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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제 31회 콩쿠르 수상작(정석민, 김지숙, 조수경)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115
<시부 장원> 만남 정석민(경복고) 나는 벼개도 없이 꿈을 꾸는 이름없는 들꽃일까 저기, 시립도록 푸른 하늘 능선으로 가리워진 그리움 찾아 후르륵 먼데 날아가는 종다리일까 아님 누이의 비밀인양 수줍은 철쭉아래 꽃그늘 붉게 적셔 논 눈물 매운 꽃잎일까 풀잎에 베이며 쏟아지는 햇살 아래 종일 붉게 충혈된 풍경들을 바라봅니다. 저기, 타박상인지 찰과상인지 깨진 무르팍하고 널브러진 지천의 돌맹이들이 있습니다. 밤이면 어느 별자리말의 샛강을 타고 일만의 비늘 떨구는 은어떼의 힘찬 몸짓을 꿈꿀 것입니다. 나 오늘 진눈깨비로 쏟아지는 아카시아 꽃잎 아래 그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저 두름두름 꿰어 있는 연등 속에 고요함으로 내가 갇히더라도 촛불하나 빛 밝히며 정중동 바람의 살풀이로 그리움 찾아 떠도는 넋들, 만나고 싶습니다. <소설부 장원> 아카시아 김지숙(대성여상) 내가 언제부터 앵달래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실밥이 뜯어져 나풀거리는 바지와 쥐어짜면 금세라도 땟국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헐렁한 웃 옷. 그리고 껑충 솟은 다리를 간신히 받치고 있는 검정 고무신이 전부였다. 앵달래 엄마는 마을 어른들이 ‘월화’라고 부르는 무당이었다. 피부도 새까맣고 과히 예쁘지도 않은 앵달래와는 달리 하얀 목선이 유난히 고왔다. 그렇지만 굿을 할 때 수없이 흘겨대는 눈초리는 어쩌다 잘못을 저지르고 잠이 든 날은 어김없이 꿈속에 나타나 내 목을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대었고 난 헛손질로 앵달래 엄마의 손을 떼어내야만 했다. 앵달래는 계집애들 고무줄 놀이가 시작될 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여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고서…….” 계집아이들은 고무줄 놀이에 한창이었다. 오후의 지리한 햇살에 봄맞이 노래는 무르익어 딴에는 늙은 봄기운이 막 청승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수 없이 땅바닥을 긁고 지나가는 고무줄 소리가 그칠 때쯤에야 난 할머니의 성화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어쩌다 앵달래가 오지 않는 날 그 애네 집을 찾아가면 앵달래는 엄마에게 붙들려 질끈 동여맨 머리끈을 풀고 누워 있었다. 앵달래 엄마는 앵달래의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에서 이를 잘도 뽑아내었다. 언젠가 할머니가 고춧잎을 솎아 내던 것처럼…….톡톡 소리와 함께 하얀 문종이 위에서 반토막난 이들의 몸뚱아리가 뒹굴고 있었다. 앵달래 엄마의 가냘프고도 날카로운 손이 앵달래의 머리칼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때마다 나도 뒤통수를 박박 긁어 대었다. “아야. 아프단 말야!” 어쩌다 앵달래가 앙칼지게 쏘아 붙일 때면 난 얼른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집에는 별일 없니 ” “예  예.” “그래야지. 뭔일 있음 딴데 가지 말고 내게 오라 그려.” “예.” 연신 무엇인가를 뱉어 내면서도 손놀림은 여전했다. 그렇게 한참을 쪼글뜨리고 앉아 기다린 후에야 우리는 신작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로 달려갈 수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들은 앵달래와 내게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다. 하늘을 잔뜩 거머쥔 산봉우리와 논 한가운데 기울어진 허수아비의 어깨위에 내려앉던 햇살. 엄마의 가리마처럼 반듯한 신작로. 그 중에서도 우리들에게 가장 즐거움을 준 것은 하루에 두 번씩 지나가는 버스였다. 비록 먼지로 뿌옇게 흐려진 차창 때문에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꼭 한번만 타보았으면…….” 온종일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던 우리는 버스가 시꺼먼 연기만을 뱉아 내고 금세 떠나가버리면 아쉽게 입을 맞추어 소곤거리곤 했다. “앵달래야. 니네 엄만 참 무섭다. 저번에 덕길네 마당에서 춤출 땐 정말 무서워서 혼났어.” 난 앵달래의 눈이 저녁놀보다 더 붉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지껄였다. 한참을 지껄이던 내가 이야기를 멈추고 머뭇거리자 앵달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너 저거 먹어봤니  참 맛있다.” 하고는 신작로 왼편을 가리켰다. 아카시아 나무가 몇 그루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앵달래는 고무신을 벗어 들고 내게 미소를 던졌다. 