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제 19회 콩쿠르 수상작(홍경윤, 정경수, 문명은, 성낙향)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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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장원>
음악
홍경윤(용산고)
햇살이 유리창에 비껴 걸쳐
꿈을 보는 아이들의 음악시간.
여선생님 풍금을 치고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밤새 감춰놓은 선율을 꺼내
선생님 몰래 닦아내며
아침 들판의 아름다운 물소리를 듣네.
아이들이 선율의 살갗
한 꺼풀을 벗기면
강에는 건강한 비늘이 돋히고
따뜻한 꿈이 피어 오르고,
안개의 머리칼 훨훨훨
휘날리는 들판에서
햇살은 맑은 물의 노래를
은빛 화차에 가득 실어 날으네.
때로는 찬찬히 부서지며
밀리고 밀리어 흩어지며
수 천 만 아이들의 노래 속으로
달려오는 햇살,
그 햇살의 일렁임 속에서
아이들은
귀를 닦으며 눈을 닦으며
깊은, 사랑을 풀고 있네.
아아, 무수한 갈채의 선율을
아득한 하늘로 날리고 있네.
<시조부 장원>
어머니
정경수(광주고)
Ⅰ
하늘 한녘 꿈을 뉘여
노을처럼 번진 사랑
헤지 못할 세월 속의
낮달로만 살다가
또, 어느
어둠 밑에서
희디 흰 정 여미는지.
Ⅱ
즈믄 바람 감고 서서
진종일 기댄 허공
내면 잎이 정화수로
빚어가는 고운 빛의
빛으로
미쁜 빛무리로
넘쳐나는 가슴 안.
Ⅲ
곳곳마다 피는 햇살로
잎잎이 빗어내린
마음 그, 그만치를
일상처럼 올려 놓는
사모곡
한 소절, 소절마다
저려드는 죄와 눈물.
Ⅳ
밤 은핫물의 행렬 새로
섞어가는 아픔의
맨 마지막 여백에
가라앉는 그리매어
길 뜬 날
부름쪽으로
달려갈까, 님의 품에.
<소설부 장원>
배신
문명은(목포 제일여고)
옛날 우리들 가슴에 품었던 꿈들의 빛깔과 향내마냥 싱그러운 아카시아 꽃 향내를 따라 어느 작은도시의 여학교의 교실 앞문이 드르륵 소리를 냈다.
“김미나 교무실로.”
급사 언니의 짧은 한마디에 아이들의 의아한 시선을 등 뒤로 남기며 미나는 복도로 나왔다.
“어제 미나랑 도둑 영화 본 게 탄로 났을까 ”
등에서 식은땀이 좌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미나는 계단을 밟았다. 계단 밑으로 누군가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 했을 때 5반의 미나가 인기척을 느꼈음인지 뒤돌아봤다. 순간 둘은 그 자리에 선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둘은 공범자였다.
밀려오는 불안을 억제해가며 둘은 고개를 숙인 채 교무실 문을 막 들어섰다.
“왔니 ”
둘의 얼굴이 가을하늘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우중충하던 것이 무지개라도 뜰성 싶도록 밝아졌다. 호출명령이 내려진 곳은 학생과가 아닌 바로 서클활동의 문예담당을 맡고 있는 양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기뻐해라. 저번도 예술제에 작품 낸 게 방금 입선했다고 소식 왔더라.”
“야아?호.”
그리 깨끗하지 않은 횟가루 칠해진 사각의 공간에 가득 찬 정적을 순식간에 깨뜨린 외마디 소리에 의자에서 졸고 계시던 수학 선생님의 안경이 땅에 떨어진 것도 미안해하지 않고 둘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승리의 V자를 손가락으로 만들어 보이며 둘은 반 아이들에게 자랑하고픈 일념으로 ‘실내정숙’을 그렇게 고집하시던 가정 선생님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교무실을 뛰어나왔다. 등 뒤로 선생님들의 어이없는 웃음과 말소리들이 튀어나왔다.
4반 교실의 쉬는 시간의 아이들은 미나의 주위에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 그 부러워하는 시선을 받아가며 미나는 거기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었다.
“어쩜 너희들은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얼굴도 그만하면 지장이 없을 테고…… 한 가지씩만 하자.”
“김미나 이름이 참 좋은가부다. 이름도 같고 성도 같고…….”
