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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 전국 고교생 문학콩쿠르 수상작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7727
<시 부문 장원>   아구   서라벌고등학교 3학년 황원태     햐, 고놈 참 입만 살았네 할머니는 아구의 머리를 툭툭 친다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 짠내 머금은 전구 불빛이 기둥 곳곳에 알알이 박혔다 핏빛 대야 속 입만 턱 벌리고 죽은 아구 바늘 자국에 검은 눈두덩만 남았다 상처 입은 각막만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구의 입가에 아른한 집, 바다의 기억이 고였다 주걱턱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벌어진 입 속 구개골 아래 난 기다란 이빨이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인다 흑갈색 환각무늬를 파고든 흔적 처참한 핏자국만 남았다 허기 채울 길 하나 없어 점점 늘어지는 투박한 입   아귀의 환생일까 아귀는 배가 산만 했음에도 목구멍은 단추의 구멍만 했다는데 아구는 자신의 입만 한 목구멍으로도 부족했을까, 한때 장님이 되어 다가오는 물고기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한없이 넓은 심해를 제 입으로 삼키지 못하고 허공만 베어물고 있는 아구   아구의 입가에서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한숨처럼 대야 속에 쌓인다         <시 부문 차상>   망국의 노래   일산동고등학교 3학년 김은빈     맨발의 여인이 봉분 앞에서 망국의 노래를 불렀다 대가야가 멸망할 때 우륵은 홀로 가야금을 퉁겼을까 가장 아름다운 선율은 여인의 울음 할머니의 맨발에 무수한 현의 노래가 새겨져있다   여인의 몸은 풍류가야금처럼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면 가슴을 뜯을 수 있다 명주실로 이어진 현을 할아버지 무덤 앞에서 퉁기면 할머니는 잠시 남편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가구를 만들고 나면 본드에 취해오던 할아버지 소주를 먹어야 냄새가 없어진다며 집에 와 반주하셨다 폭우 내리던 날 밤 본드가 눈에 튀어 장님이 된 할아버지 여인은 비의 현을 퉁겨 장님의 귓가에 연주했을까   남편 대신 시장에 나가 제사음식을 파는 할머니 육적을 입에 넣어주며 왼손으로 현을 눌러 연주하듯 멀어버린 두 눈을 눌러보셨다 장님은 아득히 멀리 보이는 불빛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본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   무릎에 가야고 용두를 놓고 연주하는 것처럼 엎드려 절하는 여인 정말 장님이 봤던 불빛을 본 듯 좋아하시던 육적을 제기 위에 더 올려주셨다 할머니의 맨발엔 남편을 보기 위한 지도가 새겨져있어 소리없이 온 몸으로 연주하는 가야금   장님은 죽어서도 장님일까 열 두 개의 명주실을 뜯듯 할머니 목소리가 떨려온다 소리는 산 자만의 것 망자에겐 음악이 없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걸으려는 현의 노래 맨발의 여인이 봉분 앞에서 망국의 노래를 불렀다     <시 부문 차하>   스도쿠 타임   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백들     나는 균형 맞추는 것을 좋아해요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신사처럼   엄마가 잠든 낮, 스도쿠를 풀며 조화로운 완성의 규칙을 배워요 정사각형 속의 정사각형 겹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맞물려야합니다   숫자들이 가장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는 기적을 엄마와 함께 보고싶었어요 이불 속에서 삐져나온 엄마의 맨발은 나의 것보다 크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일몰 속에서 잠이 들었어요   날마다 표정을 바꾸는 한 자리 수의 몽타주 비어있던 사각형이 단추처럼 닫힐 때마다 신기루였던 우리의 얼굴이 지워져요   나는 초조히 셈을 하게 되고   해가 가장 낮게 걸려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균형 깨진 서로의 집을 궁금해 할까요 마지막 숫자를 그려 넣을 때   나는 유서를 남기는 어린 장님이 되어요                       <시 부문 차하>   그늘의 집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송하린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자취를 시작한 언니 독립한 날부터 발바닥 아래에 그늘 한 채 지어지고 있어요 언니의 밤을 갉아먹고 자란 그늘이 한 장씩 쌓여 책처럼 지어진 그늘의 집이래요 선천적으로 어둡지 못한 밤거리의 불빛도 한 장의 아픔이 되는 곳 이곳의 벽지는 모두 책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곳에 사는 것들은 습관적으로 어둠을 찾는 먼지들과 유흥가의 불빛에서 태어난 격렬한 정적 옆집에서 들려오는 TV 속 웃음소리예요 밤처럼, 어둠이 쌓이면 어둠이라고, 외로운 입주자들이 모여 외로운 곳이래요 책상 밑에서 열 세 시간 째 꼼지락 거리는 언니의 맨발 절 골방에서 수련하는 고행자처럼 지루한 외로움을 견디는 중이예요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단해지는 그늘   아치의 천장은 때로 빛을 잃은 것들의 무덤이 되기도 해요 언니는 잘 때 불을 켜고 잔다는데 전에 살던 젊은 부부가 아기를 위해 붙여둔 야광별 스티커가 빛날 줄을 몰라요 별 없는 창 밖에서 빛나는 달빛도 이곳에서는 얼룩일 뿐이예요 외로운 밤의 아픈 이들은 모두 언니의 발밑으로 오세요                 <소설 부문 장원>   일상역의 일상     효문고등학교 3학년 김유진     일상역의 일상이다. 