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 45회 콩쿠르 수상작 및 심사평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2007
시 심사평
주어진 제재(題材)가 다소 추상적이어서 시로써 상상력과 구체성을 펼쳐가기가 힘에 겨웠으리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어진 제재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해서 자기나름의 색깔과 부위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생각을 단순화시킨 경우보다는 자연스럽게 자기를 드러내려
애쓴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였다. 그런 뜻에서 수상자들은 저마다 활달하게 자신의 시를 가지려고 애쓴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심사위원 : 박제천 김명인 홍신선
나와 너 <운문부문 장원>
풍덕고등학교 2-8 최수현
1. 나
나는 원래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붉은 열정이었다
나는 작고 길쭉한 틀 안으로 흘러들어가 바늘이 되었다
식어버린 열정은 차가운 은빛
눈알도 없는 길쭉한 눈구멍 새로
훵한 바람만이 맴을 돌았다 발 밑에서는
나에게 찔린 것들이 울음 소리를 냈다
나는 외발로 걸었다 찢어진 그림자들을 질질 끌며
공허함은 슬픔보다 아픈 감정이었다
2. 너
나는 네가 얇고 길쭉한 허공인 줄만 알았다
네가 내 눈에 너를 꿰었을 때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나는 가득 채워졌다
너의 흰 꼬리가 나의 눈물로 축축이 젖었다
발 밑에서 들리던 울음 소리는
사실 내 외눈에서 울리던 바람이었다
이제 나의 열정은 순백
3. 새벽
누군가 반쯤 베어 문 흰 달
여린 잎을 펼쳐 내는 여름 나무
캄캄한 밤의 적막 같은 것을 꿰는
실과 바늘
애써 열정 그 화닥거림을 억누르며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나의 원고지는 오늘도 만선이다
그러나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직도 채 바느질하지 못한 것들이 많기에
4. 바다
너와 내가 길다란 꼬리를 달고
넓고 아름다운 바다를 바느질하고 있다
원고지 위로 다시 몇 줄의 싯귀들이 쏟아진다
너와 나(운문 차상)
안향충훈고등학교 3학년 1반 박은혜
뜨거운 적도선을 타고 보름만에
작은 엽서로 너가 도착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열기 식히며
조심스레 뜯어보니,
삐뚤삐뚤한 글씨체와
발갛게 물들어 웃은 너가 담겨져 있구나
이젠 약도 사고 먹을 것도 살 수 있어
동생들의 병이 곧 나을 것 같아 행복하다는 너,
나에겐 겨우 한 끼 식사 정도의 용돈이
너에겐 동생들의 약값이고 생활비구나
너와 나,
비록 우리를 이어주는 것이 후원금이란 작은
돈이라는 것일지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너가
잠시 내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잠시라도 나에게서 따뜻한 빚을 볼 수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따뜻한
행복을 느낀단다
너와 나,
어둡지만은 않은 이 세상 속에서
촛불 하나만큼 보태어 따뜻이 밝혀보자
나와 당신(운문 차하)
브니엘고등학교 3학년 2반 박준
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지는 병이라 했다 한 그루 상수리 나무처럼
누워서 당신은 비명 같이 쓸쓸한 낙엽들을 떨구기도 했다 어린 나는
그 머리카락과 대소변들을 쓸어 담았고 상수리 나무를 온통 끌어 안고 흔들어 제끼는 바람처럼
투명한 자세로 당신의 몸을 꼭 끌어 안고선 툭툭, 때를 털어내고 훔척훔척
닦아내어 당신의 옛 이야기들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신의 옛 이야기들이 디글디글 일어나 재잘거리며
파릇파릇한 잎새들처럼 피어나곤 했다
할아버지,
하고 한 번 웃으며 불러 볼 수 조차 없도록 뻣뻣하게 누워있던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기적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응시하며 나에게 물었다, 너의 색깔은 어디 있느냐고
나는 아무 대답 못한 체 다시 입을 다문 당신을 꼭 끌어안아 닦아내며 생각했다
왜 나는 나에게 따뜻한 손짓 한 번 해 주지 않는 당신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눈빛을
왜 이다지도 사랑해야 하는가
다시 당신의 낙엽은 떨어지고 나는 그 숱한 비명들을 쓸어 담는데
나는 색깔이 없는 것이 아닌
모든 색깔들의 배경
당신의 옛 이야기들이
잠시나마 파릇파릇하게 피어나는 그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이리로 와 나의 투명함을 입어라
시원한 바람같은 나는 상수리 나무 한 그루 꼭 끌어 안은채
오늘도 내일도 더 사랑할 것이다.
나와 너(운문 차하)
약목고등학교 3-1 김혜인
내 품 속 나뭇잎의 생각사이로
뛰어든 햇볕은
너였으면 좋겠다.
