌리 다루듯 나를 보시며 별을 보는 눈으로 나를 지키던 어머니의 옷섶에서 조금씩 묻어오는 사람의 빛깔. 그 자리엔 그리운 이들 같이 할 노래의, 낭낭한 노래의 바람 일어라. 오월엔 꽃망울 터져 환희의 목관악기를 두들기는 바람, 버꾸기 울음소리도 꽃시샘하듯 서럽게 걸어오는 문득 저 싸아한 아카시아 향길에 서서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용용 죽겠지, 술래야 죽겠지 누님이랑 쫓고 쫓기고 쫓고 쫓기고…… 아아, 목 언저리 어디쯤 와서 머무는 나는 그 천명의 하늘을 보리. 빼앗긴 자리마다 떨리는 것은 아름다워. 견고한 무화과나무의 가쟁이 우로 떨어져 흔들리는 햇살은 아름다워 빈 갑성의 문으로 한나절 햇?이 드나들 때 어디선가 개화의 날, 씨앗 맺히는 소리 낭낭한 노래의 바람 속으로 갈 길 준비하는 세월, 그 울음. 나룻배 타고 시집가던 내 가난한 누님의 젖은 어깨 우로 꽃잎은 떨어지고 당신의 눈 속에 서럽게 피어오르던 저녁 노을 같이 사랑의 밀도, 햇살의 비늘이 이울 듯이 듣는 오우러 상순 한나절 나는 비켜서는, 아아 왼통 비켜서는 몸짓만 한다. 꿈 깨어도 다시 꿈 들어도 꽃잎은 살아오지 않는다. 간밤내 별빛을 쓸어내려 한방울 이슬이 맺히듯 손을 내어미는 내 감흥의 잔잔한 물결. 바람 일어라 마음 뒤안에 마음 뒤안에 비늘을 들고 부대끼는 실개울, 낭낭한 노래의 바람 일어 나를 일어서게 해다오. 성한 풀잎이나 시방 엷은 가슴에 머무는 모든, 그 모든 대답을 위하여 사랑이여. 오월 한 날의 아카시아나무여. <소설부 장원> 소나기 한장원(동대부고) 나는 걷고 있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제외하고는 몇 해 째나 다니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일요일. 봄볕이 따갑도록 어깨에 쏟아지고 있는 오후였다. 오른편으로 비스듬하게 꺾어진 골목으로 접어들면서 나의 눈은 먼저 그곳부터 찾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두발을 모아 무릎을 꿇은 채로 엎드려 이마가 아스팔트로 된 길바닥까지 닿도록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는 두 손을 벌려 마구 헝클어진 머리의 앞에 놓은 채의 그가 여전히 꼭같은 그 자리에 꼭같은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것이다. 그의 손바닥에는 10원짜리와 5원짜리 동전이 몇 개 놓여 있었고, 손의 옆으로도 몇 개의 동전이 흐트러져 있었다. 어느 동전은 그의 손으로부터 거의 1미터나 되는 지점까지 굴러 나와 있었지만, 그것들은 누가 보기에도 그의 동전이라는 것을 똑똑히 드러낸 채로 있었다. 어느 사람도 흘려 나온 그 동전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동전을, 마치 다른 사람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지갑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쉴 사이 없이 가고 오는 사람들 중의 대부분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채로 마치 나는 그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냥 간다는 투로 지나쳐 갔으며 그들 중 어떤 일부는 그의 활처럼 굽은 등 위에 시선을 보내다간 깜짝 놀라기라도 한 듯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또 어떤 이들은 그의 펼쳐진 손바닥 위에 동전을 한두 개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그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못하고 있었다. 떨어진 동전이야 손바닥을 빠져 나와 길에 구르던 말던 그들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그의 앞에 떨어뜨리기가 바쁘게 주위를 흘끔 살피곤 걸음을 빨리 해버리는 것이다. 그의 엎드려 있는 그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의 그 모습에서 자기의 어떤 새삼스러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지도, 아니면 그가 두려워서, 그의 모습이 너무나 눈이 부셔서, 그들은 모두 그를 피하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가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고, 그의 앞을 지나칠 때엔 온몸이 떨리기까지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골목 엎드려 있는 그의 시선을 등 뒤와 뒤통수에 느끼면서, 그 끈적끈적한 느낌을 벗어나려고 걸음을 더욱 더 빨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곳에 똑같은 모습으로 있기 시작한 것은 아마 지난겨울이 시작될 무렵일 것이다. 아무 느낌도 없이 그의 앞을 지나쳐다니다가 어떤 날엔가 갑자기 그가 거기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를 생각해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내가 그를 처음 의식할 때 느꼈던 어떤 죄스러움 같은 것이 그로 인하여 더욱 강해져 버렸다. 그 겨울 내내 나는 그의 앞을 지나갔다간 지나오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의식한 첫날 이래로 나는 쉴 사이 없이 그를 감시하려 해왔다. 