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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회 전국 고교생 문학콩쿠르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5912
시 장원   노란 리본 고양예술고 2학년 김혜원   오빠, 봄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오늘 학교에서 원의 부피를 구하는 법을 배웠어 선생님이 칠판에 그린 둥근 원, 꼭 오빠와 나의 닮은 손톱 같았어서 비가 더 세게 내렸으면 했어 눅눅한 연필심의 소리가 밤마다 지새우던 나의 헛기침처럼 자꾸만 삐끗거리고 있었어   봄은 언제부터 이렇게도 시큰거리는 계절이 되었을까 나는 습관처럼 우리 집에서, 오빠를 찾고 커튼을 걸었어 창틀에 앉아 서로의 팔뚝을 맞대고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예쁘다 우리는 말했지만 나는 어딘가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고 있어   나는 자란 손톱을 깎기 위해서 커튼을 매듭지었어 비가 계속 내려주고 있었거든 오빠 또각 또각, 손톱이 나에게서 걸어나가는 소리가 방 가득 메워져 나의 부피가 줄어든 것 같은 밤이야 손톱 조각을 나의 옆에 뉘이고 잠에 들어볼까, 창틀과 나란히 누워 오빠같은 저 노란 매듭을 보면서…… 시 차상   누이의 강 전남여자상업고 3학년 백민정   누이의 걸음에선 언제나 물소리가 났다   사람의 발자국 모양만 보고도 운명을 점친다던 역술가, 나에게 누이의 목소리를 듣지 말라 당부했다   집안 곳곳에선 종종 노란 강이 흘렀다 기나긴 강의 줄기를 반대로 거슬러 올라올 누이, 내 몸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마루 위, 내 발자국은 수시로 걸음을 앞서나갔다 우편함이 붉게 녹아내리고 누이의 이름 위로 내 편물들이 스며들었다 오래된 습자지처럼 소리들은 점차 무뎌졌지만 물방울은 계속해서 날을 세웠다   분명히 내 발밑에 강이 흘렀다 젖지 않는 강, 나는 오늘도 누이를 불렀다 누이는 곧 노란 강을 따라 걸어올 것이다   샛노란 물소리가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시 차하 1   노란리본 안양예술고 1학년 유예정   초록리본을 다리에 단 비둘기 떼가 날아올랐다 밑에는 노란리본을 단 비둘기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달고 기다린다   비둘기가 날아간 옥상 밑에는 인형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공장 입구엔 노란나비 모양 리본이 달려있다 노란천들이 가득 쌓인 곳, 바늘 끝에서 노란 나비, 벌, 기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장 한켠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다큐멘터리는 한 아프리카 부족은 노란색이 저주를 불러오는 색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노란색 천을 만지던 손들이 주춤한다 노란리본을 달고 걸어가던 노란기린이 놀라며 재빨리 몸에 갈색 점들을 만들어낸다 노란리본을 단 비둘기 한 마리가 공장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떨어진다 노란 꽃병이 흔들리며 금이 간 것을 리본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 뗀다   아이는 노란기린을 샀다 기린에게서 노린리본을 떼내어 자신의 옷에 테이프로 붙이자 기린의 목 부분이 뜯어져 솜이 천 밖으로 삐져나왔다 손떼 묻은 리본의 끝이 까맣다 노란리본이 옷에서 떨어져 바다를 향해 날아간다 리본에서 바닷물을 머금기도 전에 소금결정이 묻어나왔다 시 차하 2   뜨거운 리본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여고 3학년 박지선   드디어 너의 시신을 찾았다는 전화가 왔다   너를 보면 안아주며 건넬 리본을 쥐고 매일같이 바다 앞에서 소리치던 날들 철썩이는 파도는 네 곁에 없던 나를 멍이 들도록 몰아붙이곤 했다   깁스를 한 내 다리를 다독여주며 선물을 사오겠노라 약속하던 지난 밤 너의 오란 체온은 내 가슴까지 번져 아직도 리본처럼 견고히 묶여 있는데 명주솜을 물린 시간 앞에서 너는 얼마나 추위에 떨고 있었을까   그러나 얘야, 더이상 소매를 적시지는 마 꼬박 열흘 만에 발견된 너가 내게 국화같은 얼굴로 소매를 여며주며 말했다 물큰한 손끝은 내 응어리를 말갛게 털어주었다   이제 한 줌 바람이 되어 내 곁에 영원히 잠든 너를 보며 나는 이제야 천천히 위로를 받는다 오히려 너가 내게, 뜨거운 리본을 달아주고 있다 소설 장원   어째서 다들 노란 리본을 안양예고 2학년 김아리영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낯설고 낯선 천장이었다. 긴 잠을 잔 것 같은데. 몸도 조금 무거웠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우리 교실보다 조금 큰, 사각형의 원룸이었다. 그 안에 나와, 반 친구들이 누워있었다. 내가 일어나자 친구들도 하나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깨어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딜까. 반장이 말했다. 반장의 말총머리가 정하지 못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반장, 머리가 이상해. 반장은 그제야 제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졌다. 방이네. 응, 방이야. 앉아있던 희진이와 경아가 말했다. 둘은 역시나 단짝답게 서로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이러나 방안을 둘러보는데, 작은 창이 하나 눈에 띄었다. 창밖을 보려면 까치발을 세워야 했다. 반장이 잽싸게 까치발을 들어 창밖을 보았다. 이상해. 창밖을 내다보던 반장이 말했다. 반장의 말총머리가 흔들거렸다. 사람들이 전부 노란색 리본을 달고 있어. 반장의 말에 우리는 한 명씩 비좁은 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진짜네. 응, 진짜야. 희진이와 경아가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신기해하다 잠이 들었다. 방이 조금 추웠지만, 서로 몸을 맞대니 금세 따뜻해졌다. 다음 날, 누군가 현관문을 똑똑 두드렸다. 엄마랑 아빠였다. 미안하다. 아이참, 뭐가요. 대꾸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랑 아빠는 울고 있었다. 