스케이트 선수 복장을 한 할머니가 빨간 스케이트를 신고 뛰어온다. 날과 바닥이 맞닿아 나는 소리가 며칠 전 들었던 제야의 종소리보다 우렁차다. 초등학생 반 대표 계주선수였을 때 그랬듯, 나는 오른손을 뒤로 뻗고 제자리 뛰기를 한다. 챙챙 경쾌한 소리가 열두 번 들리고 나면 나는 손에 쥐여진 새파란 바통과 함께 뛴다. 분홍색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환호하고 늘 앞머리가 젖은 아저씨가 신문 위로 고갤 내밀고 날 본다. 내게 항상 다단계를 권유하는 선캡 아줌마가 팔을 휘저으며 날 응원한다. 이 순간만큼은 우사인 볼트가 돼 역사 끝의 벽을 찍고 다시 몸을 틀어 달린다. 조금 전 나처럼 손을 뒤로 뺀 채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바톤을 건넨다. 할머니가 에에에, 소리치며 뛰어간다. 노란 의자에 앉아있던 앞머리 젖은 아저씨가 느릿하게 엉덩이를 뗀다. 나는 뜨끈한 노란의자 위에 아씨를 대신해 털썩 앉는다. “열차 오는 데 오 분 남았대요. 오늘은 아저씨가 마지막이에요.” 교복과 같은 색 목도리에 턱을 파묻은 여고생이 보송보송한 피부와 함께 조잘댄다. 아저씨는 아무런 대꾸 없이 손을 뒤로 뻗고 할머니를 기다린다. 이리 돌아올 아저씨의 머리는 앞뿐 아니라 뒤까지 축축히 젖을지도 모른다. 일상역 스케이트 할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예고 없이 나타난 할머니는 일상역 안의 사람들을 붙잡고 바톤을 건넸다. 아침 일곱 시부터 여덟 시, 일상역 사람들은 할머니의 계주를 도와야 했다. 이사 온 첫날, 처음으로 와 본 일상역에서,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대뜸 바톤을 건네받았을 때, 나는 얼결에 열차를 떠나보내며 뜀박질을 했다. 단조로운 일상 속의 첫 특이었다. 특이한 사람에게 붙는 무성한 소문들. 할머니는 그 당연함에서 예외였다. 꼭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바다를 가르고 나온 것처럼, 어떤 소문도 돌지 않았다. 할머니의 죽은 남편이 과거 쇼트트랙 선수였다거나, 할머니가 젊었을 때 국가대표가 될 뻔했는데 끝내 되지 못해 늙어 한을 푸는 거라느니 하는 뜬소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따금 선캡 아줌마만이 노망 요란하게 났다며 혀를 찰 뿐, 역사를 관리하는 경비조차 할머니의 계주를 방해하지 않았다. 일상역의 사람들은 할머니를 일상처럼 받아들였다. 바톤을 건네면 그걸 받고, “띠어! 떠!” 하면 뛰었다. 할머니는 일곱 시를 알리는 자명종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시거나 소변을 보듯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가 된 거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부재였다. 경비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가 사라진 첫날, 나란히 역사 안으로 들어온 나와 앞머리 아저씨는 말없이 빨간 의자와 노란 의자에 앉았다. 들리지 않는 에에에, 소리는 꼭 온 세상의 소리가 몽땅 없어진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어 도착한 여고생도, 선캡 아줌마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의차에 앉거나 자판기를 보고 선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지하철 안에서나 찾았던 인터넷 뉴스를 봤다.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일상이었다. <소설 부문 차상>     발레리나는 어떻게 춤을 추었는가     파주여자고등학교 문효은     들었습니까? 세상은 이제 거울로 변해버렸습니다. 당신에게 말해주려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신문은 보지마세요. 핸드폰도 켜지 말아요. 그것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답니다. 진실은 거울에 있습니다. 나는 거울 속에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나는 가로수길이 가로수가 늘어선 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은 가로수 아래를 양반집 도련님 걸음으로 천천히 거닐어 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그 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웬 사람이 그리도 많던지요. 산책하기에는 참으로 적합하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또 나는, 가로수보다도 많은 화려한 옷가게들을 보고 눈이 멀어버릴 듯 했습니다. 게다가 쇼윈도에 반사되어 내 눈을 공격하는 햇빛은 어찌나 따가운지, 이때는 정말 눈이 멀 뻔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눈이 시리지도 않은가 둘러보니 다들 번쩍번쩍한 선글라스 하나씩을 얼굴에 끼워뒀더군요. 아, 그래서 내가 이리 촌놈스러웠구나, 나는 깨달았습니다. 얼른 집에 돌아가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가로수 길을 한 번 더 찾았습니다. 나도 그놈의 선글라스를 하나 장만 했거든요. 그러나 이놈을 쓰니 영 눈앞이 답답하여 더듬더듬 벽을 짚고 걸으니 영락없는 장님이 색안경을 쓴 꼴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심청이를 찾은 심봉사 마냥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녀가 인파 속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아 무용수일까, 생각했습니다. 발걸음이 사뿐사뿐한 것이 아마 발레리나가 아니었을까요. 