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up zone

1967년 제 5회 콩쿠르 수상작(심은상, 서인숙, 조한철)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069
<시부 장원> 풀밭 심은상(광성고) 저 거리를 갈아 바람 거느리고 냇물을 흘려 양떼를 몰고 가는 풀밭을 만들자 내 비록 예서 이름 모를 한 마리 풀벌레로 화한들 풀잎 따라 꽃 포기를 뒤적이며 노닐 티없이 착한 마음의 푸진함이 눈 앞에 넘치는 풀밭을 가꾸리라 저 거리의 표피만큼이나 마비된 감각의 내 몸뚱아리는 맨손으로 일군 이 풀박의 땅 속 깊숙히에 잠을 재우고 풀밭이 보일 때까지 내 모진 나의 창으로 안경알을 닦던 오로지 그 심혈의 피땀으로 풀밭이랑 풀밭이랑 가꾸고 싶다 남과 다툰 후에 분한 노여움이나 장독대 위에 하늘을 움켜잡던 나 스스로의 원스런 갈증도 한발자국, 흔적없이 사루어져버려 이제 홀홀히 멍든 것 모두를 다 털어낸 내 둘레의 풀밭은 나를 다시 키워 일어세운다 내 잃어버린 것 뉘 다 가져가 되주지 않아도 내가 가꿀 꽃밭 속에 심흔만은 잃어버린 것 아니어 또다시 하나 못 찾고 빈 손으로 돌아가는 이 걸음, 참말이지 출발하는 자세로 맨손으로 저 거리를 갈아 나를 키우고 내 이웃을 가꿀 풀밭하나 만들고 싶다 <소설부 장원> 아버지 서인숙(원화여고) 대문 곁에서 나는 또 한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영일을 때리는 소리, 어머니의 말리는 소리, 영일의 우는 소리들이 하나의 불협화음이 되어 나의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내 가슴은 더욱 떨리어 오고 다리에는 힘이 몽땅 빠져나간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나는 영봉이가 담 모퉁이에 숨어있는 것을 보고 오라고 손짓을 했지요. "조것도 성적이 형편 없는 게로군." 나는 순간 가슴속이 흐믓해 왔습니다. 동생이 맞는다는 그것이 가슴 아픈 것보다 나는 동료가 생겼다는 위안으로 일순 마음이 놓였던 것입니다. 영봉이는 불행하게도 총점이 25점이나 지난 일학기 보다 떨어져 있겠지요. 그러면 아버지에게 회초리로 쉰 번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5점이 떨어졌기에 열번만 종아리를 맞으면 되는 것입니다. 형편은 내가 더 유리한 것입니다. 나와 영봉이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자니까 대문이 방싯 열리며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형편이 어때요 " 내가 물으니까 어머니는 낮은 소리로 "영일이는 열 여섯번을 맞았어." 하고 알려줍니다. 우리들은 결국 맞아야 하므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영봉이는 벌써 울기 시작합니다. 큰방으로 들어가서 영일은 다리에 약을 바르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퉁퉁 부어 있습니다. 얼굴은 눈물과 먼지로 얼룩져 있겠지요. 나와 영봉이는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내놓은 성적표를 보시더니 영봉이부터 먼저 때리기 시작합니다. 그 약한 살결을 스치는 회초리 소리가 순간 나의 가슴을 철석철석 치는 것 같았습니다. 영봉이는 처음은 징징 울더니 나중에는 이를 악물고 참는 것 같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치고는 참말 장한 태도였습니다. 영봉이가 쉰 번을 맞고 다음 내가 맞았습니다. 그런 뒤 아버지는 집을 나가십니다. 아마 화나는 김에 약주를 마시려는 거겠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약주에 취하면 언제나 파출소 신세를 져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행패를 부리기 때문이지요. 아버지가 성격이 거칠어진 것은 내 동생 영호가 죽은 뒤부터입니다. 그 뒤 아버지는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자식 잡아먹은 년." 하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영호는 익사했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영호를 강에 가도록 허락해준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아버지는 잊고 있는지 아니면 어머니가 약하니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던 어머니는 그 통에 매우 고통을 받고 있지요. 그래서 가끔 우리들 몰래 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모두 하느님에게 제발 우리 아버지를 지옥에 잡아 가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늘도 성적표 때문에 맞은 우리들은 또 기도를 올릴려고 별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우리들을 부릅니다. 쫓아 나가봤더니 아버지가 대문곁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따라온 사람들의 말로는 술을 먹고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얻어 맞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좋아서 속으로 흥흥 웃으며 영일이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영일이는 몹시 새파래져서 아버지를 때린 사람을 저주하며 아버지를 붙잡고 목을 놓아 울겠지요. 영봉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나도 순간 슬퍼져서 울기 시작했습니다만 사실 속으론 고소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병원엘 가니 아버지는 몹시 중태라는 것입니다. 그 의사가 돈을 많이 벌고파서 그러는 거지 하고 나는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두 동생은 의사의 말을 아주 진지하게 들으며 수긍하고 아버지를 근심스럽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자꾸 끼익끼익 웁니다. 두 동생도 따라 웁니다. 나도 눈물이 나오긴 했지만 사실은 별로 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병원에 계씰 동안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없는 집안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밖에는 적막하고 무섭습니다. 