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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 40회 콩쿠르 수상작(황석현, 최빛나)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300
<장원> 연등 강원고등학교 3학년 황석현 세망동 산 1번지 무명시인의 집을 찾아갔네 처마 밑에 매달린 연등 주춤거리며 내 뒤를 따랐네 구겨진 선거포스터가 붙어 있는 집 법 앞에 평등한 세상보다 인정 앞에 평등한 세상 꿈꾸는 시인 불켜진 창 틈새로 인기척 새어나왔네 똑똑똑 방문 두드리니 허름한 문 열어 반갑게 맞아주었네 산동네 셋방살이 구석자리 차곡차곡 쌓아둔 책들 해묵은 연대를 휘감고 있었네 나는 시인에게 물었네 계절이 수 없이 바뀌도록 당신의 삶은 부재중인가요 아닙니다. 나는 오직 시를 쓸 뿐입니다. 창 밖의 어둠은 깊어만 가고 처마 밑 연등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네 시인과 함께 비탈진 언덕에 올라 도회지 하늘의 가물거리는 불빛을 바라보았네 그러나 어느것 하나 시인의 길 비추질 못하였네 툭툭 모두 털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인이 걸어가는 저 좁은 골목길까지 환하게 연등 비추어지길 바라며 나는 여러번 뒤를 돌아보았네.       <우수 1석> 지갑과 가족사진 수내고 3학년 정유선 내 앞에 목표물이 나타났다. 이 녀석은 참 운도 없는 놈이다. 나의 목표물이 된 이상 그 놈은 그것이 필요해서 주머니를 뒤적거려야만 자신이 그것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겠지. "어떤 새낀지 잡히면 죽을 줄 알어!"라고. 나는 그 놈이 말하게 될 바로 그 '어떤 새끼'이다. 아무튼 나는 내 목표물이 된 그 놈 앞에 다가갔다. 그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걸어간다. 작업에 들어가기 좋은 지점에 왔을 때 나는 그를 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나의 미소가 기분이 나빴는지 그놈은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걸음을 재촉한다. 바로 이때다! 내가 원하는 각도, 알맞은 타이밍, 적절한 그놈의 빠르기,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나는 앞으로 돌진하며 그놈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의 목표물은 철저히 나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놈과 살짝 부딪치고 나면 내 손에는 언제나 두둑한 그것이 쥐어진다. 내 손에 쥐어지는 그것은 항상 두둑하다. 이것 또한 기술이다. 이 말은 곧 아무나 내 목표물이 될 수 없다는 말과 상통한다. 내 목표물은 곧 두둑한 그것이다. 나의 목표물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빛이 나야 한다. 이 빛은 보통사람이 느낄 수 없는 빛이다. 나의 목표물이 내는 빛은 내 눈으로만 감지할 수 있다. 이 빛은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feel이라고 말해도 되겠다. feel이 제대로 꽂혔을 때 나는 작업에 들어간다. 아까 그놈에게서 잠깐 빌린 그것을 열어본다. 이 순간은 정말 가슴이 떨리다 못해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한다. 마른 침을 꿀꺽 진정시키고는 그것을 연다. 난 가장 먼저 그것이 뜯어진 부분을 양 엄지 손가락으로 잡고 벌려본다. 파랗다 못해 누렇게 시들해진 배추잎이 나를 반긴다. 수십장의 배추잎 중에서 한 장을 남겨두고 모두 꺼낸다. 내가 한 장을 남겨두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에 이 배추잎이 없으면 더 이상 그것은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니깐 꼭 한 장을 빼 놓는다. 그리고 다른 틈새로 또 다른 것을 찾는다. 딱딱하고 직사각형 모양의   신용카드  라고 씌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난 이것을 아주 싫어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속해있는 클럽회장이   신용카드  라는 것 때문에 우리의 수입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보자마자 나는 뚝 하고 분질러 버렸다. 이번에는 얇은 종이가 잡혔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두 번째 것이다. 이 얇은 종이는   가족사진  이다. 이 가족사진은 내게 배추잎과는 다른 기쁨을 안겨준다. 그 뭐라고들 하던데……. 심리적 안정감이었던가. 아무튼 가족사진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해준다. 가족사진까지 빼고 나면 나는 달랑 배추잎 한 장만이 쓸쓸하게 있는 그것을 우체통에 쏙 넣는다. 이렇게 해서 나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어떤 새낀지 잡히면 죽을 줄 알어!  라는 그놈이 할 말을 생각하곤 호탕하게 웃으며 나의 다른 목표물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나는 처음부터 나에게 당한 그들이 말하는   어떤 새끼  가 아니었다. 오늘 날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꼭 기억하는 날이 있다. 1988년 1월 23일. 이 날이 아마 내가 어떤 새끼가 되는 계기가 되었던 날 같다. 