발레리나 치고는 어깨가 널찍하고 허리가 조금 굵직했으나 아무튼 나는 이 건장한 여자에게 흠뻑 빠지고 말아, 뒤를 쫓았습니다. 그녀는 쇼윈도 옆에 딱 붙어서 걸었습니다. 오늘 나는 선글라스를 썼으니 쇼윈도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그녀를 마음껏 쳐다볼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요놈의 선글라스가 드디어 삼만 오천 원의 값어치를 하는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쇼윈도에 얼굴을 들이밀고 옷을 고르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옷을 구경하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쇼윈도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쇼윈도 안의 무엇이 아니라, 쇼윈도 바깥의 자신을 그녀는 그것에서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그녀는 큰 소리로 웃기도 하였고 팽그르르 한 바퀴를 돌기도 하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는 스텝으로 거리를 누비는 그녀는 가로수길을 발레 무대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출 때는 립스틱을 고쳐 바를 때뿐이었습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조금 어설프긴 하였으나 함박웃음을 지으니 보이는 하얀 이는 봐줄만 하였습니다. 그녀는 쇼윈도에서 한 걸음 떨어지더니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의 하얗고 가지런한 이는 가로수 길을 온통 그녀의 거울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낮고 굵직한 울음에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수술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던 제몸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수술이 끝나고 처음으로 거울을 보았을 때 미칠 듯 펄떡이는 심장소리에 다시 태어났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머리를 기르기까지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그녀의 직선적인 몸매와 굵은 목소리를 듣고 그녀를 남자라 말하지 말아요. 당신의 망막과 고막도 당신에게 거짓말을 말할지 모릅니다. 거울을 믿어요. 여자의 몸을 찾고 신이 난 그녀가 마법을 부려 온통 거울로 만들어버린 쇼윈도 세상을 둘러봐요. 그녀는 울음을 뚝, 그치고 다시 발레리나가 되어 떠났습니다. 그녀의 가벼운 스텝에 거울 속 그녀들이 관중이 되어 박수를 쳐주었을 것입니다. 창문을 보세요. 창밖을 보지 말고 그저 창문을 보아요. 창문의 유리를 보세요. 내 얼굴이, 당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나요? 자, 세상이 거울로 변해버렸습니다.           <소설 부문 차하>   전철역의 사람들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송세미     내 취미는 자기계발, 승진시험 준비하기인데요. 저 1번도 시간 낭비 같은 거 안 하거든요. 오줌 쌀 때도 영단어 외우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전철을 기다리며 토익 기출문제를 푸는데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되는 겁니다. 웬 비명소리가 나서 뭔가 하고 봤더니 반대편 열차철로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가 보이네요. 그 여자는 철로에 누워있었어요. “저 자살하려고 했는데 맘이 바뀌었어요! 몸이 놀라서 안 움직이는데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네요. 문제에 집중이 안 되게 말이죠. “제발요!” 여자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고 반대편 전광판에서는 열차 4분 뒤 도착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어요. 참 불쌍한 여자네요. 어쨌든 나는 다시 토익문제집에 집중합니다. 여자는 안 돕냐고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요? 시간은 돈인데. 이건 격언이나 속담이 아니라요, 저 진짜 돈 주고 샀거든요. 사람들이 상점에서 시간을 사기 시작 한 건 두 달 전부터예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사고팔 수 있죠. 몸도, 생명도, 좀 있으면 공기도 판다잖아요. 아무튼 시간을 파는 상점은 전국에 여섯 곳이나 생겼어요. 어떤 원리로 시간을 파는지는 영업비밀이라 했고, time이라고 적힌 알약을 먹으면 시간이 충전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시간을 샀어요. 한 시간에 삼 만원, 좀 비쌌지만 난 시험 삼아 먹어보았습니다. 그날 전 스물다섯 시간의 하루를 경험했죠. “당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십시오.” 상점의 남자는 그렇게 말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죠. 새로 산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았어요. 밀린 업무를 끝내고, 승진시험을 준비했죠. 구입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바뀌더군요.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산 시간을 자신에게만 썼어요. 자신의 돈을 아무한테나 뿌리지 않는 것처럼요. 나는 1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기다리지 않고 전철이 예정시간보다 늦으면 화를 내요. 