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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제 14회 콩쿠르 수상작(김상욱, 이재홍, 정의정)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015
<시부 장원> 악수 김상욱(대구고) 하오의 햇살이 눈물처럼 이우는 강가에서 헤어짐의 손을 잡으면 두 손 사이로 젖어내리는 아지랑이 참 조용히 눈웃음으로 지고 만 부신 꽃잎의 살 속에서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몇만길 내 울음을 일깨우는 그대의 발자국 소리, 아득히 멀어져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그 하늘 끝간 데를 알 수 없지만 멀리서서 오히려 잘 들리는 물소리처럼 손잡고도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오히려 눈부신 희생으로 봄 여름 부쩍부쩍 자란 과일나무의 치렁치렁한 가지에서 꽃이 이울 듯, 사랑은 시방 밀밀이 고인 과육의 내밀한 언어를 비추며 흐른다 그 살 속에서 모두 환하게 비치는 하오의 햇살이 눈물처럼 이울며 강가에서 참 조용한 눈웃음으로 지고 있다 헤어짐의 악수를 나누면서도 눈부시게 은혜로운 해후를 믿는 듯이 <소설부 장원> 바람이 불던 날 이재홍(서라벌고) 새는 노래를 부르고, 나비는 춤을 추는 언덕에는 아지랑이가 즐거운 함성을 지르며 하늘을 오르는 선녀의 치맛자락처럼 하늘거리고 있다. 백동전을 깔아놓은 듯한 건너편 바다 위에는 돛단배가 황홀한 듯이 거닌다. 중턱에는 허리끈을 풀어놓은 것 같은 길이 읍내를 향하였고 조그마한 학교가 운동장 없이 세워져 있다. 언덕 아래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이 버섯들을 연상케 한다. 조용한 공기를 흔드는 종소리가 학교에서 울려 퍼진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듯하더니 문을 박차고 나오는 아이들. 키가 크고 작은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온다. 그런데 책보자기를 축 늘어뜨린 키가 조그만 아이가 힘없이 걸어 나오고 있다. 옆에서 뛰려고 자세를 잡던 아이가, “야 민수야 너 왜 그렇게 힘이 없냐. 자식 오늘 기성회비 안 낸다고 꾸중 들었구나.”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민수는 “그럼 너는 냈니 ” “아니다 우리 아버지가 모레쯤은 고기 많이 잡아가지고서 돈을 주겠다고 털보선생님께 약속했단다.” “그래 넌 좋겠구나.” 앞에 놓인 조약돌을 툭 차면서 달린다. 뒤에서 조금 전의 종현이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같이 가자고……. 얼마나 뛰었는지 숨이 차서 밭고랑에 놓인 돌에 걸쳐 앉으며 갓 피어난 키 큰 보롤의 목을 잘라 질근 씹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아버지…… 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안 울기로 엄마하고 약속했는데…….” 까아만 얼굴의 눈에서는 조그맣게 뭉쳐진 물방울이 턱을 향해 달린다. 소맷자락을 늘여서 닦아내곤 한다. 바다로 향한 눈은 증오에 찼다. 아니, 바다가 아니라 요사스럽게 바다의 물결소리를 안고 오는 실바람이 미웠다. 그때도 오늘 같이 잔잔한 날씨인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서 배를 뒤엎어 놓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앗아간 바람. 그 세찬 힘과 대결하여 꺾어놓고 싶은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아닌 가난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가난의 바람과 먼저 싸워 이기고 싶은 민수는 하늘을 찌르듯 주먹을 휘두른다. “기성회비 때문에 큰일이란 말야?.” 배가 고파서 집으로 줄달음질친다. 집에 와서 마당에 이르니 다섯 살 먹은 동생이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동생은 기쁜 듯이 “오빠, 나랑 소꿉장난하자.” 얼른 부엌에 들어가서 입에 뭔가를 한 움큼 넣고 와서 “엄마 어디 갔냐 ” “또, 조개 주우러 갔어.” “체, 우리 반 아이네 엄마는 조개를 주워서 진주도 꺼냈다고 하던데, 우리 엄마는 뭐야  그걸 꺼내면 내 기성회비쯤은 내고도 남을 텐데.” 또 부엌으로 들어간다. 부엌에서는 사기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해가 저물어 갈 때 빨간 사과처럼 붉어진 태양을 뒤로 업고서 집에 들어오는 엄마를 보는 민수는 눈만 말똥말똥 하고 있을 뿐이다. “민수야! 너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니  왜 엄마 오는 것을 보고도 그렇게 얼빠진 사람처럼 서 있니 ” 오늘따라 엄마의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바구니를 받아든다. 두 남매를 위해서 고생하는 엄마가 고마웠다. 기성회비말을 할까 하다가 기운을 내어서 “엄마, 기성회비를 못 내면 학교 오지 말라고 하는데, 나도 학교 나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어요.” 한숨을 쉬시던 엄마가 “웬수로구나, 돈이…….” 마루에 걸터앉으신 어머니가 손을 보시더니 반지구슬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얘, 네가 사준 반지 알이 없어졌구나. 어디서 빠졌담 ” “엄마 또 사서 끼워드릴게요.” 웃음 띤 얼굴로 엄마께 매달린다. 그 반지는 어머니날에 민수가 구멍가게에서 가서 십 원짜리 동전을 놓고 뽑기를 하여서 얻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 손에 끼워드린 것이다. 동네에는 호롱불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여 옛이야기들을 꽃피운다. 방에서 밥상을 물리신 엄마가 바지를 입으신다. 의아하면서 민수는, “엄마 어딜 가세요 ” “응, 오늘 저녁에는 물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좀 큰 조개를 잡을 수 있다는 구나.” 