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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제 37회 콩쿠르 수상작(최설희, 박소영, 강예진)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230
<시부 장원> 책, 나무, 집 최설희(염광여고) 1. 책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었다. 가슴에 수를 놓고, 뚫린 입에 단추를 채워 마구 튀어나오는 실밥같은 단어들을 동여매 주는 바늘이었다. 책은 바늘이 되기 위해 무성한 뾰족함을 온갖 은유와 비유로 갈아 없애고, 닫힌 바늘귀를 눈물로 퇴색 시켜, 섬섬옥수 문장들을 꿰어내었다. 2. 나무 시인이 나무에게 물었다. “넌 아프지 않니 ” “내 몸을 뚫고 들어 온 건 ‘아픔’이 아니라 ‘성장’이다.” 시인은 나무의 몸 속에 바늘을 찔렀다. 아프다. 시인의 몸을 뚫고 들어 온 건 ‘아픔’이다. 3. 집 나무가 말했다. “그들은 다시 알을 낳으러 돌아 온단다” 시인은 바늘을 다시 갈고, 실을 꿰어 가슴에 수를 놓는다. 날아가 버린 문장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며 밤새 문을 열고 바느질을 한다. (시인은 문장이, 바늘이 드나들기를 기다리는 집이 되었다) <소설부 장원> 황사 박소영(대진여고) 나는 먼지를 세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앗, 놓쳤다. 다시 처음부터 하나, 둘, 셋??? 다른 할 일을 생각하라면 못 할 것도 없다. 먼지를 센다는건 아주 골 때리고 의미없는 짓이니까-게다가 이건 쓸데없이 아주 많은 주의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넷, 다섯, 여???스 ㅅ-. 덕분에 나는 옆에서 쉴새없이 쫑알대는 은경이의 말따윈 가볍게 씹을 수가 있다. “??????그래서 오[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말이야, 집까지 바래다 준다고 그러는거야?????? 아유?????? 내가 싫다구 그래도 자꾸만 씨- 너 내 말 듣기나 하는거야 ” “어??????.” 먼지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 어쩌면 발악을 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운동장의 누런모래와 칠판의 분필가루가 햇살을 받으며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 아니?????? 발악. 눈물나게 아름다운 발악??????. 아침에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젓가락을 식탁위에 쩡 소리가 나도록 집어던지고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질이라는 것, 또 하나는 소세지?????? 소세지 때문이다. 아침식사 반찬으로 소세지가 올라왔나보다. 식구들이 다 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성질급한 아빠는 낼름낼름 소세지를 죄다 집어먹었나보다. 그래서 엄마가 말렸겠지?????? 지영이 먹을 것 좀 남기라고-그게 이유다. 그리고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그 이후로 식구들한테 한마디도 안 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내가 엄마한테 이유를 듣고 깔깔깔깔 웃었기 때문이다. 겨우 소세지 때문이야  하면서?????? 그래서 난 엄마한테 미친년 소릴 듣고 아빠는 한마디 말도 없이 출근해 버렸다. 휴      . 속으로 반항하는게 얼마나 가슴짜릿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담임선생은 성격파탄자다. 가끔 우리반은 단체로 혼나면서도 그 또렷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난 너희들을 내 손 안에 넣고 주무를 수 있어. 너희들의 그 썩어빠진 사고방식과 게으름, 나태함을 꺾어버릴 수 있어. 너희들을 내 맘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알아들어. 이 새끼들아 ” 사건의 시작은 그냥 효진이가 어제까지 내라던 학생증 사진을 안 낸데서 시작된다. 겨우 그거 가지고 혼자 지랄이다.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느낀 나는 재미있고 유쾌한 속으로 반항하기 놀이를 하기로 한다. 고개를 숙이고 무진장 잘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머릿속엔 즐거운 문장을 나열하는 것이다. 선생님을 욕하거나 속으로 비꼬는 게 아니라 운동장 밖의 새소리를 듣고 어디서 나는지 모를 꽃향기를 맡으며 봄을 만끽하는거다. 속으로는 내내 여행스케치의 ‘우리가 함께하는 이유’를 부른다. 봄이다. 모래 바람이 교실안으로 들어온다. 다시 또 먼지를 센다. 책상 머리에 꼼짝하고 앉아서 죄송한 표정을 짓지만 내 머릿속은 미친 먼지처럼 춤을 춘다. 선생님은 아무리 노력해도 저희들을 선생님 맘대로 하실 수 없어요. 지금은 봄이고 저희 생각은 모래바람처럼 자유로운 걸요       . 아빠는 다혈질이므로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화를 내는건 아빠의 성격이고 우리식구의 운명이다. 그리고 얼마안가 곧 풀어질 것을 알기 때문에 별 걱정할 이유도 없다. 우리 포유류는 환경에 맞게 적응해 나간다고 하질 않던가 헌데 이번 건은 좀 길어질 것 같다. 퇴근하고 들어와도 아빠는 한마디도 하질 않는다. 누워서 tv만 본다. 