당연한겁니다. ‘내’ 시간이니까요. 선행천사를 자처하던 우리 회사의 미스 박도 태도가 완전히 변했죠. 전광찬의 문구가 바뀌었네요. 전철 이분 뒤 도착. 여자가 조금 더 불쌍해지네요. 전 빠르게 계산합니다. 이 여자를 돕는데 걸릴 시간을요. 일단 전철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열차를 멈춰달라고 하고 여자를 끌어올리고, 몸이 마비된 여자를 진정시키고 게다가 여자를 돕다 내 열차를 놓쳐 회사에 늦는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어쩌면 병원으로 데려가 상황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죠. 한 시간은 낭비될 것 같네요. 전 지금도 충전한 시간을 쓰는 중이예요. 시간을 나에게만 써도 토익을 통과할까 말까인데 남에게 눈을 돌릴 수는 없죠. 솔직히 말하자면 내 삼 만원을 처음 보는 여자에게 쓰기 싫었어요. “누구나! 아무나 좀 도와달라고요! 자살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철로의 여자는 이제 애원이 아니라 윽박을 지르네요. 사람들은 모두 시선을 다른 쪽으로 향하거나 각자 할 일을 충실히 하고 있어요. 곧 있을 불행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죠. 난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할 일이 좀 많고 돈 낭비를 싫어할 뿐이죠. 아, 이제 내가 탈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여자의 최후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아지네요.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아파지잖아요. 쓸데없는 죄책감을 느끼다가 일을 망칠지도 모르죠. 전 좀 인간적인 놈이라서 감성이 풍부하거든요. 이만 말을 줄여야 할 것 같군요. 이건 변명이 아니라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입니다. 모두들 공감하시죠? 아, 내 말을 듣고 계시지 않군요. 각자 할 일에 열심이네요. 좋습니다.           <소설 부문 차하>   향수   미림여자고등학교 3학년 김수빈     저기요. 여자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엄마에요? 처음 보는 남자였다.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지하철역은 붐볐고, 장단을 맞춰줄 시간이 없었다. 맞는 것 같은데……. 실망한 목소리가 등을 두드렸으나 여자는 무시했다. 다음 날 여자는 다시 멈춰 세워졌다. 저기요, 정말 아니에요? 하는 목소리가 미아처럼 절박하게 들렸다. 그제서야 여자는 남자를 제대로 살폈다. 반듯하게 머리를 왁스로 넘긴 젊은 남자였다. 새로운 방식의 구애가 아닌가 싶어 여자는 살풋 웃음까지 띄우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남자는 실망감이 역력한 얼굴로, 맞는 것 같은데, 중얼거리고서 뒤돌아버렸다. 호기심에 멈춰 서서 남자를 구경하는 잠시 동안, 그는 도합 4명의 여자를 붙들었다. 저기요. 부르는 소리는 기계처럼 일정했다. 흥미는 금방 떨어져버렸다. 여자는 다시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남자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사람 얼굴을 구분할 줄 몰랐다. 까마득한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안면인식장애라는 진단을 받을 때조차 시시각각 의사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다. 남자는 낯선 사람을 목소리 톤이나 말투, 빠진 셔츠자락이나 미니스커트로 구분했다. 아무리 훈련하고 애를 써보아도 이목구비는 쉽게 뒤섞였다. 보통 사람처럼 지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부모의 얼굴마저 헷갈리는 아들을 위해, 남자의 엄마는 방법 한 가지를 고안했다. 쓰는 사람이 극히 드문 향수 하나를 사다가 매일같이 뿌리는 거였다. 향수병과 얼굴, 향기와 인상이 단단히 달라붙을 때까지. 덕분에 세상 사람 누구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엄마만은 완벽히 알아보게 되었다. 향수병을 8개 정도 비웠을 때, 엄마는 집을 나갔다. 거의 새것 같은 향수병 하나와, 더는 향수 냄새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쪽지만이 남았다. 식탁 위의 쪽지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남자는 엉엉 울었다. 눈물에서 독한 플로랄 향이 났다. 거울 속에서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서도, 셔츠나 목도리에 속속들이 밴 포로랄 향은 날아가지를 않았다. 남자는 얼굴을 조금 더 잘 착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지하철 역사에서 엄마 같은, 사람을 발견한 후로 역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요. 남자는 미아처럼 역을 헤매었다. 어디에든 엄마가 있었고, 아무데도 엄마가 없었다. 여자는 아참마다 남자에게 붙들렸다. 그 맞는 것 같은데, 하는 기운 빠진 목소리는 꿈에도 나왔다. 여자가 어렴풋 플로랄 향을 풍겼기 때문에, 남자는 그녀를 도저히 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여자 아닌 엄마에게 매일 내쳐졌다. 정말 아니에요? 오늘따라 목소리가 끈질겼다. 아니라니까요! 개찰구를 지나던 사람들이 논랄 정도로 소리를 쳐도 사라지기는커녕, 황망하고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발, 한 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승강장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지만, 남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여자의 손목을 힘껏 붙잡았다. 