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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제 38회 콩쿠르 수상작(김루미, 석재임, 김정민)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156
<시부 장원> 새 김루미(영광 해룡고) 나는 추적추적 나리는 빗속에 가느단 벚가지 위로 자그마한 몸뚱어릴 얹은 이름 모를 새를 보았다. 회빛 하늘 내음 물씬하더니 모처럼 들려오는 단비 소리 무뎌있던 가슴을 톡 자극한다. 말간 교정 사이로 두리번 거리던 귀와 눈은 기울어지고 ‘교목 보호’ 팻말 붙인 벚꽃은 흐드러지게 날리고 있었다. 고요히 함께 노래하던 새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새끼 손톱만한 벚꽃잎이 하이얀 벚나무의 눈물임을. ‘강호에 병이 깊어 둑님에 누었더니……’ 정철 시인의 관동별곡 오늘도 연이은 국어 수업 은유법, 대유법 한 줄이라도 더 분석하느라 여념없는 귀와 눈은 기울어지고 발맞춘 머리는 애써 무거운 톱니바퀴를 돌리느라 열중이다. 나를 뚫어져라 보는 저 새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틀에 짜인 시간 속에 시들어 가는 생각들의 눈물임을. 어느새 새는 내 쩔은 가슴 위로 자그마한 몸뚱어릴 얹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설부 장원> 지하도 석재임(부산동여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향긋한 커피 내음새가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언제 일어 났는지 아내는 벌써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잠은 벌써 깨었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본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내가 내게 달콤한 목소리로 아침을 알려 줄 것임을 알기에……. 5분쯤 지났을까 “일어나세요. 지금 일어나셔야 해요. 오늘 새로 수습 기자들이 온다면서요.” 언제 들어도 자상한 아내의 목소리에 방금 일어난 척 해 본다. 그렇지 오늘은 수습 기자들의 첫 출근 일이다. 하지만 조금 여유를 부리며 집을 나선다.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잠시 집을 올려다 보았다. 역시 아내는 아직도 베란다에 서서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운전해서 신문사로 가면서 문득 나는 참 행복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내 인생엔 별로 큰 고난이 없었따. 비교적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에도 아르바이트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성적도 전교 5등 밖을 벗어 난 적이 없었다. 졸업 후에도 취직 걱정없이 지금 신문사에 입사했고, 올 봄에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까지 했다. 처가 역시 장인이 사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회사 앞에 도착했고 서둘러 올라갔다. 자리에 앉아 오늘 아침 조간을 읽고 있으니 국장님이 새로운 얼굴 한 명을 데리고 오셨다. 수습이리라……. “자, 오늘부터 우리 막내가 된 정하섭씨입니다. 정하섭씨 사수는 김인석씨니까 잘 가르쳐 보시고, 오늘 조간 봤죠  갈수록 우리 판매 부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이래서야 원. 아무튼 이따가 회의 시간까지 특종이 될 만한 아이템 하나씩 생각해 보고, 김기자  정하섭씨 잘 교육 시켜봐.” 하필 내가 수습을 담당해야 하다니. 우리 신문사는 수습기자랑 선배기자랑 한 팀이 되어 한 달 동안 기사를 작성하고 평가한다. 물론 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 한 수습은 퇴사 조치고 선배기자의 인사고과 또한 별로 좋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이번 수습을 내가 답당하게 되다니. 제발 돌머리가 아니길 빌 뿐이다. 정하섭이란 친구에게 몇 가지 유의사항을 가르치고 있는데 오전회의 시간이 되었다. 