엄마랑 아빠의 가슴에도 노란색 리본이 달려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저 리본이 유행을 탄 건가, 생각했다. 문이 닫히고,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 앉아 게임을 했다. 학교, 쿵쿵따. 교칙, 쿵쿵따. 칙령, 쿵쿵따. 령, 령…… 영화, 쿵쿵따. 야, 그런 게 어딨어! 결국, 수민이는 아이들에게 손목을 맞았다.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현관문은 왜인지 안에서 열리지 않았다. 조금 답답하네. 반장이 말했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 날, 현관문을 연 사람은 옆 반 선생님과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었다. 명찰의 색이 다른 걸로 보아, 아마 일 학년과 삼 학년인 것 같았다. 생김새는 전부 달랐지만,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은 다들 똑같았다. 요새 유행하는 건가. 뒤쪽에 있던 수민이가 말했다. 노란 리본을 단 아이들은 별말이 없었다. 다들 조개처럼 입술을 꾹 다물고 각자의 신발코만 쳐다봤다. 재미없는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우리에게 꽃을 한 송이씩 선물하고 나갔다. 방안이 꽃향기로 가득 찼다. 향이 너무 짙은데. 창문을 열어. 아니, 창문은 열리지 않아.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코를 틀어막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습, 하. 스읍, 하아. 다들 그러고 있으니 꼴이 제법 웃겨, 우리는 푸하, 숨을 내쉬고 웃음을 터뜨렸다. 창문 너머엔 여전히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나가기 전, 우리에게 말했다. 미안해. 아이참, 그러니까. 대체 뭐가요.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또 그다음 날인지, 다 다음 날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릴 찾아온 사람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신기해서, 우리는 우와 우와 하며 구경했다. 남자들이 어느 순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가슴께에 달린 노란색 리본이 팔랑거렸다. 면목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남자들이 입을 열자,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팡, 파방, 파바방……. 우리는 조명에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대체, 뭐가요. 인제 와서 뭘 잘못했다고……. 말을 채 잇기도 전에 현관문이 닫혔다. 참 눈부신 사람이네. 수민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희진이와 경아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창밖을 내다보던 반장이 말했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방에 있던 아이들이 말했다. 나도. 나도. ……나도.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이 조금 줄어 있었다. 아이들 몇몇이 훌쩍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 긴 밤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 대자로 누워있던 수민이 말했다. 잘된 걸지도 몰라. 울다 지쳐 잠든 희진을 쓰다듬던 경아가 말했다. 뭐가? 사람들 더는 안 찾아오는 거. 솔직히 미안하다고 질질 짜는 거 보기 싫었어. 말하는 수민의 눈이 젖어들었다. ……그래도 잊히는 건 싫어. 발끝으로 서서 창문 너머를 내다보던 반장이 말했다. 말총머리가 보기 흉하게 엉켜있었다. 반장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쌓아두었던 꽃은 시들어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더는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아. 잠든 희진이가 말했다. 잊히는 게 아닐까. 우리처럼. 철커덕,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소설 차상   노란 리본의 의미 검정고시 정은희   봄이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뜨거운 열기와 온몸의 눅눅함이 신경을 거스르는 지금은 5월. 5월이라면 한창 활기찬 풍경이 펼쳐져야 하는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무지 그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여진도 마찬가지다. 여진은 지금 뜨거운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이른 것 같은 짧은 청색 바지에 검은색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고, 그녀의 뒤엔 노란색에 귀여운 동물들의 그림이 그려진 버스가 있었다. 순간 여진이 속으로 언제 나오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 드디어 여진이 기다리고 있던 그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집 현관문을 거세게 열면서 양팔을 크게 벌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어이구. 우리 소연이 왔어요?” “네!” “그래. 어서 타자.” 그 사람은 여진의 유치원에 다니는 7살 소연이었다. 작은 얼굴에 동그랗고 큰 눈, 딸기보다 빨간 입술 그리고 요정 코를 가진 귀여운 꼬마이다. 여진은 소연이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버스 안으로 올렸다. 그런 다음 자신도 버스 안으로 들어가며 소연이를 제자리에 앉혔다. “안전벨트 꼭 매고!” 소연이의 안전벨트를 매어주고 여진이 다시 자신에 자리에 앉으면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는 곧이어 한 유치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여진은 아이들을 안으로 안내했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요란하게 들어갔다. 