아이들은 정말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4반의 미나와 5반의 미나는 정말로 이름과 성이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4반의 미나를 ‘사미나’ 5반의 미나를 ‘오미나’로 편하게 불렀다. 처음엔 미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사미나 뿐이었다. 근데 2학년 말쯤 해서 미나네 반에 김미나라는 이름을 가진 애가 전학을 왔다. 그 애는 한 송이의 코스모스처럼 가냘프고 청초했다.
"대전 H여고에서 왔어요. 특기는 글짓기를 해왔어요."
간단명료한 대답에 사미나는 그 애에게 담박 호감이 갔고 둘은 그 이후 죽 친했다.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도 많았지만 둘이는 오히려 재미있게 생각하며 이따금씩 잔디밭에 네잎클로버를 찾으며 우정을 맹세했다.
"미나야 우리 누울까 "
5월의 따스한 신의 축복을 받으며 부단한 성장을 하고 있는 잔디에 누우며 오미나가 말했다. 하늘은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을 전시에 놓은 바로 그대로의 그림책이었다.
"사랑의 마음은 변한다구 저 구름처럼 봐! 봐! 저 구름은 어떤 목적의식도 없이 바람이 가자는 대로만 가는 거, 미나야! 우리 우정 변치말자 맹세한 거 알지 "
움푹 파여진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오미나가 고개를 숙였다.
"너 왜 그런 말을 하니 우리 사이가 벌어지리라고 생각했다는 거, 그 자체부터가 모순이야. 너가 그런 말하면 나하고 절교다."
사미나가 오미나를 향해 아주 무섭게 대들었다. 아카시아 꽃잎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두 미나의 머리위에 떨어졌다.
이슬비가 치적치적 내리고 안개가 무겁게 깔린 어느 날 찢어진 우산을 가져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사미나는 투덜거리며 그 날 하루가 아주 재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왔다. 수업을 하려 하는데 영어책을 가져오지 않아 오미나에게 빌리려고 5반으로 갔다. 뒷문을 여는데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겁에 질린 파란 얼굴들이 보였다. 그것은 정말 못 볼 광경이었다. 책상 밑으로 손발을 꼬면서 입에 거품을 한 입 문 채 두 눈이 거꾸로 솟구치는 미나의 모습을 본 순간 사미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사미나는 자기의 손발이 눈이 뒤틀리는 것만 같아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선생님이 달려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며 사미나는 자기가 어떻게 자기 교실에 와서 앉아 있는지를 몰랐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전병인 간질이래 지랄병이라고도 한다던데 그 병 때문에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더라."
"미나야 조심해라. 옮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옆집에 간질을 앓고 있던 사람이 발작을 일으키길래 거품을 입으로 막 내니까 그걸 닦아주던 사람이 담박에 걸렸다더라."
아이들은 사미나 옆에서 별의별 이야기를 했다. 순간 미나는 아침에 먹은 달걀이 생각났다. 자습을 하고 있으려는데 뒷문이 삐곰히 열리며 오미나의 눈동자가 자기를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사미나는 교실을 나갔다. 귀로 돌아가면서 오미나가 사미나의 손에 살며시 무엇인가를 얹어 주었다. 방금 삶은 달걀인지 뜨끈뜨끈한 것이 여간 좋지 않았다.
"어머 내가 삶은 달걀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니 "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아니 나는 너에게 관심이 많은데 넌 안 그런 것 같애."
입을 삐죽이 내밀며 오미나가 손수건을 입에 물고 저희 반으로 들어갔다. 사미나는 그 달걀이 무슨 큰 병균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기침을 해보았다. 영 꺼림칙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길로 미나는 수돗가로 달려 가 입을 씻었다. 조금은 개운한 맛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은 서클활동 수업이 든 날이었으나 사미나는 오미나의 일이 생각나서 안 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대회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있으리라고 예고했다. 양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할 수 없이 사미나는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예상과는 달리 미나의 자리는 곱게 가지런히 맞춰있던 피아노의 건반에서 어느 하나가 빠져나간 것처럼 허전했다.
그 허전함을 미나는 억지로 참아가며 한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백일장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사미나는 아침부터 컨디션 조절에 힘썼다. 시험을 앞둔 운동선수가 손톱이 아무리 길어도 깎지 않는다는 미신을 사미나는 철저히 지켰다. 막 교문을 나서는데 저쪽에서 오미나가 초췌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저 이거."