아버지의 콧노래로 시작되는 아침도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비랑 그 잡다한 걱정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우리들이 아버지의 병실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우리 얼굴에 뺨을 부벼대며 우리들을 껴안고 우시는 게 아닙니까. 아버지가 우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를 때 그 소리의 다정함 자애스러움이 우리의 가슴속에 꼭꼭 와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제 아버지를 지옥에 보내 달라는 기도문을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영일이가 우리를 대표해서 조용히 기도문을 외기 시작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누나인 나와 동생 영봉이를 다같이 감동시켰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잠시도 아버지의 포악함을 의심한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우리 아버님을 다시 완쾌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멘." <수필부 가작> 거짓말 조한철(서라벌고) 우리는 흔히 거짓말을 잘한다.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 놓고, 현대에서 유행하는 바람을 맞친다. 또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거짓말을 써서 그 죄를 없애려고 한다. 나는 생각해 본다. 이 인류에 거짓말이 생겨난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사람이 사람을 모함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자기가 자기의 죄를 가볍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본능을 가졌다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사실이다. 허지만,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자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거짓말에는 거짓말이 될 수 있는 것과, 거짓말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람의 목숨은 중요한 것이다. 동물들의 목숨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우리는 사람이거늘 전연 생각지도 않았는데 남의 모함으로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도 없는 크나큰 죄를 저지른 것이다. 가벼운 거짓말, 신(神)이 아닌 이상, 자신의 전부를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의 도(道)가 지나친다면 안 된다.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이 살아있었기에 상대를 위해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볼 때 난 한없이 자신이 우울해진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무한히 동정하고 싶다. 마음으로부터의 동정심. 자신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전부를 주고 싶다. 그래서 그 사람이 선(善)한 인간이 된다면 무한한 보람을 찾는 것처럼 하고 싶다. 언제였던가. 길에서 우연히 동창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나를 보고 요사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했다. 나는 보통 때 관심이 없던 그였기에 그저 그렇게 지낸다고 지나가는 말로 대답하고 그의 소식을 물었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기술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엽서 한 장만 띄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든 기술 배운 것을 발휘해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냐고, 아니 꼭 그러겠다고 말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와 헤어져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의 말을 여기에 다시금 새겨 볼 때 사실(事實)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덜 익은 감을 먹은 기분으로 텁텁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다. 행복한 거짓말. 거짓말을 하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뜻이다. 나는 어느 사람을 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을 알고 난 인간들은 다시 말을 걸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와 만나 이야기 하더라도 그 속에는 거짓말이 삽입되어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 삽입되어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 아닌 줄 믿고 있었지만 그 사람의 전부를 알고 난 후에는 손에다 장을 지진다 하더라고 이젠 믿고 싶지가 않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사람을 믿게끔 해야될 것이고 나를 타인이 신임해야 된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믿자, 믿어야 된다. 제 아무리 현사회 질서가 무질서하더라도 나만이라도 사람을 믿어야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나를 믿어줄 것이고 거기서 저 하늘처럼 깨끗하고 푸른 대자연의 행복한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