아빠 주위의 냉랭한 공기 때문에 우리식구들은 감히 근처에 접근을 못하고, 보고싶은 연속극이 있어도 눈물을 머금고 재방송을 기대한다. 방에 들어간 나는 공부나 할까 생각하다가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그렇지, 그건 못할짓이라고 판단하고는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참 오랜만에 쓰는 일기다. 일주일정도 안 썼나보다. 내가 게으른 탓도 있지만 내 잘못만은 아니다. 쓸거리가 없었던 거다. 나는 죽어도 하루가 반복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말로 또 내일이 올까봐 두렵다. 요며칠 사이에 나는 매일아침 일어날 때 보이는 풍경이 어제의 그것과 너무도 같다는 것에 숨막힘을 느껴왔다. 눈을 뜨는게 겁이 났다. 분명 너무나도 익숙해진 천장. 어제와 똑같은 위치의 시계바늘. 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을 내가 보일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서 어쩔건데  이건 핑계다. 골 빈 열여덟살 여자애의 구차한 변명이다. 중요한 건 일상이 아니잖아        진짜는 생각이잖아. 학교의 시간표가, 34번 버스노선이 정해진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생각만 다르다면 된 거 아닌가  멍청하게 일상에 몸을 맡기지마 황지영.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눈을 떠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기도를 하는거야. 일기를 쓰자        일기를 쓰자        일상을 쓰지말고 생각을 쓰자       . -우리의 머릿속은 바람에 날려 햇살에 반짝이는 누런 모래처럼 자유롭다-4월 12일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차라리 아주 늦게 왔으면 좋겠다. 죽을 맛이다. 아빤 평소보다 더 일찍 퇴근한다. 이틀째다. 아빠에게 저런 끈질긴 면이 있는지 몰랐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신발장에 아빠구두가 있으면 순간적으로 긴장이 된다. 아빤 또 무거운 표정으로 tv만 보고 있다. 원래 난 아빠랑은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아빠의 썰렁한 유머와 술마시고 들어온 날 한얘기 또하고 한얘기 또하는 지긋지긋한 설교는 정말 짜증나게 싫다. 내가 사랑하는 건 아빠의 침묵이다. 언젠가 한번 할아버지 병원에 아빠랑 나랑 둘이 간 적이 있었다. 밤이었고 비가 왔었다. 아빠와 단 둘이 드라이브를 하는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날 난 항상 엄마가 앉던 운전자석 옆 조수석에 앉았고 우린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어두운 차안-조용히 야광빛으로 깜빡이는 계기판-밤의 모든 색깔을 헝클어 뜨리며 쏟아지는 비-천천히 빗물을 닦아내는 와이퍼의 움직임- 그리고 침묵을 지키며 보드럽게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빗방울을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중에 ‘아버지’란 단어를 들었을 때 지금 이 장면을 떠올려야지 - 하고        . 그때의 그 장면은 내가 너무도 열심히 관찰한 까닭에 맘만 먹으면 언제고 그 생생한 영상을 꺼내볼 수 있게 잘 저장해 두었다. 아빠는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침묵을 완강히 지키고 있다. 오늘은 야자를 땡땡이 치고 좀 이른 시간에 집으로 간다. 건널목에서 좀 이상한 사람을 봤다. 정박아인가 보다. 얼굴은 아저씨 같은데 키도 작고 옷도 지저분한 사람이 어디서 주웠는지 실뭉치를 들고 놀고 있다. 그 사람의 등에는 ‘심재철’이라는 이름이 써 있고 전화번호도 같이 써있따. 실뭉치를 갖고 놀던 그가 바닥의 모래에 손을 댄다. 멍한 눈동자엔 바보같은 웃음이 들어있다. 그의 손이 곧 누런 모래로 더러워진다. 아, 그때 한 여자가 오더니 그 사람을 발로 뻥뻥차며 욕을 한다. 못살아 못살아 하면서? 그는 손에 묻은 모래를 탁탁 털리고는 개처럼 그 여자에게 지일질 끌려간다. 난 그때 승철이 아저씨의 죽음을 보았다. 일년전 돌아가신 아빠의 친구분인 승철이 아저씨…‥ IMF직후 아저씨 회사가 어려워지자 아저씨는 내내 담배만 피우며 고민고민 했고        그러던 어느날 저녁 신문을 보던 아저씨는 승철이 아줌마에게 머리가 아프다며 하소연을 하드랜다. 아저씨는 계속 머리가 아파. 머리가 아파. 그 말만 반복하시다가 그렇게 그냥 돌아가셨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모습으로        일년전이다. 일년이 지났다. 당시 그토록 괴로워했던 엄마 아빠도 이젠 생활에 익숙해져 아저씨의 죽음을 잊어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게 생각이 난 것일까 아빠의 침묵도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난 평소처럼 동생들과 떠들고 웃고 한다. 아빠를 걱정하는 건 엄마뿐이다. “밥 먹어요. 밥은 먹어야 될 거 아니예요       .” 엄마가 아니라 내가 이말을 했다면 글쎄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난 애교따윈 부릴 줄 모른다. 게다가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밥을 먹든 말든 나랑은 관계없다. 