어색하게 내미는 손에는 네잎 클로버가 들려있었다. 막 집으려는 순간 그 날 미나의 터져 나오던 거품이 생각나자 사미나는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어."
한마디로 자르고 돌아서려는데
"너 심정 알만해. 그치만 내 마음도 이해해 줘. 네잎 클로버야, 우리가 우정을 맹세했던…… 옛날의 그 우정을 회복시키자는 건 아니야. 원점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야. 없었던 걸로 하고 이 네잎 클로버는 너의 오늘 나가는 대회의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이야. 받아줘."
어느 새 네잎 클로버는 사마나의 손에 들려있었고 미나는 벌써 저 쪽으로 뛰어가고 없었다.
사미나는 풀이 죽어 있었다. 대회에 낙선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미나는 슬며시 화가 났다. 부리나케 전화통으로 달렸다.
"미나니 나 미나야! 너 왜 나를 못 살게 굴었니 나를 위해 준다고 겉으로는 네잎 클로버 어쩌고 하면서 속으로는 낙선이나 돼 버리라고 악담을 했지 그래 속이 시원하니 내가 이렇게 떨어지니까……."
실컷 퍼 부어놓고 미나는 수화기를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렸다. 할 만큼 했는데도 분은 조금도 풀릴 줄 몰랐다.
조금 뒤에 오미나 엄마의 급한 전화가 왔다. 빨리 집으로 와 보라는 것이었다. 미나가 전화를 받고 난 충격으로 또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사미나는 자기의 전화라는 말에 아찔해져 급히 미나의 집으로 뛰었다.
"하느님 그 애를 붙잡아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 애를……."
그 것은 소리 높은 진실의 절규였다. 오열의 폭발이었고 어리석음에 대한 반발이었다. 미나네 집은 벌써 미나엄마의 통곡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죄송해요. 아줌마 제가 나빴어요. 제가 죽어야 하는데 저 좀 때려 주세요."
"어디 너의 탓 만이라고 하겠니. 다 자기 운명인 것 어린 것이 그 수많은 고통을 당한 걸 생각하면……."
자기의 탓만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미나엄마의 푸념은 사미나의 마음을 채찍할 만큼이나 더 무섭게 내리쳤다.
사미나는 미나의 하얀 시트로 가리워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안하다 정말 내가 나빴어. 전화 받은 충격으로 쓰러져서 뇌진탕이라니……. 내가 너를 뿌리쳤을 때 넌 얼마나 가슴이 아팠니 미안하다는 말로는 이 죄악을 씻지 못하겠는데 어쩌면 좋니 미나야."
뒤늦은 후회를 하며 사미나는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꽃잎에 빨간 물이 들던 계절에 미나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미나의 손에 의해 뿌려지고 있었다.
나는 미나가 나를 뿌리친 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건 어차피 당연한 건지도 모르니까…… 평범한 그들에게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자. 미나의 일기장에 쓰여진 것을 사미나는 조용히 이렇게 읊조렸다.
"차라리 너가 배신이라고 말했으면 내가 이렇게 애태우지 않아도 됐을 것을…… 미안하다. 오미나야."
<수필부 장원>
비
성낙향(부산 중앙여고)
도서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노을도 없이 먹장삼으로 가리워 놓은 듯 어두웠다. 한차례 비라도 올 모양이었다.
들었던 고개를 수그리고 다시금 사전을 뒤적거리는 내 귓전에 경미가 소근거렸다.
"비가 올 것 같애, 오늘은 그만 가."
난 대답 대신 픽 웃어버렸다. 시험이 코앞에 닥친 마당에 7시도 안되어 자리를 뜬다는 것은 축구에 있어 수비가 골문을 비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몇 번이나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대도 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경미는 투덜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비 다 맞고 와도 후회 마."
한마디를 뱉고는 걸어 나가는 경미의 등언저리에서 그 때까지 못 느꼈던 비에 대한 걱정스러움이 슬며시 일었다. 문득 같이 가고픈 생각이 들었으나 손에 든 사전에 곧 다시 연필을 갖다 대었다. 그러나 정말 비는 내렸다. 몇 아이들이 창가로 다가서서 외마디 소리를 내지른 것은 그로부터 두어 시간 뒤였다.
수문을 열어버린 듯이 보기에도 두려운 기세로 빗발이 내려치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비였다. 곧 도서실 안이 웅성거려졌고 하나 둘씩 가방을 들고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화창한 날씨라 우산 따위는 가지고 왔을 리가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