오늘 유치원은 특별한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한 후보자의 포스터를 바로 여기 여진의 유치원에서 찍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별다른 수업 없이 촬영만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없다고 말했더니 요란하게 뛰어다니거나 교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결국, 잠시 나가 있던 선생님들이 제지하였고, 아이들은 겨우 잠잠해졌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안녕~! 얘들아. 나는 신구민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그렇다. 예상이 되겠지만,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이었다. 흔히 신 후보라 불리는 그가 오늘 이곳 유치원에서 포스터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얘들아. 우선 인사!”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양손을 배꼽에 붙이고 신 후보를 향해 인사했다. 그러자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안아주면서 계속 반갑다고 말했다. 잠시 후 뒤이어 들어오는 촬영기사를 끝으로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밖에서도 찍고, 안에서도 찍으면서 이 포즈, 저 포즈. 때문에 소연이가 지칠 수밖에 없었다. 소연이는 억지로 웃으며 볼을 파르르 떨었다. ‘아! 얼굴에 쥐날 것 같아.’ 소연이가 두 눈을 질근 감으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뒤에서 소연의 어깨를 잡고 있던 신 후보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것은 마치 움직이는 소연이를 강제로 당기는 듯 보였다. “자! 웃자! 얘들아 웃자!” 이 모습을 봤는지 여진이 뒤에서 소리쳤고, 소연이는 그 소리에 더욱 허리를 쭉 폈다. 어느덧 점심시간. 보일 듯 말 듯 맺힌 땀을 소매로 닦으며 신 후보가 사라졌고,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시간에 쫓기듯 바로 식사를 하였다. 잠시 후 신 후보를 만나러 간다며 선생님들 모두가 사라졌고 교실에는 아이들만이 남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저 아저씨.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그래. 나도 느꼈어.” “근데. 힘이 좀 센 것이 문제랄까?” “응? 무슨 소리야?” 소연이와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는 틈을 타 서로들만의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촬영과 신 후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듯하였으나, 결국엔 그 또래 아이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아직은 매우 어린 아이들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시간이 꽤 흘러가고 있는데 신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소연이와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는 나타났다. “자! 다시 찍겠습니다.” 촬영기사의 말이 교실 안으로 크게 울리고, 또다시 소연이와 아이들은 인형인 것처럼 웃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신 후보의 의상이 달라졌다. 소연이가 뭔가 싶어서 그것을 살짝 만지면 신 후보가 칼같이 소연이의 손을 내리쳤다. 그 순간 일제히 침묵하고. “아…….” 신 후보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고, 소연이가 울 듯 말 듯 울먹이고 있자. 그가 돌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손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있는 노란 리본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연아. 이게 뭐냐면. 최근에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한 사건 알지? 그 사건을 애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슴에 달기 시작한 거야. 가지고 싶으면 나눠줄까?” “…….” “응?” 소연이가 울먹이던 것을 멈추고 신 후보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고개를 내려 노란 리본을 쳐다보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 선생님. 노란 리본 주세요.” 결국, 신 후보를 비롯해 아이들 모두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고, 그다음에야 겨우 촬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촬영이 끝이 나고, 다들 지친 몸을 질질 끌듯이 걸어가 쉬도록 하였다. 신 후보는 원장실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소연이는 놀이방에 들어가지 않고 신 후보를 따라 원장실로 갔다. 방금 저의 일을 사과도 하고, 노란 리본을 선물해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소연이는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건 왜 하라고 해서!” 소연이가 거의 원장실 가까이에 왔을 때 신 후보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매우 화가 난 목소리였는데, 듣기만 해도 충분히 저 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이래서 노란 리본 안 달겠다고 한 거야. 내가 점심시간에 뭐라고 했어!” 소연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신 후보가 저렇게 화를 낼 줄도 몰랐고, 노란 리본이 그렇게 싫은 줄 몰랐다. 