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제 33회 콩쿠르 수상작(양윤의, 홍연주, 정리태)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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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장원>
새벽
양윤의(숭의여고)
어둠이 지나면
나는 당신 아에 선 한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 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어 보이고도 싶고
그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 쯤이면
이 세상 모든 세들을 불러모아
열린 새벽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어둠 그치고
모든 것들이 이른 봄바람처럼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이 어둠이 다하고나면,
당신의 앞마당에 잎을 피웠던
이름 모를 잎들이
이슬 얹혀 팽팽해진 거미줄 위로
물 든 몸뚱아리 떨궈내릴 때
나 당신 곁에 자리를 하고
내 온 존재의 꽃물을 뿌리로 하여
당신 곁에 가지 뻗는 나무이고 싶다.
이 어둠이 그치고 나면.
<소설부 우수 1석>
배신
홍연주(안양예고)
성애는 변했다.
자꾸 밖으로만 맴돌려고 하고 엄마와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성애가 너무도 불쌍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만 탓할 일도 아니었다.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엄마 또한 불쌍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저씨가 미웠다. 왜냐하면 엄마와 성애 사이를 갈라놓은 사람이 바로 그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성애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힘드실 텐데 나까지 속을 썩이면 아마 엄마는 너무도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로 엄마는 철없는 우리 자매를 위해서 모을 아끼지 않으셨다. 시장에서 식당을 경영하시는 큰엄마 댁으로 가서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씻고, 나르시다가 저녁이 늦어서야 돌아오셨고 그때마다 엄마는 봉지 가득 누룽지에 설탕을 뿌린 것을 우리들의 군것질 거리로 가져오시곤 했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가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군것질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서로 싸우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밥을 할 때에도 한 톨이라도 아끼려고 쌀을 계량컵으로 정확히 재서 한 사람 앞에 한 그릇씩만 돌아가도록 했었고, 반찬은 김치가 전부 였었다. 가난하고 궁핍한 행복해던 시절이었다. 가난 때문에 다른 걸 생각할 여유도 없이 너무나 바쁘게 생활했기 때문에 배고픔만 해결 되면 행복했던 그 시절,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많이 변했다.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유일하게 우리에게 남겨준 건, 집 한 채가 고작 이었는데 7년 전 쯤 엄마는 그 집 한 채로 사업을 시작하셨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소의 공간만 제외시키고 엄마는 그 밖의 공간을 방과 부엌으로 고쳐서 전세를 내주었다. 그러곤 그 전세금을 일수를 시작하셨다. 장부를 만들고, 저녁마다 수금을 다니시고, 가끔은 계장이 되어 계도 하셨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뛰어 다니셨다. 그 결과 우리는 새 아파트를 장만해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족은 행복했다.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 너무도 꿈만 같아서 온 집안을 열심히 청소하고 집안 일을 미루지 않는 등 너무 좋아서 싱글벙글 이 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난 한 달 후쯤 그 아저씨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의 행동은 깨지고 만 것이다. 그 아저씨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성애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특히 성애는 나보다 더 많이 엄마를 위해 엄마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저녁상을 차려 놓는 등 그런 일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성애는 성격이 무척 예민한 아이였다. 늘 소파에 쿠션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만 안심을 했고, 집안의 머리카락 하나 때문에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 하곤 했다. 그리고 성애는 학교에서 글씨를 쓰다가도 글씨가 이상하게 써지면 마음이 불안해진다고 ?다. 성애의 예민한 성격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엄마가 수금이 늦어져서 늦게 오는 날은 잠도 자지 않고 집 밖에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추위나 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애야!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려! 엄마도 이제 곧 오실텐데 너무 춥잖니 ” 하고 내가 물으면 성애는,
“엄마는 나보다 더 추울거야!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냐!”
하면서 끝까지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나는 그런 성애를 효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성애가 지금은 너무도 많이 변해 버렸다. 엄마가 삼촌이라고 부르라며 우리에게 소개했던 그 아저씨.
