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제 32회 콩쿠르 수상작(김인영, 정유경, 김태영)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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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장원>
창
김인영(이화여고)
1.
이 안은 참 포근해
나른한 잠이 오면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말지
그러다 배라도 고플라치면
조금만 몸을 움직여 맛난 것들을 만들면 되는거야
저 밖은 어떨까
내 작은 창 밖 세상에는
가끔씩 비나 눈이 오는데
굉장히 추울꺼야
해라도 내비치는 날에는
모두들 더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난 내방이 좋아
이 안이 좋아
하지만 모두들 왜 저리 행복하게 웃고 있지
밤이면 추울텐데 말야
겨울이면 배도 고플텐데
무서운 짐승이라도 나타나면 어떡하지
그런데도 저들은 뭐가 그리 좋은거야!
오늘은 창밖이 굉장히 투명해 보이는구나
어디 나도 한번 나가볼까
잠시만 느껴볼까
뭐가 그리 좋은지.
2.
참 넓어서 좋다.
가스미 탁 트이는 걸
저 작은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는데 말야
<소설 우수 1석>
그림자
정유경(성남 서현고)
실눈을 뜨고 속눈썹 사이로 예리하게 스며드는 햇빛 한줄기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오후였다.
특히 태운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태운은 조금전, 저녁에 만날 사람들을 위해 면도와 이발도 새로 하고 썩 괜찮은 옷도 다려 놓았다. 처음부터 태운이 자청한 일이기는 한데, 막상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는 그 두려움이라는 것이 알게 모르게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한달 전에 태운이 선택한 일은, 심리학과인 그의 전공을 잘 살려서 어둠 속에 갇혔다는 소녀 한 사람을 밝은 하늘아래로 이끌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 과학 연구소 직원인 삼촌의 말을 듣고서 태운은, 그것은 자기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무척 자신 있다고 장담했다. 그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부모이길래 자신의 딸이 출생 직후부터 어둠 속에서 살아 오도록 내버려둔 것인가에 대해서. 그 ‘어둠’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의미의 어두운 세계가 아니라 정말로 어두컴컴한 다락방을 의미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여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태어난 후 곧바로 버려져서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일곱 살 때 큰 아이들의 못된 장난으로 으스스한 다락방에 갇혀 일주일만에 구출된 후, 여울이는 밝음과 어두움의 교차로를 두려워하고 아예 어둠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설 의료 기관에도 몇 번 맡겨 보았짐나 결국은 그 건물 안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만을 찾아 돌아다녔다는 것이 지금까지 여울이의 행동에 관한 보고였는데, 여울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을 따라서 밝은데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 얘기를 들은 태운은 무척 난감해졌지만, 한 번 뿌린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밤의 공주, 여울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병원 안의 모든 사람들은 올해로 아홉 살이 된 여울이를 ‘밤의 공주’라고 불렀다. 그 장난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져서 어둠의 수호자, 도둑고양이의 여왕 등 여울이에게 붙일 별명은 늘어만 갔다. 태운은 적어도, 사람의 결점을 구실 삼아 놀리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는 넥타이를 맨 후 마지막 한 올의 머리카락마저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 애를 발긍ㄴ 데로 이끌 수 있을까 ’
태운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지하실로 내려가면서 여울이의 별난 성격에 대해 한 가지 두 가지 계속해서 듣게 되었다. 원래 여울이의 방은 18호실인데, 낮 동안은 항상 지하실 구석에서 숨어 지낸다고 했다. 정말이지 그 곳 고아원의 못된 녀석들이 행패만 부리지 않았던들 저 예쁜 아이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하실에 이르는 육중한 철문이 탐탁치는 않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순간, 태운은 무엇인가 검은 물체가 빠르게 구석으로 피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저 정도라면 도둑고양이라는 소리를 듣는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태운은 지하실 내부를 살폈다. 눈이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간호사가 마치 애완 동물을 부르듯이 부드럽게 여울이의 이름을 불렀다. 여울아, 어디 숨었니 이리온…….
“가만있어요. 내가 숨은 데를 압니다.”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면 더 앙탈을 부려요. 팔뚝이 물어 뜯기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그 때만 해도 태운은 여울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멋도 모르고 여울이가 숨어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에 대한 보복은 즉시 날아왔다.
퍽!