은하수가 트여놓은 잎맥사이로
끝 없이 넘치는 젖줄처럼
네가 들어온 나는
그제야 온전한 나무가
되지않는가
하루종일
내 뿌리가 움켜진
너의 그림자들은
날 보고도 그리워
내 나이테를 따라 맴도는 별들처럼
소금같은 눈을 내렸고
내가
울지 못하는 눈꺼풀을 가져서
괴로움에 하늘을 흔들면
넌 얼마나 많이 울어 주었는가
네 뿌리는
하늘에서 죽고 지상에서 사는 너를 안고
내 나이테는
중심 잃은 너를
별들처럼……
내 곁에 숨쉬도록
그리고
내 나뭇잎은
지친 너의 시름을 노을과 함께 걷어주었지
한시라도
하늘을 업지 않고 지낼 수 없는
저 산처럼……
나와 너는
한 나무가 되기위해
수 백년
바람을 등지고 살게야
소설 심사평
주어진 「나와 너」는 다소 추상적이어서 포착하기 어려운 제목이었다. 그럼에도 예리한 통찰력과 감수성으로 훌륭하게 형상해낸 작품들이 적지않아
심사자들은 매우 기뻤다. 신의 속성이 반드시 선하지만은 않다는 생각, 선과 악의 이중적 존재로서 신을 설정한다거나, 한 개인(개체)속에서
또다른 나(남성 속의 여성성, 혹은 여성 속의 남성성)를 드러낸다든가, 혹은 현악기의 독주와 합주를 통해서 너와 나의 화해 화합의 의미를
추구한다든지, 등등 착상들이 매우 신선했다. 입상자들의 앞날에 문운이 깃들기를!
심사위원 : 현기영 윤후명 장영우
나와 너(소설 장원)
정발고등학교
3학년 10반
이주미
한가로운 주말, 너가 갑자기 문을 두 번 두드린다. 마침 엄마는 슈퍼에 가고 없다. 나는 급히 안방으로 들어가 너를 맞을 준비를 한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 몰래 감춰 놓은 화장품을 찾아 꺼내들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내 안의 너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참 오랜만이어서. 나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앞둔 여자아이처럼 옷장과 벽면의 거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간다.
옷장 깊숙한 곳에서 진분홍색 치마와 흰색 나시를 꺼낸다. 얼마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한 것이다. 진분홍색은 너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다.
나는 진분홍색의 옷을 선호한다.
조심조심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선다. 치마 끝에 매달린 분홍색 레이스가 선풍기 바람에 춤을 춘다. 양 팔을 쭉 펴고 핑그르르, 돌아
본다. 치마가 동그란 원을 그리며 공중 위로 날아 오른다. 와, 정말 예쁘다! 너가 소리친다. 나는 너의 말에, 뿌듯함을 느낀다.
너는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 앞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주 가끔, 긴장이 풀려 너가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면
너는 나보다 더 당황하고, 더 부끄러워 했다. 너는, 내가 혼자 있을 때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책상 위에 화장품을 죽 늘어놓고, 책상 서랍에서 화장하는 법이 적힌 조그마한 쪽지를 찾아 꺼낸다. 종이와 손거울 사이를 오가는 나의 두
눈이 잔뜩 긴장해 있다. 화장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나의 손은 영 서투르기만 하다.
마스카라로 한껏 치켜올린 두 눈을 조심스럽게 깜박이며, 나는 붙임 머리를 집어든다. ……얼마 전에 머리를 짧게 자른 탓인지 붙임 머리는
좀처럼 붙질 않는다. 나는 할 수 없이 붙임 머리를 도로 집어넣고 벽면의 거울 앞에 선다. 나, 이제 들어가도 돼 너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너와 나는, 분명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존재다. 우리는 같은 몸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내 안의 너가 잠잠하던 수면 위로 떠오른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너가 거울 앞에 서서 활짝 웃는다. 너는 지금, 완벽한 여자다.
얼마 있지 않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부스럭, 발걸음에 맞춰 들리는 비닐봉지 소리. 엄마다. 너와 나는 일순 긴장한다.
책상 위의 화장품을 서랍에 집어 넣으며 허둥대고 있는데, 방문 앞으로 인기척이 들린다. 아직 옷도 다 벗지 못했는데. 너가 황급히 방 문고리를
잡으려는 찰나에, 문고리가 돌아가며 방문이 열린다.
……우리 아들, 뭐하니
잠잠한 수면 위로 꽃잎 하나가 툭, 떨어진다.
나와 너(소설 차상)
계원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주영
콧잔등 위로 내려 앉은 먼지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세 번째 상자를 연다. 모서리가 누렇게 변한 책들이 한 무더기 놓여 있다. 그 중에
한 권을 꺼내들어 표지에 적힌 이름 석 자를 손톱으로 꾹꾹 누른다. 생경하게만 느껴지는 내 이름 위로, 손톱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예전 집에 있던 짐들을 모조리 옮겨다 준 이삿짐센터가 순간 얄밉다. 쓸쓸함이 묻어 나는 손으로 세 번째 상자를 닫고, 청테이프로
틈새를 모두 막는다.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둘러 보는데, 좁은 방 안에는 아직 정리 하지 못한 짐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축축하게 젖은 소매를 걷어 올리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자장면 왔는데요, 변성기가 끝나지 않은 목소리가 인터폰 사이로 흘러 나온다. 자장면 두 그릇, 아이와 나의 몫이다.
아이의 입 주면은 온통 시커멓다. 늘러 붙은 자장면 찌꺼기를 휴지로 닦아주며, 나는 얕은 한숨을 토해낸다.