회의실로 가서 허구헌날 외쳐대는 그놈의 특종거리에 대한 얘기를 또 듣고 있는데,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던 정하섭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저, 국장님 제가 아이템을 하나 내도 되겠습니까 ” “자네가  그래, 한 번 말해 봐.” “네, IMF체제에서 벗어났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전국에는 실업자나 부랑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길 써 보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기사는 지금까지도 많았지 않나  그런건 이제 특종이 될 수 없어.” “아닙니다. 기존의 기사는 그저 수박 겉핥기 식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엔 우리가 직접 그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 생활하고 그것을 시리즈물로 올리자는 겁니다.” “오, 그거 괜찮겠군. 그런 자네랑 자네 사수가 김기자지  둘이 한 번 추진해봐, 우리도 특종 한 번 터뜨려 봐야지.” 봄에 특종 한 건 터뜨려 보너스를 받고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는 이기자였다. 생김새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어쨌든 이미 결정난 일 어떻게 할 지 방향 설정부터 해야겠지. 정하섭 저 친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싱글거리며 다가왔다. “선배님!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지하도가 좋을 것 같아요.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잠자리 없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찾는 장소가 거기잖아요. 미룰 것 없이 오늘부터 시작하죠 ” 어라, 이 친구는 벌써 계획까지 다 세워둔 모양이다. 좋아, 이 친구 뭔가 자신있는 모양이니 일단 믿어보고 나중에 기사 작성만 잘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그럼 일단 집에 연락하고 옷도 좀 갈아 입어야겠지 ” “네,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아내에게 출장이 있어서 당분간 집에 못 가겠다고 해두고 언니네 가서 지내라고 했다. 소형 녹음기도 챙겨두고 어느 정도 준비를 끝내 놓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으니 정하섭이 도착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정말 누가 봐도 거리의 부랑자 모습이었다. 나에게도 옷을 건네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오늘부터 김인석 스타일 완전히 구기게 됐다. 우리가 신문사를 나와 가장 처음 한 일은 지하도 계단에 앉아 구걸을 하는 일이었다. 정하섭은 꽤 능숙하게 했지만 난 도무지 고개도 들 수 없었다. 마지못해 나는 장님 흉내를 내기로 하고 얼굴을 반쯤 덮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꼈다. 그러고 꼬박 6시간을 앉아 있었다. 허리도 아프고 그보다는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하지만 지갑은 신문사에 두고 나왔고 내가 가진 것이라곤 구걸해서 번 돈밖에 없었다. 돈을 헤아려보니 오천원이 조금 넘었다. 정하섭도 배가 고팠던지 나에게로 다가왔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우선 화장실부터 가자고 했다. 지하도 아래로 내려가는 데 누군가가 우리를 따라오더니 다짜고짜 우리를 내동댕이 쳤다. “이 새끼들아 누가 여기서 구걸하래  여긴 내 구역이야. 다시 한번만 여기서 얼쩡대면 둘 다 확 죽여 놓을 줄 알아. 알겠어 ” 얼굴이 험상궂은 남자 한 명이 그렇게 외치더니 나머지 서너명이 우리를 둘러싸고 발로 밟고 하루종일 번 돈 전부를 빼앗아 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저녁도 굶은 채 잠자리를 찾아 어슬렁 댈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어이, 거기 젊은이 둘. 신참인가 본데 일루 와. 여기 자리 있으니…….” 웬 노인네가 부른 것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더러운 냄새가 이런 생활을 한 지 오래 된 듯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너무나 낯익은 목소리 같았다. 아니지. 내가 저런 노인네를 알 리 없으니 내가 잘못 들은 것일 것이다. 내가 생각에 빠진 동안 정하섭은 벌써 그 노인네에게 쪼르르 달려가 있었다. “아이쿠, 고맙습니다. 