여자가 빠져나오려 손목을 비트느라 옷차림이나 핸드백 따위가 흐트러졌다. 그때 입 벌린 핸드백 사이 무언가가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 향수병이었다. 손목을 쥔 아귀힘이 거세지자 여자는 겁에 질려 핸드백을 마구 휘둘렀다. 지하철에 올라타는 사람들과, 내리는 사람들과, 지나치는 사람들과 멈춰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혼재하여 주변은 아주 혼잡스러웠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핸드백이 남자의 얼굴을 치며 하나 둘씩 물건을 뱉어내었고, 마지막으로 입구에 걸렸던 향수병이 튀어나왔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병이 산산 조각났다. 지독한 플로랄 향이 사방으로 훅 피어올랐다. 여자와 구경하던 이들이 코를 막았다. 남자만이 숨 쉬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손목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진한 향기에 목구멍이 메케했다. 아아아악. 이윽고 남자가 갈라진 목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명의 엄마가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필 부문 장원>     엄마의 스마트폰   경기창조고등학교 허지연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은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어디에서든지 인터넷에 접속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찾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의 편리함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단색의 지붕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골목 끝에 위치한 지하에는 스마트폰의 공급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에 쫓기듯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밀실에는 지상의 줄기가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는 잔뿌리들의 작업실이 있었다. 엄마는 그 중에서도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한 뼈가 굵은 잔뿌리였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와. 엄마는 뿌연 먼지가 앉은 형광등 아래에서 온종일 작동되는 선풍기 줄을 마지막으로 당기며 말했다. 제 스마트폰도 고장이 나서 연락도 안 되고 요즘 계속 야근만 하시니까 걱정이 돼서 왔어요. 아직도 일 많이 남았어요? 내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온 엄마는 가로등 아래에서 고개를 저었다. 옷감만 넘겨주고 박음질 두어 번만 더 하면 돼.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매연을 뿜으며 달려왔다. 남자는 엄마가 건네준 포장된 옷감들을 켜켜이 쌓아올리며 동작만큼 빠르게 작업이 늦어져서 임금도 늦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초췌한 얼굴로 2G 핸드폰을 움켜쥔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거기 사장님이 요즘 연락도 잘 안 되시고 임금마저 늦어지면 우리는 어떡하나요. 늦게 받은 일감이라 야근까지 해가며 기한 맞춘 거예요. 남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좁은 골목을 줄을 타듯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엄마의 말에 정신이 번쩍든 건 남자가 아닌 나였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자신의 핸드폰을 붙잡고 연락하는 사림이 아버지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는 건 다행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모님에게도 서로 풋풋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정보가 궁금했을 때가. 거제도 선박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주말 부부로 산 지 10년이 넘은 엄마는 나의 교육 때문에 도시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셨다. 세상과 원활하게 소통하라고 자신의 소통을 포기하고 2G폰을 쓰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내가 스마트폰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천 기둥들이 세워진 통로를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미싱으로 옷을 재단하고 소매 부분에 단추를 달기 시작했다. 엄마, 나 글을 잘 쓴다고 선생님이 글을 써보라고 하시는데. 작게 떨리는 내 목소리는 미싱에 박음질 되고 있었다. 엄마의 책상에 올려둔 액정에 금이 간 나의 스마트폰이 미싱의 진동에 같이 떨렸다. 얘, 너 금간 건 언제 고칠 거니? 먼지 쌓인 곳에서 기침을 하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일을 끝낸 엄마가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며 내게 물었다. 글쎄요 ……. 