“우현아, 이거 먹고 엄마 요 앞 마트에 다녀 올테니까 혼자 집 잘 지킬 수 있지 ”
아이는 헤벌쭉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손에는 페이지가 거의 찢겨진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나의 세 번째 소설집이었다. 나는 척추끝을
타고 올라 오는 묘한 설움을 애써 삼키며, 갈기갈기 찢긴 내 소설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장면을 다 먹고 쇼파에 웅크리고 잠이 든 우현이를 혼자 남겨둔 채, 현관문을 닫는데 앞집에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새댁, 오늘 이사 왔지 이 동네 지리도 아직 잘 모를 텐데 내가 좀 알려 줄까 ”
넉살 좋게 생긴 앞집 아주머니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내내 끈임없이 말을 건네 왔다. 소소한 질문에서부터 때론 무례하다 싶은 사적인 질문들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이혼했는데 아이는 제가 데리고 살아요. 이혼 사유는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때문이구요, 그런 아이를 다른 사람들 시선에 부딪히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년마다 주기적으로 이사를 해요. 아이 덕분에 교수직도 관둬야 했구요.
이 모든 이야기를 사실대로 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좁은 동네에서 여자들의 입을 거치는 말들은 가지를 뻗고 뻗어서, 결국 가시덤불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리란 걸, 이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천성 자폐아를 가진 아이는 더딘 지능 발달 때문에 아직 한글에 서투르다. 제 또래들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동화책을 술술 읽어 내려가는
시간에도 아이와 나는 매일 단순한 자음과 모음들 속에서 씨름을 해야 했다.
“우현아, 자 봐봐. 이 단어는 ‘나’ 그리고 그 옆은 ‘너’, 자 따라해봐. 이 글자는 뭐라구 ”
글자 카드를 물끄러미 바라 보던 아이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너’를 ‘나’로 발음한다. 몇 번을 일러 줘도, 아이는 계속해서 두 개의
글자 카드를 앞에 놓고 혼동한다. 답답함에 울컥 화가 치민다. 내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아이도 느꼈는지, 갑자기 제 귀를 틀어막더니 비명을
지른다. 겨우겨우 아이를 진정시키는데, 인터폰이 울린다. 새댁, 저기 소설도 쓰고 아이들도 가르친다고 했지 우리 아이 국어 공부좀 잠깐
봐주면 안될까 옆집 아주머니의 중학생 아들의 국어 문제집을 함께 풀어 주는 동안에도, 간단한 단어조차 혼동하는 우현이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앞집에서 나왔을 때, 반쯤 열린 우리집 현관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앞집에 잠시 다녀오는거니까, 하고 방심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가 잠들어 있던 거실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본 나는, 본능적으로 아이의 실종을 감지했다. 정수리에 느껴지는 아찔한 통증에
심장까지 덩달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한다. 이렇게 아이를 잃어버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놀이동산에서, 그리고 백화점에서. 수
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를 찾으면서도, 심장의 저 끝에선 아이가 없는 자유로운 내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속물같은 감정을 또 다시 느끼며
아이를 찾기 위해, 아직 눈에 다 익지도 않은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반쯤 정신을 잃은 채로, 겨우겨우 몸을 추스르며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서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에는, 아이가 있었다. 익숙한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참아왔던 울음이 꾸역꾸역 치고 올라왔다. 나는 아이의 등짝을 찰싹찰싹 내리치다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헤벌쭉 웃고 있던 아이가 내게 무언가를 내민다. 내가 집필한 소설책들이 들어 있던 상자는 청테이프가 떨어져 나간 채로
열려 있다. 아이가 내민 사진 뭉텅이는 바로 그 상자구석을 차지 하고 있던 것들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찍은 초음파 사진들서부터 아이와
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들도 있다. 아이가 사진 속의 내 모습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어눌한 발음으로 너와 나를 발음한다. 둥그런 눈물
방울이 매끄러운 사진 표면 위를 타고 흐른다. 아이가 나와 너의 단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들 어떠랴. 우린 처음부터 한 몸이었고, ‘나’와
‘너’가 모음 하나 차이나는 글자라고 해서 둘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나는 내 심장 부근에 닿은 아이의 배꼽에서부터 전해오는 따스함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나와 아이를 하나로 연결해 주던 탯줄이 있던 자리이다. 아이가 연신 발음해대는 ‘너’와‘나’ 단어의 소리들이 잔잔한 파동을
그리며 귓가를 파고든다. 어쩌면 아이와 나는 새로 이사 온, 바로 이집에서 아주 오래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동화책도 읽고
소설집도 읽을 그 날까지, 아주 오래도록 말이다.
나와 너(소설 차하)
잠실여자고등학교
3학년 서상희
날이 화창하다. 어느덧,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왔는지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선명하다. 나는 사람들이 각자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흘러가는 거리로 들어선다. 내 왼쪽 손에는 커다란 종이가 들려있다.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거리 한 가운데로 들어선다.
나는 돌돌 말려있던 종이를 펴고 두 팔을 힘껏 하늘로 들어 올린다.
‘안아드려요. Free Hug'
하나 둘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나는 팔에 힘을 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신기한듯 나를 바라보고, 몇몇 여학생들은 휴대폰을 꺼내
나를 찍는다. 그럴때면,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어 보인다.