어이 김형도 일루 와요. 여기 신문지도 있어.” 김형  어쭈 수습 주제에. 나중에 신문사 가서 혼내기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다가   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자 그 노인네는 눈이 갑자기 커졌다. 왜 놀라지. 어쨌든 나는 주머니 속의 녹음기 작동 버튼 몰래 누르며 하섭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언제부터 여기서 주무셨어요  자식 없어요  저는 두달 전에 회사가 부도나서 이렇게 떠돌고 있습니다. 어르신은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 제벌 그럴 듯하게 말을 풀어 놓는군. “시끄러 입 닥치고 잠이나 자.” 노인네 성깔하고는. 꼭 우리 장인 영감 같군 그래. 그 한마디만 던져 놓고 돌아누워 버려서 할 수 없이 오늘은 포기하기로 하고 자리에 누웠다. 차가운 바닥의 기운에 뼛 속까지 얼어 붙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옆에서 자는 정하섭은 지네 집 안방인양 코까지 골고 있었다. 새벽녘에야 잠깐 풋잠이 들었다. 옆에 노인네가 나를 깨웠다. “언능 일어나. 역무원들 오기 전에 나가야 해.” 쫓기듯 그렇게 일어나 노인네를 따라 어디론가 갔다. “지금 어디가는 겁니까 ” “비럭질을 해 먹더라도 배가 불러야지. 그리고 자네 둘은 젊고 힘도 좀 쓰것으니 구걸 할 생각말고 아침먹고 공사장 같은 데라도 가봐.” 노인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무료 급식소였다. 밥이라고 주는 것이 콩나물국에 밥과 김치가 전부였다. 평소같으면 거들떠도 안 봤겠지만 어제부터 굶은 탓에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를 하고 노인네와 헤어져 정하섭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찾아 내는지 부랑자들을 찾아 다니며 제법 쓸만한 인터뷰 몇 개를 따냈다. 그렇게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어제 잤던 자리로 돌아왔다. 노인이 먼저 와 있었다. 오늘 구걸한 돈으로 샀는지 소주 한 병을 사다가 과자 한 봉지랑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오자 아는 체를 하며 한 모금 마시라고 했다. 그 더러운 입이 닿은 걸 마시라니. 그런데 정하섭 이 친구는 비위가 얼마나 좋은지 그것을 받아 마시는 거다. 할 수 없이 나도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셋이서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소주 덕분에 몸에 열이 올라 어제보다는 좀 덜 추운 듯 했다. 잠든 줄 알았던 노인이 말문을 열었고 나는 재빨리 녹음기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자네가 어제 내가 어쩌다 여기서 사느냐고 물었지  자식 없느냐고……. 자식, 물론 있지. 금이야 옥이야 곱게 키운 딸자식이. 고작 열 살 때 지에미 먼저 보내고 나혼자 키워 올 봄에는 시집도 보냈지. 신문사 기자를 하는 남자고 집안 형편도 괜찮은 사람이었어. 딸자식 시집도 잘 보냈고 사업도 그럭저럭 잘 돼서 별 걱정이 없어 내 노년에 팔자 펴는 구나 했지. 근데 6월달에 자네들도 알 거야. 혜성 그룹, 혜성 그룹이 부도가 났잖은가  우리 회사는 거기서 하청을 받아 일을 하는데 믿었던 거기거 부도가 나버렸으니, 어쩌겄나. 직원들 월급은 커녕 빚쟁이들한테 쫓겨 이리 사네.” “그럼 따님께는 연락 안하셨어요 ” “그 아이한테는 말했지만 지 남편한테는 입도 뻥긋 말라고 했어. 자,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그만들 자.” 노인네 그냥 사위한테 말하면 될 것을 사서 고생하고 있군. 근데 우리 장인이 사업은 안전하다고 했지  어이쿠 내가 우리 장인을 저 따위 노인네랑 비교하다니 장인이 알면 그 성질에……. 오늘 아침도 그 노인네가 우리를 깨워 그 급식소로 가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어디로 갈까 하섭과 의논하고 있는데 간 줄로만 알았던 노인네가 다가왔다. “이까 두시까지 그 전철역으로 와. 내가 특별히 두 사람 점심 사줄테니.” 비럭질해서 사는 주제에 우리 밥을 사주겠다니. 저 노인네 지하도에서 사는 게 이제 편한가 보군. 어제처럼 몇 군데 다니며 자료 수집을 하고 내일은 집에 가기로 하고 노인네를 만나러 갔다. 우리를 중국집에 데려가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사먹이고는 나중에 보자며 어디론가 갔다. 밤이 되어 잠자리로 찾아 들었다. 