태운이 날렵하게 피하지 않았더라면 온 양복이 연탄재를 뒤집어 쓸 뻔한 순간이었다. 그는 발 아래 하얗게 피어 오르는 잿가루를 보고 대충 어느 방향에 여ㅓ울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지를 짐작했다. 그는 여울이의 뒤로 살그머니 다가가 어깨를 움켜쥐기 이전에 우선 그 아이의 머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백열 전구에 불을 밝혔다. 그 순간 태운이 처음으로 듣게 된 여울이의 비명 소리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태운이 거처하는 아파트에 유리한 점이 있다면, 일단 낮 동안은 어두운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보통 아파트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라면 욕실 뿐인데, 태운이 사는 독신자 아파트는 그 욕실마저도 정남향 쪽으로 나 있어서 무척 밝았다. 아무런 힘도 못 쓰고 태운의 집으로 끌려온 첫날부터 여울이는 두려운 눈빛으로 조금이라도 그늘진 데를 찾으려고 애썼고, 종종 소파 밑이나 침대 밑에서 웅크린 채로 발견되곤 하였다. 태운이 침대 밑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그 손을 있는 힘을 다해 깨물었고 왜 도대체 어두운 곳만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입을 열지 않았다. 식사를 할 때도 침대 밑에서 해야만 했고, 화장실에 갈 때는 두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리고 태운의 도움을 받아서 가야 했다.
“여울아, 밥 먹자.”
그러면 여울이는 침대 밑에서 입을 벌렸다.
“여울아, 화장실 가자.”
그러면 여울이는 두 눈을 꼭 싸안고 기어 나왔다. 그런 것을 보면 여울이가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이 애는 자기 자신의 공포에 너무 깊숙하게 빠져 있을 뿐이야.’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태운은 이같은 방법으로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여울이에게 할퀴고 뜯긴 자국만 해도 열 아홉 군데였다. 날마다 변함없는 생활로는 상처만 늘어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날 밤, 그는 집 안의 모든 불을 꺼놓고 여울이를 안심시킨 후에 거실의 소파에 데려다 앉혀 놓았다. 여울이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둠 속에서의 자유가 실감나지 않는 듯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이봐, 여울아, 왜그런 눈으로 날 보는거야 나, 평소에 너에게 먹을 것 주고 잠자리 주고 해줄 것 다 해준 사람이야. 날 못 믿어 ”
여울이는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신중하게 소파에 몸을 묻었다.
팍!
여울이는 몸을 움찔하며 무슨 스포트라이트도 받은 것처럼 두 눈을 가렸다. 그러나 잠시 후 조금씩 시야를 넓혀 보니, 그것은 전등불이 아니고 눈 앞의 텔레비전이 켜진 것이었다.
태운은 여울이의 태도를 자세히 관찰했다. 여울이는 처음에 브라운관을 보면서 안심하는 듯 싶더니 이내 다시 몸을 움츠렸다. TV에서 나오는 빛도 어쨌든 여울이에게는 빛으로 느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태운은 몇 분이 지난 후, 다시 여울이가 감싸 안은 무릎에서 천천히 고개를 드는 것을 보았다. 태운은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텔레비전을 향해 돌아앉으며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만화 그림이 빠르게 지나가고, 성우들의 꾸민 목소리가 재잘거리면서 금방 다음 장면으로 이어졌다.
바로 그 때, 태운은 자기의 어깨에 와 닿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의 숨결을 느꼈다. 태운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의 목을 만지는 여울이의 손을 잡았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여울이는 화면 속의 그림에, 그 그림에서 나오는 미미한 빛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었다. 여울이는 화면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텔레비전의 마력에 빠진 여울이는 태운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거실의 작은 등불을 켜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태운은 천천히, 여울이가 보고 있는 텔레비전의 바로 옆에 등불을 세워 놓았다. 처음에 여울이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가, 태운이 실수로 전등갓을 건드리자 비로소 그 불빛을 보게 되었다.
여울이의 누빛은 금세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여울이와 만났던 첫 날 태운이 보았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공포에 질려있는 눈은 아니었다. 여울이는 그 등불의 밝음이 주는 무서움의 크기를 조금은 참아내려고 하는 듯 했다. 그러나 태운이 이제 막 기뻐하려던 찰나, 여울이는 자기가 손과 무릎을 짚고 있는 마루 바닥에 생긴 자기의 그림자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때 여울이에게 있어서 모든 기쁨과 호기심은 사라져 버렸고, 그 대신 감당할 수 없는 공포만이 남게 되었다.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혼비백산하여 구석으로 달려가는 여울이의 모습은 태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비명소리. 태운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는 여울이에게로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 비명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태운은 여울이의 발목을 잡고는 사정하듯이 말했다.