비록, 서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끌어안는다는 것은 마음이 따뜻해 지는 일이다. 보라색 몸빼바지에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 아이구, 우리
손녀같에 하시며 날 안으시는 할머니, 휠체어를 타고 나보다 더 밝은 미소로 끌어안는 어느 장애인, 미국으로 유학간 딸이 생각난다며 내 품에서
눈물을 보이시는 아주머니, 수십 아니 수백가지의 사연들을 풀어놓으며 나를 안는 이들을 볼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낀다. 아마,
내가 이렇게 프리허그를 하게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 나는 손버릇이 좋지 않았다. 슈퍼나 옷가게 같은곳에서 물건이며 옷을 몰래 품에 넣고 달아나곤 했다. 때문에 다는 도둑질을
하다 주인에게 걸려 경찰서로 종종 끌려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데려가기 위해 오셨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이 기뻤다. 그날만은 어머니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교회를 다니셨다. 처음에는 나도 어머니의 종교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점점 더
교회에 빠져들었고, 이른 새벽에 나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고삼 겨울방학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휴대폰은 늘 켜두었지만 어머니는 전화 한 통 없었다. 나는 보호시설에서 프리허그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점심 때가 가까워지면 나는 나도모르게 들뜬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웃으며 달려오는 그 아이 때문이다. 팔이 아파 종이를 잠깐 내려놓으려는데,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 아이다. 분홍색 슬리퍼에 까맣고 큰 눈동자, 곱슬거리는 머리. 아이는 마치 엄마에게 안기듯, 내게 안긴다.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오늘도 좋은하루 라고 말한다. 잠깐의 포옹 후 아이는 어느 골목길로 달려간다.
매일, 같은시간에 찾아와 안기는 아이. 누군가 나를 위해 이곳으로 일부러 찾아온 다는것은 기쁜 일이다. 나는 바닥에 놓여있던 종이를 다시
번쩍 든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온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휴대폰을 꺼낸다. 오늘도 어머니에게 연락이 없다. 하루종일 복잡한 거리에 서 있어서인지
목이 컬컬하다. 냉장고에 물을 꺼낸다. 물통이 비어있다. 생수를 사다놓는걸 잊었다. 나는 지갑을 챙긴다.
낮에는 더웠는데 밤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생수 두 병을 품에 안고 참치 통조림을 고른다. 계산을 하려는데 문
앞,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곱슬거리는 검은머리 그 아이다. 아이는 문을 열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다. 나를 보지 못했는지 아이는 식품칸으로
걸어간다. 나는 맞은편에서 아이를 바라본다. 길가에서가 아닌 다른곳에서 아이를 보니 아이의 눈이, 그 커다랗고 까만 두 눈이 슬퍼보인다.
순간, 아이의 손이 라면봉지를 집어 품에 넣는다. 빠르게, 아이는 옷을 추스르고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그때, 아이와 내 눈이 마주친다.
아이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고 내가 입을 열으려는데, 누군가 소리친다.
“저 도둑년 봐라.”
주인 아주머니였다. 아이가 나를 보고 당황한 사이 주인은 아이의 옷자락을 잡는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오른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저…. 제가 언닌데 훔칠려고 한게 아니라 가져오라고 시켰어요, 여기 돈…. 죄송합니다.”
나는 아이의 손을잡고 편의점을 나선다. 내 손을 꼭 쥐고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린다. 속에서 막혀있던 무언가를 토해내듯 운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는다.
“다시는 안하려고 했는데… 오[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너무 무서워서……나쁜짓인데 언니한테 안기면 다시 착해지는 것 같아서….”
울음섞인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밤이 늦도록 그 자리에 서 아이를 품에안고 울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은 끝없이 울렸다.
아이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물을 마신다. 나는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휴대폰을 연다.
‘어머니, 부재중 전화 20건.’
손이 떨려온다. 나는 천천히 통화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들리고, 잠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흐느끼며 말한다.
“미안하…다….”
숨이 멎는 것만 같다. 속이 답답하다. 시야가 흐려진다. 수화기 너머 어머니가 있는 곳엔 비가 내린 것일까. 빗소리가 들린다.
그날 이 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짐을 보내고 나는 기차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간다. 서울역 광장에
들어서자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내 왼편으로 수 십명의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 머리 사이로 무언가 보인다.
‘안아드립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뜬다. 분홍색 운동화 곱슬거리는 머리…. 아이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는 들고있던 가방을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점점 발이 빨라진다. 그때, 내 눈과 아이의 눈이 마주친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는다. 아니,
아이가 나를 안는다.
여름날,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우리는 햇살보다 더 밝게 웃는다.
독주보다 아름다운 풍경(소설 차하)
불암고등학교
2학년 구혜인
으레 행복한 날의 모습은 풍경만 남는 법이었다. 지금도 그녀를 떠올리노라면 홀 안의 뜨거운 열기와 쏟아지는 박수갈채, 보면대, 그리고
수도 없이 읽어내렸던 펜자국이 무수한 악보가 먼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곤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연주곡의 악보보다 자주 들여다보았던 아내의
얼굴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여보, 너, 당신, 이라고 부르기조차 어색한 사람이 됐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입버릇처럼 내 인생이
낮은음자리표 인생이라고 했다. 하긴 첼로의 악보가 모두 낮은음자리니 그 말도 맞을지 몰랐다.
“그래서 합주를 않겠다 너도 참, 너답지 않게.”
이혼한 뒤로, 그 말을 끝내 붙이지 못한 채 현석이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봐, 오케스트라 연주도 아니고 그냥 현악 4중주야, 4중주. 녀석의
말이 오후내내 귓가를 울렸다. 혼자 연주하면 무슨 재미냐, 그러면 사람들이 오케스트라연주를 왜 하겠어.
무슨 말을 더 듣고싶어서였을까, 쉽게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연주로 말하자면 내 인생은 독주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남겨진 건 첼로 뿐이었고, 학창시절에도 나는 친구를 대신에 홀로하는 연주를
택했다. 대학에와서도 남들 다 하는 합주가 쉽게 되지는 않았다. 손꼽을 정도로, 피아노를 치는 아내를 만난 뒤 몇 번인가 그녀의 부탁으로
중주를 한 적은 있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혼자였던 나는 악보에 높은음자리와 낮은음자리를 모두 가진 그녀와 결혼할 수 있었다.
