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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제 20회 콩쿠르 수상작(오선홍, 권애영, 최영순, 나광수)

등록일 2015-06-26 작성자 학과관리자 조회 1188
<시부 장원> 새 오선홍(광주고)1) 한줄로 구비쳐 흐르는 환웅(桓雄)의 손금에는 파랑새 하나씩 곱게 겹쳐지고 있다. 살들이 돌아눕는 시간, 가슴은 가슴끼리 번번히 비행하려고, 날개만 퍼득이게 하는 수목들 사이에서 다시금 내가 왔다던 그 산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세하지 못한 몸짓으로 떠나가고 있다. 눈이 멀다는 눈만으로 환웅의 손금 몇바퀴를 돌아 새는 언젠가 한번은 하늘과 땅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찬란히 피워 낼 오색 무지개 속 파랑새의 그 파란 눈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늘 또 하루 온난다습한 남동풍이 눈썹 위에 뿌려지는 시간, 한줄로 구비쳐 흐르는 환웅의 손금에는 파랑새 하나씩 곱게 겹쳐지고 있다. <시조부 장원> 오월은 권애영(광주 소피아여고) Ⅰ 잎새마다 채우는 정갈한 매무새로 고이는 향기 품고 연초록 빚어내는, 원시의 발돋움 곁에 자욱, 꿈이 흐른다 Ⅱ 미쁜 하늘 끝에서 햇살 풀어 깁던 정을 색 짙은 바람으로 곱게 사루다가, 얼 하나 어둠에 묻고 온 들녘 누벼 갈까. Ⅲ 눈길에 와 닿을수록 싱그런 행장 풀어 신록의 수를 놓는 투명한 계절 물고 5월은 울 안 가득 흐르는 별빛으로 내리는지. <소설부 장원> 병실 최영순(강릉고) 나는 잠에서 깼다. 치익치익, 스팀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잠에서 깨어서 그런지 병실은 안개가 끼인 듯 흐려보였다. 그리고 조용했다. 조춘(早春)의 화사한 햇살이 병실 가득 찰랑거렸고 그 위로 안개 같은 조용함이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아직도 오전에 머물러 있었다. 아, 그 시계에 고여 있는 나른한 시간을 나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경영해야할지 걱정스러웠다. 이럴 때 시간은 마치 홍수로 불어난 강과 같았다. 내 앞에 도도히 흐르며 날카로운 초침 소리를 물결 마냥 찰랑이며 나를 난감하게 하는 것이다. 저 강을 건너긴 건너야 할 텐데 내겐 그 시간의 광활한 강을 건널 아무런 도구도 없는 것이다. 그저 나태와 잉여의 잔들 곁에 발을 담그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새 시야는 안개가 걷혀버린듯 깨끗해져 있다. 하얀 병실 벽이 햇살 속에 속절없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주전자를 찾아 꼭지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거칠게 그것을 내려 놓았다. 그 바람에 쟁반 옆에 놓여있던 약봉지가 툭 떨어졌다. 아이나, 파스 등 제법 비싼 약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줍기 위해 병실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순간 나는 내 가슴 속에서 수 십장의 유리 접시가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병실 바닥에는 빨간 알약이 흡사 점점이 떨어진 핏방울처럼 섬짓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 약을 다시 줍기가 두려웠다. 저 약을 먹으면 내 병 결핵이 되려 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병실 벽에 대한 느낌도 전 같지가 않았다. 입원 당시에는 그 희디 흰 벽이 아름답다고 느껴졌었더랬다. 그래서 나는 저 벽에 한 폭의 아름다운 벽화를 남기고 싶었었다. 비록 내 그림 실력은 없지만 저 벽의 흰 색깔이 내가 그릴 그림을 불멸의 명화로 남겨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저 벽이 점점 좁아져 나를 짓눌러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저 벽을 허물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는 것이다. 정말 모를 일이었다.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창변에 붙어 섰다. 팡, 팡, 팡. 정구치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병실 창으로는 정구장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오후엔 미스 박이 주사할 거예요.” 문득 아침에 담당 간호원 미스 최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원끼리 정구 시합이 있어요. 다 비번이지만요. 그래서 정구 못하는 미스 박이 들어오게 됐어요.”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 저 파라솔 안의 여자들 중에 미스 최가 있을 것이다. 연두색 정구공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조춘의 햇살 사이를 비집으며 날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내가 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은 지난 늦가을 무렵이었다. 그 때 내 가슴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처음 이사 온 집의 방 벽에 박혀있는 녹슨 못처럼 나는 완전히 녹슬어 있었고 초라했다. 나는 삼수생이었으니까. 나는 전혀 사랑스럽지 못한 삼수생이었으니까. “이 눔아, 이 눔 땜에 요즘 이 애비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 눔아 알어 ” 아버지는 항시 그렇게 말했다. 나 때문에 동료 사장들에게도 창피하고 사원들에게도 창피하다는 거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울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들리는 모든 것이 우울했다. 그리고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대학이, 아버지의 체면이, 입시가 내게 달려들어 튼튼한 오랏줄로 나를 꽁꽁 묶어 버리는 꿈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도 했고, 또 그럴 때면 항시 식은땀이 등에 흥건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묶여가고 있었다. 처음엔 발걸음에 걸리적거리기만 하던 것이 나중엔 손 끝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정도로 묶여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몸살처럼 은행잎이 지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나는 벤취와 함께 꽁꽁 묶여 우울했다. 도망가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어느 새 내 가슴 속에선 이런 작은 설레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무엇에서건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입시고 나팔통을 다 때려치우기로 작정했다. “아버지, 입원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께 대담히 말했다. “결핵이 도진 것 같습니다.” 나는 고 2 때 결핵을 앓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걸 핑계대고 입원할 것을 밝혔다. 아버지는 처음엔 떨떠름하게 생각했으나 병이 났다는 데에는 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였다. 