말끝을 흐리며 엄마의 뒤를 따랐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엄마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나방들이 어지러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가로등 아래였다. 넌 글을 쓰고 싶은데 꿈같은 거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면서. 학부모 상담 때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더라. 엄마의 말에 나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대답이 없는 나에게 엄마는 한숨을 쉬듯 말을 시작했다. 눈치 보지 말고 해. 우리 딸한테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고 갖고 싶은 거 사주고, 원하는 거 하라고 이렇게 사는 거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2G 핸드폰을 아직까지 쓰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마에게 나는 정보고 세계였다는 것을. 엄마는 여태껏 그 좁은 밀실 속에서 나를 생각하고 미싱을 돌리며 스마트폰을 사용했던 거였다. 그 생각이 들자 눈에서 뜨거운 것들이 흘러내렸다. 나는 보폭을 크게 하여 엄마와 걸음을 맞췄다. 엄마의 머리에 붙은 먼지와 실밥 같은 것들을 손을 뻗어 떼어내려다 그만뒀다. 나와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곤 말했다. 엄마, 내일은 제 스마트폰을 고치러 갈게요.         <수필 부문 차상>   스마트폰 –우리들의 장난감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최연희     “이제는 장난감이 필요 없는 거 같아.” 이모가 말했다. 사촌 동생 민규는 퉁퉁 부운 눈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집안이 울리도록 악을 쓰다가, 스마트폰을 쥐어주자 조용해진 것이다. 민규는 묽은 이유식을 입에 묻힌 채, 화면 안의 파랗고 노란 동물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작고 통통한 손의 놀림은 걸음마 보다 빠른 듯하다. 엄마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민규를 보다, 안고 있던 토끼 인형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 그럼 이건 어디다 둘까?” 엄마는 풀 죽은 얼굴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저기다 두면 돼.” 이모는 책상 밑에 상자를 가리켰다. 상자에는 ‘대여 장난감’이라고 써져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주 면 다시 장난감 가게에 돌아올 장난감들 사이에 인형을 넣었다. 엄마와 나는 다시 장난감 가게로 돌아왔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엄마의 발걸음이 무겁다. 엄마가 까치발을 들어 잠궜었던 문을 열자, 딸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에게 딸랑거리는 종소리는 반가운 소리였다. 스마트폰이 유행한 이후로 손님들은 장난감 가게를 잘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구매하더라도 하루 지나서 반품하는 경우도 많았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말했다. “튼튼하고 좋은 장난감이에요.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아니요 됐어요, 애가 금방 질려 하네요.” 손님이 말했다. 그리곤 게임을 시켜달라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었다. 아이에게는 나무 선반 위에 있는 장난감을 보다도 매일 새로 업데이트 되는 게임이 매력적이었나 보다. 그 이후로 엄마는 장난감 가게가 아닌, 장난감 대여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자 손님들은 많이 줄긴 해도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장난감 대 여섯 개씩 상자에 담아 사흘 혹은 일주일 정도를 빌렸다가 가져오는 것이다. 손님들은 그 편이 훨씬 좋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유행하면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엄마들도 오랫동안 보관하는 추억의 인형은, 이제 질리면 언제든지 교체해 버릴 수 있는 장난감이 되었다. 엄마는 오늘 분의 장난감을 모아서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인형은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고, 레고나 바비 인형은 틀어진 부분을 맞추어야 했다. 섬세하게 박음질 된 토끼의 귀를 만지작거리던 엄마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요즘 스마트폰보다도 애들한테는 진짜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엄마는 거리에서든 지하철에서든 모든 장소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기한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이모한테도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맞아, 엄마. 장난감은 보고, 만지라고 있는 거잖아.” 나는 선반에 앉아있는 주황색 여우 인형을 꼭 껴안았다. 엄마가 만든 인형은 나에게 추억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다. 