“저기, 그러면 리허설 때 가서 같이 맞춰보면 안 되나 ”
“선배, 무슨 말씀이세요. 연습도 같이 하셔야지. 오늘도 악기 갖고 모이기로 하시고는….”
연주는 원래 너와 내가 같이 하는 거니까요, 이혼을 앞둔 시점에서까지 반복되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피아노는 낮은음자리와 높은음자리가
함께 있어서 더 조화로운 거라구요. 함께 연주하노라면 아내의 말처럼 그녀를 안는 것과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하나가 되고는 했다. 그러나 독주하는
내 인생에서 그 순간만큼은 사치였던 것 같다. 악보를 받던 날로, 그녀와 나는 이혼한지 2년째였다. 그녀가 연주하러 온다면, 나는 그녀를
마주할 수나 있을까.
“그런데 피아노는 누가 쳐요 ”
“항상 그렇듯이 혜영이가 쳐야 할텐데. 혜영이가 손이….”
그리고 그녀가 손가락을 잃었다는, 듣고싶지 않던 소식이 나를 두드렸다.
연습을 할 때에도, 리허설을 할 때에도 그녀의 모습은 부재였다. 악기는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져, 자르지 못한 긴 손톱만이 첼로에 아프게
박히고 있었다. 합주만큼이나, 홀로인 연습시간도 나는 견디기 힘들어졌다. 어지러운 악보 위로 그녀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교차하고 있을 때,
나는 무대에 올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동료들과 함께, 그러나 홀로.
연주는 너와 내가 함께하는 것이라던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오랜만의 합주와 간밤의 열기 속에 손가락을 하나 잃은 그녀가 존재하기를 바랬다.
남은 날들을 그녀와, 설사 그녀가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합주할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랬다. 독주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연주는 너와 내가 함께하는 것이니까. 연주를 하는 풍경 속으로 꿈처럼 아내가 서있었다.
수필 심사평
일상에서 취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들, 고등학생이 겪음직한 경험들을 접할 수 있어서 심사기간이 즐거웠다. 좋은 글이란, 자기생각과
자기표현이 두드러지는 글이다. 비슷한 글감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섬세한 감수성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을
골랐다. 이혼한 부모의 아픔을 함께 겪는 고통이라든가, 친구를 배려하는 성숙한 마음, 혹은 자신의 소중한 휴대폰 이야기를 맛갈지게 풀어쓴
작품들이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입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심사위원 : 문영오 이만희 윤재웅
나와 너 (수필부 장원)
광명 고등학교
엄지희
파리하게 마른 얼굴에 한 쪽만 진하게 쌍꺼풀이 진 큰 눈, 보랏빛을 띠는 작고 얇은 입술, 깡마른 몸을 가진 지혜는 어딘가 항상 결핍되어
있는 듯 보였다. 항상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무엇인가 모자른 감이 있었다. 처음 지혜를 보았을 땐 그것이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 애와 친해지게 되면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지혜의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자기 것’에 지나치게 집착을 한다는 것이다. 샤프나 펜과 같이 하찮게 여길만한 것 까지 누구에게도 빌려주는
법이 없었다. 행여 친구가 자신의 물건을 빌리려고 하면,
“나는 내 것을 잃는다는 것이 너무도 싫고 무서워.”
하는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단호한 말로 거절하곤 했다. 그 애의 소유욕이 얼마나 지나친지 내가 다른 애들과 조금만 각별히 지내는 것 같으면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와 그 친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나는 지혜의 그런 행동에 시뜻해져 지혜를 멀리 하려 했지만, 쓸쓸하게 나를 향하는
그 애의 텅 빈 눈동자를 나는 차마 내칠 수가 없었다.
여름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온 더운 여름의 어느 아침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조회 시간에 하던 복장 검사가 시작되었다. 나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은 지혜가 나를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뭐라고 말했다. 교복 셔츠 안에 런닝을 입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내가 지혜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에 담임선생님이 지혜 옆에 섰다.
“ 아니, 이 녀석아. 속에 런닝도 안 입고 오면 어떻게 해 속옷이 다 비치잖아.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내가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선생님은 지혜의 등짝을 두어 번 후려갈겼다. 퍽퍽 하는 소리가 내 자리에까지 들렸지만 지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일부턴 꼭 입고 다녀야한다. 알겠지 ”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장 검사를 마친 담임선생님은 수업 잘 들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교실을 나갔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지혜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혜는 그 정도의 매를 맞고 울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웃어 넘길 일이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서럽게 우는 지 알 수 없었다. 지혜는 1교시 수업이 끝날 때 지 쉬지 않고
울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지혜에게 왜 아까 울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지혜는 열없이 웃어보였다.
“음, 엄마 생각이 나서.”
“엄마 생각 너 혹시 오늘 엄마한테 두들겨 맞았니 ”
지혜는 팔(八)자 모양의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실 말이야, 나 우리 엄마랑 떨어져 살거든. 부모님이 이혼하셨어. 아빠란 작자가 바람을 피워서. 지금은 새엄마랑 셋이서 살아. 새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둘만 좋아서 죽지. 난 신경쓰지도 않아.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 격이지. 근데 선생님이 나 막 혼내고 걱정해주고 등
때리고 하는 게 꼭 우리 엄마가 그러는 것 같았어. 옆에 서있는 사람이 꼭 엄마인 듯한 착각이 들었어. 그런데 아닌 걸 아니 , 그래서
울었어. 이래야 하는 게 너무 싫어서. 엄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지혜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그 애를 안아주었다. 지혜가 너무 가여웠다. 새엄마와 아빠의 캄캄한
무관심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얼마나 울었을까. 그 가슴이 얼마나 곪아들었을까.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으면 선생님의 모진 매질에서까지
엄마를 그렸을까.