소연이는 왠지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졌다. “세월호 참사 그거 이제 다 끝난 거 아니야? 언제까지 이 유치한 리본 달고 있어야 하는데?” “후보님. 그래도 지금 정치인들 모두가 노란 리본 달고 있잖아요. 당분간만 참으십시오.” “정말. 이걸 달면 괜히 의무감이나 줘서 답답하게 만든다고.” 소연은 그 말을 끝으로 뒷걸음질쳤다. 점점 문에서 멀어지면 그의 소리는 작아져 갔다. 주위의 소음은 소연이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고 먹혀버렸다. 손가락은 마치 로봇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처럼 버벅거렸고, 눈은 검은색 눈동자 옆으로 거미줄 같은 붉은 핏줄이 생겼다. 소연이는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풍선 놓치듯 잃어버린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때 뒤에서 나머지 아이들도 뛰어왔다. “뭐해? 안 들어가고?” 아이들은 소연이를 지나쳐 원장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소연이가 팔을 올려 아이들을 막더니, “얘들아. 원장님께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아. 우리 들어가지 말자.” “응?……. 으응…….” 아이들은 자신들을 막는 소연이의 말에 어설픈 대답을 한 뒤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당황한 눈빛으로 소연이를 쳐다보았다. 소연이는 팔을 서서히 내린 다음 아이들을 지나쳐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며 딱딱해진 동작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아이들은 소곤거렸다. 그리고 아직 귀신이나 도깨비를 믿는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소연이가 귀신에 홀린 게 아닐까?’ 소설 차하 1   방 안의 코끼리를 묶어버린 노란 리본 부산학산여고 3학년 한지윤   어른들은 내게 노란 리본을 건네주면서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내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어른 세 명이 내게 다가왔다. 한 명은 내 팔목을 또 다른 한 명은 내 발목을 마지막 한 명은 내 입을 붙잡았다. 그리고 노란 리본으로 전부 꽁꽁 싸매었다. 나는 방문이 하나밖에 없는 곳에 서 있게 되었다. 내가 손댈 수 있는 거라곤 그 방문의 손잡이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손잡이를 돌릴 수 없었다. 방 안에는 코끼리가 산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내가 바닥에 앉기 무섭게 방 안의 코끼리는 땅을 울리기 시작했다. 방 안의 코끼리는 아마 그리스 신전의 기둥 같은 다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육중한 울림을 낼 수도 없겠지. 어쩌면 코끼리가 아니라 거대한 고인돌이 방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내 팔목과 발목, 입을 모두 묶어버렸으므로 어쩌면 방 안의 코끼리는 얼굴이 없을지도 몰랐다. 길고 긴 코와 부채처럼 크게 펄럭이는 귀, 그리고 육중한 네 다리도 전부 무(無)일지도 몰랐다. 코끼리의 모습은 순식간에 바뀌어나갔다. 나는 결국 어떤 모습도 가지지 못하는 코끼리를 생각하며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됐다. 손등 위에 난 칼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칼자국에서 나온 피가 손등에 얼룩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코끼리의 모습이 온전한 코끼리일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학교 패거리의 손에 눌려 머리를 세면대에 처박고 있을 때도 누구 한 명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 안의 코끼리를 본다면 우선 내 노란 리본들을 풀어달라고 해야겠다. 나는 손잡이를 옆으로 꺾었다. 열리는 방문 틈 사이로 하얀빛이 환하게 들어왔다.   소설 차하 2   꿈과 계절 오성고 1학년 김종배   - 황량한 발판 나는 환자처럼 앉아있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모닥불이 점점 꺼져간다. 아무도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나는 입이 굳어간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하다.   - 산의 음기가 하늘을 뒤엎던 시절 기와집의 노인들은 밥상을 뒤엎고 나무에 불 피우던 노비들의 일생이 가혹하기만 하던 시절 이생의 목적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장례는 뒷담이 서늘한 무용담이었고 이생이 가치 있어지려면 산꼭대기에 사는 노승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아야 했다. 뒷산에 묻힌 김 노인의 곡소리가 한없이 슬퍼지던 시절, 불빛이 아늑하기만 했던 시정, 현대에는 구슬프게 우는 노인도 짖어대는 짐승도 없다. 죽은 노인은 기척 없는 사막에서 불행한 꿈과 불행한 계절을 찾고 있었다. 어떤 제사도 굳은 손바닥을 달랠 수 없었다.
  • 내게서 가장 멀리 있는 건 관인가 아니면 나를 알지 못하는 내 자식들인가.
  • 사랑을 쏟은 자의 기억 속에서 너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너를 찾아온 사람들은 내력에 각자의 사연을 적어나갔다. 나도 여기 나의 사랑을 적기로 한다. 너를 지켜보던 내가 어떤 그리움을 견뎌야 했는지를 생각해본다. 너를 만지던 사람들은 불결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비밀이 되었는가. 나는 나만의 삶에 만족해야 했다. 너의 거친 피부에 간섭하는 일이란 우리가 우리로 남지 않고 우리가 하루를 만들 수 있게 된다는 것과도 같았다. 한 번쯤은 나도 사랑을 쏟아내려 했는데 네가 지나간 거리에만 사랑이 가득하고 걷다 보면 절망이 쏟아질 것 같아, 손가락을 펼쳐 내 몸을 만져본다. 나는 불결한 몸을 가지고 있는가, 불결한 숨을 쉬고 불결한 소리를 내는가, 내게 불행한 계절은 없었으므로 나는 여기서 내 이름을 지운다.