오히려 사정하는 엄마가 답답하다. 아빠는 초저녁부터 잠만자고, 우리는 아빠를 빼놓고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이 럴 수 가        우리가 아빠를 완벽하게 ‘왕따’시킨 것이다. 힐끗보니 아빠 이불을 말고서 시체처럼 잠들어 있었다. 뭐  시체라고  그날 난 또 한번 승철이 아저씨의 죽음을 본다       . 우리가 아빠를 왕따시킨 날?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똘똘말고 자던 노란 이불의 정점이        마치 그 사람이 만지고 놀던 모래처럼        흐려져갔다 만세! 드디어 엄마가 폭발했다. 나흘째 아침이다. 아빠는 서랍을 뒤지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느냐고 엄마가 물어도 아빠는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랍을 뒤적거린다. “뭐 찾아요 ” “       .” “뭐 찾느냐니까 ” “       .” “말을 해야 찾아줄 것 아니에요  뭐 찾는데 그래요 ” “       .” “사람이 도대체 왜 그래요  말을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아니야. 으이고 황사명씨 원래 쪼잔한 사람인줄은 알았지만…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시네?정말 그깟 소세지 하나로 그러는 거예요 ” “그만해” 헉 아빠의 목소리가 무섭다. 그렇지만 엄마는 그만하지 않는다. “사람이 제 입만 알아가지고        반찬같은거 애들 먹으라고 산건데 도대체 어른이 돼가지고 왜 그래요  당신 맨날 술 퍼마시는 그 돈으로 애들 간식이나 사줘봤어요  자기입만 입이고   사람은 주둥아리지” “그만하라고 했어.” 앗. 엄마 위험해        아빠는 화나면 무섭다. 방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있는 내 가슴은 조마조마해진다. “내가 당신 먹이는게 아까워서 이러는 줄 알아요  난 고기반찬 사도 제대로 한입 먹어보지도 못해.” “그만해” “ 내 돈 주고 내 양말 한 켤레 사보지도 못해. 내가 내꺼 사느라고 당신한테 소홀한 적 있냐구요       .” “그만 하랬지.” 엄만 울면서 계속 얘기하고 아빠는 그만하라는 말만 할 뿐 저번처럼 방문을 꽝 닫거나 소리를 버럭지르거나 하지 않는다. 그나마 그만하라는 소리도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두 사람의 흥미진진한 싸움을 더 듣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난 학교에 가야한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결과는 엄마의 승리라는 것이다. 왠지 좋은 예감에 현관문을 열고나온다. “다녀오겠습니다!” 앗, 실수다        저런 심각한 상황에 내 목소린 너무 밝고 활기넘친 것 같다. 으이구        누치코치 없는 이 둔한 감각이라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학교로 향하는 내 걸은이 쓸데없이 가볍다. 우와? 어젯밤 내가 모르는 사이 비가 왔었나  깨끗한 하늘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이런 촉촉한 공기에서는  모래먼지 따윈 날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난 하나의 즐거운 유희를 잃어버린게 되나       . 밤에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아빠는 다 쫄아버린 ?떵봉? 식은 김말이, 싱거운 오뎅국물을 잔뜩 사들고 와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엄만 더럽게 맛 없는거 사왔다고 투덜댈 것이다. 그럼 아빤 괜히 또 나한테 계집애가 먹은거 치울 줄도 모른다고. 시집가서 어떻게 살거냐고. 너 ?た?엄마가 살이 안찌는 거라면서 혼낼 것이고 신이난 엄마는 자기방 청소도 자기가 할 줄 모르며, 어제는 야자까지 땡??이 쳤다고 아 한테 다 일를 것이다. 에고에고        집에가면 좀 많이 피곤하겠군. 날씨가 짜증나게 좋다. <수필부 장원> 꽃과 잎 강예진(가락고) 꽃집이라는 곳이 있다. 그런데 앞집이라는 곳은 없다. 꽃집에 들어가 보면 한 줄기에 꽃과 잎이 같이 달려 있는데도 말이다. 꽃다발이라는 말은 있어도 잎다발이라는 말은 없다. 꽃다발에는 꽃과 잎이 함께 있는데도 말이다. 꽃한송이라는 말은 그것에 딸린 잎까지를 같이 부르는 것이지만 잎 한 장이라는 말은 그렇지가 않다. 단지 잎만을 부르는 소리이다. 그 말에는 꽃이라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잎이 들으면 서운해 할 지도 모를 얘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들 한다. 꽃은 중심적인 존재이고 잎은 부수적인 존재니까……. 꽃은 중요한 존재이긴 하다. 꽃을 피워 수정을 하고 계속해서 대를 이어나가게 하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존재, 그것이 바로 꽃이다. 그래서인지 꽃은 잎보다도 돋보인다. 색도 곱고 생김새도 예쁘다. 또 향기까지 난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꽃보다도 잎을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이란 있을 수 없다. 길바닥 구석 좁은 틈새에 피어난 자그마한 민들레에도 잎이 있다. 잎은 꽃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잎은 꽃의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한다. 