엄마가 빠져나간 가슴을 가진 지혜가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지혜는 소유욕으로 그 가슴을 채워보려고 했지만 그래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혜가 머리를 기댄 내 오른쪽 어깨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지혜야, 작년에 너랑 내가 했던 약속 기억나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평생 친구가 되자는 약속. 기억나지 그 약속 꼭 지킬게. 내가 네
엄마의 빈 자리를 모두 매꿔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랑 있을 때 만큼은 네가 엄마 생각나지 않도록 널 즐겁게 해줄게.”
지혜는 내 말을 듣고 소리내어 웃었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우리가 뱉어낸 웃음소리가 머리 위 버드나무 가지 가지마다 파랗게 걸렸다.
이제 막 여름을 타기 시작한 명지바람이 우리의 웃음소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놓았다.
나와 너 (수필부 차상)
예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5반
홍은영
“자, 이제 너희도 고등학생 이다. 다들 1년 동안 잘 지내 보자.”
예일여고 1학년 15반. 나는 듬직한 등판에 한눈에 보아도 건강해 보이는 체육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며 설레고 조금은 걱정 스러운
마음 속에 반 아이들을 만났다. 꼭 같은 반이 되자며 두 손 꼭 마주 잡던 친구들은 이미 뿔뿔히 흩어진지 오래다. 분명 다 이 동네 아이들일
텐데 뭐가 그리 다들 다르게 생겼는지. 새삼 은평구 주민들도 가지각색 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온 후라 생판 처음
보았을 때 보단 낯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뭔지 모를 서먹함 이란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나온
나로선 내가 상상 했던 여고와는 다른 알 수 없는 광경들에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예일여고에 충분히 적응되었기 때문에 1학년들이라
철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이해 되지 않았다. 그 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여고에 가면 바퀴벌레가 나오고, 여자 끼리니까
애들도 잘 안 씻고, 내숭도 하나도 없어서 여고 생활이 무척이나 재미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남녀 공학 때 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외모에
신경쓰고, 시간 나면 다이어트에 관한 수다들로 시끄러웠고, 무엇보다도 다들 전형적인 서울 깍쟁이들 마냥 보였다.
그렇게 나도 희한한 광경들과 낯선 모습들 속에 나도 모르게 적응해 가고 있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이런 데서 나온 건가 보다.
쉴세 없이 새 친구 사귀기에 정신 없던 차에 우리에겐 삭막하게 출석 번호 대로 부여받은 자리에서 벗어나 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다. 바로 제비뽑기를 통한 짝 바꾸기 였다. 자리가 하나씩 지정될 때 마다 비명소리도 나오고 웃음 소리도 나오며 나도 부푼 마음에
제비 뽑기 상자 안에 손을 들이 밀었다. 실눈을 간신히 뜨며 확인한 자리는 뒷문에서 바람이 잘 들어와 모두들이 꺼려하는 맨 뒷자리 였다.
그리고 짝꿍은 타칭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아이 였다. 날 보고 빙긋 웃는 아이가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
우린 서로에 공통점과 다른 점을 찾으며 급속도로 친해 졌다. 일명 뒷담화 라고 하는 것이 친구와 가장 빠르게 사귈 수 있는 방법 임을 터득한
탓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음에 서로 서먹서먹 해서
“은영아, 펜 좀 빌려줘.”
“아, 고마워 잘 쓸께.”
이렇게 온갖 가식과 착한 척을 다하며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조금 지난 후에는 우리들 만의 애정표현으로 엉덩이를 치고 도망가고, 또 서로
놀리는 재미에 시간 갈 줄 몰랐다.
그러던 중 나는 빛나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그렇게 또 우리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웃고 떠들며 집으로 들어 섰는데, 그 때의 내
표정이 어땠는지 생각은 잘 안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무척이나 당황 했었다는 것 이다. 안그래도 우리는 집으로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 었다.
“아, 나는 빨리 이사 갔으면 좋겠어.”
“왜 학교 가깝고 좋잖아.”
“그건 좋긴 한데, 방이 너무 작아.”
“야, 니네 집이 작으면 우리 집은 코딱지만 하게.”
하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었다.
빛나는 그래서, 내가 덜 놀라게 하려고 그런 말을 일부로 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와 너무나도 다른 광경이었다. 하얀 얼굴이
외동 딸로 듬뿍 사랑만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아이가, 정말 TV에서만 보던 곳에 살고 있을 거라곤 단 한번도 상상 해보지 못했다. 좁은
공간에 온갖 생활 용품들과 쓰레기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빛나가 상처 받지 않도록 최대한 표정에 신경 쓰며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빛나가 상처 받을 것만 같은 생각에 우겨서 집에 온 것은 잘못 이였다고 가슴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지금 빛나의 가슴은 쿵쿵 거리고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나는 빛나의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침대 위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누가 보아도 알수 있는 영정
사진 이였다. 그랬다. 빛나의 아버지 였다. 드라마 속에서만 나와야 할 것 같은 일들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소 엄마 얘기는 아침에 싸웠다는 둥 하면서 종알 대었지만, 아빠 이야기는 입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었던 것이 사실 조금은 의아했었다.