어릴 적 내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엄마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잠들기 전 엄마가 없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바느질하던 인형을 내려놓고,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귓가에 소곤소곤 해주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정성스레 바느질한 인형을 꼭 껴안고 나에게 안겨 주었다. 인형에 배인 엄마 냄새 때문인지, 말랑말랑한 감촉 때문인지 엄마가 올 때까지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나에게 장난감이란 엄마 냄새가 베인 말랑한 물체였다. 유년시절부터 스마트폰이라는 장난감을 접한 아이들에게 이 감촉과 냄새를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는 또 다른 손님이 올 동안 새로운 인형 가죽을 이어 붙이고 한 땀, 한 땀 꿰매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후회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엄마, 내가 어릴 때는 장난감 잘 팔렸잖아. 근데 이제 잘 안 팔리는데, 나중에는 다들 스마트폰 장난감을 쓰면 어떡해?” 엄마는 야무진 손끝을 움직였다. “그러게. 튼튼하고 예뻐도 금방 질리니까. 그래도 아이들은 만지는 걸 좋아하잖아. 스마트폰에 시선을 뺏길지 몰라도, 아이들은 따뜻한 장난감을 만지고 싶어 해.” 나는 계속 장난감을 찾는 아이들을 떠올렸다. 스마트폰의 강렬함에 끌려 장난감도 새로 업데이트되기를 원하지만, 실은 따뜻한 장난감을 계속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너무 어린 나이에 중독될까. 하지만 엄마는 스마트폰이 아이들을 보듬어 줄 수 없는 걸 안다. 그래서 계속 해서 인형을 꿰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촉감과 냄새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바람처럼. 엄마는 오늘도 우리들의 따듯한 장난감을 만들고 있다.     <수필 부문 차하>   스마트폰     중원고등학교 3학년 정채원   예심 합격 문자를 받았다.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건 기쁨의 춤도 안도의 한숨도 아니었다. 아주 작은 생각 하나였는데 이젠 몸에 완전 배어버린 질문이었다. 예심 합격을 축하합니다, 문자 하나와 생각하나. 이걸 엄마한테 말해야 하나? 손가락은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검은 바다 위로 얼굴이 비쳤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엄마는 내가 글 쓰는 걸 싫어했다. 분명 언젠가 서툰 맞춤법으로 짧은 시를 썼을 때 한 품 가득 날 안아줬던 엄마를 기억하는데 그날의 엄마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영 관심 없는 건 아니었다. 무슨 글을 쓰든, 상을 받아오든 말든 좋은 소리 못 들을 게 뻔해 붙박이장 깊이 원고지를 숨겨 놔도 기어코 찾아 읽었다. 그리고는 항생이 무슨 그런 글을 쓰냐부터 동네방네 우리 집안 얘기 떠벌리고 나니니까 좋냐까지 꼭 말을 덧붙였다. 내 글은 대부분이 어릴 적 미아리에 살던 얘기라 더 그런지도 몰랐다. 미아리 하면 쏟아지는 따끔한 시선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에게 만큼은 아니었다. 점집이 그득하고 정육점 피바다 같은 조명이 난무하기는 했어도 내게 미아리는 좋은 원동력이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또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 앞에서 만큼은 미아리는 결코 볼품없는 촌 동네는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엄마에게 미아리는 시부모님 모시느라 이십대 청춘을 몽땅 바쳐야 했던 기억뿐이라 탐탁치 않아했다. 한 번은 한창 미아뉴타운으로 시끄럽던 때 재개발 반대 운동에 나가는 엄마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 용케 노트북 꼭꼭 숨겨둔 폴더에서 글을 봤는지 문자가 폭탄처럼 와있었다. 이런 걸 쓰면 남들이 내가 진짜 이러는 줄 알거 아니냐고 왜 맨날 못사는 얘기만 쓰냐면서. 더 이상 글 쓰는 꼴 못 보겠다며 학교간 사이 노트북을 팔아 버린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글 쓰는 사람에겐 펜 한 자루면 된다지만 키보드야 말로 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는데 졸지에 무기를 잃은 쫄병 신세였다. 시나 수필은 손으로 쓰는 맛이 있어 종종 펜을 택할 때도 있었지만 소설은 감도 안 잡혔다. 인물 설정이나 줄거리는 손으로 써봤어도 처음부터 내리 써본 적은 없으니 더 그랬다. 백스페이스키와 컨트롤키만 있어도 수정할 때 충분했는데 펜 하나로 정렬된 군단을 통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 컴퓨터실 신세를 지는 것도 한 두 번이라 대안을 찾다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스마트폰 메모장이었다. 썼다 지웠다하기에도 편했고 속도도 빨랐다. 게다가 생각 날 때 마다 주머니에서 꺼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젠 종일 핸드폰을 붇잡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놀랍지도 않겠지만 엄마는 내 스마트폰도 팔아버렸다. 글 쓴다는 애가 매일 그런 것만 본다는 게 이유였다. 손에 쥐어준 손바닥 반만 한 폴더폰 하나가 엄마의 모든 말을 대신했다.   본선 대회가 있어 아침 일찍, 지하철에 올랐다. 어딜 가냐는 엄마의 말에 오늘에서야 예심 합격 사실을 알렸다. 글 핑계로 시험기간에 싸돌아다닌다고 소리치길래 덩달아 짜증냈던 게 이제와 마음에 걸렸다. 몰래 산 공기계에 지하철 와이파이가 연결됐다는 알림이 떴다. 