그 날 부모님께서는 외할아버지의 제사 때문에 포천 송우리로 내려가던 참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려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혹시나 했던 마음이 현실로 닥치고 나니 나는 내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 갑자기 뛰어든 꼬마 때문에 급정지를 했지만 길이 워낙 미끄러워 차가 세 바퀴를 연속으로 돌다가 달려오는 트럭과 충돌한 것이다. 그날은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난다. 나는 지금도 내 볼을 타고 내려오는 뜨거운 물줄기를 손으로 훔쳐냈다. 형편이 좋지 않아서 엄마 아빠 두 분 다 밤낮으로 일만 하신 덕분으로 나는 가족사진 한 장 없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의 가족사진을 훔치는 짓을 한 이유가. 가족이 함박 웃음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보면 마치 내 가족사진을 보고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혹시 경찰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봐! 나야! 촉새라고! 난 또 짭새인줄 알았잖아. 크크, 겁먹기는 어디 가서 소주나 한잔 걸칠까 그렇잖아도 생각이 간절했는데 가자, 오늘은 내가 쏠게. 촉새는 우리 클럽에서 손이 가장 빨라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별명 못지 않은 그의 외모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계심을 갖게한다. 뾰족한 턱과 코가 중추를 이루어 양 갈래로 시원하게 찢어진 눈하며 족제비를 떠오르게 하는 얼굴이다. 이 녀석은 외모와는 다르게 마음은 좋다. 남도 배려해 줄줄 알고 제일 기특한 것은 자신도 그것을 훔칠 때 가족사진을 모아 나에게 넘겨준다. 이것만 보아도 마음 씀씀이가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가까운 소주방으로 갔다. 소주 세 병을 시키고 안주로 닭똥집을 시켰다. 이 집은 닭똥집 맛이 예술이다. 짭짜름 하다가도 끝맛은 달콤해지니 모두들 닭똥집만 찾는다. 그날따라 촉새는 소주잔을 유난히도 들이켰다. 나쁜 기집년 같으니라고. 내가 그 기집년 때문에 목숨걸고 도둑질 해서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해줬는데…… 나쁜년…… 딴 남자랑 눈이 맞어! 으이씨! 나쁜년! 나쁜세상! 다 죽어라! 아마 그 미애라는 여자와 헤어진 모양이다. 촉새녀석이 그 여자와 만난 이후로 위험하게 도둑질을 해댔는데 지금이라도 헤어졌으니 다행이다. 촉새마저 감옥으로 간다면 나는 정말 외톨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을 부축해 집으로 데려왔다. 곰팡이가 끼어 축축한 침대에 그를 눕혔다. 만취해서 잠에 골아 떨어진 그녀석을 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저려왔다. 촉새도 미애라는 여자와 헤어진 지금 심정이 14년전 내가 부모와 헤어졌던 심정과 비슷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까 내가 훔친 그것에 들어 있던 가족사진과 촉새가 준 가족사진을 들고 벽 앞에 섰다. 지금까지 붙여둔 가족사진이 2평짜리 방의 벽 한칸에 가득 채워졌다. 한 자리만이 남은 벽 한 귀퉁이에 촉새가 준 사진을 붙였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서서 새로운 벽에 내가 오늘 훔친 가족사진을 맨 위에 붙이기 위해 낡은 나무의자에 올라섰다.     <장원> 어머니의 소리 오류고 3학년 최빛나 딸내미! 일어나, 일어나! 일어난 줄 알았더니 여태 자고 있네! 지각이야, 얼른 일어나!   내가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듣는 소리는 늘 똑같다. 아우, 알았다고! 일어난다고요!   나의 앙칼진 대답도 맨날 다를 바 없다.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란 마냥 나를 짜증스럽게 만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소리에 불과하다. 북적이는 시장에서의 상인을 연상케 하는, 유난히도 크고 억척스런 목소리이다. 그런 목소리로 허구 헌 날 한다는 소리라고는 돈이야기, 공부이야기이니 난 내가 엄마의 목소리를 짜증스러워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나의 짜증스러운 마음을 엄마에게 굳이 감추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늘 엄마에게 엄마의 그 목소리가 난 싫다고 큰 웃음소리도 싫다고 말하곤 했다. 그 후로 엄마는 가족모임 등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면 내 눈치를 보시며, 소리내어 웃지 않으셨다. 아니, 엄마가 내 눈치를 보신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가 엄마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편안하게 웃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해 5월, 중간고사를 마치고 이른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고, 물론 엄마의 그런 모습조차 나에게는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시험도 끝났고 무얼 할까 고민을 하는데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래저래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할 일이 생각나서 장롱을 열었다. 