 
  • 어떤 기억 속에서
몇 년간 죽은 아버지의 흔적을 뒤쫓았다. 어릴 때 집을 나와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찾아간 적 없었다. 이제 나도 죽을 나이가 되었다. 이제 그만 죽은 아버지를 찾아가 향을 피우고 싶다.  
  • 사막에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계절이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나의 불행한 계절이다. 그러나 지금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꿈을 꿨다. 그것을 전부 주워담고 싶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아버지가 묻혀 있다는 곳을 알아냈다. 아버지는 나를 무척이나 그리워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묘를 찾았다. 망부석 자리에 노란 리본을 놓아 드렸다. 향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사막의 밤에서는 유성우가 내렸다. 노인은 노랗게 빛나는 별의 조각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았다.
  • 심장 속에서 별을 찾아냈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나의 꿈이다.
 
  • 벌판에서
아직도 하늘에선 눈이 내린다. 눈은 어제도 내렸고 내일도 내릴 것이다. 나는 너를 많이 그리워 하나보다……. 이제 그만 자고 싶다. 모닥불이 점점 꺼져간다.  
  • 내가 좋아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모두가 지쳐가는 계절에는 한 서랍 속의 기억들이 나에게 기대어 오는 걸 느꼈다.
  • 우리가 함께 걸을 때 바로 앞에서 식지 않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았고 나는 너를 안고 싶었다. 기척 없는 거리와 식지 않은 태양과 흘러나오는 음악을 우리는 서랍 속의 기억이라 느끼기로 약속한다. 아직도 서랍을 열면 불현듯 기억은 날 찾아오고 어떤 계절도 나를 달래지 못한다.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너를 생각한다. 나는 언제부터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습관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 습관을 나는 서랍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연습해온다.
오늘 너의 장례식장을 다시 찾아야겠다. 내가 너에게 느꼈던 건 절망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나 보다. 너의 뒤에서 사랑을 줍고 간다. 너는 이제 세상에 없고 나와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너에게 노란색 리본을 달아주었다.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 불현듯 벌판에 빛이 쏟아지고 네가 울고 있으면 내가 죽은 몸으로 세상을 보고 있단 걸 알아. 이제 너를 볼 수 없다는 거지. 나는 벌판에서 이방인을 기다린다. 이제 시린 계절은 나를 지나쳐 갈 것이다.
  수필 장원 노란 뫼비우스의 띠 행신고 3학년 한재웅 “엄마. 배가 암초에 부딪힌 것 같아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곧 집으로 돌아갈게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출발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 근처에서 침몰했다. 학교에서 우연히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아시아나항공 추락사건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당시 비행기가 추락했지만, 승무원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탑승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이 예상은 역시 어긋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뉴스에서 탑승자들이 모두 구출되었다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재해의 나라에서 한 걸음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학교 정규수업이 다 끝나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진호가 나에게 달려왔다. “재웅아 오전에 봤던 뉴스에서 세월호 탑승자 전원구조라고 했잖아.” “응. 정말 다행이야. 우리나라 대단하지 않냐?” “아니야. 그 뉴스 오보래. 지금 뉴스 나오는 것 좀 봐.” 내 핸드폰은 폴더 폰이어서 새로 들어오는 기사를 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호의 스마트폰으로 세월로 뉴스를 검색했다. 오전과 달리 매우 심각하게 사건이 다뤄지고 있었다. 그 기사들은 충격적이었다.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실종자 수가 구조된 사람에 비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진호와 나는 눈에 힘이 풀린 채로 스크롤만 내렸다. 그러던 중에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 대한 기사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기사의 내용은 세월호 탑승자 수의 절반 이상이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입을 다물 수 없었고 서로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8교시의 종소리만이 우리를 부술 수 있었다. 8교시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집중하여 자습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펜을 들어서 문제를 풀려 해도 단원고 학생들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8교시가 끝나고 선생님에게 야간자율학습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뉴스를 보며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세월호 사건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단원고 학생들이 마치 나인 것 마냥 슬퍼했다. 이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기도해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직접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해경들의 모습이 참 한심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난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일주일을 생각했다. 