하지만 내가 그 골목으로 접어들면서부터 그 골목을 돌아 나올 때까지 나는 그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 골목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아니 그 골목이 가까이 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벌써 그의 눈초리를 느끼기 시작해야 했으며, 그 골목을 벗어나 한참을 나올 때까지도 그의 매서운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떤 대는 끈적끈적한 그의 시선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꿈속에서조차 그의 시선을 받고 소스라쳐서 깨기까지 했다. 어떤 힘을 그가 가졌는지 나는 지독히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강한 호기심이 나를 겨울 내내 휘어잡고 있었다. 겨울동안 그의 앞을 지나다니면서 나는 그의 얼굴이라도 보려 애썼다. 꿈속에서 나는 분명히 그의 날카로운 눈을 보았으나 깨어난 후 내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꿈속에 그가 나왔었다는 사실, 그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의 앞을 지나칠 땐 일부러 구두를 힘껏 내밀어 구두소리가 크게 나도록 해보았고, 그의 손바닥에 열 개도 넘는 동전을 떨어뜨려 보기도 했으며, 어느 날에는 그의 손끝을 두둣발로 밟아 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내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단지 몸을 한번 꿈틀하는 일조차 하지를 않았다. 그가 몇 시쯤 와서 몇 시쯤 돌아가는지, 또 그가 과연 돌아가기는 하는지를 알아보려 했으나 그것도 역시 허사였고 그가 점심을 어디서 어떻게 먹는지, 동전들은 어떻게 하는지 그에게도 부모나 형제 혹은 자식이 있는 지까지도 모두 궁금했으나, 어떻게 해야 알아낼 수 있는지 조차 모르는 채로 그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단지 한 가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돈을 그가 어떻게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같이 느껴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그의 손바닥엔 동전 아닌 백 원짜리 백통돈을 떨어뜨려 보았으며, 또다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종이돈을 그의 손바닥에 놓아보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 겨울 내내 그는 단지 얇은 그리고 군데군데가 헤지고 떨어진 옷 하나만을 입고 지냈으며, 그것이 또한 나를 몹시 자극시켰다. 다 떨어진 옷 속으로 보이는 그의 흰 살과, 가늘고 긴 그의 목 그리고 덤불같이 헝클어진 그의 머리 등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몹시도 미안하게 만들었고, 불안하게 만들었고 안타깝게 만들었으며 거의 죽음과 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보는 일이 두려워 먼 길로 돌아서 다니기까지 했으나, 역시 거의 시선은 내 몸에 붙어 다녔고, 오히려 더욱 더 심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그길로 돌아왔으며 그의 모습을 하루에 두 번씩 꼭꼭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그는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난 일이 없었다. 활처럼 휜 그의 등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눈송이가 수북이 쌓이더라도 그는 그 모습을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로 여전히 엎드려 있을 뿐이었고, 바로 옆에서 싸움이 나고, 혹은 지나가던 사람이 걷어찬 깡통이나 돌멩이가 그의 옆구리에 가서 맞더라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그의 자세는 조금도 허물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그는 하나의 성으로 보였으며 또한 하나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닌 나의 죽음이었다. 나는 그의 앞을 지날 때마나 한 번씩 죽었고, 그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의 유리창을 뚫고 내 가슴에 박힐 때마다 죽었으며, 그가 꿈에 나올 때는 꿈에서가 아니고 깨어있는 채로 죽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의 존재를 견뎌 내기가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존재는 나의 죽음, 나의 부재였고, 나는 매일 매일 그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에 제발 이번에는 그가 그 자리에 없어 주기를 간절히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그것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고 나는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상태로 빠져 들어가기만 했다. 