이제 슬슬 날씨가 더워지니깐 작년 여름 옷을 꺼내보려 했다. 이 옷 저 옷 뒤적이며 이렇게 입을 옷이 없냐며 내심 옆에서 자고있는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장롱 깊숙이 있는 셔츠 하나를 꺼냈을 때 모 속옷 브랜드의 오래된 상자가 보였다. 상자가 낡은 것으로 보아 속옷이 들어있진 않은 것 같고 해서 상자를 꺼내보았다. 그 안에는 병원에서 찍었을 법한 신생아 사진과 책 몇 권, 녹음테잎 몇 개가 들어있었다. 가만히 사진을 보니 누워있는 아기의 발목에 내 생일이 적힌 종이가 달려있었다. 그럼 이 아기가 나인가    다시 한번 쳐다봐도 난 잘 알 수 가 없었다. 그냥 내 생일이 적혀 있으니깐   나인가 보지 뭐……   할 뿐이었다. 사진 뒷면을 보니 낯설지 않은 투박한 글씨가 보였다.   사랑하는 우리 둘째. 건강하게 태어나 주어서 고맙고, 사랑한다 아가야.   엄마가 쓴 건가 싶어서 신기했다.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같은 상자 안에 들어있던 책은 태교책이었다. 나는 적어도 우리 엄마는 태교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TV드라마 속의 예쁜 연예인들이 태교 음악을 틀어놓고 뱃속의 아기에게 다정스런 목소리로   아가야  하고 태교를 하는 것을 보며, 우리 엄마는 저런거 했을 리도 만무하고, 어울리지도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엄마의 태교 책에는 엄마의 정성이 묻어있었다. 아기에게 편지를 쓰는 칸에는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와 사랑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책들을 훑어보고 몇 개의 테잎을 보았다. 그 각각의 녹음테잎에는 번호와 몇 월 몇 일까지라는 기간이 적혀있었다. 무엇이 녹음되어있는지 궁금해서 상자 채로 내방으로 가져와 제일 첫 번째 테잎을 카세트에 넣어보았다. 재생버튼을 누르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참 동안 음악만 흘러나오길래 카세트를 막 끄려는 순간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가야, 오늘 병원에서 네 심장소리를 들었단다. 그 소리가 엄마를 어느 정도 기쁘게 만들었는지 너는 알지 못 할 꺼야. 내 소중한 아가야……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지금 건너방에서 자고있는 엄마의 19년 전 목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가야는 19년 전 나이겠지.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저토록 듣기 좋은 소리였나. 나도 기억할 수 없는 19년 전 나의 심장소리가 엄마를 그토록 기쁘게 했었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코 끝이 찡해져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내 생일 사흘 전까지 녹음되어있었고, 그 테잎을 다 듣는 동안 난 결국 죄책감과 감사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엄마의 억척스런 목소리를 만든 사람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내가 걸어온 19년의 세월이 결국 엄마가 걸어온 스무 몇 해를 엄마 스스로 버리게 만든 것이었다. 엄마의 예뻤던 목소리조차도……. 엄마는 나조차도 모르는 나를 알고 계신 분이었다. 엄마는 나의 첫 번째 날부터 19년째 날까지 모두 알고 계신 것이다. 나의 첫 심장소리에 그토록 기뻐하셨다는 엄마에게 나는 여지껏 얼마나 모진 말만 해왔나, 나의 심장소리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셨을 엄마를 그 동안 나는 기쁨으로 여겨왔는가 갖가지 질문이 나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엄마의 소중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은 나는 뻔뻔스럽게도 만족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몰랐다. 엄마의 그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고 오히려 투정이 더 많았다. 자신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자식만을 위해, 가정을 위해 20년을 살아온 엄마……가만히 손을 잡아본다. 아이고, 깜빡 잠들었네. 시험은 잘봤어  점심 먹어야지  아이구구구 뭘 해 먹나. 아주 잠시 당신만의 시간을 갖던 엄마는 다시 나의 19년 인생길에 흡수되어 말없는 희생자로 자리잡으신다. 식사준비를 하고 계신 엄마 옆에 가만히 다가서서 어린 아이처럼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이야기해본다. 참 오랜만인 엄마와의 대화이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나의 첫 심장소리까지도 기억해 주시는 엄마이기 때문일게다. 엄마는 수다스러운 내가 쉴 새없이 조잘거리는 이야기를 들으시며 정말 오랜만에 크게 소리내어 웃으셨다. 화통한 웃음 뒤에 잠시 움찔하시며 나를 쳐다보시는 엄마 모습에 또 다시 마음이 아팠지만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더욱 큰 소리로 환하게 웃어주었다. 엄마의 거친 목소리는 풍요로웠던 나의 19년 인생의 흔적일지라. 듣기 좋고,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세상 어느 소리보다도 고귀한 소리일지라. 나의   어머니  의 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