오늘만 지나면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편해지는 듯 했다. 그런데 옆자리의 노인네가 오늘따라 핼쓱해 보이고 자꾸만 기침을 해댄다. 늙은이가 오늘따라 한데서 자 감기가 걸렸나보다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발로 걷어찼다. 깨어보니, 역무원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노인네가 항상 역무원이 오기 전에 깨웠었는데 옆자리를 보니 아직도 자고 있다. 깨우려고 몸을 흔드는데 몸이 나무토막같이 차고 딱딱하다. 코에 귀를 갖다 대어 보았다. 숨을 쉬지 않는다. “여봐요.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역무원 몇 사람이 달려왔고 곧 경찰이 왔다. 노인네 시체를 가져가며 정하섭과 나도 파출소에 따라갔다. 우리는 취재하기 위한 기자라고 말하고 신문사와 통화한 후 파출소에서 나왔다. 아침부터 재수없게 시체를 보다니……. 그것보다 밤새 시체와 같이 잤을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내일부터 녹음내용으로 기사를 쓰기로 하고 정하섭과 헤어져 집으로 왔다. 아내는 사촌언니네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집은 비어 있었다. 우선 며칠간 씻지 않아 온 몸이 간질거려 샤워부터 했다. 샤워하고 나와 맥주를 한 잔 마셨다. 혹시 그 동안 연락온 것이 있는지 핸드폰 음성 사서함을 들어 보았다. 한 개의 메시지가 있었다. “여보, 아버지가 돌아 가셨대요. 듣는대로  리 큰 아버지댁으로 오세요. 정식이 오빠네에 빈소 차렸어요.” 아내는 울먹이며 기운없는 목소리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아내의 사촌오빠라는 (장인의 제사를 맡기로 되어있는) 정식이라는 사람 집에 전화를 했다. 아내는 이미 기절해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알았다고 곧 가겠다고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 입었다. 그 정정하던 양반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집을 나서기 전 국장님께 전화를 드려 장인의 부고를 알리고 기사는 상을 치른 후 마무리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하루에 두 명의 죽음을 접하다니. 오늘은 참 재수가 없는 날인가 보다. <수필부 장원> 얕은 거리 위에 놓인 다리 김정민(경기 서현고) 멀리서 빨간 십자가가 보인다. 우리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게 제법 크고 좋은 교회가 있다. 아버지께서 그 교회에 경비 일을 하시게 된지 거의 한 달이 되어 가지만 내 찾아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손엔 안경이 들려있다.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지신 아버지가 잊고 가신 것이다. 내키진 않지만 전해 드리기 위해선 교회로 가야했다. 어둔 길 하나 밝혀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늙은 눈. 값싼 만큼 무거운 이 안경이 왜 이리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일까. 길이 꽤 어둡다. 시골동네라서 몇 개 안되는 가로등 사이의 거리는 멀다. 칠이 다 벗겨진 채 눈물만 그렁그렁 담은 것 같은 가로등 하나가 눈에 띈다. 저 하나도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저기 외롭게 서 있어야만 할까. 조금 가다보니 작은 개울이 보인다. 얕아서 돌만 재주껏 밟고 지나가면 발목도 젖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리 튼튼하지도 않은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굳이 저 다리가 놓여 있는 이유가 뭘까. 밝을 때는 쉽게만 느껴지던 길이 어둠 속에선 위험한 것만 잔뜩 깔린 것처럼 조심스럽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길을 혼자 걸어 다니셨을 아버지가 떠오르니 돌 하나가 가슴에 켕겨 들어오는 것 같다. 교회 문 앞에 멀쭘하니 서 있다. 조금 후의 어색한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아버지와는 꼭 필요한 대화만 나누던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투명한 유리문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