메모장 빼곡한 짧은 글들을 읽다 저 아래 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일 처음 쓴 시 ㅋㅋ’ 맞춤법이 엉망인 일곱 행짜리 시였다. 이 엉터리 시를 보고 좋은 작가가 될 거라면서 안아주던 엄마라니 덜컹거리는 리듬에 맞춰 푸슬푸슬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은 매일 전쟁인데 말이다. 막 온수역을 지나칠 때 쯤 꾹꾹 자판을 누르기 시작했다. 진작 이럴 걸. 스마트한 시대에 좀 더 똑똑하게 나를 엄마한테 전할 걸 그랬다. 글 쓴다면서 왜 글로 전할 생각은 못했을까. 화면 가득 전송 완료됐다는 알림이 찼다. 엄마, 이 시 아직도 기억해?             <수필 부문 차하>   스마트폰 (암묵적 외면)   순천고등학교 3학년 박종필     “이따가 도착하면 연락하고.” 나는 행여 길 잃을까봐 역 앞까지 바래다 주신 고모에게 손에 쥔 스마트폰을 보며 대답했다. 네, 얼른 들어가세요. 내가 계단을 내려가 역 안으로 들어설 때도 고모는 그 자리에 서 계셨다. 일주일 정도 전이었다. 나는 엄마차를 타고 하교하는 길에 엄마에게 동국대학교 문학콩쿠르 본선 진출소식을 알렸다. 더불어 다시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고 했다. 순천 토박이인 내게 상경은 늘 기대되는 일이었다. 엄마는 이것저것 대답하며 말을 고르시다가 시선은 앞 유리 너머 앞 차에 고정시킨 채 덤덤히 말했다. “이튼 전에 고모부 돌아가셨어.” 나는 정말이냐고 되묻고 아무 말 않았다. 얼음장 같은 공기를 삼킨 듯 가슴이 막혔다. 엄마는 내가 학업 중에 괜히 신경쓸까봐 말 안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백일장 끝나고 병원 들러서 뵐 생각이었는데…하고 말을 흘렸다. 그 후로 한참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같이 타서 어색할 때 서로 폰을 꺼내드는 행동과 같은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고모부는 나를 좋아했다. 일 년에 한두 번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나를 찾으셨다. 종필아, 하고 길게 늘여 내 이름을 부르시면 나는 때론 귀찮아도 달려가곤 했다. 머리가 자라면서 부모의 손길을 불편해하는 아들만 둘 둔 고모부가 싹싹하고 친화적인 내게 준 사랑은 각별했다. 나는 고모부가 아프시다는 걸 알았기에 잘해드렸다. 봄이 오려면 겨울을 거쳐야 하듯, 나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춘기를 겪고 성장해갔다. 편하게 대하던 모든 것들이 어느샌가 불편해지고 어색해졌음을 느꼈다. 어른들이 질문을 하던가 하면 뭔지 모를 감정이 똑바로 대면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얼떨결에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 온 알림을 확인하는 척하며 시선을 피해 대답하곤 했다. 마치 명절에 어른들이 지갑에서 용돈을 꺼내 주려하면 일부러 다른 짓을 하며 모른 체하듯이 말이다. 고모부를 대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평소처럼 친자식에게나 할 만한 애정표현을 쏟는 고모부는 내게 큰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거의 모든 대답을 고모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했다. 어느 대학 가고 싶니, 공부는 열심히 하고?,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하고 물으시면 나는 마치 면전에 둔 스마트폰에게 대답하는 듯이 말했다. 평서에 내게 안마 받길 좋아하시던 고모부가 종필아, 하고 부르면 게임하는 척하며 잠시만요, 이 판만 깨고 갈게요. 하고 외면하곤 했다. 암 환자이신지도 몰랐었다. 한 달 전, 곧 돌아가실 듯 하다는 고모의 연락이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안에 엄마에게 뜻을 전한 후 혼자 서울로 갔다. 친, 외조부모 네 분이 모두 건강하시고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경험한 적 없는 나는 이번에 못 뵈면 영영 못 뵐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병동에 들어선 순간, 그동안 외면, 건성, 불편으로 고모부를 대했던 나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탄탄하시던 소방관의 피부는 누렇다 못해 녹색이었고, 그 피부 아래로 바로 메마른 근육과 뼈가 보였다. 아기마냥 몸 뒤집기도 못하시는 몸으로 손을 들어 나를 반기셨다. 나는 그런 고모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겨워 나도 모르게 간이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고모부는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이것저것 물으시다가 갑자기 신음을 내며 옆으로 돌아누우신 뒤, 내게 안마를 부탁했다. 나는 그제야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몰려오는 자기혐오에 전화기를 꺼버렸다. 그리고 뼈밖에 잡히질 않는 고모부의 다리부터 안마를 시작했다. 살살 하라는 고모부의 말을 뒤로, 손이 아파오고 땀으로 옷이 젖어감에도 온 몸을 주물렀다.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마치 고모부의 팔다리 같은 철봉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동안, 비겁한 도망을 쳐왔던 것 같다. 잠깐의 부끄러움을 못 견뎌서 그들에게 내 얼굴을 안 보여주곤 했다. 현대인들은 따뜻한 인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문명의 발전이 언젠가는 ‘우리’를 없애버리지 않을까. 나는 과감히 스마트폰을 끄고 싶다. ‘우리’가 뭔지 알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