꽃의 색과는 반대이면서 꽃의 색보다 눈에 띄지 않는 얌전한 색을 띈 잎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이 색은 꽃의 빛깔을 더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잎은 꽃보다 위에 달리는 법이 없다. 항상 꽃보다 아래의 위치에 있는 겸손한 모습이다. 이것이 내가 꽃보다 잎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내면의 성숙함이 잎의 모습이다. 꽃은 어쩐지 자만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잎이 없어도 저 혼자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자만심에……. 그런 면에서 보면 꼭 내가 꽃인 것 같다. 그리고 엄마는 잎이라고 할까  항상 무엇을 하든지 엄마는 나를 위해서 양보하신다. 꼭 잎이 꽃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과 닮았다. 잎의 색이 꽃의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처럼 엄마의 마음은 엄마 자신보다 딸인 나를 더 소중히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잎이 꽃보다 아래에 달려 꽃을 더 높게 보이려 하는 것처럼 엄마는 당신을 낮추신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눈에 띄는 줄, 내가 제일 높은 줄 안다. 꽃의 자만심이다. 꽃은 잎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잎의 존재가 아니면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의 외면적 아름다움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고귀한 아름다움은 잎의 마음가짐에 있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함이야말로 빛을 잃지 않는 가치있는 아름다움이다. 이제는 나도 잎이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배경이 되어 중요한 존재를 받쳐주고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마음은 우선 자신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낮추는 일이란 쉬운 듯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자신을 위한 것들을 버리고 오로지 꽃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그 일념으로 잎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잎의 자세가 아름답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떤 꽃도, 어떤 잎도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 꽃은 잎의 역할로 더 돋보이게 되고 잎은 꽃이 있기 때문에 내면적인 겸손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꽃과 잎의 어우러짐이야 말로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적인 특성이 있듯이 꽃 한송이에는 꽃의 외면적인 아름다움과 그것에 어우러진 잎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이 두 가지 아름다움을 함께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면서 또 그 중요한 존재를 도와주는 부수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혼자서 할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꼭 있어야 하는 중심적 존재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꽃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그다지 꽃만큼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 마치 한 송이의 꽃에 여러 장의 잎이 붙어 있듯이…….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잎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그만한 가치로 소중한 존재가 된다. 비록 중심적 존재가 아니더라도 중심적 존재를 비춰주는 소중한 존재야말로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잎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꽃처럼 겉으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잎처럼 겸손한 마음가짐이 좋다. 꽃과 잎의 조화 속에서 조용히 잎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꽃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잎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함께 있는 꽃과 잎을 떠올려 본다. 역시 꽃과 잎은 함꼐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