내가 잊으려고 애 쓰면 애 쓸수록 그는 점점 더 깊숙하게 내 가슴 속에 새겨졌으며, 내가 그를 보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더 뚜렷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면서 그 겨울을 넘겼다. 그리고 새봄을 맞으면서 나는 좀 더 대담해지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 겨울 동안 나는 그가 차라리 얼어 죽기라도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 봄이 오고 점점 날이 따뜻해지면서까지 그가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게 되자, 나는 더욱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으며 그걸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대담하게, 그에게 직접 부딪혀 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날이면 날마다 그를 없애버릴 궁리만 했다. 그에게 돈이라도 주어 어디 다른 데로 가든지 하라고 하자, 그의 돈을 집어와 보자, 안되면 그를 내 손으로라도 죽여 버리자, 갖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나는 그 중 아무것도 택할 수 없었다. 좀 더 효과적이고, 좀 더 확실한 것을 궁리해 내기 위해서 나는 할 일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가면서, 식사까지도 맛이 없고 먹을 욕심이 나지 않아 안 해가면서 궁리에 궁리만 했다. 내가 그를 없앨 궁리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는 그가 조금은 덜 두려워졌다. 어차피 그와 나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버렸으며 그렇게 된 이상에는 그를 피하려 노력할 것도 그를 두려워할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일요일에도 그를 보러 나갔고,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가 어떤 행동을 해 나갈지를 감시하고 연구했다. 한번이라도 더 그를 보려 애썼고, 조금이라도 더 그를 보고 있으려 했다. 어쩌면 그를 보지 않는 일이 두렵게 되어버렸다. 그를 보지 않으면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오히려 더 두려워지고 그를 보지 않고 있으면 자꾸만 지금쯤은 그가 그 자리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해서 도저히 그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그를 그 자리에 없게 하려는 궁리가 자꾸 헛되이 빗나가기만 하게 되면서 나는 더욱더 마음을 굳게 다지기만을 되풀이했다. 이틀 밤을 그 때문에 꼬박 새운 다음날 아침에 나는 그를 내 손으로 없애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온몸이 떨리는 흥분과 기쁨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그를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없애려는 일은 벌써부터 생각해내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그것을 감추려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일을 조금도 더 참을 수 없게 된 이제에 와서는 어떤 일이라도 해 버리지 않을 수 없었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 즉 직접 그를 없애는 길을 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날 나는 피로도 잊은 채로,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맛있게 배불리 하고서 집을 나섰다. 그 골목으로 접어들자 똑같은 모습의 그가 보였고, 그의 모습조차 내게 우습게 느껴져 왔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행운의 전조라고 느끼면서 그의 앞을 경쾌한 구둣소리를 내면서, 휘파람까지 조그맣게 불어가면서 지나쳐 갔다. 그러면서도 내 눈은 약삭빠르게 그의 모든 모습들을 다시 한 번 훑어 내렸다. 이제 정면으로 대결하게 되었으니 좀 더 치밀한 계획을 짜야 하겠고, 그러자니, 그를 다시 한 번 세밀히 관찰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조금도 다름없는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조그만 움직임조차 없이 마치 길의 일부인 양 그 자리에 못 박혀 버린 것이다. 내가 그 골목을 돌아서서 나오려 할 때 내 가슴은 또다시 어두워지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눌러버렸고, 발걸음을 좀 더 빠르게 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때만 기다렸다. 