그리곤 그 중 유난히 키가 큰 아카시아 나무를 탔다. 벌려진 가지 사이로 푸르름 가득한 햇살이 보였다. 모두들 바람에 요란스레 흔들렸다. 그날부터 앵달래가 따주는 아카시아는 지루하게 버스를 기다릴 때면 더없이 좋은 주전부리가 되었다. 개중에는 벌써 거뭇거뭇 쇤 것도 있었지만 백설처럼 하얀 아카시아는 달짝지근한 것이 백설탕이라면 꼭 이 맛 일거라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혀 끝에 느껴지는 국물 맛은 더할 수 없는 여운으로 남아 있곤 했다. 초여름 햇살이 유난히 따갑던 날 난 어머니에게서 우리 식구가 읍내로 이사를 가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난 솔직히 정겨?던 마을과의 이별보다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기쁨이 더욱 컸다. 어머니가 툇마루를 닦으면서 섭섭한 눈길로 이곳저곳을 둘러볼 때 나도 코 끝이 찡해옴을 느낄 분 가슴 설레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울타리도 사립짝도 없는 집안으로 어둠은 거침없이 몰아 치달아올랐다. 여느 때처럼 앵달래와 난 언덕빼기에 앉아서 버스가 길게 꼬리를 감추며 사라지는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있잖아. 낼 모레 저 차 타고 이사간다.” “정말 ”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앵달래의 동그래진 눈에 금세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날밤은 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앵달래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아주 고약스런 꿈이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앵달래 엄마의 눈초리가 섬짓했다. 울긋불긋한 옷을 차려입은 앵달래 엄마가 번뜩이는 칼을 들고 앵달래를 수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그러면 앵달래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금새 또 쓰러졌다. 도막난 몸뚱아리엔 검붉은 피가 흥건히 괴어 있었고 저만치 팽개쳐진 검정고무신 속에서 손가락만한 이들이 쉴 새 없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깜깜한 속을 더듬어 그렁그렁 불을 잡아 켜고 나니 저만치 어둠이 수줍게 걸려 있었다. 그날 알침은 꿈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째 죽케 꾸물거려 쌌노  비 올라칸다아이가. 빨랑혀야 한다케도 우째 딴청을 부려쌌냐 말이다.” 수선을 피우는 어머니의 재촉에 그제서야 나도 느기적 느기적 짐을 챙겼다. “앵달래가 우짠 일이고 ” 난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앵달래가 내게 한 발짝 다가서서는 “이거…….” 하고 편지같은 것을 쥐어주었다. 앵달래는 요 며칠 심하게 앓았ㄴ느지 얼굴이 허여멀쓱하고 눈이 퀭하니 패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마당을 내다보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앵달래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잔뜩 찌뿌린 하늘빛이 비를 뿌리고 축축한 냉기가 피부를 진하게 감싸왔다. 빗줄기가 유난히 굵게 뒷마당 아카시아 나무를 때릴 때였다.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마을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앵달래 고것이 무슨 심산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기어 얼라갔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부둥켜안고 우는 월화가 참 안되보이대.” 급히 달려나가는 어머니를 뒤따르며 들리는 메아리를 계속해서 가슴에서 밀어냈다. 거칠게 움직여 대는 잿빛 구름들이 마을을 온통 휘어감고 돌았다. 후두둑 하는 굵은 빗방울이 앞산 중턱에서부터 서서히 밀려오는 것 같더니 어느새 집 뒷마당의 아카시아를 후려치고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가 격렬하게 몸을 떨고 마을 곳곳에는 작은 웅덩이들이 생겨났다. 멀리 실성한 듯 히죽거리는 울음 섞인 소리가 귓전 너머로 흘렀다. 너무도 큰 충격이기에 눈물은 놀란 가슴에서 멍으로 대신 되고 비만이 날 대신하여 울어주는것 같았다. “안운다…….” “……안운다. 안울거야. 너 죽어도 죽어도 안울거야. 흐흐흐흑…….안울거야.” 한참 후에야 난 눈이며 볼이 심하게 얻어 맞은 것처럼 얼얼한 느낌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아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두 다리를 보았다. 