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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제 29회 콩쿠르 수상작(전용문, 이지향, 안미영)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135
<시부 장원> 바람 부는 날   전용문(보성고) 어지러이 피어 한껏 흔들린다. 새벽안개같은 민들레 홀씨 바람에 날리면 어둔 밤 창문을 여는 마음으로 강변을 나선다. 문득 바람 앞에 서면 어디서 나를 부르듯이 강물은 잔잔한 파동을 그리고 숱한 잎새들 부대끼며 쉼없는 소리를 이룬다. 이런 무성한 소리속에 습습한 강가에 앉아 이제는 나의 몫이 되어 상처입은 말들을 빗방울 맺힌 잡풀들의 뿌리에 묻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비를 맞던 어린시절 두근거리며 살아온 시간의 안섶에 푸르게 새겨진 기억의 깊이를 정성스럽게 헤아린다. 바람 부는 날 강물과 풀잎과 별과 그리움 이런 진정 아름다운 말들을 바람 속에 던지면 바라의 종아리는 아름다워져 나는 그 종아리를 베고 한낮의 꿈을 꾼다. <소설부 장원> 그사람   이지향(부산 성모여고) 밤이 달리고 있다. 칠흙의 유리창에 비치는 낯선 얼굴들과 내가 속한 이 곳. 그리고 그 위로 창밖의 풍경이 한꺼풀 더 겹쳐져 흔들리며 달리고 있다. 기차와 그 유리창에 비친 세계를 너무도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그려냈던 일본소설 하나가 생각난다. 그 작가가 보았던 것도 이런 밤이었을까 문득, 나의 얼굴이 확대되어 온다 낯설음! 이것이 나  이토록 초췌하고 찌든 얼굴을 한 것이 과연 나란 말인가. 매일 아침 거울을 보았는데, 어느 사이 먼지가 풀풀 날 듯한 소시민이 되었을까  이런 몰골을 하고도 난 또 무슨 오기가 남아 이 기차를 탔을까 창에서 고개를 돌렸다. 덜컹거리는 완행열차 속은 지치고 피곤한 자들의 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검은 얼굴을 한 중년의 사내는 통로쪽으로 기우뚱하더니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그리고 위치를 대충 확인하는 듯 하더니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물이 날은 하늘색 셔츠에 많이 입어 반질반질한 바지를 입고 있다. 그의 머리가 내게로 기울어 왔다. 이런 사람들은 소시민 이라기 보다는 생활인이라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때때로 이들을 대하면서 내 삶에 서글프나마 위안을 찾은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쉴 집과, 함께 할 가족과, 삼류 잡지사 일지라도 일 할 곳이 있으므로 몸 하나만으로 일상과 부대끼며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이들 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달랬었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많은 얘기들을 접하며 더 이상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못하여 그저 무덤덤히 지내왔었다. 그런 나였지만 아직은 불감은 아닌지 오늘, 편집장의 요구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는 팔기 위한 모든 것은 수요자의 요구를 가능한 충족시켜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 아래, 지방 문화지로 출발한 잡지를 서서히 상업화시켰다. 그 덕분에 지방 잡지사들마다 문을 닫을 때도 나는 직장을 잃지 않았고 많은 회의가 있었음에도 좀 더 기반이 잡히면 차차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리라는 소극적인 기대아래 잡지를 만들어 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인잡지를 만드는데 적극 협조하라는 편집장의 은근한 부탁에는 내 잠들었던 자존심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사표를 그의 책상 위에 던지고 집에 짧은 전화를 걸고는 이 기차에 올랐다. 그 사이 사람들이 많이 내린 모양인지 자리가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어깨가 저려 왔다. 옆 자리 사내도 썩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합니다만 좀 더 편하게 누워서 주무십시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몽롱한 사내에게 그의 가방을 내려 베게 해 주고는 자리를 옮겼다. 이젠 정말 깨어있는 사람은 나 하나인 듯 했다. 손잡이에 팔을 얹어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들려 손바닥에 귀를 갖다댔다. 휘휘거리는 바다 소리가 났다. 이런 밤이었었다. 멋모르는 혈기만이 가득했던 젊은 날 내가 믿었던 모든 신념들이 흔들리고 이십여년 세워왔던 가치관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무너졌던 때가 있었다. 깊이 상처받고 끝없이 절망하여 모든 것을 떨치고자 했던, 무지와 수치만이 가득했던 어느 가을, 그 때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은 삶이 아니라고 깨쳤었다. 내가 쫓던 모든 것은 결국은 허상일 뿐이었고 그 어떤 지향도 지표도 없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자기 기만과 자학과 따라오는 자기 연민과 공연한 객기 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참혹한 자아를 더 견디지 못하고 나를 완전히 부수어 날려버릴 곳을 찾아 노르처럼 완행열차를 탔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굳이 완행을 탔던 것도 불붙은 분노와 자기비하만이 있었을 뿐 용기가 없었던 까닭인 것도 같다. 