“왜 이래, 여울아! 이건 너야! 너의 그림자란 말이야!”
“싫어, 싫어! 그사람, 무서워!”
“이건 그 사람이 아니라니까! 여울이 네가 보는 너의 다른 모습이야!”
태운이 하는 어떤 말도 여울이에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울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그를 밀어젖히고 소파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납작 엎드렸다. 다시 처음 상태로 되돌아 가버린 것이 태운에게는 가장 큰 실망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체념한 듯이, 소파 밑의 여울이에게 선전포고와 같이 말했다.
“좋아 그럼 난 계속 여기에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네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면 돼.”
태운은 소파에 길게 눕고 팔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심리학도라고 자부했던 지난 시간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기까지 시작했다. 그는 어둠 속에 침잠해버린 여울이에게 다만 빛을 보여주기에 급급했을 뿐, 그 빛에 대치하여 생겨나는 그림자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울이가 그동안 그토록 두려워 했던 것은 빛 자체가 아니었다. 바로 빛이 만들어내는 또다른 검은 세계, 자기의 그림자였다.
태운은 새삼스럽게 자기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외갓댁의 변소에서 벽에 비친 검은 사나이를 보고 기절해버렸던 자기의 코흘리개 적 시절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것은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그림자였고, 이후 몇 달 동안은 화장실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했던 자기의 어린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아도 너무나 우스우 다.
‘하지만…….’ 하고 그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추억은 그랬다 치더라도, 여울이의 추억은 그렇게 우습거나 흐뭇할 수 있었을까 태운은 여울이가 일곱 살 때 겪었던 경험이 만일 자기의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거듭 마음속으로 말해 보았다.
‘미안하구나, 여울아. 나는 네가 아니고 너 역시 내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너의 아픈데를 치료해 줄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태운은 날이 밝는 대로 여울이에게 안대를 가리고 병원으로 다시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 사람들도 예전에 정 힘들거나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데리고 와도 좋다고 했으므로 별다른 책망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태운이 막 병원을 나서려 할 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하느님이 아니라 박태운이라는 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그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러나 태운은 힘들거나 귀찮아서 여울이를 돌려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빛과 그림자의 상식적인 상관관계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서 여울이를 이해해보고 싶다. 나의 할아버지의 그 큰 그림자에 겁을 먹고 떨었던 어린 시절의 심정이 되고 싶다.’
지금 당장 그렇게 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여울이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태운은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면 여울이를 다시 한번 맡아 보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둠 속에 갇힌 여울이에게 아무래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작은 창문에 둘러서서 낄낄 거리는 사내 녀석들의 그림자였겠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태운은 눈꺼풀에 밀려오는 졸음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고 스르르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태운은 이십오 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일찍이 본적이 없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여울이는 그의 배 위에 머리를 얹고 앉은 채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태운에게 의탁한 듯이, 꾸밈없는 편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던 것이었다.
“여…여울아 ”
여울이는 살며시 눈을 뜨다가 주위가 대낮같이 환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후다닥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두 눈을 가리고 말았다. 아마도 잠결에 밖으로 나왔다가 주위의 어둠에 안심이 되어 그대로 태운의 곁에서 잠들어버렸던 모양이었다.
태운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격에?여울이가 스스로 나왔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를 믿어주고 있는 듯한 여울이의 태도가 무척 고마워서?사로잡혀 천천히 소파옆에 쭈그리고앉았다.
‘너는 빛을 보자마자 네 그림자가 생길까 두려워 다시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널 포기하지 않을꺼야.’
굳게 결심한 태운은 소파 밑으로 자기의 손을 집어넣었다.
“여울아……. 이제 나와도 돼. 옛날에 보았던 그런 무서운 그림자 같은 거…… 이제는 잊어 버려도 돼. 왜냐고 이젠 내가 너의 새로운 그림자가 되어 줄거니까. 그럼 내 손을 잡아……. 그리고 나오는 거야.응 …….”
그러고도 태운은 손을 집어 넣은채로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나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마침내 자기의 손을 잡는 따뜻한 감촉을 느꼈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서 그는 소파 밑으로 고개를 내렸다. 여울이의 눈과 마주친 순간, 그는 그 작은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주춤거리는 여울이의 몸짓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이제 막 나오려고 했다. 여울이는 마침내 자기의 팔이, 다리가, 그리고 얼굴이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세상을 바라보며 나오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세상에 더해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모습?.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수필부 장원>
서편제와 서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