밖에서는 동네아줌마들이 조개 주우러 가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늘 밤에는 많이 주워서 네 학비를 마련해야지.” 민수는 제발 진주를 따내었으면 하는 공상을 하며 잠자리를 편다. 밖에서 신발소리를 들은 민수는 문을 열고서 엄마 오길 무척 기다린다. 꾸벅꾸벅 졸면서 꿈결에 엄마 목소리에 깨어나는 민수는 문을 열었다. “원, 재수가 없기는, 하필이면 오늘따라 조개가 안 보이지 ” 바구니를 마루에 밀친다. 두 세 개의 조개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배가 고픈 터라 조개를 깨어서 먹고 싶었다. 민수는 어둔 마당에서 돌에 조개를 깬다. 제법 크긴 했다. 속에 가득 찬 조개의 살을 낼름 삼키며 씹는다. 다음날 아침에 민수는 밖에 나가보니 자기가 어제 저녁에 먹었던 조개껍질이 흩어져 있다. 발밑에서 엄마의 반지에서 본 구슬이 굴러다녔다. 그래서 얼른 주운 민수는, “엄마, 구슬을 찾았어요. 엄마 반지에서 빠진 것 같애요.” 부엌에서 일손을 멈추고 구슬을 반지에 넣으려고 하는데, 좀 커진 느낌이 든다. 넣을 자리에 들어가질 않아서 옆집아저씨가 지나는 것을 보고 좀 끼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마루에 걸터앉은 아저씨는 구슬을 만지고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  이거 진짜 진주잖아요. 이거 어디서 난 거요. 횡재했는데…….” <수필부 장원> 거리 정의정(덕수상고) 생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 무엇에서든 지간에 거리를 느끼며 혹은 거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 거리는 때로는 우리를 한없는 행복을 느끼게도 하는가 하면 때로는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도 한다.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점에 있어서의 거리, 혹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할 때 그 완전함과의 거리를 메워가는 거리는 대체로 우리를 기쁘게 하며, 친구 사이에 갈라진 거리나 어떠한 일을 이룰 수 없는 상태에 있어서의 거리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 어떠한 거리이든 우리는 자신 앞에 다가오는 거리를 아름답고 참되게 순화시켜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삶! 그것은 이러한 자신에게 닥쳐오는 거리들을 좁히고 바꿔가는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거리는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리는 그 길이가 멀면 멀수록 우리를 곤혹에 빠지게 한다. 여기에는 소외감과 불안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과의 거리가 멀면 그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며, 우리들 자신도 학문이나, 예술이나, 친구나 그 밖의 어떠한 것에든지 거리를 느끼게 되면 우리는 결코 그런 것들과 융화되어 참 기쁨을 얻을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가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풍요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느끼고, 가지고 있는 모든 거리를 좁혀서 그것과 서로 하나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야만이 우리는 사람에게서 참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그 무언가의 거리를 없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정성어린 피와 땀이 들어가야 한다. 때로는 자기를 낮추기도 하고 때로는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기도 해야만이 우리가 느끼고, 가지고 있는 거리를 없앤 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거리를 좁히고 메우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때가 있다. 정말 거리감을 느낄 때처럼 슬퍼지는 때는 없다. 자신이 미워지고 불필요하다는 생각까지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거리란 것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행복과 같은 것이다. 그 누구든지?가난한 사람과 풍요한 사람, 승자와 패자 할 것 없이 거리를 없게 할 수 있다. 거리는 행복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처한 입장과 환경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듯이 아무리 환경이 나쁘고 자신의 능력이 없다할 지라도 우리는 이 거리를 메꿀 수 있고 따라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아직 수많은 거리들이 있다. 삶과의 거리, 학문과의 거리, 사람과의 거리 등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지금 많은 거리를 갖고 있으며, 또한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 이들 거리를 없애야 한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만큼 우리는 더 행복해 질 수 있으니까. 우리는 결코 이러한 거리를 없애지 못하여 결국에는 슬픔의 눈물을 뿌리는 가련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 앞에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기쁨의 내일을 생각하며 이를 이겨내어 거리를 없애야 한다. 이것은 곧 행복과 나와의 거리를 메우는 길이기도 하다. 생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 무엇에서든지 거리를 느끼거나, 가지지 않고 그것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