넘치는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잠들지 못했던 그 밤엔 나처럼 잠들지 못한 아니 잠들지 않은 이가 하나 이었다.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그녀. 그녀는 화장기없는 투명한 얼굴에 조금은 긴 듯한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쩐일인지 한번도 본 일이 없는 내 곁으로 와 의자를 돌리고 마주 앉았다. 내 아픔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이상하다는 생각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잠들 중에 오로지 우리들만이 깨어 있었지만 그녀도 나도 아무런 말도 주고 받지 않았다. 그러기를 두어시간, 귀쪽을 피고 있던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치 독백하듯이 잔잔하게 얘기를 했다. “이러고 있어 본 일이 있나요  싸한 바다 소리가 들려요. 무엇인가 애절히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모든 걸 뛰어넘은 소리 같기도 하고……뭐, 꼭 바다 소리라 하지 않아도 좋지요. 어쩌면 비안개의 소리들일지도 몰라요.” 나는 그때 내가 바다로 가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보랏빛 안개가 피어날 것 같은 희뿌연 바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바다 소리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힘들게 입을 뗀다. “제게 하신 말씀인가요 ”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질문 같지만 그때 내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었다. 만일 그녀가 내게 한 말이라면 나는 혼자만의 절대 고독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깨어있는 이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지요. 혹 잠드셨었나요 ” 그녀의 반문에 나는 내 껍데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바다소리가 들리세요  아니면 비안개가 ” “저……안개, 그러니까 보라색의 이미지를 가진 안개가 낀 바다 소리를 들었어요.” 격에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내가 어렵게 주워삼킨 말은 바로 그러했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자기에 대한 욕심이 많으면 많이 아프지요. 그리고 남들보다 많이 가질지라도 언제나 부족할 겁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는 슬픈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무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나는 내 얘기를 쏟아 넣었다. 내게 조차 부끄러워 생각하기도 끔찍했던 그 많은 얘기들을 무슨 마음에서 난생 처음 보는 그녀에게 하게 되었는지……아무튼 그녀는 내 긴 얘끼를 말없이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들어주었다. 얘기를 마치고 내 감정에 휩싸여 다시 침울해지는 내게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바다로 가셔서 무얼 하실건가요  인어 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실래요  슬픈 물고기가 되실래요  아니면 물이 되어 먼 아틀랜티스로 가실건가요 ”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날 꾸짖는 것인지 그녀 자신을 몰아친 것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웃으며 나를 ? 들여다 보았다. “'Let it be'란 노랠 아세요  비틀즈 노랜데.”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눌하게 대답했다. “에……몇 번……들어보기는 했는데…….” “그 노래의 랫잇이란 말은요 내버려 둬라 라는 뜻이래요. 작사가의 어머니는 아들이 힘들거나 슬프고 지쳐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조용히 그 한 말씀만 하셨다고 해요. ‘얘야, 내버려 두렴.’ 실은 저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만요. 동류애 같은 것이 느껴졌나봐요. 젊음의 특권으로 마음껏 고뇌하고 때론 상처받고 절망하지만 결코 극단으로 치달아서는 안된다고 봐요. 렛잇비란 말, 물론 그 노래 전체 가사와는 맞진 않겠지만 설 익은 완전주의를 부르짖기 보다는 내버려두는 미덕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나는 무엇인가 가슴을 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는 야간 열차 여행을 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여지껏 본인 말씀을 않으시는군요. 무엇 때문에 이 기차를 타셨는지 그리고 누구신지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녀의 눈동자가 먼 무엇을 쫓듯이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내게 말했다. “저 역시 인생을 아프게 살아가는 한 인간일 뿐이지요. 