사실 내 생각에도 결핵이 도진 것 같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 환각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 아프다 아프다 하면 정말 자신이 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되어지니까. 나는 병실에서 지내면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누구하나 간섭이 없었고 아버지의 창피도, 체면도, 입시도, 대학도 이 병실 안에서는 쓰잘데 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다. 이 병실 안에서 나는 내 몸에 묶여진 보이지 않으나 견고한 오랏줄을 풀어낼 수 있었다. 나는 자유의 시간과, 데미안과 더불어 내게 부여된 시간을 맘껏 호흡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흰 벽과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의 가슴을 힘껏 포옹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창문을 열면서 되뇌였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나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벽에 의해 짓눌리는 환상에 사로잡히는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조금은 쌀쌀하나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찼다. 간호원과 의사들은 아주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정구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 웃음소리가 창턱에 툭툭 떨어지곤 했다. 햇살은 그들의 힘차고, 탄력 있는 팔뚝에서 빛났다. 나도 저들과 함께 정구를 치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 팡, 팡, 팡. 정구공 소리가 막 돋아나는 새싹 위에서 부드럽게 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봄이 어느 새 내 주위에, 병실 주위에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드러운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 있었다. 봄은 곧 병실 주위에 진지를 구축하고 본격적으로 생명의, 혹은 자유의 공격을 감행해온 천지의 그 혼들을 피어나게 할 것이다. 나는 창변을 벗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미스 박이 들어왔다. “어디 가시게요 ” 나는 조금 웃어보이고는 병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약들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그것들을 힘껏 던져 버렸다. 아주 멀리 “어머나, 뭐하시는 거예요 ” 미스 박은 놀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창가에서 크게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아주 선명하게. “퇴원 수속 좀 밟아줘.” <수필부 장원> 꿈 나광수(경기고) 우리는 가끔 꿈이라는 존재를 잊고 산다. 숨 돌릴 겨를도 없는 도시 생활의 어지러움이 한층 그것을 부채질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지금의 주어진 삶에 순응하면서도, 우리는 가슴으로 만족을 한다. 그러한 만족이 가져 올 엄청난 나태의 괴로움을 예측하지 못하고……. 만족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커다란 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에게 만족만이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 우리의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꿈이 샘솟고 있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한 시선으로 거리를 보면, 꿈은 어느 곳에나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소리, 가로수의 잎새마다 스며있는 꿈을 발견할 수가 있으며, 온 거리로 가득 찬 꿈의 물결을 볼 수가 있다. 이 넘실거리는 꿈들을 보면 나의 가슴에서도 꿈이 우러나온다. 꿈이라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이슬을 닮은 그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비록 그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일지라도……. 꿈은, 꿈을 꾸는 그 자체만으로도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꿈으로 하여 신선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실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마침내 그것을 헤어날 수가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세상 누구도 누릴 수 없는 그 영원한 기쁨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는 언제나 내일을 기대하면 살아나갈 수 없다. 만일 우리에게 꿈이란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우울한 일이다. 꿈이 사라지게 되는 날, 그것은 곧 우리들 최후의 날이다. 아니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가슴에는 꿈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꿈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들 세상은 그토록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또 슬픔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다. 꿈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미 떼어질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창밖을 향해 귀를 기울이면, 멀리로 꿈의 출렁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밤이 내려앉는 거리는 포근하다. 멀리로 들려오는 행인의 발걸음을 사르면서 새로운 나만의 세계로 향한 몸놀림은 살면서 눈을 떠간다. 가슴에서 가만히 일어나는 은근한 여유는 한없이 정답게 느껴진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회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지나간 순간, 순간들을 어림하여 보면서 가슴 한구석으로 정녕 나에게 꿈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어쩐지 아쉬움만이 가득 고이고, 무의미한 시절이 다가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둠의 그림자는 착잡한 나의 심정을 더욱 깊게 얽어매고, 나는 조금씩 슬퍼하였다. 하지만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니 저 물오른 가지마다 나의 작은 꿈들이 맺혀 있지 않은가. 슬픔은 하나씩 내게서 사라져가고, 나는 새로 느낀 꿈의 기쁨으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꿈은 은은하게 가슴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슬픔에 젖어들 때면 이제 꿈을 생각하게 된다. 꿈의 손길을 느끼면서 다시 한 번 꿈의 모습을 다듬는다. 이제 사랑을 배워야겠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랑을 배워야겠다. 익어가는 계절 밑에서 한껏 꿈을 키우는 생명들을 사랑하여야겠다. 내 가슴에 흐르는 소박한 꿈까지도 어루만질 수 있는 커다란 사랑을 하여야겠다.