어느 때가 좋을지 무척이나 망설이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는 며칠 째 그 자리에 못 박힌 것 같이 엎드려 있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는 10원짜리 동전이 일곱, 5원짜리가 셋, 그리고 50원짜리가 하나, 또 손바닥 옆으로 10cm쯤 떨어져 뒤집혀 있는 1968년에 제조된 10원짜리가 하나, 나는 이 모든 것을 감고서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째 그 동전의 수효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옆에 떨어져 있는 10원짜리조차도 그대로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낮의 그토록 따갑게 느껴지던 햇볕이 사라져 버린 요즘 봄의 저녁은 아직 약간은 음산하고 서늘한 기운마저 지니고 있었다. 때는 물론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는, 초저녁과 밤의 사이, 인적이 뜸할 때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날은 아직도 정할 수가 없었다. 며칠 째나 나는 그의 주위만 맴돌았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봄날의 변덕스런 날씨는 아침부터 갑자기 바람이 불고 스산해지는 것 같더니 급기야는 내가 나갈 시간인 여섯 시 경에는 비를 부르고야 말았다. 나는 그날이 제일 좋은 날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있는 골목으로 우산을 받쳐 든 채 돌아선 나는 그가 빗속에 아무도 없는 길에 똑같은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마구 뛰려는 가슴을 돌려가면서 천천히 조금씩 그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로 거의 다가섰을 때 골목 맞은편에서 한 꼬마가 우산도 들지 않은 채로 뛰어나왔다. 그는 가만히 서 있는 나를 한 번 흘낏 보고는, 골목을 통과해서 부지런히 사라져 버렸다. 꼬마가 사라진 뒤로 비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이제 바로 그의 곁에 와 있었다. 그와 한발 정도의 거리도 안 되는 곳에서 우산을 한 손에 든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를 맞고 있는 그의 몸뚱아리가 자꾸 작아졌다간 다시 커지고 다시 작아지다간 커지기를 거듭했다. 동전이 비를 맞고 있었고, 그의 손바닥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우산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몸 위에 씌웠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진 빗방울들이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한참을 그러고 서 있어도 그에게는 아무 반응조차 없었다. 갑자기 견딜 수 없는 분노가 공포까지를 데리고 내게 부딪쳐 왔다. 나는 발을 들었다. 구두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서 튀어나갔다. 그의 옆구리에 발을 올려놓고는 옆으로 힘을 주었다. 그 다음을 나는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모른다. 한참을 달려 나온 내 손엔 우산이 그래도 들려있었다. 나는 길을 건넜다. 육교를 올라 중간에 왔을 때 아직까지도 오른손에 들려 있었던 우산을 힘껏 내던졌다.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트럭의 모습이 내 눈 하나 가득히 들어왔다. 내 가슴속으로 빗물이 고랑을 이루며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내 얼굴이 빗물과 눈물로 범벅이 되는 줄조차 모르면서 난 육교 위에 서 있었다. 영원히 영원히 아주 영원히 그 자리에 서 있기라도 할 것처럼. <소설부 가작 2석> 소나기 채희문(경희고)2) 마른 가랑잎을 놓으면 금시라도 불이 붙을 듯 하던 한 낮의 무더위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지금은 숨을 들이쉬는 가슴속까지 썰렁할 지경이었다. 역시 진식에게서 가장 즐거운 낙이라면, 이렇게 시원한 여름밤에 멍석을 깔고 편히 누워 낮에 겪은 일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깜깜한 곳에서 와사사 들려오는 나뭇잎 소리는 오늘밤 따라 더욱 크게만 들려왔다. 그리고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등잔 붙빛 또한 진식의 누워있는 가슴속으로 환하게 밀려 들어와 더욱 눈을 말똥거리게만 했다. 내일이 바로 진민이의 생일인 것이다. 남들은 생일이라면 떡도 해주고, 장이 서는 면에 나가서 과자도 사주고 하건만, 부모님이 안 계신 진식으로서는 어떻게 해 줄 도리가 없었다. 단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 딱하다는 생각만이 마음 깊이 깔려와 위로 한마디로 그치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유난히 더운 날이 며칠이나 계속되는 바람에 진식으로서는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어제 수입이 8백 원, 오늘 수입이 7백 원 해서 이틀간에 1천 5백 원의 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무거운 아이스케익 톼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