그리고 여지껏 한 얘긴 당신께 한 얘기인 동시에 저의 얘기 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를 내 껍질 속에서 끄집어 냈던 여인은 어디에도 없고 단지 자기 세계로 빠져버린 한 여자가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놀랍게도 그때 나는 내 고뇌의 무게보다 그녀를 향한 궁금증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녀와 그대로 헤어져서는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내 의식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근접할 수 없는 깊은 곳으로 가 있   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창 밖을 바라보며 내 생각을 풀었다. “드디어 바다에 왔군요. 자 이제 바다로 가실 건가요  이런생각이 드네요. 우리 고뇌의 원천이 우리 마음에 있듯 바다 역시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쩌면 우리가 귀에 손을 대고 들었던 소리야 말로 진정한 바다인지도 모르지요. 그럼 바다로 가시든 안 가시든 안녕히…….” 곧이어 D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있고 그녀는 가방을 들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를 이대로 보내서는 안될 것 같은 조바심에 가방을 챙겨들고 그녀의 뒤를 따랐지만 역에서 나온 순간 나는 그녀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마치 한 여름, 가슴을 휑하니 울리던 꿈처럼 그녀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망연히 섰다가 D시의 바다를 포기하고 돌아오는 차표를 샀다. 나는 생활로 돌아가 무너졌던 내 가치관과 신념들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모두 포기하고 싶고 때론 그대로 안주하고 싶을 때 문득 문득 열이나듯 떠오르는 얼굴 하나로 삶을 이끌어 왔다. 그러다 차츰 생활이 태를 잡아 가면서 그 얼굴은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고 그 위에 다시 일상이 앙금들이 쌓여왔었다. 내 젊음의 고뇌를 묻었듯 그녀의 기억을 묻고 스스로와 타협하며 간간히 고개드는 회의는 술로 쫓으며 살아왔었다. 자리를 비켜주었던 사내가 부스스 몸을 떨고 일어섰다. 기차는 벌써 D시에 도착해 있었다. D시, 내 잊혀진 기억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낱말. 각자의 짐을 챙겨들고 나서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생각 없이 개찰구를 지나 역을 벗어나가 부연 새벽이 싸늘한 감촉으로 나를 맞았다. 길 건너 가로등이 환한 벤치들이 보였다. 촉촉한 아스팔트를 지나 역시 물기 가득한 벤치에 가 앉았다. 불빛탓인지 추위탓인지 손톱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이 빈약한 손톱처럼 내 가슴도 어느새 시퍼런 멍들이 든 건 아닐지……나는 그동안 어찌하여 내가 가졌던 그 모든 것들을 잊고 살아왔는지 가슴이 아프며 눈물이 흘렀다. 눈물……아, 내겐 그래도 아직은 이처럼 따뜻한 눈물이 남아 있구나 그래도 아직은 부끄러운 내 모습을 아파할 가슴이 남아 있구나. 무엇인가 커다란 덩어리가 걸려 나오지 않던 울음이 서서히 깊은 곳에서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희미하게 흔들리던 그녀의 모습이 달빛처럼 분명히 다가왔다. 꽤 오랫동안 열심히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니 표현할 수 없는 청량감이 가득찬 듯 했다. 이 새벽에 그것도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려는 남자가 목놓아 울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우스워서 또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 보니 웃음도 오랜만이었다. 난 왜 그동안 이처럼 원초적인 감정들을 외면하며 살았는지……잘못 살아도 많이 잘못 살아왔나보다. 어느정도 감정이 안정이 되자 다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몰려왔다. 우사    바다로 가야할지 이번에도 돌아서야 할지 그리고 내가 버린 직장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과 앞으로 내게 남겨진 삶들의 무게가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어느새 동녘하늘이 빨갛게 밝아오고 있었다. 서서히 보이는 태양의 장엄한 비상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래! 아침이다. 어두웠던 밤은 접히고 새로 시작할 수도 있는 아침이다. 아침은 내게도 꼭 같이 빛을 주지 않는가. 나는 이번에도 D시의 바다는 포기하가로 했다. 아니 포기라기 보다는 다시 새로운 다음을 기약하면서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게 남은 삶. 조금쯤 힘들더라도 내 마음 속의 바다를 묻지 말고 살아가리라 결심했다. 내겐 이미 바위를 녹일 젊음은 없을 지라도 그 그늘에 숨지 않을 용기를 가지리라. 차라리 부서질지라도 안주하진 말아야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찾아 오가기 시작했다. 