이 모든게 그 아저씨 때문이었다. ㅊ어음엔 나와 성애도 그 아저씨를 진짜 삼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가 우리집에 오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고 가끔은 밤에 잠도 자고 가는 일이 생기면서부터 나와 성애는 그 아저씨가 단순한 삼촌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성애는 그 아저씨를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전부터 엄마와 자주 싸웠었는데 일주일 전, 드디어 일이 터졌던 것이다. 그 날 그 아저씨는 여행용 가방을 들고 밤늦게 우리집에 왔었다. 엄마는 그 아저씨가 부인과 싸우고 우리집에 온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애는 부인이 있는 남자가 우리집엔 왜 오느냐며 반박을 했다. 그런 성애에게 엄마는 그 아저씨가 지금은 부인과 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을 생각 중인데 그 아저씨의 아버지로부터 유산 상속을 받으려면 아저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이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만약 그 아저씨가 이혼을 하게 되면 엄마는 그 아저씨와 결혼을 할거라고 말하면서 그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성애를 설득했다. 그러나 성애는 막무가내였다.
“가정 파괴범이 뭔지 아세요 아저씨 때문에 우리집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구요, 적어도 아저씨가 우리집에 오기전까지는 이렇지 않았어요, 그리고 버젓이 부인이 있는 사람이 우리집엔 왜 와요 올꺼면 부인과 이혼을 하고 떳떳하게 낮에 오란 말이에요! 우?비이 그렇게 우습게 보여요 당장 나가!”
“너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당장 이 방에서 나가!”
엄마가 언성을 높이셨다.
“당장 못나가! 나가란 말야!”
성애가 악을 쓰며 말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멀뚱히 쳐다만 볼 뿐…… 전혀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짝’
엄마가 성애의 뺨을 힘껏 내리쳤던 것이다. 그러자 성애는 손을 뺨에 갖다 대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나가자 성애야 얼른!”
덩달아 나도 눈물이 나왔다. 나는 성애를 데리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니 입장도 이해하지만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니 엄마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우린 잠자코 엄마 뜻에 맡겨야 돼! 그 동안 엄마가 우릴 위해 희생했던 걸 생각해봐. 엄마를 이해해 드려야지!”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러나 성애는 훌쩍거리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일이 있은 후로 성애는 엄마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 성애 입장도 이해해 주셔야죠. 한참 예민할 나이잖아요! 더구나 성애 성격도 생각해 주셔야 해요!”
엄마도 성애에게 무척이나 많이 실망을 하신 것 같았다.
오늘도 성애는 어딜갔다 왔는지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러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자기방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자는 모양이었다. 나는 성애에게 가볼 하다가 그냥 내 방으로 들어갔다. 복잡했다. 내 입장이 난처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 같았다. 나는 방문을열고 거실로 나가 보았다.
“엄마! 왜그러세요 ”
엄마 주변에는 빈 소주병 두 세 개가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나 때문에 깼니 미안하다. 그냥 힘이 들어서 그래!”
엄마는 마저 남은 소주를 병채로 마셨다. 많이 힘드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나는 엄마 옆에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애가 나왔다.
“엄마! 죄송해요.”
성애가 울면서 엄마 앞에 앉았다.
“많이 생각해 봤어요. 제가 너무 저만 생각했던것 같아요. 잘못했어요!”
성애가 엄마의 무릎에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마가 성애를 끌어안았다. 얼마만에 엄마가 성애를 안아 주신 것인지. 어느 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필부 장원>
곤지암 새벽 그 언니와 이슬
정리태 (혜성여고)
나는 세상의 첫 풍경을 좋아한다. 알에서 막 깨어 나오는 어린 새 봉우리를 이제 막 터뜨리는 꽃, 5월, 지금 같은 때에 저렇게 여린 새 잎들, 그리고 나는 어둠이 걷혀가는 새벽풍경을 좋아한다. 어제에 보았던 것이지만 새벽에 다시 보면 싱싱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며 내가 잠에서 깨어나면 창문부터 활짝 여는 것도 이처럼 싱싱한 새벽을 내 안으로 들여놓기 위해서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세상의 첫 풍경을 만나기에 인색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공부, 원수 놈의 공부 때문에 여행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밀린 숙제를 하다보면 늘 잠자는 시간이 자정을 지난다.