그 때 물어 보지 않았던 것이 몇 번이나 다행 이라고 생각 했는 지 모른다. 한참 넋 놓고 사진을 보고 있던 나를 발견한 빛나는
“우리 아빠, 잘 생겼지 어릴 적에 돌아 가셨어.”
나는 무어라 대답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 였다. 그리고 책상 위에 정성스럽게 쓰인 펜 글씨가 눈에 띄였다. 꿈을 가지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딸을 위한 어머니의 조그마한 선물 이였다. 혹여나 아버지 없이 비뚤어 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세상 모든 어머님의 딸이 잘 커주길
바라는 소망들이 깊이 베어 있었다. 빛나에 관한 내 예상은 모두 빗나갔지만 부모님께 듬뿍 사랑받고 자란 아이라는 것만은 정확히 맞았다.
우리는 이 날 이후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의 은밀한 비밀들을 털어 놓으며 말이다. 친구를 사귈 때 가장 빠른 방법이 뒷담화 일 진
몰라도, 깊이 사귈 때의 방법은 이것 임을 느꼈다.
어둑 어둑 해 질 때 쯤, 나는 집에서 나와 빛나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 탔다. 그저 느낌일 지 모르지만 빛나의 얼굴이 훨씬 더 평온해
졌음을 느끼마 말이다. 버스 뒷 자석에 앉아 가만히 창문 밖을 보고 있는 데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과 가슴 속을 스쳐 지나 갔다.
빛나의 어른스러움과, 그 밝은 모습 속에 분명히 있을 그늘들….
두 부모님이 모두 계신 것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던 나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게 느끼는 빛나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린 함께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친구라는 걸 느낀 다는 점은 우리의 차이점 보다 훨씬 큰 공통점 이다. 이렇게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친구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오늘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런 멋진 아이와 나는 친구 이다.
나와 엄마 (수필부 차하)
연수여자고등학교
방다빈
‘댕댕댕댕댕댕’자명종 시계가 6시를 알리면 고요하던 우리집은 마술을 불어넣은 듯 활기차진다.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의 슬리퍼 소리가 거실로
가더니 잠시 뒤 팝송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흥얼거리는 엄마의 목소리와 ‘또각또각’ 도마소리가 경쾌하게 내 귀를 간지럽힌다. 곧 슬리퍼 소리가
내 방쪽으로 가까워지고 주걱을 손에 든 엄마의 부스스한 얼굴이 보인다.
“이노무 기지배. 또 침대에서 비비적거리고 있네. 일어났으면 신문 한자라도 읽으라니깐. 니가 그러니깐 사탐점수가 안나오는거야 으이구!”
가벼운 엄마의 잔소리에 입을 샐쭉 거리며 어기적어기적 내가 침대에서 기어 나오면 우리집의 아침이 항상 그렇듯 나와 엄마의 경쾌한 말다툼으로
우리 두 사람의 아침이 시작된다.
우리 아빠와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남이 되어 돌아오셨다. 그리고 부모님은 첫날부터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학교생활이 즐거울 것 같다며 쫑알거리며 들어오는 나를 데리고 갈비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그것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외식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엄마를 더 필요로 할 것 같다며 양육권을 엄마에게 주웠다. 식당에서 나온 우리는 데려다
주겠다는 아빠에게 걸어가겠다고 말한 뒤, 큰 가방을 가지고 차를 타고 떠나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아빠는 휑하니 떠나버렸다.
3월이지만 유난히도 추웠던 날 나와 엄마는 손을 꼭 잡고 묵묵히 30분도 넘는 거리를 걸어왔다. 춥고 힘들어서 업어달라고 떼를 쓰려고 올려다
본 엄마의 새빨개진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철없는 어린 나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아빠와 살던 아파트에 산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쓰던 물건은 이제 나와 엄마가 사용하는 것들로 변했다. 식탁에도 나와 엄마의 의자, 거실에도 우리 세가족이 찍은
사진은 내가 중학교 입학하던 날 새교복을 입고 엄마와 찍은 사진이 대신해 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나를 키운 엄마의 장미꽃처럼 곱던 얼굴은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여성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오랜만에 연락을 하셔서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으니 나 혼자 우리가족이 마지막 외식을 했던 곳으로 오라고 하셨다.
아빠와의 저녁식사로 들뜬 나는 엄마에게 혼자 식사를 하시라고 하고 그 곳으로 갔다.
가게문을 들어서자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아빠와 꽃처럼 싱그럽게 웃는 여자가 있었다. 아빠의 애인이라고 소개하는 여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그 앞에서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냥 내게 우리가족이 마지막으로 외식한 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으로
변한 사실이 속상했다.
10년 전의 그 날처럼 데려다 주겠다는 아빠를 이번에는 가 먼저 등을 보였다. 추운 그날처럼 나와 엄마가 걸었던 그 길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 얼굴에도 그날의 엄마가 흘린 눈물이 흘러 빗물에 씻겼다.