마침내 내가 생각한 것은 뉴스에 나오기 시작한 구호물품 보내기와 노란 리본 캠페인이었다. 우선 구호물품 보내기를 시도해봤다. 부반장인 나는 반장과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구호물품을 모은다는 공지를 하고 큰 박스를 교탁 밑에 두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구호물품은 쌓이지 않았다. 그저 쓰레기만 가득한 쓰레기통이 되어있었을 뿐. 나는 내 말이 쓰리기가 되어 쓰레기통에 들어간 것이 기분이 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반 친구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공감하지 못하고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내가 그들에게 시민의식을 갖게끔 도와주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 달 후 우리 학교에서 드디어 세월호 캠페인을 시작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민의식을 길러줄 수만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사고가 난 것은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자연재해이든지 인재이든지 간에 사고는 발생했다.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발생한 이후에는 신속한 대처와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캠페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노란 리본을 교복에 달고 수업에 임했다. 수업이 끝나자 진호가 노란 리본을 손에 쥐고 나에게 걸어왔다. “재웅아 근데 이 리본 이제 그만해도 괜찮지 않아? 사건이 거의 다 끝났고 솔직히 한 달 뒤에 하는 것이 뭐가 의미 있어?” “아직 실종자 남아 있어. 그리고 이 노란 리본 캠페인의 속뜻을 모르겠어? 너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라는 거야. 아주 작은 것부터! 예를 들면 무단횡단.” “아하, 사고는 방심하는 순간 일어나니까 조심하라는 거야?”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 노란 리본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아. 나한테 언제 저런 상황이 닥쳐올지 누가 알겠어? 모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자기 일처럼 생각해야해.” 진호는 집에 가서 동생에게도 알려줘야겠다고 하며 교실을 나갔다. 진호가 나간 후 내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렸다. 자세히 보니 모양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였다. 뫼비우스의 띠는 끝나야 하지만 끝나지 않는 무한으로 돌고 도는 띠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가 뫼비우스의 띠로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세월호 사건 이외에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대한민국은 이 뫼비우스의 띠를 자르고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 차상   노란 리본 백현고 3학년 정민지   겨우 육 평 남짓의 가게였다. 문을 열면 진한 종이 냄새들을 풍기는 만화책들이 낡은 책장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모의 십 년을 함께 보낸 일터였다. 여느 가게들과는 달리 몹시 후미진 골목길에 있으나 나름대로 단골들도 있을 만큼 소소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모의 가게는 만화책 대여점이었다. 낡고 허접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사랑스러운 내부였다. 비록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그즈음에 닫게 됐지만. 나는 이모네 가게에 굉장히 자주 맡겨졌었다. 난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즐거웠다. 내 짱구 머리처럼 툭 튀어나온 컴퓨터, 매일 하루를 열 듯 요란하게 셔터를 올리는 아침 또 나를 예뻐해 주던 오빠들이 들를 때마다 들리던 문에 달린 종의 소리. 이 모든 것들이 행복의 이유였던 것은 아마도 손이든 옷이든, 종이 냄새가 그득하게 풍겨오던 이모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화책에 틈 없이 딱 붙어있는 바코드 스티커처럼 난 항상 이모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엉성했을지 몰라도 열심히 이모를 돕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일이 있다. 일이라고 해봤자 손님이 빌린 책들을 봉투에 넣어주는 것 하나였지만 말이다. 그 일을 하면 난 흥에 겨워 동요를 부르거나 다른 손님이 오지 않을까 하며 종소리를 기다렸다. 우리 가게의 봉투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예쁘게 프린팅된 노란 리본이 있는 까닭이었다. 리본의 힘은 광대했다. 권태로움과 외로움에 찌든 것 같던 손님들도 카운터에서 만화책이 봉투에 담길 때면 희미하게 밝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릴 적엔 그것이 노란 리본의 마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놀라웠다. 들어올 때면 기대감에 가벼운 종소리로 변했다. 마치 그 리본들이 가게와 손님을 엮고 묶은 듯했다. 이틀 정도만 지나도 또다시 그 봉투를 똑같이 들고 와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낡은 책장 앞에 서서 다른 책을 골라와 또다시 노란 봉투 안에 책을 넣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리본을 풀었다가 묶었다가를 반복하는 듯이 몇 번 대여와 반납을 끊임없이 해주다 보면 손님은 나를 알아봐 줬다. 카운터에서 난 많은 사람과의 리본을 부드럽게 묶고 풀면서 많은 것을 엮었다. 그 노란 리본으로 사람과 이어지게 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밤늦게 한 번 다녀간 뒤로 계속 찾아오던 아저씨가 아니, 지금은 나의 이모부가 된 남자가 있었다. 순찰을 하다 발견해 들어온 만화책 대여점에서 첫눈에 반한 것이다. 그 둘에겐 오묘하게 날갯짓하는 나비와 같은 노란 리본이 묶일락 말랑해지고 있었다.