나도 힘차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희뿌연 아침 안개 속으로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의 풍경을 가로막던 어둠은 사라졌으므로 모든 풍경들이 내게 새길을 갈 힘을 북돋우듯 흔들렸다. 그리고 그 속에 낯익은 모습! 나의 그녀…… 그 옛날과 조금도 변함없이 그녀는 따뜻하게 웃으며 풍경들 속에서 나를 전송하고 있었다. 그 모습과 풍경들이 점점 멀어지면서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더 선명한 모습으로 내 가슴속 깊이 와 박히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달간의 시간을 생각만 하고 보낸 후 자그마한 출판사의 편집차장이 되었다. 워낙 가난한 곳이라 변변치 못한 수입이었지만 가족들도 나도 모두 각오한 것이기에 말없이 견뎌오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떳떳할 수 있기에 오히려 예전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했다. 때때로 어려운 생활로 인한 실의에 빠지기도 했었지만 그때마다 가슴속에 아로새겨진 그녀의 미소가 나를 다시 일으켰다. 올 여름에 나는 가족들과 함께 D시의 바다로 가리라 나는 이미 흔들리지 안을 내 마음의 바다를 가졌으므로 더 이상 내 전부를 던질 아틀랜티스는 필요치 않기에 그 실체를 이제야 보리라. 그와 함께 내게 깨지지 않을 그녀의 영상과 내 젊음의 흔적들을 보리라. <수필부 장원> 거울 안미영(이화여고) 언제부터였던가 내 책가방 속에는 조그마한 손거울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년에 친구가 선물해준 것인데 그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영아 더욱 더 예뻐지거라.’ 이 말은 내가 더 예뻐져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듯 했다. 길을 걷다가도 한번보고 내 모양새가 궁금해질 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기가 싫을 때, 하던일이 지루해져서 도저히 잡히지가 않을 때, 난 귀중한 보물을 보듬듯이 조심스럽게 거울을 꺼낸다. 거울을 본 순간 난 당황한다. 이상하다. 어떤 전율이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니다. 아니 눈, 코, 잎, 어디를 뜯어봐도 나임은 확실한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낯선 느낌을 준다. 그러면 한번 웃어도 보고 눈을 찡끗 찡그려 보기도 하면서 나임을 또한번 확인한다. 그래도 믿기지 않을때 손을 살며시 갖다 대어보기도 한다. 그러고는 실망감에 빠진다. 어렸을땐 내기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았었다. 아빠는 나보고 “세상에서 제일루 예쁜 공주님.”으로 불렀으니까. 내가 “정말 ”이라고 되 물으면 아빠는 “그래. 하늘땅, 별땅.” 하면서 날 믿게 하셨다. 난 지금도 그 분의 눈에는 예쁜 공주님이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접하면서 나보다 예쁜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어슴프레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거울로 진실을 비춰보라.” 그래, 그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얼굴이 너무 넓적하다는 이유로, 코가 너무 조그맣다는 이유만으로 엄마를 원망도 해본다. 꼭 잡지에 나오는 여자처럼 생겨야 행복한 것일까 영화속의 여주인공처럼 생겨야 멋진 사랑을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언제나 내 가슴속에 숨겨져 있다. 이런 의문이 살갗을 삐집고 나올 때 마다 난 거울앞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이 만든것인데 왜 그것으로 인해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 하는 걸까 어쩔땐 굉장한 경의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것.  신이 우리를 흙으로 빚으신 거라면 우리의 신은 대단한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외양을 뿜어내도 결국은 모두 얼굴을 하나씩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오만, 그리고 절망과 희열, 괜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자위를 해본다. 어쩌면 괜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간을 허비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겐 누구나 타고나는 것이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나는 아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주어진 몫을 다 하는 그 열성적인 모습에서 진정한 나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신이 우리에게 한 그것처럼 빚기위해 오늘도 새로운 오늘을 시작한다. 가끔씩 거울을 보면서 느꼈던 자기혐오와 까맣게 타버리는 외로움을 집어 삼킨다. 그리고 더 예쁜 너무나 예뻐서 하늘끝까지 닿을 듯한 나의 참모습을 찾기 시작한다. 언제나 내곁에 있었던 모습들이었지만 이런 모습 하나하나를 힘껏 껴안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