손바닥엔 앵달래가 쥐어준 편지가 멈추지 않는 비에 젖고 있었다. 언제 오셨는지 어머니는 툇마루에 주저앉아 뿌옇게 흐려져 형태마저 흐트러진 아카시아 나무에 못박힌듯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작게 떨고 있었다. 멀리 들리는 버스 경적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저 너머까지 번지고 있었다. <수필부 장원> 가방 조수경(언남고)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가방이 있습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모두 다른 여러 종류의 가방……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똑같은 가방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마음의 가방 말이에요. 물론 모양,크기,색깔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한가지 공통된 것이 있다면 그 속에 담아 지니고 있어야 할 내용물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가방에 꿈과 사랑과 슬픔과 이별……아니 생활의 모두를 담습니다. 기억 저편에 아득히 멀리 있는 친구들의 이름도, 그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작은 옛날 얘기들도 모두……그리고 그뿐 아니라 앞으로 원하고 꿈꾸는 모든 일들까지. 마음의 가방은 아무리 내용물을 많이 담아도 넘치거나 찢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내용물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향기들이 깊숙이 배어 들어가는 것 뿐입니다. 자……그럼 이제 제 마음 속에 있는 가방을 구경시켜 드릴께요. 정말 크고 예쁘죠  제가 열어 드릴께요.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모두들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느라 정신들이 없어보이네요. 저기 졸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도 보이시죠  저쪽 구석에는 그 언젠가 엄마께서 입원하셨을 때의 제 눈물이 보입니다. 아직은 맑고 투명한 눈물방울이 예쁘게 느껴집니다. 저 맨 밑바닥에 오렌지 빛으로 엷게 깔린 제 웃음들이 보이세요  기대하지도 않았던 백일장 참가 소식을 들었을 때, 시험에서 알쏭달쏭한 문제들을 찍은게 모두 맞았을 때…… 한없이 방방 뛰며 뿜어냈던 제 웃음들입니다. 가방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흥건히 고인 물이 무언지 궁금하시다구요  그게 바로 지난 겨울 눈싸움을 위해 곱게 뭉쳐두었던 눈덩이입니다. 아마 온도 조절이 잘 안됐던 모양이에요. 가방 속은 따뜻하잖아요. 이쪽에 보이는건 대학에 들어가서 사용할 립스틱과 귀걸이구요. 저기 작은 손때가 묻은 꼬마 곰인형은 어렸을때부터 저와 함께 잠을 자던 곰돌이 ‘포미’입니다. 저기 낡은 사진 1장은 제가 태어나서 막 찍은 챙피한 사진이고…… 저쪽에 반짝반짝 빛나는게 보이시죠  그건요……아주 어렸을적 밤하늘에서 빛나던 애기 별이에요. 얼마전에 키가 큰 기념으로 별이 가까이 왔을때 따가지고 왔어요. 여기 분홍빛 박하 향기가 스며든 부분은 제가 짝사랑하던 오[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남기고간 흔적들이에요. 향기……근사하죠  몽당연필, 지우개, 눈금이 다 지워져버린 자…… 이 모든 것들도 제가 아주 소중히 여기는 보물들이구요. 누군가가 세상 사람들이 시계를 모두 감춰버리고 시계바늘을 부러뜨린다해도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국민학교때 차고 다니던 고양이 얼굴 모양의 시계는 더 이상 가지 않는데 전 벌써 이만큼이나 커버렸잖아요. 그래서 그 시계를 가방 맨 앞부분 주머니에 넣어두었어요. 저기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네잎 클로버도 모두 그대로에요.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무당벌레도 그 모양과 색깔이 너무 예뻐서 몰래 몇 마리 넣어두었어요. 밥도 못주는데 살아있는걸 보면 가방속에 담겨진 향기와 꿈을 먹고 사나봐요. 그쵸  저기 500짜리 지폐……기억나세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만 해도 500원짜리가 지폐였다구요. 오래 남을것 같아서 담아 놓았어요. 삐뚤삐뚤한 그림일기부터, 눈물에 찢겨진 글씨까지 보이는 공책들은 제가 쓰던 일기장이에요. 숫자들만 보이는 성적표도 있구요…… 친구가 토끼풀로 만들어준 목걸이랑 팔찌도 있어요. 남들은 이런 것들을 보물상자에 넣어 간직한다죠  넣어도 넣어도 넘치지 않는 마음의 가방이 있다면 보물상자도 아마 필요 없을거에요. 또 뭐 궁금하세요  아……저기 저게 뭐냐구요  어렸을적 영세받을 때 쓰던 이사보랑 촛불이에요. 많이 닳아 없어지고 색깔도 누렇게 바랬지만 그럭저럭 쓸만해요. 친구가 접어준 거북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