어렸을 때는 내가 우리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깨웠다. 나는 소리소리 지르곤 했다.“엄마 아빠 참새소리 좀 들어봐요.” “오빠야 장미꽃 피었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뉴스보다도 신나는 뉴스였으니까. “리태야 얼른 일어나거라.” “리태야 학교 늦겠다.” 솔직히 요즘의 우리집 아침소리는 지겨운 것들 뿐이다.
그런데 작년 여름방학 때 나는 시골 곤지암에 가서 한동안 지냈었다. 소머리국밥으로 유명한 곤지암에서 양평가는 쪽으로 10여분 차를 타고 가다보면 산 아래에 연곡리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의 은행나무 뒷집에서 한동안 머문 것이다. 젖소농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냄새가 바람따라 흘러 들어오곤 했지만 넓은 밭이 딸린 그 집은 나에게 신천지였다. 눈만 들면 서울의 그 지겨운 시멘트 건축물들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푸른 나무 푸른 하늘이 보였고 밭에는 호박, 참외, 상추, 들깨, 고구마도 자라고 있었다. 그 뿐인가 마당가에는 넝쿨장미, 봉숭아, 채송화, 맨드라미 그리고 그 곳의 처음 만난 붓꽃도 늘 새롭게 피어나고 있었다. 연록리에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새들이 그렇게 많이 짹짹거리고 소들도 음메음메 하고 우리가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또한 일찍 일어나서 밭일을 했었는데 나는 그 곳 생활이 풀 나무처럼 싱싱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더 눈에 익은 서울의 사람들과 건물들과 차들에서 푸른산과 푸른 논밭과 푸른 나무들을 대한다는 것은 지치지 않아서 좋았다. 아마도 우리 사람은 푸른 물 좋아하는 기운이 우리 피 속에 있는 모양이다. 푸른 산과 푸른 나무를 보는 것이 지겹다는 소리는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아침이면 밭에 갔다오는 아빠의 바지가 젖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처음 호스로 물을 주고 와서 그러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맑은 날도 호스로 물을 대지 않는 날도 아빠의 바지는 젖어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내가 아빠를 따라서 밭두렁길을 걸어 오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이슬, 이슬이 바지를 젖게 하는 것이었다. 풀잎이나 콩잎이나 고구마 잎에 내려있는 그 작고도 작은 수많은 이슬방울들 그것은 새벽의 신비였다. 세상에 새벽이슬보다 더 맑은 것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겠다. 밤사이에 별이 흘린 눈물인가. 나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한번은 콩줄기와 줄기사이에 어린 거미가 쳐 놓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물을 보았는데 글쎄 거기에 작은 이슬 방울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는 것이었다. 아, 아기거미가 저 이슬방울 하나를 가지면 목욕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나느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하도 가슴이 충만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이슬방울 두 셋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도 내 방정으로 아기거미 목욕탕 셋을 깨뜨린 것을 후회하고 있다. 곤지암 새벽에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날 새벽에 아빠를 따라 산책 나갔다가 만난 언니였다. 그 언니는 무슨 일로 산을 헤매고 다녔는지 상의까지도 이슬에 비에 젖은 듯 푹 젖어 있었다. 아니 긴 머리카락조차도 물에 감은 듯 젖어있었다. 아빠는 밤사이에 홀로 헤매지 않을 수 없는 고통이 있나보다 하고 말했다. 나는 왠지 가슴이 아팠다. 밤사이에 별들의 눈물과 같은 이슬을 맞으며 들과 산을 헤맨 그 어니는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에 비 온 것을 보니 더욱 그 생각이 난다.
새벽이슬 그것은 순수이고 청순이고 신비이다. 때로 새벽이슬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영롱한 맑음이 그리고 영롱한 무지개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슬방울이 남몰래 흘린 눈물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을 거절하고도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