그렇게 몇일이 지난 오늘도 평소처럼 학교에서 9시까지 야자를 마치고 과외도 없는 날이여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풀어놓은 수다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10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퇴근 후, 학교에서 돌아올 나를 기다리는것이 엄마의 유일한 낙이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 나는 살금살금 걸어가 엄마방문을 열고 빼곰이
고개를 내밀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침대 위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누워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다가가 가만히 앉아 잠든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혼자 힘으로 나를 키우시면서 아빠없는 것 티 안나게 한다면서 고생하신 엄마의 얼굴에는 세월의 모진 흔적들이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몇일
전 보았던 아빠의 젊은 애인처럼 싱그럽지 않아도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매일 공부한다면서 늦게까지 빈 집을 혼자 지켰을 엄마의 외로움이 순간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항상 외로웠을 엄마 옆에 가방을 벗어놓고 살며시 누워본다. 오늘밤은 나도 엄마도 혼자가 아닌 나와 엄마의 침대에서 손을 잡고
잠이 든다. 오늘밤의 하늘에는 유난히 별이 반 이고 있는 것 같다.
나와 이 녀석(수필부 차하)
청주 중앙여자고등학교
3학년 최은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내 손으로 운동화를 샀다. 아직 돈을 쓰는 법을 몰라서 오천원 한 장을 쓸 때에도 조마조마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겨우 물건을 샀던 내가, 칠만원이라는, 중학교 2학년 때의 경제관념으로써는 큰 액수를 지불하고, 그것도 전적으로 혼자 결정하여
운동화를 구입했던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세뱃돈을 받으면 엄마에게 고스란히 드리는 것이 우리집 관례였느??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부터는
세뱃돈을 혼자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무엇을 살까 밤새 고민하고 이틀을 꼬박 고민한 결과 운동화를 사기로 결정했고, 시장에
가서 한 시간을 고민하여 디자인을 결정하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하나, 둘, 셋, …, 일곱을 세어, 한번 더 세어보고 운동화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구입한 운동화. 참 예쁘고 잘생겼다. 촌스럽지도, 그렇다고 반짝이 장식에 화려하지도 않은, 딱 내 성격을 닮은 운동화였다. 까만색
바탕에 흰색 운동화끈이 흑과 백의 조화를 잘 이루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운동화끈 옆에 분홍색 지퍼가 달려있는 이 운동화를 처음 신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의 관심을 기대했었지만, 내 기대는 다른 한 친구가 새로 산 십오만원짜리 메이커 운동화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매장에
진열되어 있을 때는 그렇게 예쁘고 멋있어 보이던 내 운동화가 그 친구의 메이커 신발에 비교했을 때에는 어찌나 초라해보이던지. 십오만원의
가치를 하는 건지 친구의 메이커 운동화는 묵직하고 고급스러웠다. 나는 그 날 속상한 마음에 딱 한 번 신은 운동화를 신발장에 쑤셔넣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가 다시 내 운동화를 꺼낸 건 일주일 후였다. 창피했던 마음은 수그러든채 다시 학교에 운동화를 신고 갔다. 바로 그 날, 학교 수업이
끝나고 신발을 갈아신고 집에 가려던 그 때, 신발장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의 십오만원짜리 메이커 신발이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친구는 울상이 되어 맨발로 발을 동동 구르며 운동화를 찾아다녔다. 하u를 뒤져보아도 메이커 운동화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친구는 실내화를 신고 집에 돌아가야했고, 다음날 친구는 또다른 메이커 운동화를 새로 장만하여 신고 왔다. 그러나 그
때는 전혀 부럽지도, 내 운동화가 창피하지도 않았다. 아! 이게 무슨 심보인지. 일주일 전에는 그렇게 비싸보이고 좋아보이던 친구의 메이커
운동화가 그 날은 사치스럽고,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내 운동화는 비싸지 않아서 꽃길이든, 운동장 진흙물이든 어디든 지나갈 수 있었고,
메이커가 아니라서 보기좋은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유혹하지도 않고 내 옆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녀석만큼 나와 함께 하는 친구도 없는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여 정문을 나온 것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정문을 들어 선
것도 녀석과 함꼐였다. 새로운 생활의 설레임을 녀석도 느꼈는지 입학식날은 이 녀석이 가벼웠다. 내가 조회대에서 상을 받을 때에도 녀석은
나와 함께 그 영광을 누렸다. (내가 상 받는 데 도움 준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다.) 체육대회 날, 학생회 임원이라 운동장 먼지를
다 마셔가면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일했을 때도, 땀과 흥분에 젖어 쳐진 몸처럼 녀석도 무거웠었다. 아침잠이 많아서 지각한 벌로 운동장을 뛸
때에도 녀석은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 해주었다. 녀석은 내 기분에 따라 자기도 무거워지고, 가벼워지는 듯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처음 이 운동화를 샀을 땐 관심을 받지도 못했던 내 운동화는 5년이 지나, 뒷꿈치부분이 다 뜯어지고 검정색도 색이 바래서
희끄무리하게 변한 상태에서 친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진 운동화를 왜 신고 다니냐며, ‘최은지는 짠순이’를 외치는 친구들이
과연 알 수 있을까 일 년도 되지 않아서 바꾸는 친구들의 메이커 운동화와는 달리, 겉모습은 제일 연장자이지만 아직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내 운동화가 얼마나 멋진지 말이다. 빨아도 때가 지지않아서 엄마도 하나 사 주신다고 성화지만 나는 모두의 권유를 뿌리쳤다. 나와
희로애락을 함꼐 한 내 운동화, 학창시절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내 파트너를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이 운동화로 나는 대학교 문턱을 넘어 설 것이다. 나와 내 운동화, 이 녀석과는 ?蹊뭬???수 없는, 세상 어디가도 만나지 못할 최고의
콤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