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버려 심통이 날 때가 있어 확 잘라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다 너무 짧게 잘라버려 영영 리본을 묶을 수 없는 길이가 될지도 모르니까. 어느 날 이모와 남자의 리본이 매듭을 짓는 날짜가 확정되었다. 모든 가족은 마흔이 코 앞인 이모의 결혼을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이모는 말없이 가게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나를 불러내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책을 모두 빼내어야 하는데 좀만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나는 비현실적이던 만화캐릭터의 눈을 따라 하는 양 눈을 크게 떴다. 왜 이걸 다 빼야 해요? 내가 묻는 동시에 이모는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이모 옆에 놓여있던 투박한 노끈이 내 옆에 벽에 걸려있던 노란 리본 봉투와 상반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는 스무 권 정도씩 대충 꺼내어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투박한 노끈으로 책들을 꽁꽁 싸매기 시작했다. 노끈으로 묶은 리본은 거칠고 삭은 밧줄 같았다. 단단히 묶는 다해도 언젠가 풀리는, 풀려야 하는 것이 리본이라 생각했는데……. 이모는 꼭 끝마침의 끈을 조이고 있는 듯했다. 절대로 풀리지 않게끔 동여맸다. 이모는 어렸던 나에게 조금은 어려울 리 모르는 이야기를 했다. 이모 이제 가게 내놓았어, 결혼해서 새집을 구했는데 여기서 좀 많이 멀고 그 사람도 여기가 위험하니까 접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난 내가 정성스레 묶어 놓았던 여러 소중한 리본들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더는 추모의 의미라든지 사랑의 의미를 담고 이어주던 리본은 끊어지고 남겨진 리본 끈만으로 아찔한 줄타기처럼 곡예를 해야 한다는 뜻 같았기에 상실감에 젖어갔다. 종국에 이모의 만화책들은 버려졌고 대여점은 엄마손 분식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모는 나에게 하늘하늘 날리는 체조선수의 리본과 같은 것을 선물했다. 아기는 이모부보다 이모를 더 많이 닮았다. 찰흙을 쪼물딱거리듯 움직이는 탁구공만 한 아기의 주먹을 보면 어릴 적 노란 리본이 달린 봉투에 책을 담아주던 것처럼 설렌다. 이모 역시 그때에 무섭게 책을 칭칭 감아대던 허망하고 복잡하게 엉킨 노끈과는 달리 앙증맞음에 귀여움을 느끼게 되는 리본의 끈을 매듭지고 있다. 수필 차하 1 노란리본 서원고 2학년 최수빈 우리 가족은 냉면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집 앞에 있는 냉면집은 우리의 단골집이 된다. 이번에 이사 간 곳에는 코다리 냉면이라는 아주 유명한 냉면집이 있어서 모두 매우 기뻐했다. 지난주 일요일 그날은 엄마와 단둘이 그곳에서 데이트했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 이야기 소리로 조금 시끄러웠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안 돼서 한 아줌마가 나에게 물었다. “옆에 자리 있어요?” “아니요, 아니요.” 나는 얼른 옆자리에 놓았던 가방을 치워드렸다. 나는 얼른 엄마와 내 앞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물도 컵에 담아왔다. “역시 딸 낳으니까 좋다. 좋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물을 한 잔 들이켠 후 수다를 시작했다. “오늘 네 삼촌이 가게에서 한 행동을 네가 봤더라면 배를 잡고 굴렀을 거야. 화장실에서 볼일보다 말고 뛰쳐나와서는 정말 보여주고 싶다.” “우리 엄마 오늘은 좀 덜 힘드셨나 보네. 엄마 오늘 화장도 되게 잘 됐고 스타일도 좋은데?” “새로 산 섀도우인데 너도 하나 사줄까?” 엄마랑은 정말 친구 같다. 우리는 주문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수다를 떨었다. 종업원 아줌마가 왜 주문을 안 하느냐고 묻고 나서야 냉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엄마, 화장실 좀.” 엄마가 화장실에 가고 혼자 앉아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옆을 보니 아까 나한테 말을 걸었던 그 아줌마가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줌마는 냉면 두 그릇을 시켜놓고 있었다. 아줌마의 눈빛은 뭔가 애절했다. 내 마음도 아파져 오는 그런 눈빛이었다. “우리 딸이랑 많이 닮았네. 학생도 고2지?” “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대답이 끝났는데도 아줌마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아줌마는 딸 기다리시나 봐요.” “응? 으응. 오늘이 딸 생일이어서 이 냉면을 제일 좋아했거든.” 엄마가 나왔다. 때마침 냉면도 나왔다. 나는 슬쩍 아줌마를 쳐다봤다. 아줌마는 고개를 숙인 채 냉면 그릇에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그게 예의일 것 같았다. “아까 딸하고 잠깐 얘기했는데 딸이 참 착하고 예쁘네요.” “어머 감사해라. 딸 기다리신다고요? 딸이 좀 늦나 봐요?” “그러네요. 안 오려나 봐요. 가봐야겠네요.” 아줌마는 냉면 두 그릇을 그대로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 서야 보였다. 아줌마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이, 검정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이. 아줌마가 계산하고 나가자 종업원들이 수군거렸다. “요 옆에 있는 분향소 거기서 온 애 엄마 맞지?” “마저. 마저. 내가 어제 갔다 왔거든. 에휴 쯧쯧쯧. 딱해서 어떡해.” 엄마와 나는 냉면집을 나와서 그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예상대로 그 아줌마가 있었다. 아줌마는 눈빛으로 우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나도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 사진을 보았다. 정말 나랑 닮았다. 엄마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딸,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고마워.” 나는 미소로 답했다. 엄마가 내 어깨를 꽉 감싸 안았다. 그날 저녁 나는 노란 리본을 만들며 생각했다. 늘 똑같다고 생각하는 하루하루 중 오늘이라는 시간에 나는 누군가를 잠시 미워하기도 했고 욕하기도 했고 좋아하기도 했고 사랑하기도 했다. 엄마한테 말은 안 했지만 어제 싸웠단 일 때문에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됐을지 얘기하기도 미안하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힘차고 밝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원망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뉘우칠 모든 기회를 잃었다. 나.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빚을 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만났던 아줌마에게 전해드리고 싶다 힘내시라고,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멋진 세상으로 변화시키겠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단 가방을 메고 이곳에 와서 글을 쓴다. 수필 차하 2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 장성고 3학년 우현태   나는…… 노란 리본에 묶여있다. 타지의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지 어느덧 3년째. 부모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즐기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도피일까.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반신마비가 되신 아버지. 집안의 생계를 떠맡느라 몸이 망가지고 계시는 어머니. 그러니 내가 그들을 부양해야 한다. 효도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라는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 거기서 벗어나 느끼는 홀가분함. 집에 전화도 잘 걸지 않는다. 다시금 현실을 직시하게 될까 봐…….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전화에는 거짓말투성이로 답한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라고 무뚝뚝하게 여쭈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 아들~ 무슨 일 없나 하고 전화했지~.” 이제 곧 성인이 될 텐데 무슨 걱정을 그리하실까. 오히려 부모님의 걱정이 나를 더 죄어온다. 부모님을 걱정시키는 게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되니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힘들어도 잘 지낸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 난 모르고 있었다. 나는, 자식은 부모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날 옭아매는 굴레가 아니라는 것을……. 그걸 깨닫게 된 건 이번 일 덕분이다. 운이 좋게도 동국대학교 문학콩쿠르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회 전날, 서울로 올라가야 하였다. 서울에 있는 친척 집에 연락하고 버스시간표를 보면서 일정을 짜는 동안 부모님과 많은 통화를 했다. 하지만 올라가기 전날, 운이 나쁘게도 장염에 걸렸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잘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면서 서울에 도착한 다음 휴대폰을 보자 부재중 전화 3건과 메시지 2통이 와 있었다. 전부 다 어머니한테서 온 것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느냐. 무슨 일 있느냐.’, ‘서울에 도착하면 전화해라.’ 라는 문자. 난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만 보내고 친척 어르신을 만나 댁으로 향했다. 친척 집에 도착한 후 찾아온 고통은 너무나 괴로웠다.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고, 글썽이는 눈물을 닦아냈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왜 이렇게 중요한 때에 아픈 걸까. 고통과 서러움에 몸서리치는 순간 울리는 전화. 발신자는 아버지였다. 깜짝 놀라 얼른 받아보았다. 평소 무뚝뚝하셔서 표현을 잘 안 하시는 아버지가 전화라니 놀랄 수밖에……. 아버지의 ‘서울엔 잘 도착했느냐.’라는 걱정스러움이 담긴 말에 참고 있던 울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면서 실토했다. 너무 아프다고, 너무 힘들다고, 집에서 편히 쉬고 싶다고……. 그러자 아버지는 ‘배가 많이 아프냐, 약 먹고 푹 쉬어라. 네가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다. 긴장하지 말고 맘 편히 먹고 보고 와라. 지금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비록 전화일지라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이젠 좀 괜찮다고 대답한 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그러자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반응으로 걱정하셨다. 심지어 ‘내가 서울로 직접 데려가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까지 하셨다. 그러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부모님과의 전화통화를 끝낸 후, 훨씬 나아진 기분으로 나는 잠이 들었다. 노란 리본이란 건 사실 이런 것이 아닐까. 타지로 떠나는 자식들에게 가지는 부모님의 마음. 별 탈 없이 잘 생활하고 무사히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 그렇기에 우리 자식들은 그런 보이지 않는 노란 리본에 묶여서 생활하고 있다. 아마 우린 이 노란 리본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란 리본을 우린 부모님의 괜한 걱정, 간섭으로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이 리본이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도……. 나를 기다리는 곳이 있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그렇게 의지할 만한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며 무슨 일이든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언가 포기하고 싶을 때, 날 잡아 끌어주는 노란 리본을 떠올려보자. 내 뒤에서 늘 나를 믿고, 나만 생각해주는 부모님을 떠올려보자. 대회장인 지금도 나는 아직 고통을 겪고 있지만 견뎌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노란 리본에 보호받고 있다. 이 끈을 믿고 의지하며 내 모든 감사의 뜻을 담아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